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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95화 (195/281)

◈195화. 3. 대마법사와 악녀 메이커 (34)

“지하에서 본 무덤을 기억하시나요?”

“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무려 주인공들이 죽어서 만들어진 무덤, 이건 내 독자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최악의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보통 지하로 내려온 자는 그 무덤을 보지 못합니다. 내가 걸어둔 마법 때문이지요.”

그건 이미 들었다. 보통 사람은 그 묘비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실수로 들어갔다가, 이 남자에게 호되게 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내 잘못이 맞지만.

“아주 드물게, 아니, 사실은 내가 허락해서 그 무덤 앞에 들어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묘비를 읽지 못하더군요.”

“네?”

“누구도 그 이름을 읽지도, 이름의 주인을 기억하지도 못했다는 말입니다.”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아니, 이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묘비 속 이름은 세 번째 이야기의 본래 주인공들의 것인데,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 한다고?

“당신 이전의 대마법사라면서요? 마탑주고요.”

“네. 나 이전의 마탑주이자 대마법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

“세상에서 오직, 나 하나만이 그들을 기억합니다.”

내 입이 절로 벌어졌다.

“……범인은 잡지 못한 건가요?”

“잡지 못했죠. 신기하게도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거든요.”

처음 묘비를 마주한 날, 그와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범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건, 사실은…… 범인을 기억하는 자조차 없었다는 말일까? 소름이 돋았다.

잠시만, 조금 이상한데?

“대마법사님, 잠시만요. 이전에 묘비 앞에서 얘기해주실 때엔, 사람들이 무려 대마법사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마탑의 마법사들이 혼란을 퍼트리지 않기 위해 이 사실을 숨기고 그, 당신이 대마법사란 이유로…… 다음 마탑주에 앉게 되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 워낙 충격적인 이야기라 전부 기억한다.

“당신이 마탑주가 되는 것이 친구의 마지막 유언이었다고…….”

“맞습니다. 전부 기억하시는군요? 그것 또한 사실입니다. 다만, 제가 마탑주가 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사람이 내 친구와 친구의 연인을 잊더군요.”

“…….”

“마치 없던 사람처럼.”

이어진 발데르의 말은 숨 쉬는 것조차 잊게 했다.

“그래서 내가 죽은 자를 대신해 자리를 채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아…….”

충격이었다. 모든 사람이 원래의 남주와 여주를 기억하지 못 한다고?

그럼 난 뭐야?

……난 예외야?

그러고 보니, 내가 묘비를 처음 보았을 때, 그때 이름을 중얼거렸던가.

‘아냐, 이름을 밖으로 꺼낸 적은 없어.’

생각하다 말고 발데르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내가 이름을 알아봤다는 사실을 모를지도 모른단 거다.

얘기해야 하나?

입을 열려는 순간, 잠깐 멈칫하게 됐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대마법사에게 자꾸 처음을 쥐여 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영애는 모르나 봅니다.”

……이거, 진짜 이야기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동시에 발데르의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얘기하자.’

나는 빙의자다.

그래서 눈을 떴을 때 나만이 모든 걸 아는 세상에서 외로이 눈을 뜬 기분을,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기분을 잘 알고 있잖아.

막 입을 열려는 그때였다.

우린 약속을 한 것처럼 창문을 보았다. 마차가 다시 느려지고 있었다.

“도착했네요.”

“아.”

그가 말을 하는 동시에 마차가 완전히 멈췄다.

제국 내 가장 유명한 명소답게 창문 너머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람들이 많군요.”

“네에……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멈춰달라고 했으니까요.”

“영애가 말입니까?”

“아뇨…… 공녀 언, 아니, 공녀님께서요.”

그래, 공녀 언니의 명이었다. 시선을 받기 위해 하는 일이니 사람이 가장 많은 제 1 입구에서 반드시 내리라고 말이다. 스승님의 명이신데 들어야지. 듣는 게 맞는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건데……?’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숫자를 보고 있으려니 발데르에게 하려 했던 말이 머리 한쪽으로 쭉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니, 주목 받길 각오하긴 했지만 이렇게 강제로 슈퍼스타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공녀 언니에게 듣기로 발데르는 나름 유명인사라고 했던가? 황제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는 대마법사였다.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것에 더욱 열광하는 법이라, 실제 모습을 보기 힘들었음에도 머리색과 눈 색을 비롯한 그의 외견은 이미 널리 알려진 지 오래였다.

나마저도 얼굴 한번 못 본 이 대마법사님의 초상화 정도는 아주 쉽게 구했지 않았던가.

“영애는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죠?”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조금만 지켜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발데르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놀라 물러나던 나는 날 좇는 시선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한 사람만 쳐다보더라도 시선을 금방 피하시잖아요?”

“그거야…….”

댁 얼굴이 앞에 있으면 여기에 여덟 살 아기나 여든 살 할머니가 있어도 고개를 돌릴지도 몰라요……. 아니, 아기는 잘생겨서 더 쳐다볼지도.

