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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49화 (249/281)

◈249화. 4. 회귀자가 회귀를 거부함! (14)

[‘나만의 로판’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인물 ‘라이칸’에게 보호를 설정합니다. 이제 ‘라이칸’은 불완전하지만 ‘오염’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지속시간: 30초)]

[완전한 보호를 위해서는 서둘러 ‘나만의 로판’ 기능을 완성하세요!]

곧 라이칸의 온몸을 푸르른 빛이 감싸 안았다.

내게서 뻗어나간 빛이었다. 나는 이 푸른색이 요정의 창이 가진 푸른색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달린?”

“라이칸, 이제 괜찮아요. 자물쇠랑 사슬 부숴주세요.”

“……그러지.”

라이칸은 의문이 어린 표정이었지만 군말하지 않고 검에 검기를 모아 자물쇠와 사슬을 파괴했다. 검기를 모은 것이 무색하게 아주 쉽게 부서졌다.

“이상하군, 사슬이랑 자물쇠만 이렇게 멀쩡하다니.”

“……그 오래전에 처형당했다는 대신관이 저주라도 내린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윽, 농담이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성물이 보관된 방 안쪽 또한 어두웠지만 어둠은 큰 방해가 되지 못했다.

나는 1층과 2층에서처럼 불을 밝혔다.

‘윽, 썩은 냄새…….’

이상하게도 이 방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났다.

정말 보물을 담고 있는 방 맞아?

“악취는 저쪽에서 나는 것 같군.”

내가 라이칸이 말한 방향을 보려 한 순간, 내 눈 위로 무언가 얹히며 시야를 가렸다.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니, 보지 않는 게 좋겠다.”

“뭔데요?”

“시체.”

……헐? 라이칸이 아주 간략하게 말했다.

죽은 지 아주 오래된 시체같은데, 그대로 방치되어 썩은 것 같다고.

짤막한 설명이지만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어 라이칸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대가 찾는 건 이쪽 방향인 것 같군. 저기에 물건들이 모여있어.”

“아, 그럼 저기로 가요.”

방은 꽤 넓었고, 다행스럽게도 시체는 물건들과 꽤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나는 마침내 리제가 말했던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건가?’

리제가 말한 것처럼 유리관 안에 담겨 있는 마석이 보였다.

말이 마석이었지 몇몇 빛깔로 빛나는 돌은 흡사 예쁜 보석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작게 감탄했다.

“저거에요. 저걸 가져가면 돼요.”

라이칸도 저 유리관을 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한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유리관이 생각보다 높이 있었단 점이었다.

이거야, 발데르가 했듯이 날아오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웬걸 마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라이칸, 이 방에서 검기를 한번 일으켜 봐요. 잘 돼요?”

“……안되는 건 아니지만 방해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이 방 전체에 무언가 처리해둔 모양이군.”

하긴 성물을 보관하는 방이라고 했으니, 도둑을 방지하는 주문 같은 걸까?

수없이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작동하고 있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결국 우리는 조금 아날로그한 방식을 쓰기로 했다.

“하겠다.”

“네, 저도 준비됐어요!”

라이칸이 유리관이 달려있는 책장 같은 것을 걷어찼다.

이어서 검으로도 후려쳤다.

이것을 반복하자 책장 전체가 흔들리더니 가장 위에 놓여있던 유리관이 툭 떨어지면서 안쪽에 있던 마석과 분리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세이프!’

나는 떨어지는 마석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받아냈다.

손이 살짝 얼얼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문제없었다.

생각보다 꽤 묵직하잖아?

나는 마석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위에서 올려다보았을 때처럼 참 예쁜 색을 가진 돌이었다.

양손으로 돌을 번쩍 들어 올릴 때였다.

[퀘스트(서브)- ‘무한 회귀자의 부탁을 들어주자!’의 필수 아이템을 수집하였어요!]

[‘세이렌 오더’의 숨겨진 기능, 아이템 감별이 시작됩니다!]

[시간의 마석(레전드리)

-시공간을 아주 잠시 멈출 수 있다. 마석을 이용한 자만이 멈춘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 아주 오래전 ‘관리자’의 실수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나는 이제는 있는지조차 까먹곤 하는 팔찌가 실로 오랜만에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눈앞으로 떠오른 메시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뭐? 시간을 멈춘다고?

이게 무슨…….

“달린? 괜찮은가?”

“네? 아, 네. 네……. 전 괜찮아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고, 한 손엔 마석을 안고서 다른 한 손은 라이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일단 리제가 말한 것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돌아갈 차례였다.

“이제 돌아가면 되나?”

“네. 바로 돌아가면 될 것 같아요.”

래빗은 통크게도 돌아올 땐 편히 돌아오라며 황실로 이어지는 이동 마법 스크롤을 빌려주었다.

찢기만 하면 황실로 가는 마법 통로가 생기는 물건이었다.

