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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11화 (11/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11화 ❤(ᵔᵜᵔ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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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근처 마을로 도망친 마법사 카르만은 소형 이동석을 두 번이나 더 사용해 윈터스노우 영지의 가장 끝자락까지 이동했다.

“쿨럭!”

없는 마력까지 쥐어짜 이동석을 사용한 탓에 몸이 버티지 못하고 피를 쏟아 냈다.

피로 흥건하게 젖은 입매를 소매로 대충 닦은 그가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정도면 바로 쫓아오진 못할 것이다.

‘제기랄. 대체 뭐야, 뭐냐고!’

목표물을 제거하기는커녕,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겨우 도망치다니.

나름 보험이랍시고 그럭저럭 실력 있는 용병들까지 고용해서 간 것이거늘.

마치 종잇장이라도 베어 버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건장한 용병 넷을 해치우다니.

카르만은 아직도 자신이 본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건 단순히 실력만으로는 불가능한 몸놀림이었다.

타고난 힘, 동체 시력, 더해 뛰어난 검술 능력까지 모두 갖추어야 겨우 가능했다.

그것도 망상 속에서나 우연처럼 맞아떨어져 일어날 법한 확률의 일이었고.

‘아니, 잠깐. 북부라면 딱 한 명. 그런 능력을 가진 이가 존재하긴 하지.’

윈터스노우 공작.

마왕의 저주를 피하고, 마물에게서 북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라면 가능했다.

‘이런 젠장 할! 그럼 내가 지금 북부의 대공과 싸운 거야?!’

정확히는 싸우기는커녕, 용병들이 죽는 틈을 타 겨우 도망친 것이었지만.

황제마저 적으로 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그와 대립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카르만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내 얼굴을 본 건 아니겠지? 젠장. 한시라도 빨리 북부를 떠나야겠어.’

하지만 터를 잡은 북부를 떠나기엔 모아 놓은 자금이 부족했다.

이번 의뢰의 보수로 북부를 떠나 유유자적 지낼 생각이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이게 다 그 어린 공작 놈 때문에!’

왜 하필 그 타이밍에 공작이 나타난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거친 돌바닥에 주먹을 내지르기도 잠시, 카르만은 뜻밖의 생각에 이르렀다.

‘……잠깐만.’

그냥 죽였다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고작해야 갓 성인이 된 여자인데?

시신을 보여 달라고 한다면 불에 태워 죽였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태운 시신이라도 보여 달라고 할 수 있으니, 대충 키와 체형이 비슷한 여자를 구하면 그만이고.

그간 이런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카르만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거짓 보고한 전적이 있었다. 그럴듯한 상황과 증거를 만들어서.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렇게나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어차피 목격자도 없었다.

천만다행히도 함께 갔던 용병들을 모두 죽여서 사실인지, 아닌지 증언할 사람도 없었다.

‘여자를 죽였다고 우기고, 불에 탄 시신까지 보여 주자!’

생각을 끝내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거액의 의뢰비가 당장이라도 손에 떨어질 것 같았다.

다행히 의뢰인과도 금세 연락이 닿았다. 내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길드에 보고를 하자마자 곧장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나흘 뒤 자정, 크로체 시계탑 앞.]

심지어 마음이 급했는지 바로 만나자며 시간과 장소까지 제안해 왔다.

‘크로체라면 여기서 일주일은 걸리는 곳이잖아?’

그렇게 먼 곳에서 나흘 뒤 자정에 만나자니. 대체 얼마나 마음이 급하기에.

‘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지만.’

조금 덜 쉬고 덜 자면서 서둘러 가면 나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흐음, 준비물을 만들어야 하니 시간 절약을 위해 이동석을 몇 개 사야겠군.’

그는 곧장 의뢰인에게 보여 줄 불에 탄 여성의 시신 한 구와 단거리 이동석 몇 개를 구매했다.

물론 지금 당장 누군가를 죽일 순 없었기에 마법으로 연성한 가짜 시신이었지만, 불에 태우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완벽한 준비를 마친 그는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서 크로체 시계탑으로 향했다.

큰 도시도 아니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서 그런지 주변에는 어둠만이 자욱할 뿐, 아무도 없었다.

‘……날짜를 착각한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카르만은 품에서 의뢰인이 보낸 답장을 꺼내 보았다.

그러나 다시 보아도 오늘, 지금, 바로 이 시간, 이곳이 맞았다.

의뢰인이 제 정보를 숨기려 거액의 비용까지 지급한 의뢰이니 거짓일 리는 없을 텐데.

‘대체 왜 안 나타나는 거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퍽!

누군가 카르만의 목뒤를 후려쳤다.

그대로 의식을 잃은 그는 잠시 뒤,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윽, 으윽! 여, 여긴……?”

어둡고 비좁은 실내였다. 공기 중에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가 만연한 것을 보니, 빛이 차단된 지하실인 듯싶었다.

