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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05화 (205/281)

◈205화. 3. 대마법사와 악녀 메이커 (44)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안 우는데?

“저 안 울어요.”

그러자 어째서인지 라이칸의 표정으로 안타까움이 스쳤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가신 내 모친께서 이런 말을 하셨지. 웃는 사람이 항상 행복하고 괜찮은 것은 아니라고.”

멀어지던 라이칸의 손이 아주 살짝, 아니, 내 뺨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슬쩍 닿았다가 떨어진다. 솜털을 쓰다듬기라도 하듯이.

“그대는 위태로워. 알고 있는가?”

라이칸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천천히 나를 마주했다.

“사실 궁금한 게 아주 많다. 하지만 중요하진 않은 것 같군. 그러니 나는 한 가지만 묻겠다 영애.”

“……어떤 질문을.”

“연모하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대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연모하니 되었다.”

눈 앞에 정말이지 날카로움은 어딘가 두고 온 듯 활짝, 온순하게 웃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가 영애의 곁을 비울 이유는 없겠군.”

채 만지지 않고 스친 손끝이 왜 뜨겁게 느껴졌을까.

“언젠가 닿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나는 환하게 웃는 남자를 멍하니 응시했다.

[잘 하셨어요, 애정을 나눠주셨군요!]

[서브남 ‘라이칸’의 애정도가 대폭 오릅니다. (*⌒∇⌒*)]

“영애. 아니, 달린.”

라이칸이 잠시 헛기침하더니 자신의 손을 입가로 가져다 댔다.

시선을 살짝 옮기는 동시에 그의 손끝이 다시금 붉어졌다.

“그대의 몸이 좋아진 것 같으니, 안심하고 돌아가겠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면…… 다시 보지.”

“…….”

“그때는…… 나도 호수공원에서, 큼, 볼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붉어진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라이칸은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그는 사실 더 많은 것을 물을 수 있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달린의 눈동자에는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하든 뭐든 답변해줄 것 같은, 굳은 심지가 보였다.

그렇기에 라이칸은 그가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의문이라거나, 혹은 더욱 핵심적인 것을 물을 수도 있었다.

‘나와 있던 그 시간에도 그대는 늘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냐고.’

이를 생각하면 심장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그러나 라이칸은 끝끝내 달린에게 정말로 죽으려 했냐고, 왜 죽으려 했냐고는 묻지 않았다.

이유가 어떻든 앞으로 그녀의 삶을 더욱 흥미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자신이 말이다.

저택을 나서는 라이칸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그는 스스로도 몰랐다.

그의 모든 순간을 차지했던 여동생을, 어느 순간부터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달린은 몰랐지만, 이미 라이칸의 사랑의 순위는 바뀌어 있었다.

* * *

‘아니, 왜 마음대로 안 되는 건데?’

라이칸이 돌아간 후, 나는 내 손을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라이칸을 서브남으로 두는 게 싫어 거절하려 했더니 요정 저놈이 멋대로 서브남으로 만들어 버리질 않나.

그렇다면 최소한 애정을 나눠주는 식으로 라이칸마저 요정의 농간에 당하지는 않게 하려 했더니, 이마저도 실패해버렸다.

아니, 사실 후자 쪽은 내 나름대로 노력한 것 같은데…….

한동안 옆에 있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더니 오히려 라이칸은 생각지 못한 답변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더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나? 적나라하게, 이대로 내 곁에 있으면 당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한테 이용당할 거라고?’

[훌륭한 악녀는 오는 남자 막지 않아요! ٩( ᐛ )و]

나는 자연스럽게 떠오른 요정의 창을 무시했다. 넌 이제 닥치라는 말도 아깝다.

한편으로는 어쩐지…… 내가 더 적나라하게 말했더라도 라이칸은 똑같이 웃으며 받아들였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 생각하니 심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마지막에 환하게 웃던 얼굴이 머리를 떠나질 않네.’

도통 웃지 않던 사람이 그리 웃어버리니, 잊는 것이 더 어려웠다.

웃는 얼굴만 봤나? 눈물을 후두둑 떨어트리는 얼굴도 봤지. 어느 쪽이든 여러모로 오래 기억에 남을 표정뿐이었다.

‘끙, 이제 다시 발데르를 불러야 하나.’

[당신의 소문이 숱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악명이 쌓입니다! 65 /100]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악녀’로서의 업적이 쌓입니다. 앞으로도 노력합시다! 75 /100]

뭐야. 이때다 싶어 등장한 요정의 창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퀘스트에 필요한 악명이 순조롭게 쌓이고 있다니 나쁜 일은 아니지만…….

내 악명이 호수공원에서 쓰러진 이후로 가파르게 오른다면 결론은 하나밖에 없으리라.

