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3. 대마법사와 악녀 메이커 (45)
아니, 당연한가?
발데르가 줄곧 계속 두 사람의 병문안을 막았다고 했으니까.
“대공님을 여기로 모셔줘. 아니, 세워두는 게 더 무례겠다. 서둘러 전해드리렴.”
내 명에 베키는 바로 나서는 대신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보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가씨. 대공님이 왜 찾아오신 걸까요? 아가씰 해코지하진 않겠죠? 제, 제가 옆에 있을까요?!”
“으응?”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베키의 얼굴은 정말로 염려하고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여기서 휴고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막아줄 것 같은 모습이랄까.
어째서 휴고가 이런 이미지가 됐지? 그가 왜 나를 해코지한단 말인가.
‘파혼 이야기할 때도 잘 마무리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다 휴고 쪽에서 편의를 봐주어서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까지 해주지 않았던가.
물론 나도 그로 인해 죽을 뻔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고마운 일이었다.
“베키, 나랑 대공님이 파혼한 건 양 당사자 간 원만한 합의를 통해서였어. 걱정하지 말아.”
“아가씨이…….”
나는 염려가 가득한 베키의 얼굴을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분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셔. 얼른 모셔와 줄래?”
베키가 나간 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휴고가 내 저택에 왔다니.
조금 전 돌아간 라이칸의 반응이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휴고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 보면 어떤 얼굴을 할까?
비록 내가 라이칸의 반응을 알아맞히진 못했지만 휴고는 자신 있었다.
‘……음, 분명 엉엉 울 것 같은데.’
나의 전 약혼자셨던 북부 대공님은 분명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아팠던 나보다도 더 서럽게 울 위인이었다.
‘이거 대비해둬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사람이 우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는 얼굴이 아니었다. 생각하면 어째 곤란해지는 마음이라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저기, 손수건 좀 가져다줄래? 되도록 아주 많이.”
그러자 방안에 남아 있던 하녀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둘러 방을 나서서는 거의 1분 만에 손수건을 들고 나타났다.
“……아가씨, 마, 많이 울지 마시고 무슨 일 있으시면…… 저희를 불러주세요. 제가, 파올로 님께도 얘기해둘까요? 언제든지 나서 달라고……!”
“으응? 아, 아니야. 내가 울려는 건 아니고. 울 일 전혀 없어.”
아니, 내가 울려고 가져다 달라고 한 게 아닌데……. 손수건을 잔뜩 가져다 달라는 말이 오해를 부른 듯했다.
서둘러 해명했더니 이번엔 이런 말이 돌아왔다.
“피, 피를 흘리시더라도 저흴 부르셔야 하구요!”
“아냐, 그쪽도 아니야…….”
나는 하녀 언니를 잘 달랬고, 노력했지만 영 통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약간 걱정이 덜어지긴 했으나 그러면서도 떠나기 전에 나를 보는 것이 영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홀로 남겨진 나는 테이블에 잔뜩 쌓여있는 손수건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좋았어. 만반의 준비도 갖췄겠다.
“아가씨, 대공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응! 들어와.”
그러나 내가 이 손수건을 쓸 일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달린…….”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온 휴고의 표정이, 몹시도 태연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했을 만큼.
깊고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잘 지냈어요?”
왜일까, 나는 처음으로 이 사람이 ‘북부 대공’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절로 숨이 꼴깍 넘어갔다.
‘뭐야, 왜…… 이런 얼굴이지?’
휴고의 얼굴은 단정하기만 했다.
아니, 애초에 단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분명 나를 본 순간 잔뜩 흐려질 거라고 생각했던 표정은, 조금의 변함도 없이 평온을 유지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인사를 하려다 말고 멈춘 그 자세로 그를 멍하니 응시했다.
내가 지금 북부에서 만난 사람과 같은 사람을 보는 것 맞지?
그리고 울지 않는 대공님에게서는 본연의 날카로운 눈매와 냉정함이 서린 외모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가 들어온 몇십 초 동안 몇 번을 삼킨 건지 모를 숨을 다시 한번 삼켰다.
분명 저 얼굴은 마치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잘 어울렸지만 나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대공님?”
“네. 달린.”
대공님이 내 부름에 마치 커다란 강아지도 되는 양 걸어오려다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시무룩해지는가 싶더니, 눈꼬리를 내린 그대로 내 눈치를 보았다.
“……다가가도, 되나요?”
“아, 네. 네. 여기 앉으세요.”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무룩해진 얼굴이 그제야 내가 알던 대공님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왜 안심한 건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메인 퀘스트를 할 때는 그렇게 북부 대공이 된 모습이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막상 진짜 보니까 어색하고 낯서네. 나 참.’
하기야 대공님도 본인의 일도 있고 업무도 있고 한데, 매번 항상 울기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생각할수록 당연한 건데 어째서 놀라 심장이 뛰었던 건지 모를 일이었다.
거기다, 대공님은 나를 만나기 전에도 그저 냉정하지 않았을 뿐 눈물이 많은 건 아니라고 했었다.
