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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19화 (19/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19화

“제, 제 여식이 감히 공녀님께 무례를……!”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집사가 사색이 되어 안절부절못했다.

집사의 부인 역시 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공녀님! 어떤 죄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니, 무례를 저지른 건 미아가 아니고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은 그쪽들이지만.

새삼스레 그런 걸로 트집을 잡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집사의 가족들이 무사히 살아남아 상봉한 것에 안도감만 들었다.

그런데 쩔쩔매는 꼴을 보니 장난기가 생겼다.

예전에는 집사가 놀라고 식겁하는 게 부담스럽고 불편했는데, 최근엔 익숙해졌는지 그 횟수가 줄어들어서 외려 놀리고 싶어졌다.

“글쎄, 미아가 하는 거 봐서.”

그래서 팔짱을 끼고 글쎄라는 말을 덧붙이자, 두 사람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뭐지?’

마치 진짜 내보이고 싶은 표정을 애써 숨기려는 것처럼.

‘뭔데, 지금 이 반응? 설마…… 요리를 더럽게 못하나?’

아니, 집사의 성격상 그런 것이라면 바짓가랑이라도-아니, 치맛단이라도 붙들고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음식을 어마어마하게 잘 만든다는 얘긴데…….

‘갑자기 손재주 좋은 집사에, 작물 재배 전문가에, 실력 있는 요리사까지 얻게 된다고? 상식적으로 그렇게 운이 좋을 수가 있어?’

물론 게임 속의 세상이니 상식이 통할 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우연과 우연이 겹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필요한 것들만 쏙쏙 얻게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심지어 자신 같은 최종 악역이 말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되네.’

잠시 뒤, 미아가 만든 음식을 한입 먹은 레이나가 말을 잃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만들어 와서 대충 만들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냥 집사를 닮아 손재주가 좋아서 음식을 만드는 속도가 빠른 모양이었다.

“이거, 뭐야?”

“단순한 치킨 소테입니다.”

치킨 소테라면, 그냥 튀긴 닭고기라는 말이었다. 저택에 있던 닭고기는 거의 육포에 가까운 냉동 상태였을 텐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달콤해. 그리고 고소하고 부드러워. 식재료 창고에 있던 걸로 만들었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갓 구해 온 닭고기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육질이 살아 있었다.

심지어 어딘가 새콤달콤하기까지 했다. 그게 입맛을 돋우었다.

“공녀님께서 만들어 두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불꽃 덕분입니다. 꿀과 함께 졸인 사과 소스로 볶아 보았습니다.”

미아는 상당히 사회성이 있는 타입인지, 한번 레이나를 추켜올린 뒤에 요리의 비법을 공개했다.

물론 요리법은 당최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미아, 내 전속 요리사가 되어 주겠어?”

제발, 제발요. 미아는 놓쳐서는 안 될 인재였다. 절대로 말이다.

갑자기 시작된 구애에 민망해진 미아가 붉게 물든 뺨을 매만졌다.

집사의 부인도 ‘얘가 실력이 좋기는 한데, 공녀님의 전속 요리사를 하기에는 아직 경험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경험이야 여기서 쌓으면 돼. 앞으로 온갖 귀한 식재료가 생겨날 예정이거든. 여기보다 더 좋은 직장, 구하기 힘들걸?”

레이나가 베로니카에게 눈짓했다. 눈치 빠른 그녀가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서 경험을 쌓다가, 때가 되면 수도에 가서 본때를 보여 줘. 이렇게나 실력이 뛰어난데, 네가 여자라고 배움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놈들에게 말이야.”

물론 그때가 되면 돈쭐을 내서라도 가지 못하게 막을 생각이지만.

미아의 눈이 흔들렸다. 거의 다 넘어온 모양이었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레이나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후에 내 이름을 팔아도 좋아. 그러니 당분간 여기에서 지내면서 음식을 만들어 주지 않겠어? 보수로는 귀를 줄게.”

한낱 초보 요리사에게 보내는 프러포즈치고는 과했지만, 그녀의 음식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제 딸의 능력을 높이 사다 못해 칭송해 준 레이나였기에, 집사가 당연히 그리하겠다며 대답을 대신했다.

“지낼 곳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녀님.”

다행히 미성년자의 부친이 고용을 허락했다. 계약 성립이었다.

그렇게 마왕의 부하가 한 명 더 추가되었다.

미아 역시 기뻤던 모양인지, 빨갛게 익은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말을 대신 전했다.

