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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10화 (210/281)

◈210화. 3. 대마법사와 악녀 메이커 (49)

나는 눈을 깜빡였다.

집착 지수…… 저거 신경 안 쓸 수가 없네. 요정놈이 하도 외치니까 괜히 신경 쓰이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요정의 창이 일순 흐릿해졌다. 그러더니 띠리링 같은 자리에 다시 떠올랐다.

[이런, 세 번째 이야기 ‘남자주인공’의 집착 지수에 오류가 있었어요!]

뭐?

[현재 세 번째 이야기 ‘남자주인공’의 집착 지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80/100]

내 입이 절로 벌어졌다. 에엥?

‘뭐야, 뭔데, 왜 갑자기 20이나 오른 건데? 요정, 이거 고장난 거 아니냐?’

[요정은 고장 나지 않는다고 알려요! 요정은 정확한 수치를 전달합니다! 단, 훼방으로 인해 업데이트가 늦어졌다고 알려요!(ू˃̣̣̣̣̣̣︿˂̣̣̣̣̣̣ ू )]

훼방이란 말에 절로 시선이 슬쩍 돌아가며 부드럽고 잘생기기 짝이 없는 발데르를 향했다.

분명 발데르는 자신의 힘으로 요정의 창을 지워버리기도 했지?

그렇다면 요정 입장에서 발데르의 심리 상태를 읽는 게 더욱 고난도라는 건가?

내 추측이 맞는 듯 요정이 맞다는 창을 띄웠다.

‘그나저나 80이라니…….’

사실 지난 이틀간 발데르의 말과 행동은 달라진 것이 없었기에 전혀 몰랐다.

라이칸과 휴고가 강제로 서브남이 된 것이 신경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는 상황이라 발데르의 말과 행동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차이를 발견한 게 없을 정도였다.

아니면, 업데이트가 늦었던 거라면…… 혹시 라이칸과 휴고가 찾아왔던 날에 이미 올랐던 거 아니야?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남자주인공 입장에서 서브남은 성가신 인물이자 질투를 유발하는 역할 아니겠는가.

우리의 역할에 대입한다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 남자가 질투라니…… 어째 상상이 잘 가진 않는데.’

보통 질투하는 남자가 보이는 격한 감정이 도무지 나를 향해 빙긋 부드럽게 웃는 표정과 매치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제 의지와는 다르게 둥둥 뛰는 이 고동과 심장 속에 채워진 설렘 때문에 내 판단력이 흐려진 걸지도 모르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남자는 이미 라이칸과 휴고의 병문안을 막아버린 적이 있지 않은가?

‘물론 내 병세를 생각해서 막아준 걸지도 모르지만…… 이 집착 지수가 그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데.’

내가 시선을 떼지 못하자 발데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 앞에 허리를 살짝 숙였다.

“시킬 것이 있나요?”

“네?”

“내게 시킬 것이 있어 쳐다보는 건가 해서.”

“아, 아뇨아뇨.”

내가 고개를 내젓자 발데르가 내 앞에 그대로 앉았다.

맞은편에 버젓이 멀쩡한 쇼파가 있는데도 굳이 내 앞에, 그것도 바닥에 앉은 이유가 뭘까.

발데르는 다른 날과 다르게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 지팡이를 양손에 껴안고 바닥에 지탱한 뒤 느릿하게 고개를 기대는 폼이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저, 발데르? 의자에 앉으세요.”

“그럼 당신을 가까이서 볼 수 없어요.”

“…….”

“당신이 아프면 가장 먼저 나서고 싶으니까요. 아무래도 당신은 고통에 둔한 것 같으니.”

음, 아무래도 호수 공원에서 쓰러진 뒤로 모든 사람들에게 오해를 단단히 산 게 맞는 듯하다.

사실 고통에 둔한 건 사실이긴 한데 그렇다고 못느낄 만큼 심한 건 아닌데 말이지.

하지만 이제 해명하는 것도 포기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발데르는 내 반응을 평온하게 넘기고서는 이어서 말했다.

“달린, 이전에 당신에게 독을 먹였던 주치의 말인데…… 그 자의 가족과 친인척, 자식까지 모두 죽여달라고 했었던가요?”

“네? 아뇨? 아뇨! 저 그런 적 없는데요……?!”

“안 통하네요.”

발데르가 싱긋 웃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그를 쳐다봤다.

저 나른한 듯 부드러운 미소에 자연스럽게 넘어갈 뻔했지만 이 무슨 살벌한 말이야.

“죽이지 마세요.”

“네, 사실 죽일 사람도 없었어요. 가족도 친인척도 자식도 없던 사람이더군요.”

“아 다행…… 네?”

발데르가 지팡이에 기댄 채로 고개를 들었다.

“당신에게 독을 먹였던 주치의, 그 의사에 대한 조사를 마쳤어요. 듣고 싶나요?”

