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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09화 (209/281)

◈209화. 3. 대마법사와 악녀 메이커 (48)

“……조심스럽지만, 그게 정말 공작님의 말씀이긴 했나요?”

아주 당연하게 새어 나온 의문이었다.

공작이 자신의 딸을 통하지 않고 다른 사람, 그것도 딸을 오래전에 차버린 소꿉친구에게만 전한다니 누가 들어도 이상한 상황 아닌가.

공녀 언니가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충성스러운 총집사가 함께 전했고, 또 어느 날은 마법으로 영상구를 띄워주더군요. 내가 믿기지 않으니 당장 증거를 내놓으라 했거든요. 마탑과 황실 마법사가 점검했지만 마법에 조작은 없었어요. 아버지도 협박받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어서 총집사에게 진실 판별 마법을 썼다는 등 추가로 나온 말은 공작의 말이 조작된 것이 아닌 진실이라는 근거로 충분했지만 의문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그렇다면 공작은 왜 타인인 이사야 후작을 통해서 딸에게 말을 전하는가?

“하기야, 협박이 가능할 리도 없죠. 감히 공작을 협박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공녀 언니는 황제가 아니고서야 가능한 일이겠냐며 찡그렸다.

물론 황제는 그런 짓을 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 폭군께서는 현재 본인의 막내 따님에 대한 것이 아니면 관심이 없을 테니까.

으음, 언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세계엔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 힘든 참 불가사의하고 기이한 존재가 있답니다.

나는 흘끗 허공을 보았다.

‘요정 놈은 별말이 없긴 한데…….’

여러모로 수상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 언니에 관해서 서브 퀘스트를 진행 중이었고, 이 언니는 내가 없었다면 세 번째 이야기의 새로운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었으며.

마지막으로…….

헤벤 공작가에는 세계의 오류가 있다고 했다.

‘그 남자…….’

나는 북부 영지에서 퀘스트를 수행하며 보았던 수상한 남자를 떠올리며 숨을 꿀꺽 삼켰다.

그 남자는 시간이 뒤틀려 30년 전의 가상 공간에 있었음에도 나를 알아본 인물이었다.

만약 내 존재를 기억하고 있다면, 준비 없이 마주치는 건 위험한 일이지 않을까.

주인공을 죽이고 다니는 존재 앞에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난 셈이니까.

……생각해보니 오싹하네.

“사실 아버지가 지금처럼 방에 틀어박히는 일이 처음은 아니에요.”

“틀어박…… 네?”

“어머, 실례. 칩거하시는 일이 처음은 아니에요.”

공녀 언니는 공작이 종종 이렇게 방에 칩거하는 일이 있었다며 이 부분은 어색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아버지와 대화를 직접 해야 할 것 같은데, 저를 만나주지 않는단 점이죠.”

“방에 무작정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안 해봤겠어요, 영애?”

하기야 그건 그렇지.

“무엇보다 나설 때마다 이사야 후작이 막아서죠. 거기다 아버지의 충성스러운 기사 몇몇도 수상쩍게 굴고……. 이거야 이사야 후작이 아버질 몰래 살해하고 숨기고 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을 정도로 수상하단 말이죠?”

“네에?”

“어머나, 농담.”

언니 지금 눈빛이 농담이 아니셨는데요.

“어쨌거나 내겐 시간을 끌 연인이 필요했단 거예요. 적어도 아버지가 추진하는 그놈과의 혼인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죠.”

언니가 톡톡 쇼파 손잡이를 두드렸다.

언니가 이르길, 공작이 칩거한 적이 처음이 아니다 보니 공작을 방에서 꺼내는 방법도 알고 있다고 했다.

“공작 부인 말씀이신가요?”

“네. 아버지를 방에서 데려올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어요. 어머니 말이라면 아마 방에서 나와 저와 직접 대화를 하실 테죠. 거기다 어머니는 당연히 제 의견을 들어주실 테고요.”

