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61화 (261/281)

◈261화. 4. 회귀자가 회귀를 거부함! (26)

내 설명에 래빗은 눈을 깜빡였다.

“이 몸이 만둔 힘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도움이 될 고라눈 고냐?”

“네. 저는 어떤 힘이든 힘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요.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죠. 보세요, 마수에게 있던 오염이란 혼돈에 가까운 힘을 로아타 황제께서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힘으로 탈바꿈시켰잖아요.”

“…….”

“저를 도와주세요, 황녀님.”

사실 래빗이 되도록 전생을 잊고 현생에서 행복해지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어렵고 미안한 부탁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 나를 보던 래빗의 눈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너눈, 이론 때에도 나룰 로아타라고 부르지 않눈구나.”

“……제겐 래빗 황녀님이니까요.”

“구래, 나눈 그래소 네가 조타. 다른 사람이 이런 부탁을 했다면, 나눈 분명 나룰 이용하는 거라 생각해 분노했겠지. 하지만 너눈…….”

맑은 눈 안에 내가 담겼다.

“전생의 나처럼, 정말 세상울 구하고 싶운 고지?”

나는 난감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그렇게 거창한 포부를 품은 인간은 아닌데요.

“아뇨, 저를 너무 좋게 생각하진 마세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제가 생존하려고 이러는 사람인걸요.”

“하지만 필요하다묜 목숨울 버리고 다룬 사람을 살리게찌. 내게 했던 것초롬.”

“…….”

으음, 그때 래빗을 살리기 위해 검에 맞고 죽기는 했다만 그건 스킬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 다급해서 거기까지 모두 다 잘될 거라 생각하고 벌인 일은 아니기는 하지만.

래빗 황녀님은 아무래도 나를 크게 오해한 것 같았다.

몇 번 아니라고 해명을 시도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끄응, 어쩌다 내가 영웅 못지 않은 숭고한 사람이 된 거지?’

우선 이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보니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혹시 ‘파훼’의 힘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수 있는지 물어봤고, 래빗은 고민하더니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구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운 하다. 이몸운 검울 쓰는 것도 그 힘도 모두 기억하고 있으니까.”

“앗, 그럼…!”

“하지만 아무나 가르칠 수눈 없어.”

“엇…… 혹시 아직 이 제국에,”

“아니, 아니, 그게 아니야. 이 몸이 이 황실에 가진 감정과눈 별개로, 그 힘운…… 펠프스 땅에서 나고 자란 혈통들이나 우리의 후손만이 쓸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래빗 또한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이미 오래전에 멸망한 나라의 사람이거나 그들의 후손이 아니면 쓸 수 없다?

다행히 사람이 아니라 혈통으로도 이어진다니 정말 다행이긴 한데, 어디서 갑자기 펠프스 사람의 후손을 찾는데?

‘파훼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시몬 그놈이나 그놈이 벌이는 계략을 막는데 큰 도움이 될 텐데. 어떻게 방법이 없나?’

좋은 방법을 찾았나 싶었더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나는 방법, 아니,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을 너무나도 쉽게 찾았다.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 * *

“……네?”

나는 눈앞의 사람을 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그, 그러니까 대공님께서 펠프스 사람의 후손이라고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후손까지는 아닙니다.”

오랜만에 보는 말간 얼굴이 나를 보며 해사하게 휘어졌다. 날카로운 눈매가 순진할 만큼 예쁜 눈웃음에 휩싸여 사라졌다.

“북부의 땅에는 체단 가 가문의 사람이 아주 오래전부터 먼저 살고 있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제 선대에 펠프스 인의 피가 섞였다고 할 수 있겠군요.”

휴고는 설명했다.

“펠프스 제국이 우리 제국에게 패배한 뒤, 그곳의 유민들이 북부로도 넘어왔었습니다.”

척박한 땅의 주인, 체단 대공은 이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였고 이들 중 한 사람을 아내로 삼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했다.

‘엄, 아니, 이렇게 찾아서 좋기는 한데…… 대체 어쩌다 문제가 이렇게 빠르게 해결된 거야?’

래빗과 어떻게 하면 이 파훼의 힘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돌연 하녀가 도서관에 찾아오더니 손님이 왔다고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손님이 무려 휴고, 대공이라고 하니 나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제 폐하께 전해 들었습니다. ‘오염’의 힘과 마주치셨다지요?”

황제의 명을 받고 조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휴고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와 동시에 라이칸이 황제의 명으로 여기 오지 못하고 바쁘다는 이야기가 스쳐 가기도 했는데.

설마, 휴고랑 라이칸이랑 함께 일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랬다면, 에스테 저택에 올 일이 생기면 라이칸도 당연히 왔을 텐데.

