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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56화 (256/281)

◈256화. 4. 회귀자가 회귀를 거부함! (21)

일단 이 근처를 좀 돌아봐야 하나? 어딘지 알 수 있으면 좋을 테니…….

“그것 말인데…….”

라이칸이 나와 같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곧 설명을 시작했다.

아까 열매를 구하러 가면서 이 근처의 숲 지형을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자신이 예전에 토벌을 왔던 지역에서 보이던 수림을 보았다고.

문제는 그 위치가…….

“수도에서 10일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요?”

엄청 멀다는 점이었다.

일단 당장 우리 힘으로는 바로 돌아갈 수 없단 사실을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안 되는데.’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수록 내 죽음이 성큼 다가오는 셈이었다.

다른 메인 퀘스트 중에서도 시일이 촉박한 퀘스트가 있었지만 이토록 촉박한 적은 없었다.

“라이칸, 혹시 이 근처에서 마을을 찾아…….”

여기까지 이야기한 나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어제부터 묘한 감을 느꼈었지?

왠지 오늘 즈음에 누군가 우리를 찾아올 것 같다는 기묘하게도 확실한 감각이었다.

그런 감각이 다시 한번 든 것이었다.

[요정은 ‘빙의자’ 님에게 작은 행운이 찾아올 거라 말해요! (σ'∀')σ*。・゜+.*]

요정놈도 이렇게 말하는 걸 봐서는 언제나 틀리지 않았던 나의 감에 대한 신뢰를 뒷받침해주는 것 같고 말이다.

“달린?”

내가 말없이 앞만 응시하던 그때였다.

우리가 있는 오두막 앞의 공간이 울렁 파도처럼 울렁거리더니, 커다란 블랙홀 같은 것이 보였다.

한번 본 적 있는 것이었다.

왜냐 우리가 황실에서 폐신전으로 이용할 때 저것과 같은 ‘포탈’을 이용했었으니까.

설마, 하는 심정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포탈에서 조그만 아이가 등장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반가움이 치솟았다.

“달린!”

“황녀님!”

래빗이었다.

세상에나, 래빗이 어떻게 직접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건지 몰라도 이렇게 보니 너무너무 반가웠다.

비록 겨우 이틀만에 보는 것이긴 하지만, 어젠 정말 시몬 그놈을 만나 죽는 줄로만 알았으니까.

“괜찮으냐? 부상인 것이냐? 왜 저놈에게 안겨 이써!”

“아, 저는 괜찮아요……!”

잠깐 라이칸에게서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어째서인지 나를 안고 있는 단단한 품이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긴 라이칸의 품에서 내려오면 어떻게 될지 너무 잘 상상이 되었기에 난 그냥 얌전히 안겨서 인사를 보냈다. 래빗 황녀님 앞에서 다리가 풀리는 꼴사나운 모습은 보여줄 수 없지.

‘정확히는, 어쩌다 그렇게 된 거냐고 물으면 답할 자신이 없다…….’

래빗은 당연하겠지만 혼자 온 것은 아니었는지 래빗이 나온 포탈에서 기사들이 줄줄이 나왔다. 그 사이에는 황태자도 있었다.

저 인간은 왜 여기 온 거야?

‘아, 하긴 래빗이 혼자 행동할 리가 없지.’

래빗을 보는 순간 납득이 되었다.

황태자는 우리를 향하 한달음에 다가왔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이런 상태로 인사를 올리는 무례를 부디 용서해주,”

“아니, 됐습니다. 그 정도의 융통성도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황태자는 내가 부상자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심각한 표정 아래로 아주 미미하지만 동정심이 스쳤으니까.

이 인간에게도 동정심이란 감정이 다 있네, 여동생 이외에는 오로지 쓸모로만 인간을 나누는 인간이 말이다.

나는 가볍게 감상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체 무슨 일이냐, 라이칸.”

라이칸이 나를 대신해 우리에게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시몬이 덤벼들었다는 구절에서는 래빗이 참지 못하고 화를 냈고, 나는 얼른 우리 아기 황녀님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러다 나와 라이칸이 이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구절이 나왔을 즈음, 황태자가 미묘한 낯으로 나와 라이칸을 번갈아 본 것 같기도 했다.

왜, 뭐. 뭐. 나는 뻔뻔하게 맞받아쳤지만.

“……그렇군. 감히 황족을 시해하려 한 죄는 매우 크다. 황실에서는 이 일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의외였다. 래빗을 제외하고는 신경 쓰지 않을 것 같더니, 퍽 우애로운 형님처럼 보였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폐신전이 되었다고는 하나 네가 있던 곳은 황실이 관리하는 금지된 장소다. 그곳에 들어간 것만으로 죄는 가중되지…….”

황태자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리와도 같은 시선이었다.

평소엔 유들유들하게 웃고 있으니 가려져 있었지만, 이 집안 핏줄답게 매우 날카로운 눈매였다.

“우선 황성으로 돌아가지. 자세한 이야기는 황제 폐하도 계신 곳에서 듣겠다.”

“네, 형님.”

나와 라이칸은 우리를 데리러 온 기사들과 함께 포탈로 들어갔다.

중간에 황실 기사가 조심스럽게 라이칸에게 나를 안아들겠다고 말했지만 라이칸이 서슬 퍼런 얼굴로 거절해서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음, 앞으론 내가 라이칸이랑 얼레리 꼴레리 한다는 소문이 돌려나?’

이건 사실이긴 하지.

흘끔흘끔 우리를 보는 기사들이나 시종들의 시선을 보아서는 그렇게 될 것 같다.

