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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52화 (252/281)

◈252화. 4. 회귀자가 회귀를 거부함! (17)

아직 내겐 스킬 시전 시간이 남아있었다.

사실 레벨이 꽤 오르면서 시전 시간이 길어지더라고?

게다가 발데르에게 받은 마력이 생긴 이후 스킬 지속을 마력이 도와주는 것 같았다.

‘나 참. 이렇게 착실하게 먼치킨이 되어가고 있는데, 정작 마왕을 무찌르기엔 힘이 아직 모자라다니. 이 세상 힘 밸런스가 어떻게 생겨먹은 거야.’

나는 요정 들으라는 듯 투덜거리면서 장작이 될 조각들을 주워 모았다.

옆에서 작게 한숨이 들리는가 싶더니 라이칸도 곧 테이블과 세트였던 의자를 부쉈다. 우리는 사이좋게 장작을 잔뜩 만들었다.

장작을 다 모아서 벽난로 안에 넣었을 즈음, 스킬이 종료되었다. 그와 동시에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가 나를 덮쳤다.

‘뭐, 뭐야? 이 추위는?’

나는 양 팔을 끌어안고 이를 딱딱 부딪쳤다.

그제야 내가 잔뜩 젖은 옷을 걸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참 미련하게도 말이다.

‘불, 불…… 불을 빨리 피워야 해.’

다행스럽게도 불은 마력으로 피울 수 있었다.

이건 퍽 간단한 일이었는지, 아니면 내 간절함이 통한 것인지 몰라도 불은 쉽게 붙었다.

‘오두막 안에 마른 나무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무것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물에 젖어 이제는 묵직하기 짝이 없는 망토를 서둘러 벗어던졌다.

“라이칸, 웃옷은 얼른 벗는 게 좋겠어요. 지금 옷이 다 젖어서……. 라이칸?”

라이칸이 답이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화들짝 놀라 머리를 홱 돌렸다.

“라이칸? 안 추워요?”

“달린, 일단 그곳에 있는 게 좋겠어.”

“무슨 말이에요? 아니, 어깨에 아직 웃옷을 걸치고 있으면 어떡해요! 여기서 감기까지 걸리면 큰일 나요. 붕대도 좀 갈까요? 가방 안쪽은 방수랬으니 붕대도 문제없어요.”

“아니, 그러니까 그대가…….”

나는 성큼 걸어가 라이칸 어깨에 걸린 푹 젖은 웃옷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붕대를 보는 순간 어깨 위로 체온이 닿았다.

난 라이칸 손에 붙잡힌 채 그대로 떠밀렸다.

“제발…… 그대의 지금 착의 상태가 어떤지 자각해줘.”

차분한 듯했지만 목소리 끝이 무척 떨렸다. 아니, 낮게 가라앉아 목 안을 일부러 긁는 목소리 같기도 했다.

절로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아.’

나는 망토 안에 새하얀 셔츠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위로 안쪽에 걸친 옷이 도드라져 보이고 있었다.

이곳의 속옷은 매우 얇은 재질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어째 뺨이 타들어갈 듯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전혀 몰랐어.

내가 절로 뒷걸음질치자 라이칸의 손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그, 벽난로 앞에는 함께 앉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뭔가 덮을 걸 가져오지.”

라이칸은 고개를 돌린 채 나를 벽난로 쪽으로 밀고는 오두막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벽난로 앞에 쪼그려 앉아 바닥에 깔린 대체 얼마나 오래된 건지 모를 카펫 위 먼지를 털었다.

‘와, 어색해…….’

다행스럽게도 불은 탁탁 잘 타들어갔지만 벽난로가 꽤 작았던 탓에 몸을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라이칸이 덮을 만한 거리를 찾아왔을 때 나는 홀로 덜덜 떨고 있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만 할 뿐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달린?”

라이칸이 내 옆에 서둘러 앉았다. 배에 살짝 무리가 간 듯 미간을 찡그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나를 살펴보기 바빴다.

“달린, 달린. 괜찮은가? 입술이 새파랗다!”