“자, 그럼 새 요리사가 결정된 것 같으니 새참을 만드는 게 좋겠지?”

아까부터 베로니카와 체이스의 시선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치킨 소테에 머물러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기에 누군가는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새로이 고용된 요리사의 몫이었다.

“그럼 제가 솜씨를 발휘해 보겠습니다.”

다행히 새로운 요리사는 요리하는 것을 몹시도 좋아했고, 누군가가 자신의 요리를 먹어 주는 것도 좋아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음식이 존재했다고……?!”

“어린데 솜씨가 대단하네. 앞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보람이 있겠어.”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두가 미아의 음식에 감탄했다. 다시는 레이나에게 음식의 음도 꺼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

“지금 생각해 보면, 공녀님께선 요리에 재능이 그다지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로스틴에게 일과를 보고하던 체이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공녀님과 미아의 음식은 같은 재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였습니다.”

대체 무슨 보고를 하는 거야.

머리가 아파진 로스틴이 책상에 깃펜을 던지곤 이마를 짚었다.

공녀의 측근이 되었다고 하여 그녀의 정체 정도는 알아 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어째서인지 체이스의 보고는 매일같이 땅을 파고, 작물을 심고, 영양분 따위를 주었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렇다고 공녀님의 음식이 맛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음, 그렇지만 미아의 음식을 먹어 버린 뒤라 이제는 조금 맛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만.”

음식에 대한 본격적인 품평이 시작되자, 로스틴의 인내가 뚝 끊어졌다.

처음에는 저렇게 수다스럽지 않았던 것 같은데, 공녀의 저택에서 농사를 짓더니 성격이 변해 버렸다.

“경은 대체 왜 공녀를 감시하고 있는 거지? 농사가 취미였나? 그런 거라면 지금 당장 기사직을 내려놓고 귀농해.”

그제야 자신이 너무 농업과 식단에 치중된 보고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체이스가 느슨해져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에 그럴듯한 보고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실 체이스도 사정이 있었다.

공녀가 매일같이 농사만 짓는데, 열심히 감시한다고 한들 나올 얘기는 없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친숙히 파고들어서 양질의 정보를 빼 오려고 노력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보고드렸다시피 공녀님께선 작물을 재배하는 것 외엔 딱히 하는 일이 없으셔서…….”

최근에는 미아의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도 추가되었지만, 이 이야기까진 굳이 지금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체이스가 말끝을 흐렸다.

“아!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공녀님께선 신탁의 마왕이 아니시라는 겁니다. 누군가를 해친다거나,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셨습니다.”

외려 어떻게 하면 좀 더 비싼 작물을 심어서 안락한 노후를 보낼까, 고민하는 듯 보였다.

어쨌든 체이스가 본 레이나는 신탁의 마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가 신탁의 마왕이라면 윈터스노우 공작가에 저주를 내린 것이 무려 13살일 때라는 건데, 그건 좀 아니었다.

애초에 레이나는 불꽃 마법 외에 다른 마법은 사용하지도 않았고.

“점점 더 경이 누구의 기사인지 모르겠군. 경은 정말 내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기사가 맞나?”

하지만 이는 로스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고작해야 열흘-아니, 보름쯤 되었을 뿐인데, 저토록 확고하게 공녀의 편을 들다니.

‘설마 세뇌를 당했나.’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편을 드는 것도 모자라 농사까지 열심히 지을 리가 없었다.

“다, 당연합니다! 저는 공작님께 충성을 맹세한 충직한 기사입니다! 지금은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체이스가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로스틴의 불신은 이미 커진 뒤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레이나를 만나러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긴 했으니 시기도 적절했다.

“됐어, 알겠으니 이만 가 봐.”

지겹다는 듯 물러가라는 로스틴의 손짓에 체이스가 보고서를 냉큼 그의 책상 위에 올리고는 정중한 예를 갖춘 뒤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아니, 빠져나가려다가 다시 들어왔다. 체이스가 눈을 빛내며 로스틴에게 물었다.

“아, 공작님. 내일도 예정대로 움직일까요?”

또 심연의 저택에 가도 되냐는 물음이었다. 가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기사라는 놈이 표정 하나 제대로 숨기지 못하다니.

‘……역시 세뇌를 당했군.’

틀림없었다. 로스틴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역시 직접 확인해야겠다.

한숨을 내쉰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반색한 체이스가 다시금 예를 갖추고는 집무실에서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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