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4. 회귀자가 회귀를 거부함! (36)
* * *
며칠 뒤, 우리는 한자리에 모였다.
이곳에는 몸이 회복된 라이칸도 함께였다.
라이칸은 여기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서 흠칫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모든 인원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건가?”
“맞아요, 라이칸.”
나는 손뼉을 치며 맑게 웃었다.
“제대로 이해했어요.”
그런 나를 보던 라이칸이 눈 밑을 살짝 붉게 물들였다.
그간 라이칸은 ‘오염’을 해독한 뒤 몸을 회복하고, 또 일어나자마자 황제에게 불려가고 하느라 바빴다.
일어나자마자 황실에 상황을 설명하느라 또 바빴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나는 리제와 거의 모든 정보를 교류하고 래빗과 휴고에게도 공유한 참이었다.
‘나만의 로판’ 기능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늦게 모든 소식을 접한 것이 바로 라이칸이었다.
“그렇군, 내 여동생을 비롯해 대공과 그대의 친우까지도…….”
라이칸은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이내 이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요즘은 내 얘기라면 웬만하면 다 그렇구나, 하고 수용하는 느낌이랄까.
“어렵게 받아 둘이지 마라, 오뺘. 어차피 오뺘눈 내가 유별나다눈 것쭘은 알고 있었지 않누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래빗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조금 걸렸는지, 래빗 쪽을 계속 흘끔흘끔 보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인정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휴고를 묘한 눈으로 보는 것 같은데…….
“당신을 죽게 할 뻔했던 오염에 대해서는 이제 황실에서도 존재를 알아차리고 경계하고 있단 거죠?”
“그렇다. 아버지는 물론 형님께서도 확인 후 조사 중이야.”
라이칸은 한 손에 두툼한 서류를 들고 있었는데, 내게 대답하면서 탁자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 또한 황실에서 조사한 결과를 가져온 참이다.”
“조사 결과요?”
“그래, 황실에서도 독자적으로 오염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것과 함께 이상한 일들이 수도에서 일어났다는군.”
라이칸이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자, 라이칸이 들어올 때 인사를 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조 용히 있던 리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언가 짐작 가는 게 있는 건가?
“처음 시작은 수도에서 괴물이 나타났다는 한 제국민의 신고였다.”
“괴물……. 몬스터를 말하는 걸까요?”
“확실히 북부와는 다르게 수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몬스터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지요.”
내가 대답하자, 휴고가 보충 설명하듯 이어 말했다. 라이칸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 신고를 받았던 관리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들어보니 시민이 설명하는 것이 도저히 몬스터라고는 말하기 힘든 형상이었다고 하더군.”
라이칸이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한 종이를 꺼냈다.
글자로 빽빽한, 조서처럼 보이는 종이었다.
‘이건……!’
게다가 아래쪽에는 몽타주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는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라이칸을 보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통 인간과 같은 크기, 인간의 형상을 하되 반은 형체가 녹아든…… 끔찍한 몰골이었다는군.”
“이건…… 폐신전에서 봤던 동상의 모습과 똑같잖아요?”
폐신전에서 보았던 꿈에 나올까 싶은 섬뜩한 모습 그대로였다.
거친 펜화에서도 더욱이 잘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전생에서 호러 무비에 보았던 좀비와 미라가 이런 모습일까 싶은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폐신전에 이런 게 있었다고?”
“응, 내가 말했던 동상이 이거야.”
폐신전에 동상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아무래도 그간 들어가지 못해 모습은 알지 못했던 리제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생각했던 이유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나, 이런 거 본 적 있어.”
“본 적 있다고?”
리제가 천천히 끄덕였다.
아마 더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주변 인물들을 보는 걸로 봐서는…….
‘이전 회차에서 본 거구나.’
“혹시 ‘예전에’ 본 거야?”
“……맞아.”
역시나. 리제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몸도 저론 걸 알고 있댜. 인간이 오염에 당하면 보통 저로케 죽는데…… 바로 즉사하디, 살아움직이눈 곤 들은 적이 없서.”
“……넌 대체 어떻게 이런 걸 아는 거지?”
“비밀이란댜, 오뺘.”
라이칸이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래빗을 보기는 했지만, 조금 더 대화한 끝에 정리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미 수도에서는 지속적으로 신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생포하거나 붙잡힌 개체는 없었다는 거죠?”
“맞다. 신고를 받아 달려가도 이미 사라진 뒤였다고 하더군. 조사 중에 알게 됐지만…… 이 괴물을 봤다고 말했던 자들은 하나같이 실종된 뒤였다.”
“……괴물에게 먹힌 걸까요?”
“지금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
그간 아주 소수의 사건이었기에 더 큰 중범죄에 밀려 주목받지 못한 일이었다고 한다.
하기야 하루가 멀다하고 살인이나 강도 등의 범죄가 일어날 때 유령 소동 같은 사건은 금세 잊혀지지 마련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생긴 게 좀비 같아서 그런가…… 어쩐지 저 괴물, 막 전염 같은 것도 시킬 것 같단 말이지?’