“아, 저 괜찮아요…… 조금 추워서…….”

[이런, 요정은 경고해요! 빙의자님의 체온이 정상 이상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๑•́ ᎔ ก̀๑)]

[이러다간 건강 수치가 부활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해요!]

……시끄럽다. 이 망할 놈들아. 어디서 부정탈 소릴 하고 있어.

건강 수치, 그 네 글자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안된다. 그것의 부활만큼은 절대 안 돼!

[요정은 체온이 서둘러 정상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푸르른 요정의 창을 보며 숨을 삼켰다.

누가 그걸 모르냐고. 나도 체온 되돌리고 싶다고.

마법으로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마력은 불은 일으킬 수 있어도 체온을 올려주진 않는 것 같았다.

여기서 불을 더 피웠다간 자칫 이 오두막을 태울지도 몰랐다.

“후…… 일단, 라이칸 붕대부터 갈아요.”

허리춤에 가방 안을 뒤져보니, 래빗이 장담했던 것처럼 안쪽의 물건은 젖지 않았다. 그렇게 비가 쏟아졌는데도 말이다.

와, 앞으로 전직 대륙 황제 현 아기 황녀님 말씀은 무조건 잘 들어야지…….

나는 됐다고 거절하는 라이칸을 억지로 잡고 달달 떨리는 손으로 기어이 붕대를 갈아주었다.

그 사이 라이칸은 바싹 마른 모포를 찾아냈고 하나는 우리 몸을 닦는 데 사용했다.

확실히 물기를 어느 정도 닦아내니 추위가 살짝 가셨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엔 안쪽에서부터 추위가 느껴지는 듯 몸의 떨림은 가시질 않았다.

“…….”

고개를 들자, 나를 몹시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얼굴이 있었다.

왜일까, 그나 나나 비에 푹 젖은 몰골인데도 이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고귀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것 같아 배시시 웃었다.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죠.”

“……그러게.”

라이칸이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내 귀를 쓸어주었다.

머리를 넘겨준 감각이 좋아 눈을 살짝 깜빡였다. 그의 손이 뺨으로 넘어오자 나는 자연스럽게 그 손에 뺨을 기댔다.

신기하네. 이 세계에서 눈을 뜨고 이렇게 안정된 기분을 느껴본 적 있던가.

행복을 느낀 적은 물론 있다.

리제와 쿠키를 먹을 때 소소한 행복, 래빗과 휴고 같이 주인공을 운명에서 구해냈을 때의 저릿한 행복.

그런 행복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어깨로 퍽 부드러운 것이 덮였다. 라이칸이 찾아낸 모포였다. 하나는 우리 몸을 닦는데 썼으니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라이칸 이거 같이 덮어요.”

내가 한쪽을 들어올리자, 라이칸은 잠시 망설이나 싶더니 안쪽으로 들어와 함께 덮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벽난로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혹시 황실에 연락할 방도가 있을까요?”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숲을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비가 왔다. 게다가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으니, 알아내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다.

“……황족들은 태어날 때, 고대 마법 도구를 이용해 한가지 마법을 걸어둔다. 바로 추적 마법이지.”

“헉, 그래도 돼요?”

그 사람의 인권은 어디로 간 거지? 이런 걱정을 하는데, 라이칸이 사용하는데 까다로운 주문이고 추적도 까다로우니 염려말란 말을 했다.

“며칠씩 생사가 알려지지 않으면 몸에 걸린 마법을 추적해서 올 거다.”

“며칠이라…….”

일자를 듣고 난 나는 심각해졌다.

안돼, 자칫하다가는 메인 퀘스트가 먼저 끝날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꼼짝없이 죽을 거다.

“더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안 될 거다. 황실에선 아직 실종으로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건 그렇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니…….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서 빨리 돌아가야 할 텐데.

하필 래빗이 준 이동 도구는 시몬과 싸우던 자리에서 놓쳐버려서 사용할 수도 없었다.

‘요정, 뭔가 방법이 없냐? 나 이러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어?’