대공가 사람들에게 그 소릴 들었을 때는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는데…….
“저, 대공님.”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그를 보려다가 말고 흠칫 놀랐다.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휴고가 다름 아닌 내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란 나를 보던 휴고가 함께 놀라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 앉으라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아니, 제가 앉으라고 한 소파는 맞은편인데요? 헷갈리셨나?
“아, 아뇨. 혼동이 있었나 봐요. 제가 옆으로 옮길게요.”
이제 와 당신 일어나서 저쪽으로 가라고 할 순 없기에 내가 슬쩍 일어나서 옆으로 옮겼다.
그러자 휴고의 얼굴이 오묘해진 것 같았지만, 찰나였기에 확신할 순 없었다.
“……달린, 몸은 좀 괜찮은 건가요?”
조심스럽고 다정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하기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몇 달간 같은 성에 머무르면서 함께 했던 사이였다.
‘좀, 사선을 몇 번이나 함께 넘어서 그런가, 전우애 같은 게 좀 있지.’
그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의 어린 시절마저 보았던 사이 아니겠는가.
잘생긴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함께 지냈던 대공가 사람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보고 싶기도 했다.
나는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은걸요.”
“……정말요?”
“네. 보세요. 이렇게 움직여도 문제없다니까요?”
나는 일부러 과장스럽게 팔을 붕붕 흔들어 보였다.
방긋 웃자, 휴고가 어색하지만 나를 따라 웃는 것이 느껴졌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눈 밑이 발긋했다.
이 남자가 서럽게 울었을 때만 생기는 흔적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본 나는 슬그머니 모른 척 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기절하기 전에 대공님을 본 것 같아요. 제가 갑자기 쓰러져서 걱정 많으셨죠?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네. 달린. 좋지 않았어요.”
“어, 네?”
당연히 ‘아니에요.’ 하는 겸양의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던 지라 그대로 멈칫했다.
“정말로 걱정, 많이 했으니까요. 한숨도 자지 못할 만큼.”
“…….”
“타인의 걱정으로 밤을 지샌 것도, 누군가를 이토록 죽이고 싶었던 것도 살아생전 처음이었으니까요.”
음, 으음? 걱정은 정말 고맙지만 어째 말의 내용이 뒤로 갈수록 살벌해진 것 같은데.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거,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한다……!’
이미 이전에 찾아온 라이칸을 통해 깨달았다.
라이칸도 휴고도 서브남으로 선택된 상황. 내가 잘 행동하지 않으면 이 남자의 애정도 또한 라이칸처럼 오르는 게 아닐까?
요정이 답해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래, 오를 거라고.
“음, 하하.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저도, 그, 믿기지 않겠지만 의도한 바가 아니었어요.”
나는 얼른 이렇게 해명한 뒤 잽싸게 이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쩐 일로 이렇게 수도에 올라오셨어요? 아스와 린은 잘 지내나요? 제타르 경은요?”
“달린을 보기 위해 올라왔어요. 어떡하면 우연히, 만날 수 있을까 밤낮을 고민했고요.”
“…….”
“아스와 린은 북부 영지에 있어요. 제타르는 함께 왔는데…… 달린을 보고 싶어해요. 북부는 당신을 아꼈으니까요, 달린.”
와, 분명 화제를 옮긴 것 같은데, 누가 나를 들어다 옮겨놓은 것처럼 원점으로 돌아왔다.
스킬로 인해 연애 세포가 돌아가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엄마야, 어떡해. 이 남자가 얼굴로 유혹하는데요……!
“제타르 뿐일까요. 모두가 당신을 그리워해요.”
“……그, 그렇군요. 기회가 된다면,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어색하게 하하하, 웃으며 손바닥으로 입을 슬쩍 가렸다.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여기서 어떡하면 가장 빠르게 대화를 마칠 수 있을까…….
“왜 당신을 우연히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는지, 이유가 궁금하진 않나요?”
“……대공님, 제가 그렇게 눈치가 없지는 않은데요. 아니, 눈치가 없는 편이긴 하지만…….”
내가 작은 날숨을 내쉬자,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면 들어올 땐 세상 서늘하게 느껴지던 휴고가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 발그레 뺨을 물들인 채 수줍게 웃고 있었다.
“수하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가 차인 건 너무 많이 울어서라고.”
“……네?”
그건 아닌데. 아니, 정말 아닌데요.
“그래서 다음에 달린을 볼 땐 절대 울지 말라고, 대신에…… 얼굴로 밀어붙이라는 말을 했어요.”
“……오, 어쩜 저를 그렇게 잘 아는 말을?”
“그러게요. 북부는 당신을 잘 알았나 봐요.”
내 입으로 장난치듯 말해놓고서 조금 머쓱해졌다.
“아무튼 간에 당신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우연히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찾아가면, 곤란할 테니까. 그래서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이번만은 울지 않으려 했는데…….”
천장을 올려다보던 휴고가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 많이 울었어요. 당신이 싫어할까 봐, 어제 아주 많이 울고 왔어요, 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