근거 없이 떠올린 생각은 아니었다.
라이칸이 오염에 중독된 과정을 생각해보자. 세계의 오류가 가지고 있던 오염이 옮겨와 쓰러지게 만들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오염은 충분히 전염될 수 있다.
“어쨌거나 아버지나 형님을 포함해 황실 전체에서 경계를 세우는 것은 물론 수도 경비대까지 지침이 내려졌으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
그리고 애석하게도, 우리가 이 만약의 사태를 맞이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막 정보 공유 및 회의가 끝나고 우리가 헤어지던 때였다.
내 저택으로 허겁지겁 황실의 전령이 달려왔던 것이다.
“2, 2황자님! 큰일 났습니다! 현재 수, 수도에! 수도에 이상한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기사로 보이는 자는 무엇을 본 것인지 새하얗게 질린 채 가까스로 말을 마무리했다.
“황자님께서 말씀하신 이상한 괴물입니다!”
우리는 굳은 얼굴로 서로를 응시했다. 특히나 라이칸은 더욱 굳은 얼굴로 끄덕이며 휴고를 향했다.
“달린, 아무래도 나는 먼저 가봐야겠다.”
“라이칸 잠시만요……!”
나는 라이칸을 붙잡고 허공을 보았다.
[‘나만의 로판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나만의 로판 기능’이 모든 캐릭터에게 ‘오염’에 대한 완전 보호 기능을 부여합니다!]
요정은 발 빠르게 알람을 주었다.
모든 메인 퀘스트를 완료하며 나만의 로판 기능이 완성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잘 들어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지금부터 오염에 절대로 당하지 않을 테니까. 혹시 민간인이 위험하게 되면…….”
“도와줄 수 있겠군.”
나는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몸이 뭐 강철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제발 조심들해요. 알았죠?”
그러자 나를 빤히 보던 휴고가 작게 미소짓더니, 내 손등을 잡고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유려한 인사였다.
그러고는 먼저 말을 향해 가버렸다.
“……달린.”
라이칸은 뚱한 표정으로 휴고가 잡았던 손을 잡더니 만지작거리는 척 내 손등을 뽀득뽀득 문질렀다.
‘질투하네? 귀여우셔라.’
나는 순간 위급한 상황도 잊고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다녀오겠다.”
난 웃음을 꾹 참은 얼굴 그대로 끄덕였다.
“네, 다녀오세요.”
그렇게 라이칸마저 보내고 나는 남아있는 래빗과 리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중 래빗을 바라보며 빠르게 말했다.
“황녀님, 혹시 파훼의 힘은…….”
“쟤눈 완벽하게 다룰 수 있우니, 걱정하지 마로라.”
며칠 간 래빗이 휴고에게 파훼의 힘을 완전히 알려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래빗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움직이며 이어 말했다.
“일반 기사둘운 대공처롬 파훼의 힘울 다룰 수눈 없어도 이 몸이 파훼의 힘울 담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눈 것 같더군.”
“아…….”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래빗은 파훼의 힘은 휴고만이 직접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휴고와 함께 발견한 방법이었다고 알려주었다.
며칠간 꽤 많은 일이 있던 모양이었다.
“리제, 지금 나타난 괴물들……. 숫자가 많을까?”
“그건 잘 모르겠어. 어쨌거나 그놈이 그 괴물들을 양산하려 애쓴 건 분명해.”
라이칸과 휴고가 괴물들을 막으러 갔다면 남은 이들이 할 일은 원흉을 찾는 일이었다.
‘이렇게 급박하게 진행될 줄은 몰랐지만…….’
나는 속으로 낮게 숨을 내쉰 뒤에 시선을 옮겼다.
“리제, 할 말이 있어.”
우리는 며칠간 오염과 시몬의 탈을 쓴 ‘세계의 오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리제의 지난 회차에 대한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빠져있었다.
바로, 그놈을 도대체 세상에서 어떻게 지워버리는가? 죽일 방도는 있는 것인가?
나도 리제도 꺼내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너, ‘시몬’을 죽일 방법을 알고 있지?”
해답은 리제가 나만의 로판 기능 안에 추가되었을 때 알 수 있었다.
[다섯 번째 인물 ‘리델라제’
-인물의 역할: 주인공 달린의 진정한 친구
-칭호: 거대 상단의 비밀 주인(노말), 황금을 보는 눈(유니크), 노력이 극의에 다다른 자(유니크), 무한 회귀자(레전드리) 오염의 대항마(레전드리), 결(結)을 가진 자(-)
-달린을 향한 호감도: 100(+α) /100 ※단, 호감도가 불신도로 변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물들이 추가될 때마다 이 칭호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궁금했었다.
이제는 알 수 있었지만.
‘오염의 대항마’ 그리고 ‘결(結)을 가진 자(-)’
이 두 가지 호칭을 합하면, 리제는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