휴고만 저택에 온 걸 보면 내 생각이 틀린 건가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마침 래빗과 오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던 참이었기에 나는 휴고에게도 래빗에게 털어놓은 것 그대로 이야기했다.

‘어차피 휴고도 내게 들어서 내가 계시를 받아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물론 래빗의 전생 이야기는 빼놓고 말했다.

황실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시몬과 시몬이 사용하는 오염의 힘에 대한 경각심을 세우는 상황이니 내게는 호재였다.

그렇게 휴고에게는 내가 책을 통해 파훼의 힘을 알아냈고, 이 힘은 펠프스의 혈통을 이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이란 것까지 털어놨더니.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휴고에게도 펠프스 인의 피가 흐른다는 거지?

‘연이 뭐 이렇게 되냐. 신기할 정도인데…….’

휴고의 조상 중 하나가 펠프스 인이랑 결혼했다고 했으니까.

“…….”

래빗은 뜻밖의 정보에 말없이 휴고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휴고가 펠프스 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부터 그러했다.

“으음, 그렇군요?”

“예,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일은 아닙니다. 패전국의 유민을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북부인으로 받아들인 일이니까요.”

휴고는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아니 정확히는 내게만 관심 있는 듯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나는 래빗이 신경 쓰여 흘끗흘끗 보게 되었다.

“사실 기밀이기는 하나…… 책임을 묻지 않은 건 제 선대 대공이 아내로 삼은 펠프스 인이 고위 귀족 혹은 멸망한 펠프스 황실의 마지막 핏줄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

위기 속에서 피어난 로맨스, 이런 건가? 그것도 적국의 대공과 로맨스라니.

한편으로 기밀이라 말하면서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열심히 설명하는 휴고를 보면서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서사 한편 뚝딱이네.’

사실 책에서 펠프스 제국에 대한 걸 읽을 때만 해도 내겐 그저 오래전에 멸망한 나라일 뿐 특별한 감상이 없었다.

그런 나도 신기한 상황인데, 래빗은 어떨까.

“혹시 하나만 물어 바도 되겠나?”

래빗이 물었다.

말이 묻는 거지, ‘대답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하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제야 휴고는 래빗을 응시했고, 래빗의 이런 반응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무엇이든 여쭤보십시오, 황녀님.”

휴고는 과연 이렇게 삐딱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른 황자들에게 삐딱한 것과 다르게, 래빗에게만은 늘 공손했다.

……이게 딱히 래빗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랑 친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혹씨, 윗대에 대공이랑 겨론했다는 펠프스인 이름이 무엇인지 아나?”

래빗은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그만 아기님이 이렇게 말하니 언밸런스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휴고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잠시 고민했다.

“말씀드렸듯 기밀 사항이기는 하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그 이야기를 좋아했거든요.”

어린 시절, 문득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보았던 어린 휴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래빗에게 말을 하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휴고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미묘해졌다.

“카란나입니다.”

“아…….”

래빗이 기대하는 무언가가 아니었는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북부식으로 고친 대외적인 이름일 뿐…… 선대 대공이 부르는 이름은 ‘페페르’…….”

쿠당탕탕!

요란한 소리에 휴고가 말을 멈췄다.

래빗이 일어나면서 옆에 있던 책들을 무너트린 소리였다.

나도 휴고도 래빗에게 무어라 말을 걸지 못할 만큼 래빗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정이 요동치는 얼굴이었다.

‘설마…….’

깨달았다. 휴고의 입에서 나온 이 이름이 래빗에게는 엠버넷처럼 소중한 사람이었을 거란 걸.

하지만 여기서 그가 누구인지, 혹시 아는 사람인지 물을 수는 없었다.

래빗 또한 상황을 깨달았는지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언제 간절하고 슬픈 표정을 지었냐는 듯 평온하게 돌아온 래빗이 크훔, 하고 헛기침을 했다.

“크훔훔, 이 몸이 펠프스 제국울 조아한다.”

“그렇습니까?”

“역사에 대해 아눈 곤 아주 좋운 일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사는 현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 생각하니까요.”

어째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네? 래빗이 괜찮은 건가 걱정스럽게 바라볼 때였다.

“……역사를 곱씹고, 또 곱씹다 보면 과거에는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의 해결 방법이나 희망이 보이기도 하죠. 그래서 좋아합니다, 역사.”

휴고가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분명,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어째 역사 이야기로만은 들리지 않았다.

“대공이 역사룰 조아했다니, 생각보다 더 건실한 사람이었군?”

“좋게 봐주시니 기쁩니다.”

휴고가 살짝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