다만, 현재 헤벤 공작 부인은 아주 먼 시골에 내려가 있는 상황이었다.

몸이 좋지 않고 지병이 악화되어서 내려간 것이라 하는데, 그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머무르고 있다고.

“문제는 어머니를 직접 찾아뵈어야 해요. 이런 이야기를 도구나 편지를 통해서 나누기는 어려우니까요.”

공녀 언니는 기회를 보아서 모친에게 다녀올 예정이라고.

그리고 모친을 모시고 다시 올라올 예정이라고 했다.

“사실 당장이라도 어머니를 직접 뵈러 가고 싶은데, 이사야 후작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기간을 내기 어렵단 말이지요…….”

충분히 이해가는 사유였다.

언니가 말을 하다말고 고개를 우아하게 들어 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영애. 곧 있을 헤벤 공작가에서 열리는 연회에도 당연히 참석하시겠죠?”

“네?”

무슨 연회? 내가 딱 이런 얼굴로 쳐다보자 공녀 언니가 묘한 얼굴을 했다.

“……영애는 뭐랄까, 세상에 정말 관심이 없어 보일 때가 있어요. 특히나 사교계 일에?”

“아하하하…… 그게, 음 제가 한때 오래 아팠다 보니…….”

옆에 있었다면 이런이런 연회다 알려줬을 리제를 요즘 도통 만나지 못했다.

하기야 요즘 한 일이라곤 발데르와 함께 있거나, 이 언니의 황태자와의 가짜 연애를 돕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

“흐응, 가끔 영애는 삶에 미련이 없어 보이기도 해서 걱정이긴 하지만 이건 내가 함부로 물어볼 사안은 아니겠죠.”

언니가 우아하게 시선을 내리고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오, 방금 눈앞에서 귀족적인 에티튜드를 본 것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눈을 빛냈다.

어째서 모두의 눈에 내가 삶의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지 모를 일이지만.

뭐, 내 할 일만 잘하면 되겠지.

“헤벤 공작가의 후계자 계승식이 있어요.”

“아.”

“보통 계승식은 추수제와 멀지 않은 날에 열리거든요. 그래서 이번 대에도 이렇게 예정됐고, 본래라면 별 탈 없이 내가 작위를 받았을 테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거군요.”

“그렇죠.”

그제야 나는 언니에게 반드시 가짜 연인이 필요했던 이유를 이해했다.

“그럼 그 후계자 계승식에는 황태자 전하와……?”

“그럼요.”

공녀 언니가 생긋 웃었다.

“이사야 후작이 웃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어떻게 쟁취한 건데?”

언니가 무릎 위에 있던 자신의 부채를 매만지더니 물었다.

“당연하겠지만 영애도 올 거죠?”

그거야 물론 가야겠지. 헤벤 공작가로 가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어차피 대면해야할 일이었다.

고개를 막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당신의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당신을 ‘악녀’로서 완전히 인식합니다! 70 /100]

[황실과 타국의 사신들도 당신의 악명을 접했습니다! 악명 수치가 오릅니다! 80/100]

……엥? 나는 끄덕이려다 말고 멈칫했다.

잠시 머릿속에 잊고 있던 악명 수치가 이렇게 떠올라준 건 나쁘지 않은데, 뭐야. 문구들이 왜 이렇게 다 심상치 않냐?

거기다 황실이 알았다는 건, 황제가 알았다는 건가?

이건 둘째치고 타국의 사신은 또 뭐야.

‘당연히 래빗도 알았겠네…….’

하기야 호수 공원에서 쓰러졌을 때 황태자에다 라이칸까지 있었다.

조만간 허겁지겁 달려올 어린 황녀님의 얼굴이 눈앞에 선명했다.

‘라이칸이 왔을 때 경황이 없어서 래빗에 대한 말도 못 꺼냈네.’