“그, 일단 후. 내릴까요?”

아마 황태자와 공녀 언니는 이미 도착해있을지도 모른다.

스승님을 기다리게 할 순 없지. 사실 늦었다가 다음에 줄 미션이 더욱 하드해질까 봐 얼른 움직이는 것이기도 했다. 공녀 언니가 웃으면서 혼을 잘 내시더라고.

“영애.”

“네.”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놀리시는 거죠? 긴장한 거잖아요.”

“이런, 들켰나요?”

이 사람이 뭐라는 거야. 휙 돌아보다 말고 흠칫했다.

발데르가 가까이에서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긴장 이제 풀렸어요?”

“…….”

글쎄요, 댁의 잘생긴 얼굴이 더 긴장하게 만든 것 같지만 어쨌거나 밖의 사람들을 잠시 잊었다.

나는 손을 움직였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불가항력이 들었으니까.

“잠깐, 영애.”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막는 손을 느꼈다.

옆으로 바람 냄새 같은 향기가 스쳤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마차에서 내려 나를 올려다보는 발데르의 모습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빙긋 여우처럼 휘어지는 눈매, 빛 아래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부드러이 웃는 얼굴이 오늘따라 조명을 달아둔 것처럼 더욱 빛나 보였다.

“단 한 번도 에스코트 한 바는 없지만, 보통 이리하는 것이 예의인 줄은 알아요.”

내게 내밀어진 손은 꽤 커다랬다. 나도 모르게 내밀길 망설이다 이내 꾹 입술을 다물고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다리가 둥실 떠올랐다. 내 치마가 봉긋 솟아올랐다.

나는 그대로 허공을 걸어 바닥에 탁 내려왔다.

“그리고 이것 또한 당신이 내 처음이네요.”

그가 그리 말했을 때, 나는 수많은 시선을 느꼈다.

‘뭐야, 사람이 더 많았잖아?’

돌아보니 창문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인원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때문에 놀라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게 빙산의 일각이라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이 사람들이 다 발데르가 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단 말이야?

추수제 연회장에는 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그들이 지금처럼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진 않았잖아?

‘긴장하지 말자.’

일단 공녀 언니를 찾아야겠다.

“공녀님은 여기 오셨을까요?”

“긴장되세요?”

“그렇게 보여요?”

그건 안 되는데. 지금 이렇게 하는 이유가 어쨌거나 악명도를 쌓기 위함인데……. 사실 이런 걸 쌓으려면 어쨌거나 나쁜 짓을 하든 뭘 하든 당당한 게 먼저 아니겠는가.

“그렇게 보이진 않아요. 이렇게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요?”

발데르가 날 유심히 본답시고 상체를 기울인 순간 뒤에서 ‘꺄아아악’ 하는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니 화들짝 놀라 이쪽에서 고개를 돌리는 한 영애의 모습이 보였다.

‘비명?’

잠시 고개를 돌렸던 영애는 나를 다시 흘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니, 이름 모를 언니? 왜 그렇게 선망, 아니 행운을 빈다는 듯한 묘한 시선으로 나를 보세요?

“하아, 일단 들어갈까요?”

이렇게 된 이상 즐겨야지 어쩌겠나. 나는 발데르의 손을 잡고 안쪽으로 이끌었다.

‘본래 제국의 명소라고 듣긴 했지만, 보통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

비록 내가 생존에 바빠서 이런 곳을 둘러볼 시간이 전혀 없었지만 조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곳에서 사람이 가장 붐비는 장소에 도착했다.

약속 장소였다.

‘여기만 사람이 왜 배로 많나 했더니…….’

나는 어렵지 않게 공녀 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 쪽에서 먼저 반갑게 다가오기도 했다.

“어머나, 영애!”

활짝 웃어 보이는 공녀 언니와, 그런 언니를 사랑스럽게…… 와, 사랑스럽게? 대단하네. 아무튼 간에 완벽한 연인처럼 바라보는 황태자는 무려.

커플룩이었다.

‘와, 서로를 보는 시선 좀 봐. 대단하네.’

두 사람의 작전 장소를 빌려준 사람으로서, 저 두 사람이 생각보다 얼마나 사이가 나쁘며 서로를 싫어했는지 아는 사람으로서 기함할 정도로 대단한 장면이었다.

“기다렸어요. 어서 와요.”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공녀님.”

“아니에요. 내가 먼저 왔는걸요?”

공녀 언니가 생긋 예쁘게 미소했다. 푸른 옷을 걸쳐서인가, 화려하고 표독스러운 얼굴에서 신기하게도 청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 달링을 조금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요.”

“이런, 나와 마음이 같았다니, 기쁜데요? 내 피앙세.”

서로를 꿀 떨어지는 눈길로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 진짜 적으로 돌리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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