‘사실 이젠 좀 걸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내리기 싫어서 슬쩍 아픈 척 했단 건 비밀로 하자.’

황실에 도착했을 즈음 나는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라이칸의 방으로 향하는 동안 그냥 그의 품에 안겨 있기로 했다.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아직 꿈에 있는 듯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

나는 라이칸의 방까지 쫓아온 래빗에게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래빗은 시몬의 이야기를 듣더니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라이칸이 나를 이곳에 데려다줬지만 정작 라이칸 본인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둔 뒤 바로 황태자와 함께 황제에게 보고를 하러 갔다.

원래 나도 함께 가야 했지만 본인만 가겠다고 주장해서 이렇게 쉬게 된 상황이랄지.

“그론 미친놈이 다 있누냐! 그놈이 이 세상을 망친다고?”

“네, 아마도요.”

여기까지는 말해도 되겠지? 허공을 보았다.

요정의 창이 뜨지 않는 걸 보니 세계의 오류에 관한 정체만 누설하지 않으면 되는 건가?

‘기준을 알 수가 없네. 이 고무줄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언제는 절대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 말하면 목숨을 잃는단 식으로 사람 입을 틀어막을 땐 언제고 말이야.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라이칸은 황제에게 시몬에 대해 어떻게 보고 했으려나.’

일단 아마 오늘부로 황실은 뒷세계에 확실한 응징을 가하지 않을까.

현재의 황제는 황권이 대단한 시대의 황제였고, 스스로 그 권력을 만든 사람이기도 했다.

괜히 권력이 지나쳐 폭군이란 소리까지 들은 인물이 아니었다.

‘남의 편이면 골치 아프지만 내 편이면 아주 든든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지.’

시몬은 개인 일신의 무력으로 막을 수 있는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국이 직접 그를 압박한다면? 과연 한 나라와 황실의 압박도 견뎌낼 수 있을까.

‘은밀하게 움직이는 거라면 몰라도 당장은 움직임에 압박을 받겠지.’

놈은 이사야 후작도 그렇고, 시몬도 그렇고 다른 개체 하나의 몸을 이용한다.

게다가 잠식한 몸이 가진 사회적 지위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어쨌거나 인간의 방식을 이용한단 소리니.

래빗에게 설명하고 나니 피로감이 조금 밀려왔다.

마침 얼마 가지 않아 라이칸이 보고를 마치고 돌아왔고, 나는 그의 배웅을 받아 저택으로 돌아왔다.

래빗은 아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내 얼굴을 보고 얼른 보내주었다.

“……돌아가서 푹 쉬는 것이 좋겠다.”

“저야말로 라이칸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에요.”

나는 찡그리며 라이칸을 노려보았다.

사실 라이칸이 배웅할 게 아니라 얼른 황성에서 치료를 받았으면 했다. 이 사람도 환자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고집을 부려 기어이 나를 데려다준 것이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면서 말이다.

물론 어젯밤을 떠올리면 괜찮아진 것 같지만, 그래도 그의 배에서 보았던 피의 잔상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뚱한 표정을 짓자 라이칸은 당황하는 것으로 모자라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결국은 돌아가면 바로 마법 치료를 받기로 약속에 약속을 거듭했다.

쩔쩔매는 표정을 보자니 어쩐지 마음이 풀어져서 결국 웃고 말았다.

“그대도 돌아가서 꼭 푹 쉬어야 한다.”

라이칸은 나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기울여 살짝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다면 반드시 책임지겠다. 이제 내 삶은, 그대 것이야.”

이렇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더니 후다닥 돌아가 버렸다.

……아니, 전부터 느낀 건데 왜 자꾸 고백하고 튀어?

고백튀인가?

* * *

라이칸은 아주 간곡하게 내가 푹 쉬어야 한다며 반복해서 말하고 갔지만, 그에게는 미안하게도 나는 라이칸이 사라지기 무섭게 저택으로 돌아가던 걸 멈추고 정문에서 돌아 나왔다.

‘지금 저택으로 들어가면 한동안 나가기 어려울 거야.’

아마 갑작스럽게 외박하게 됐으니 부모님과 파올로, 하녀들까지 정말 걱정했겠지.

억지로 나가는 게 어렵진 않겠지만 그전에 할 일을 끝내두고 돌아가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내가 가려는 곳은 다름 아닌 리제가 있는 곳이었다.

‘오늘도 그 상단에 있겠지.’

왜인지 그럴 것 같은 예감에 근거해 나는 리제의 저택인 후작가로 가는 대신 상단으로 향했다.

물론 가문의 마차를 이용할 수 없었기에 거리로 나가 공용마차를 따로 구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여행용 옷차림이었던지라 머리카락과 얼굴을 가리니 내게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뭐, 중간에 이상한 놈을 만나더라도 이제 마력을 쓸 수 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만큼 나빴던 몸 상태도 나름 회복이 된 참이었다.

어쩜 이렇게 회복이 빠른가 싶었더니, 발데르가 준 마력이 몸을 회복시키는데도 아주 그만인 것 같았다.

그렇게 마침내 나는 한번 왔었던 리제의 상단에 다시 한번 도착했다.

상단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1층 관리자가 나를 보더니 찡그리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내 친구를 만나러 왔는데.”

“……기다리십쇼.”

빙고. 내 감이 맞아 떨어졌다. 역시나 이곳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상단주께는 용건을 무어라 전달드릴까요?”

나는 싱긋 웃었다.

“주문한 물건을 손에 넣었다고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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