기절했다가 깨어나서인지 머리가 아팠다. 어두워서 뭐가 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목뒤를 손으로 주무르며 상황 파악을 하려는데, 낯선 목소리가 그를 사로잡았다.

“정말 그것을 해치웠다고?”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목소리의 방향을 확인하자, 점잖게 생긴 중년 남성이 보였다.

그는 루벨라이트 공작가의 집사였다. 레이나를 죽였다는 말에 크로체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불신과 의문을 띤 채 다시 물었다.

“그것이 순순히 당하고 있었다고? 대체, 어떻게 죽인 거지?”

그제야 카르만은 의뢰 대상인 여성이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보통은커녕 보수를 200골드나 걸 수 있는 자가 어떻게 해도 처리할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여자일지도 몰랐다.

보수가 커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병들을 고용하긴 했었는데,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어설프게 대답했다간, 큰일이 나겠다 싶었다. 카르만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실은 순순히 있진 않았습니다. 그 여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엄청난 능력을 가졌더군요. 저는 네 명의 용병들과 함께 그녀를 처리하러 갔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건…… 저 하나였습니다.”

영웅담이라도 늘어놓는 듯 읊기 시작한 말에 집사의 눈에서 아주 조금 불신이 흩어졌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눈치챈 카르만이 퍽 비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그런 힘이 존재할 수가 있는 겁니까? 내 동료들은 그 여자에게 무자비하게 당했습니다. ……창피하지만, 마법사라는 이유로 후방에 있던 저는 그걸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지요.”

어둠에 익숙해진 것인지, 집사의 눈이 떨리는 게 보였다.

정말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구나!

카르만은 눈치 빠른 자신에게 감탄하며 거짓을 보탰다.

“그러다가 마지막 동료가 쓰러지기 직전,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다잡은 저는 제가 아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읊었고, 제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여자에게 명중시켰습니다.”

동료들의 희생으로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를, 실수 없이. 완벽하게.

“다행히 정통으로 맞은 마법 때문에 여자가 맥없이 쓰러지더군요. 하지만 만만치 않은 여자라는 것을 알았기에, 저는 그 뒤에도 몇 차례나 마법을 더 퍼부었습니다. 그녀의 시신이 새카만 불꽃에 잠겨 미동하지 않을 때까지.”

‘새카만 불꽃’이라는 말에 집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신이 사라진 순수한 감탄의 눈이었다.

어둠의 마왕 때문에 최악의 상태를 일컬을 때 종종 쓰이는 묘사였지만, 얼떨결에 얻어걸린 상황이었다.

파르르 눈을 떨던 집사가 서둘러 카르만에게 물었다.

“그래서 시신까지 모두 검게 타 사라진 건가? 정말 그 여자가 죽은 게 확실하다고? 내 이 두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불꽃이 타오르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전부 타서 사라지진 않더군요. 너무 두려워서 일단 북부에 숨겨 두고 왔으니…… 직접 찾아가신다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 이상 그 여자의 흔적조차 보기 두렵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거짓 보고를 할 때마다 그랬듯, 보수만 받고 도망칠 요령으로.

하지만 그 모습이 집사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레이나와 맞닥뜨린 자라면 당연히 보여야 할 반응이었다.

한층 더 익숙해진 어둠 속에서 집사의 얼굴을 확인한 카르만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보수만 받고 멀리멀리 떠나면 될 것 같았다.

그가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끔찍한 여자의 시신은 직접 확인하시고, 보수를…….”

그제야 보수가 떠올랐다는 듯, 한 박자 늦게 집사가 눈을 깜빡였다.

“아아, 그렇지. 시신을 먼저 확인해야겠어. 정확히 어디에 있지?”

“아니요. 보수가 먼저입니다. 장소는 제 안전이 확보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었으니까 말입니다.”

카르만은 멍청하지 않았다. 의뢰를 성공하지 못한 만큼,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가짜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발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군.”

집사 역시 그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하였기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카르만의 뒤편에서 부스럭 작은 소음이 들렸다.

‘응? 누가 더 있었나?’

서둘러 뒤를 돌자, 왜소한 몸집의 남자가 그에게 검은 가방 하나를 건넸다.

“보수는 거기 들어 있으니 어서 위치를 알려 주시게.”

집사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카르만이 서둘러 가방 안을 확인했다. 안에는 정말로 수북한 양의 금화가 들어 있었다.

이렇게 쉽게, 잘 끝날 줄이야. 속으로 쾌재를 부른 카르만이 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집사에게 건넸다.

“내일 자정에 이곳으로 가 보십시오. 정확한 위치를 이곳에 남겨 두겠습니다. 아! 물론 지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일 자정 전까지 쪽지를 남겨 놓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계획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용병들 사이에서 꽤 자주 쓰이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럴듯한 계획에 집사의 입매가 꾹 닫혔다. 레이나의 시신을 반드시 확인해야 했기에 그는 애써 분노를 참으며 길을 터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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