‘사람들이 발데르에 라이칸, 휴고까지 보고서 엄한 생각을 하고 있단 소리 아니야?’

내가 구경꾼이라 가정하면 나라도 그 장면이 흥미로울 것 같다.

거기다 상황을 들어보니 내가 쓰러졌을 때 라이칸과 휴고가 뛰어왔다고 하지 않은가.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유명하지도 않은 영애와 제국에서 유명인사 남자 셋의 모임이라.

‘오, 완전 로판인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훌륭하게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인 것 같아서 영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독자로 남고 싶지 주인공이 되고 싶진 않다고…….

‘그보다 생각해봐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었지.’

나는 주변을 돌아보고는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요정, ‘집착 지수’란 게 뭐야?”

요정이 라이칸과 휴고를 강제로 서브남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언급했던 것.

당시엔 발데르랑 함께 있어서 묻지 못했지?

‘그 집착이라는 게 내가 아는 그 집착 맞지? 왜, 그 지수가 다 차오르면 위험하기라도 해?’

[요정은 그렇다고 말해요! ˚‧º·(˚ ˃̣̣̥⌓˂̣̣̥ )‧º·˚]

‘……뭔데, 무슨 위험? 감금이라도 당하나?’

[요정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대답해요!]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발데르가 나를 감금한다고?’

어째 이미지가 쉬이 연결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내게 있어 발데르란 대마법사는 그저 부드러운 얼굴이거나 반쯤 나른하고 졸린듯한 눈을 한, 초연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감정을 고할 때는 무언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 모습조차도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집착 지수가 반쯤 찼다고 했나?’

[현재 세 번째 이야기 ‘남자주인공’의 집착 지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60/100]

[주의! 집착 지수가 100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서브남에게 애정을 나눠주길 권합니다! ˚‧º· Ó╭╮Ò‧º·˚]

‘뭐야, 왜 10이 늘었어? 언제 늘었는데?’

요정이 대답하기를, 내가 라이칸을 독대한다고 했을 때 올랐단다.

아니, 상황상 오를만한 것 같긴 한데…….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요정 이놈이 하도 삑삑대니까 일단 그 집착 지수라는 걸 아주 무시할 생각은 아니긴 한데, 영 찝찝했다.

‘이놈이 다른 건 몰라도 내 생존만은 철저히 지키려 한단 말이지.’

일례로 내게는 죽음마저도 대비할 수 있도록 불굴의 의지라는 스킬도 있지 않은가? 죽더라도 1시간의 유예가 주어지게끔 말이다.

그래, 일단은 저 집착 지수인지 뭔지. 더 올리지 않게끔 노력해보자.

이 세 번째 메인 퀘스트가 이 이상 더 어려워지면 나도 곤란해지니까.

‘이번 퀘스트는 몸이 힘들지 않은 대신에…… 정신이 피곤하다 피곤해.’

라이칸도 갔겠다. 발데르를 부르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내겐 발데르를 부를 수단이 없었다.

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된 거 정원이라도 산책하면서 머리를 좀 식힐 참이었다.

‘아니다, 리제에게 찾아가 볼까? 최근에 굉장히 바빴던 것 같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리제도 내가 기절했단 소문을 듣고 걱정을 아주 많이 했을 거다. 호수 공원에 가기 전에 리제에게 편지를 보냈었는데, 슬슬 답변이 오지 않았을까?

나는 하녀를 불렀다. 자주 보는 베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왔다.

“음, 편지가 도착한 게 없다고?”

“네, 아가씨……. 혹시 기다리는 편지가 있으세요?”

“으음, 아냐.”

이상하네. 리제는 웬만해선 이틀 내로 답변을 주곤 했다.

한동안 우리 저택으로 오는 발길도 뜸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리제의 소식이라면 나보단 파올로가 잘 알 테니. 우선 파올로를 다시 부를 생각으로 하녀를 향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아, 아가씨……!”

이번엔 베키가 달려왔다. 베키는 이미 열린 문과 먼저 와있던 하녀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나를 향해 울상을 지었다.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왜 그러지?

“왜 그래 베키? 저택이 어디 무너졌니?”

“그, 그런 건 아닌데요……. 아가씨, 그, 손님이 또……!”

“또 손님이?”

베키가 황급히 끄덕였다.

“대, 대, 대공님께서 오셨어요……!”

“아.”

나는 눈을 크게 깜빡였다.

베키도 그렇고 베키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하녀도 그렇고.

라이칸과 다르게 우리 저택 사람이 눈에 띄게 긴장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하긴, 이 저택 아가씨의 전 약혼자인데. 무슨 일인가 싶겠지.

‘라이칸이 찾아왔으니, 휴고도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렇게 비슷한 간격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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