다만 바깥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기에 일단 우린 이 방을 나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은 간단했다. 들어온 길을 거꾸로 가면 됐으니까.

라이칸도 나도 길치는 아니었기에 어렵지 않게 신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러모로 찝찝한 공간이었어.’

그 석상도 그렇고, 오염의 존재까지…….

오염에 대해서는 돌아가 요정놈과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라이칸, 이제 돌아가는 스크롤을 써도 되겠죠?”

“이 정도 공간이면 충분할 것 같군.”

라이칸이 품 속에서 스크롤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이런, 오늘 어떤 손님이 오셨나 했더니.”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칸과 나는 일시에 등을 돌렸다. 라이칸이 좀 더 빨라, 나를 제 등 뒤로 숨겼다.

하지만 나는 그 너머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세계의 오류!’

언제 온 것인지, 우리 뒤쪽에는 세계의 오류, 즉 네 번째 이야기 남자주인공 ‘시몬’이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흥미와 짜증이 동시에 스민 표정이었다.

“아, 그쪽은 구면인가. 아니,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인가?”

시몬은 당연히 내가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것을 가정한 듯 홀로 중얼거렸다.

“꽤 재미난 인간이었는데, 안됐어. 건드려서는 안 될 걸 건드렸거든.”

시몬이 내가 품에 안고 있던 마석을 응시했다.

“그 방엔 대체 어떻게 들어갔나 싶었더니……. 그래 관리자가 보낸 개였나?”

“…….”

“그 물건만 돌려주면 곱게 죽여줄게. 어때?”

싱글싱글 웃는 얼굴을 보며 나는 마석을 더욱 꾹 끌어안았다.

‘스킬을 쓸까?’

이렇게 생각한 순간 요정의 창이 떠올랐다.

[경고! 경고! 요정은 도망을 권합니다. 현재 맞설 시 98% 확률로 빙의자님과 인물 ‘라이칸’ 사망 예정!]

그딴 건 말 안 해줘도 알고 있어.

괜히 뒷골목에서 저 시몬을 처음 봤을 때 오싹한 감각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그때 느꼈던 찌릿찌릿한 감각이 온몸을 감싸왔다.

내가 이러하니, 라이칸도 다르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요정은 현재라고 했어. 그럼 앞으로는 저 미친놈을 이길 방도가 있다는 걸까?’

현재 맞설 시에 죽을 확률 구십팔퍼센트. 그럼 당연히 도망가야지.

근데 어떻게?

“달린, 내가 막고 있는 동안에 그대는 어떻게든……!”

라이칸이 가지고 있는 스크롤은 발동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게다가 발동하는 동안에 움직이면 취소되고, 처음부터 다시 발동해야 했다.

내가 무어라 대답할 새도 없이 챙!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이칸이 시몬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시몬의 검에서 불길한 검은 것이 질척하게 흘러나왔다.

저것을 본 순간 신전 지하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경계심과 찝찝한 기분이 되살아났다.

‘생각해. 생각해, 달린아.’

여기서 나와 라이칸이 둘 다 살아나갈 방도. 생각해!

‘발데르는 나를 데리고 이동하곤 했잖아. 나는 그렇게 못하나?’

못하긴 뭘 못해. 어떻게든 해야지!

발데르의 힘을 고스란히 받았다. 발데르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나만의 로판’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인물 ‘라이칸’에게 보호를 설정합니다. 이제 ‘라이칸’은 불완전하지만 ‘오염’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지속시간: 30초)]

[완전한 보호를 위해서는 서둘러 ‘나만의 로판’ 기능을 완성하세요!]

라이칸의 몸으로 푸른 빛이 휘감기는 동시에 시몬의 검이 라이칸의 몸을 스쳤다.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달려가 라이칸의 등을 끌어안았다.

‘제발!’

눈을 질끈 감기 직전, 잔뜩 일그러진 시몬의 표정을 보았다.

“네가 어떻게, 그 힘을……!”

왜일까, 저 악랄한 미친놈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희열감을 느꼈다.

아, 뭐야. 나한테도 희망이 있는 거구나? 그러니까 저런 충격을 받은 얼굴인 거지?

‘다행이다…… 이런 끔찍하게 강한 놈과 맞설 수 있는 방법이…….’

내 생각은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어딘가 낯선 곳이라는 걸 느꼈지만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 * *

‘여긴 어디지?’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주 새카만 공간에 누워있었다.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텅 빈 공간임에도 몹시도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건 한편으로는 이 편안함을 거부하고 싶은 반발이 들었단 거다.

마치 내가 요정의 창을 볼 때마다 드는 양가감정을 느끼기라도 하듯이.

그때였다.

눈앞으로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신기하게도 아주 조그만 사람의 형체였는데, 등 뒤로 나비 날개인지, 잠자리 날개인지 모를 날개가 달린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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