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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59화 (259/281)

◈259화. 4. 회귀자가 회귀를 거부함! (24)

말의 내용 때문에 놀란 건 아니었다.

물론 리제가 데려다준 게 아니라 파올로가 데리러 왔다는 사실에도 놀라긴 했지만.

파올로가 몹시도 진지한 얼굴로 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쓰러지기 직전에 파올로를 불러 달라고 하긴 했지만 진짜 파올로를 불러줄 줄은 몰랐네? 분명 상단을 숨기려고 직접 데려다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파올로의 진지한 얼굴을 볼 일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평소에는 실없을 정도로 장난 많고 다정한 오빠가 진지해질 때라곤 내가 아플 때뿐이었다.

그럴 때조차 진지함보다는 분노나, 안타까움, 억울함 등이 더 컸으니, 이렇게 오롯이 진지한 얼굴을 보는 건 거의 없었다.

나랑 같이 신전에 대해 의논했을 때 정도일까?

“뭐가 궁금한데? 오빠도 모두 잘 알고 있네. 리제의 상단에 갔고 거기서 깜빡 잠이 들었는걸?”

“……지금까지는 네게 이상한 부분이 발견되어도 그러려니 했어.”

“…….”

아. 그러고 보니 이 사람, 황실 기사단이었지.

황실 기사단이 경찰 같은 역할도 하는 걸 생각하면 눈썰미나 추리 능력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나 또한 네가 아프니까, 네가 어린 시절부터 아픈 것 때문에 누린 것이 많지 않으니까. 좀 이상한 데가 있더라도 하나씩 넘겼어.”

“…….”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네가 안전하고 건강할 때에만 뭐든 괜찮다는 소리야. 하지만 실종되었다가 나타나서 집에 돌아오긴커녕 리제 양에게 먼저 간 거라면 아무리 모른 척 하려 해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겠냐?”

“음…… 애틋한 친구를 먼저 만나러 갔다거나?”

“달린 에스테. 난 너와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니야.”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보이네.

나도 가끔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정말이지 나에게 맹목적이었다.

아마 저 해를 가리켜 달이라고 말해도 이유조차 묻지도 않고 ‘그래! 저건 달이란다, 아가.’라고 말을 해줄 인물들이었다. 이유조차 묻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파올로는 달랐다.

내가 봐온 파올로는 부모님에게 편승한 척 ‘그러게, 달이네?’ 하고 말을 해주겠지만 의문은 가지는 사람이었다.

아주 가끔 내게 의아함 어린 시선을 보내는 걸 느꼈으니까.

그간 다른 일로 너무나 바빠, 정확하게는 생존하기 바빠 슬쩍 모른 척 해왔을 뿐.

이제는 쌓여있던 것들이 터질 때도 됐다는 거겠지.

‘생각해보면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리제에 대한 것도 파올로에 대한 것도 눈치채고 대비를 하든 대화를 하든 할 수 있었을 거야.’

모든 것은 내가 생존을 위해 지나치게 바빴던 탓이며, 날 그렇게 만든 건 어디선가 날 내려다보고 있을 요정들의 존재였다.

원망하지만 그렇다고 내 탓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어. 한 0.0001%쯤?

“알았어. 오빠. 더는 말 돌리지 않을 테니 그냥 물어봐.”

나는 등을 편안하게 기댔다.

“사실 내가 먼저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싶은데 오빠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궁금한 건지도 모르겠고, 지금 자다 일어나서 조금 피곤하기도 하니까. 이건 이해해줄 거지?”

“마치 내가 어디서부터 궁금한지 알면 어느 부분은 감춘다는 말 같네.”

오, 예리한데? 처음부터 예리했던 걸까, 아니면 지금 막 예리해진 걸까.

아마도 전자 쪽이리라 생각했다.

“그치만 나도 궁금했는걸? 오빠가 할 질문이 지금까지 쌓여있던 의문이 폭발한 건지, 아니면 이번엔 리제도 엮여 있어서 사적인 관심까지 포함되어서 묻게 된 건지?”

“뭐?”

“맞잖아. 리제가 관련된 것 같으니까 신경 쓰이던 게 더욱 신경 쓰인 거면서.”

“아, 아니, 거.”

“네네, 아니라고 하기 전엔 거울부터 보시고요.”

이 어둑한 방에서도 보일 만큼 얼굴이 빨개져서는 어쩌겠다고?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침대 옆에 있던 마법 등을 켰다. 무드등이라 그리 밝진 않았지만 오빠의 얼굴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어휴, 토마토가 따로 없네, 없어.”

“뭐, 뭣?”

거울이 없어서 모르는가 보다. 아니다,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닌가?

파올로가 황급히 제 얼굴을 만지다가 흠칫했다. 본인도 화끈거림을 느꼈나 보다.

가끔 사랑이 눈에 보일 때가 있다고 하던데, 지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파올로라고는 믿기지 않을 얼굴.

나는 빤히 보다 툭 말을 던졌다.

“리제가 그렇게 좋아?”

“아니, 뭐…….”

이 사람 보게. 아니라고는 안 하네?

“허어, 오빠가 아픈 여동생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좀 더 빨리 깨달을걸.”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농담이지?”

“응? 농담 아닌데?”

정말인지 아닌지 몰라도 나보다 리제를 더 좋아한다면 나야 좋지.