당연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발데르가 어깨를 움직이더니 자세를 바로 했다.

‘이틀간 한 번씩 자리를 비우더니…… 이런 조사를 하고 있었던 거야?’

파올로에게 주치의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 남자 쪽에서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나도 자세를 바로 하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우선 그 자의 이름은 잘 알겠지만 ‘피아르테’ 성은 없는 평민이더군요. 나이는 43세.”

음, 이름은 까먹었는데.

그런 이름이었군.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특별할 것 없이 자랐지만 특이점이 있다면 머리가 매우 똑똑했습니다. 그 덕에 평민이지만 특별 장학금을 받고 아카데미 의료과정까지 수료했더군요. 수석이었다고 합니다.”

하기야 제국에서 이름을 날린 의사라고 하니 그런 이력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보통 그 정도 능력이면 황실에 고용되거나 공작가 같이 고위 가문의 주치의로 일하는 것이 보편적이긴 하지만.

“하지만 다음 이력이 좀 특이하더군요,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약 10년쯤 지났을 때 돌연 신전에 귀의합니다.”

“네?”

어디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신전, 그것도 제국 내 지부 말입니다.”

“……신, 전이요?”

그게 왜 거기서 나와? 나는 입술을 축였다.

제국, 수도, 신전. 낯설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었으니까.

“이미 의사로서 명성을 떨쳤음에도 신성력이 주는 치유력에 매료되었다고 하더군요, 알아보니 당시 신전에서는 성녀와 신성한 힘을 가진 자를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고 합니다만……. 이 자는 특히나 광신도였던 모양입니다.”

“…….”

“신전에서는 이런 연구를 했습니다. 과연 신성력으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이를 위해 신성한 힘을 가진 자가 필요했으며, 적절한 실험 대상이 필요했다고 하는데……. 이 의사는 자신의 환자를 기꺼이 실험 대상으로 이용했던 모양이에요.”

발데르가 단조롭게 말했다.

“이를 주도한 신전 중앙지부 출신 대신관이 하나 있어, 거의 교주 노릇을 했던 모양이고 어느날 행적을 감췄다고 합니다. 남은 이들은 서로 뭉쳐 포기하지 않고 신성한 힘을 가진 사람을 찾는데 여념이 없었고……. 단 이 의사만은 생각이 달랐던지 이때부터 신전을 다시 나와 떠돌이 의사가 되었습니다.”

신성한 힘을 찾아 헤매는 제국 수도 신전 사람들.

그들은 결국 신성한 힘을 가진 사람을 찾아냈다.

‘……래빗.’

첫 번째 이야기의 비틀어짐, 이것에도 무언가의 개입이 있었던 건가?

고민할 새도 없이 발데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놀랍게도 교주 노릇을 했던 대신관이 이 의사에게만은 찾아와서 무언갈 명령했던 모양입니다. 그 후로 만난 것이 바로…… 당신의 부친입니다. 달린.”

나는 숨을 참았다.

“그러니 정확히는 주치의가 아닌 이 자가 당신의 죽음을 사주했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어쩐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첫 번째 이야기의 비틀어짐과 연결이 될 줄은 몰랐다.

“저, 발데르. 혹시 그 교주 노릇을 했다던 대신관이란 자에 대해서도 뭔가 아는 게 있을까요?”

발데르가 작게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조사를 진행했지만, 아직 진행 중이라 많은 걸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행적을 쫓아보니 사이비 교주처럼 사람을 매우 잘 홀리는 것은 물론 신성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 행위를 주도한 것 외에도 많은 특이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특이한 이력?”

“신성력과 시공간 마법에 대한 연구를 했다거나…… 영혼에 관한 인간 실험을 주도했다거나, 알아낸 건 아직 이 둘뿐이지만, 어느 쪽이든 작은 사안은 아니지요.”

발데르는 알아낸 건 여기까지지만 앞으로도 계속 알아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 교주 노릇을 했던 대신관이라는 자. 혹시 세계의 오류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할 듯했다.

왜냐, 30년 전 북부 영지에서 두 번째 이야기를 망가트렸던 것을 생각하면 첫 번째 이야기를 비틀어 버리는 데에도 그놈이 뭔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맞았다.

‘그래, 래빗이 이유 없이 환생을 떠올렸던 게 아니야.’

거기다 발데르가 말한 그 대신관이 실행했다던 실험들이 시공간, 영혼…….

래빗의 상황을 대입하면 얼추 맞아떨어졌다.

나는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잠시만, 그럼 만약에 내가 이 세계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래빗은 환생을 기억한 채로 가족들과는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었으며, 신전은 언젠가는 래빗을 납치하고…….

결국 래빗은, 자아를 빼앗기고 신전의 인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그게, 죽는 것과 다를 게 뭐야?’

이 또한 주인공의 죽음이었다.

내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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