뭔가 좀 해보라고. 속으로 으름장을 놨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만의 로판 기능’에 래빗이 등록되어 있었지.

막 이런 시스템이면…… 거기 등록된 인물이랑 연락 같은 거 못해?

그때였다.

[‘나만의 로판’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٩(๑❛ワ❛๑)]

[기능의 완성도가 5할을 넘었어요. 등록된 인물과의 교신이 가능해집니다! 단, 기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제한 시간이 존재합니다!]

[수신하겠습니까? y/n]

“허…… 미친.”

“달린?”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야 이 미친놈들아! 이런 기능이 있으면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뭐야, 이번에도 내가 눈치채지 않았으면 안 알려줬을 거다 이거냐? 뭐냐고!

속으로 미친 듯이 분노가 치밀었지만 옆에 라이칸이 있다는 것을 의식해 꾹꾹 참았다.

이 미친놈들, 내가 너희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안 둘 거라고 알겠어?

[요정은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요정은 조금만 더 고민하면 알려드릴 생각이었다고 고백해요! (╥﹏╥)]

닥쳐, 이 악어의 눈물 같은 새끼야!

[나만의 로판 부가 기능 발동! 인물 ‘유엘 래빗’과 교신합니다!]

[연결 중입니다……]

곧 귀로 낯익다 못해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냐, 이 느낌운? 하, 혹디 세뇌의 힘잉가?

“황녀님!”

옆에서 라이칸이 놀라는 것이 느껴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곧 머릿속으로 ‘달린?’ 하는 외침이 넘어왔다.

[제한시간 00: 09초 남았습니다!]

미친, 너무 짧잖아? 나는 숨돌릴 틈도 없이 거의 래퍼가 된 기분으로다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갈수록 급한 마음에 무조건 라이칸의 주문을 추적하라는 말을 거의 반복하는 정도였지만, 래빗은 전직 황제님답게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한 것 같았다.

-알게따! 지굼 바로……!

[시간 초과! 교신이 종료되었습니다. 현 부가 기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로판’ 기능을 완성하길 권유합니다. ✧⁺ᇮ(・ ᗜ ・ )ᇮ⁺✧ ]

매우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상대방이 그 래빗인 덕에 상황은 목적은 이룬 셈이었다.

교신을 끝낸 나는 추욱 늘어졌다. 라이칸이 놀라면서도 얼른 내 몸을 받아 주었다.

“달린. 지금 그건…….”

“끄응, 마법이라고 할지…… 들으셨죠? 래빗 황녀님과 교신했어요. 황녀님께서 폐하를 찾아가 추적 주문을 쫓아주시겠대요…….”

“……다행이군.”

라이칸은 추적 주문을 쓴다고 해도 혹시 이곳이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했다. 그래도 마탑이 함께 할 테니 속도는 수월할 거라는 말과 함께.

일단 죽을 일은 덜었구나. 안심이 되어 라이칸의 어깨에 더욱 몸을 기댈 때였다.

라이칸이 돌연 몸을 돌려 내 양팔을 붙잡았다.

부스스 눈을 뜨니 심각한 표정이 보였다. 왜 그러지?

“달린, 네 체온이 너무 낮다. 아니, 이렇게 차가울 수는…….”

“……네에?”

“정신을 잃으면 안돼!”

“아, 아니에요. 안 잃어요…… 그냥 조금 피곤해서…….”

“잠들면 안 된다.”

“그치만 조금 졸린데…….”

시시각각 내 몸이 차가워지고 있다는 점은 사실 라이칸만이 아니라 나 또한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왠지 교신이 끊긴 순간부터 힘이 빠진 듯 움직이기가 더 귀찮아졌다.

“젖은 옷이 더욱 체온을 낮추는 거다.”

“그건 아는데…… 방법이 없잖아요?”

라이칸은 나를 보며 한참이나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아주 결연한 표정이었다.

“벗는 것이 좋겠다.”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꺼져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그대 옷을, 벗겨도 되겠나?”

난 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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