으음, 괜히 걱정 끼친 건 아닌가 몰라.

사실 높은 확률로 라이칸이 래빗에게 바로 소식을 전해서 내가 아픈 거야 빠르게 접했을 것 같은데, 지금 이 악소문은 뒤늦게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황태자는 미움 받기 싫어서 내 나쁜 소문은 전해주지 않았을 테고, 라이칸은 그냥 안 전해줬을 것 같고.

“당연히 저도 가야죠.”

다행스럽게 시간이 남아 있다.

건강 수치도 착착 오를 시간이 있단 소리다.

건강 수치가 채워지면 스킬도 맘 놓고 쓸 수 있겠다, 그 문제의 세계의 오류를 만나더라도 대항할 수 있겠지.

‘래빗이 준 로아타 황제의 힘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니까. 게다가 둑스도 있어.’

내가 얻은 힘들은 결코 약하지 않으니까.

“좋아요, 영애. 아마 성대하게 치러질 테니, 영애 또한 그 연회에서 원하는 것을 얻길 바라요.”

나는 공녀 언니에게서 계승식 날짜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날짜가 금방 다가오겠는데? 회복을 열심히 해야겠는걸.

* * *

공녀 언니가 돌아간 뒤, 이틀이 흘렀다.

나는 홀로 남은 방에서 생각에 빠진 상태였다. 지난 이틀 여간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당장의 퀘스트를 해결하느라 바빴는데 말이지.’

잠시 제쳐 두었던 세계의 오류에 대해 생각해볼 때였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을 살해한 존재, 이에 발데르가 원수로 여기고 찾고 있는 대상.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를 망친 존재.

‘세계의 오류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뭘까?’

지금까지 행적을 보아서는 각 이야기들에 정해진 과정과 결말을 방해하거나 없애버렸고, 혼란을 만들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간단히 결론이 나왔다.

‘세계 멸망?’

으레 책 속 악당이 생각할 법한 것을 떠올렸다.

책 속 악당이라고는 했지만 그 세계의 오류가 하는 짓이 악당과 다를 바 없으니……. 정말 멸망이라도 시키려는 건가 싶었다.

특히나 세 번째 이야기에선 주인공들을 살해한 것만 봐도 말이다.

“요정, 세계의 오류는 정확히 어떤 존재야?”

[요정은 말을 아껴요,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많다고 전해요! (˚ ˃̣̣̥⌓˂̣̣̥ )‧º]

“제대로 알려주지 않을 건 당연히 알고 있었어. 그럼 이것만 얘기해봐. ……그 세계의 오류란 존재는, 인간이긴 해? 아니, 만약 그 존재가 내 앞길을 막는 적이라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덧붙였다.

“해치울 수 있긴 한 거야?”

요정은 대답이 없었다.

이내 띠리링 소리와 함께 요정의 창이 떠올랐다.

[요정은 그 대답을 줄 수는 없지만, 빙의자님이 반드시 세 번째 메인 퀘스트를 달성해야 한다고 전해요! 퀘스트 완료 보상을 받으세요, 그곳에 답이 있어요! (⸝⸝⸝ᵒ̴̶̷̥́ ⌑ ᵒ̴̶̷̣̥̀⸝⸝⸝) ]

요정은 세계의 관리자라고 했다.

만약에 이전처럼 알면서 대답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정말 답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못하는 거라면…….

‘부딪치는 수밖에 없네.’

막 그리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사락사락, 커튼이 흔들렸다.

창문이 절로 열리더니, 익숙한 인영이 허공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이제는 놀랄 것도 없었지만 바람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다.

“오셨어요?”

“네.”

발데르였다.

고개를 들면, 눈이 마주친 예쁜 주황빛 눈동자가 반갑다는 듯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가 싱긋 웃었다.

“나, 보고 싶었어요?”

[현재 세 번째 이야기 ‘남자주인공’의 집착 지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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