정확히는 파올로에게 리제가 그만큼 깊은 감정이었다면 너무 좋다는 소리다.

‘남은 서브 퀘스트는 하나, 파올로와 리제의 사이를 엮어주는 거니까.’

보아하니 파올로 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가끔 얼굴이 빨개지는 걸 봐서는 그저 풋풋한 감정인가 싶기도 했으나, 이 정도의 얼굴을 하는 걸 봐서는 말이다.

‘우리 라이칸도 얼굴이 이렇게 빨개지곤 하는데, 이 순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너무 중증인가…….’

나는 엉뚱한 생각을 지워내며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넌 무슨 농담을 진담 같이…… 하, 됐다. 그래서 네가 왜 거기 있던 건데?”

“리제에게 줄 게 있었어. 오늘이 아니면 줄 수 없었거든.”

파올로는 말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듯 나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네가 엉뚱한 건 알았지만 이런 날까지 엉뚱해야겠냐. 부모님께는 네가 리제 양의 상단에 갔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어. 알았으면 얼마나 놀라셨겠어.”

“응, 그건 미안해…….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어.”

오늘이 아니면 정말 목숨이 간당간당했을지도.

나는 목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혹시…… 거기가 리제 양의 상단이란 거 사실이야?”

“왜 알고 있으면서 되물어봐?”

“아니, 나는…… 리제 양이 상단을 운영 중인 줄은 정말 몰랐단 말이야. 한 번도 이야기 해주신 적 없고…….”

“얼레? 왜 또 시무룩해지고 그래. 별로 보고 싶지 않거든?”

“너는 말이라도 예쁘게 못 하면. 하, 됐다.”

“리제의 상단 맞아. 그리고 아마 리제는 그 누구에게도 자기가 그런 상단을 운영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걸. 나한테도 말 안 했어.”

내가 알아냈을 뿐이지.

내가 이렇게 덧붙이자 파올로가 묘한 시선을 했다.

“그리고 오빠, 좀 달리 받아 들여야 돼. 리제가 그곳으로 오빠를 부른 거지?”

“……맞아.”

“리제는 그 상단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았어. 그런데 나와 오빠를 거기에 들인 거야. 나야 친구라지만, 오빠는?”

“…….”

“오빠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소리지.”

“…….”

그의 반응을 본 나는 웩, 하는 표정을 했다.

“빨개지는 건 좋은데 나를 보면서 빨개지지 말아 줄래? 속이 안 좋아질 것 같아.”

“뭐야?”

“반대로 생각해봐. 내가 오빨 보다 말고 빨개지면 좋겠어?”

“……미안하다.”

“그래, 반성해.”

달린이 그동안 아파서였을까. 파올로와 내 사이는 일반 남매보다는 다감한 편이었지만, 내가 건강해지자 보통의 남매와 좀 더 비슷한 사이가 되었다.

나는 이제 파올로며 부모님이며 모두 진짜 내 가족처럼 여긴다.

건강해지자마자 파올로랑 자연스럽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나는 지구에서 남동생이나 오빠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가끔 익숙한 기분이 들곤 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리제가 옆에 있어서 편히 잠든 거야. 아니었으면 볼일 다 끝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발로 집에 들어왔지.”

생존의 위협을 하도 당해서일까.

지난번에 공녀 언니의 계승식 연회에 참여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건데, 나는 낯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본래도 낯가림이 없지는 않았지만, 더 심해진 기분이라고 할까.

‘눈앞의 사람이 위험 요소가 될지 아닐지 판단이 안 가면 날이 서게 돼.’

어쩌면 요정의 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줄곧 내 앞에 위험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 그리고 주인공을 구분해주었으니까.

“그리고 기절하게 된 건 어디 아프거나 한 건 아니고 피로해서 그래. 황실에 구출되기 전까지 바깥에 있었으니 피곤하지 않겠어?”

말만 들어서는 딱히 앞뒤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파올로도 비슷하게 느낀 듯 무언갈 더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끙 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손을 내저었다.

“됐다. 됐어. 네가 더 말하고 싶지 않으면 캐물을 생각은 없어.”

“…….”

“전에 요청한 신관을 왜 조사하는 거냐 하는 거라던가.”

“…….”

파올로가 한쪽 발을 반대쪽 허벅지에 올리더니, 그대로 팔을 들어 턱을 괬다.

마음이 복잡하긴 한데, 동시에 이 여동생을 어쩌면 좋냐, 싶은 다감한 얼굴이라 웃음이 터졌다.

원작과는 다르게 리제가 현재 마음에 둔 사람은 서브 캐릭터였던 파올로다.

‘리제는 현재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맹목적으로 달리고 있어. 그 모습,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려던 때의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아.’

그런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파올로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건 누가 먼저 나 쟬 좋아해! 말하지 않았어도 서로 쌍방이란 소리나 다름없다.

“그러게. 묻지 않아 준다니 고맙네. 그럼 나도 내 친구랑 언제 그렇게 깊은 사이가 되었냐고 묻지 말아 줄까?”

“기, 깊은 사이라니! 그런 거 아니야!”

“오, 리제가 큰 비밀을 털어놓은 날에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리제에 대한 마음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군. 리제가 들으면 서운해하겠는걸.”

“아니야!”

나는 키득대며 웃다가 서서히 웃음을 지웠다.

“오빠, 오빠는 언제부터 리제가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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