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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22화 (22/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22화

죽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고?

로스틴의 발걸음이 멎었다. 그가 뒤를 돌아 다시 집사에게 다가갔다.

“무슨 소리지?”

“화, 확인, 확인을……!”

그러나 아직 제정신은 아닌 듯 집사는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집사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가 정상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온전히 깨어난 게 아니라 잠시 헛소리를 내뱉은 것에 가깝습니다. 다시 잠이 들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의 말대로 집사는 곧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그래도 회복하는 추세라 조만간 완전히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소지품에서 이런 것이 나왔습니다.”

기사가 쪽지 한 장을 로스틴에게 넘겼다. 안에는 주소 하나만 달랑 적혀져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즉시 사람을 보내 확인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직접 가지. 그리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니.”

쪽지에 적힌 장소는 성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이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사람이 사는 곳이었지만, 마왕의 저주로 공작가가 무방비해진 틈을 타 마물들에게 공격을 받아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 곳이었다.

그 때문에 로스틴에게 딱히 좋은 감정이 드는 곳은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가 죽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니.

어쩌면 접선 장소일지도 모르나, 시간이 적혀 있지 않았기에 접선보다는 증거물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빠르게 말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로스틴은 곧장 쪽지에 적힌 장소로 향했다.

‘낡고 작은 집이군. 그럼에도 문이 굳게 잠겨 있다는 건…….’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날 예정은 아니었다는 뜻에 가까웠다.

굳게 잠긴 걸쇠를 박살 낸 로스틴은 끼이이익 기묘한 소리를 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윽.”

뒤를 따라 들어오던 기사가 불쾌한 냄새를 맡고는 곧장 코를 막았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냄새였다.

미간을 찌푸린 로스틴이 거실 정중앙에 눕혀져 있는 인형(人形)을 살폈다.

불에 바싹 타 나이는 가늠할 수 없었고, 165cm쯤 되는 키에 마른 체격을 가진 여성으로 보였다.

온전히 남아 있는 신체 없이, 두피에 조금 남은 머리카락만이 그녀가 생전에 어떤 머리 색을 하고 있었는지 알려 주었다.

“은발…….”

그와 동시에 레이나가 떠올랐다.

루벨라이트 공작가의 집사와 하인.

165cm 정도의 키에 마른 체격인 은발의 여자.

하필이면 조건도 맞아떨어졌다.

어쩌면 집사는 모종의 소식을 듣고 공녀의 죽음을 확인하러 온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조금 아까까지 멀쩡히 살아 있었는데…….’

물론 자신이 저택을 떠난 뒤 죽임을 당해 옮겨졌을 가능성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있었지만.

눈앞의 시신은 어딜 어떻게 보아도 한참은 이곳에 방치된 상태였다.

심지어 이렇게나 추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부패까지 하여.

그렇다면 대체 이 여성은 누구인가.

왜 루벨라이트 공작가의 집사는 공녀와 닮은 여성의 시신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인가.

문득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루벨라이트 공녀를 죽여 달라는 의뢰서를 보낸 게 그녀의 가문일지도.’

마법사 카르만은 의뢰를 완수했다고 의뢰인에게 보고했고, 두 사람은 크로체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만남을 가진 뒤 크로체에서 북부로 바로 넘어왔다면, 딱 맞는 시간이야.’

목적지를 잘못 찾아서 헤맨 것을 포함하면 말이다.

퍼즐이 너무나도 딱 맞아떨어졌다.

가문에서 유폐당한 공녀. 그녀를 죽여 달라던 의뢰. 그 의뢰를 받은 카르만.

‘그런데 중간에 나를 만나서 미처 의뢰를 끝내지 못했지.’

거액의 보수가 탐이 난 카르만은 어딘가에서 공녀와 비슷한 외형의 여성을 죽여 불에 태운 뒤, 거짓 보고하여 의뢰자와 접촉했고.

집사는 그것을 몰래 확인하러 왔다가 조난을 당했다.

‘……머리카락만 빼고 불에 태운 이유도 들어맞는군. 공녀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렇게 한 거겠지.’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완벽한 가설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로스틴의 가장 큰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검은 마법을 부리는 공녀가 정말 마왕인지, 아닌지를 여전히 모르겠군.’

마왕이라면 루벨라이트 공작가의 이 비도덕적인 행동이 설명되지만, 그녀가 정말 마왕이라면 그리 순순히 유폐될 리가 없다는 것이 충돌했다.

알쏭달쏭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계속 추리만 이어 가 봤자 더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찾아볼 것이 없는지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이렇다 할 정보는 없었다.

‘혼수상태인 집사의 뺨을 때려 억지로 깨워서라도 직접 묻는 것이 빠르겠어.’

게다가 끝내지 못한 일도 있었다.

아직 레이나에게 심연의 저택을 양도하겠다는 서류를 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아침에 무례하게 군 탓에 갑자기 나가 버리겠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조속히 돌아가 서류 작성을 끝내고 공녀에게 전달하여 북부를 떠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결국 로스틴은 신원불명의 시신과 함께 성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서류 작성을 끝마치자마자 다시 심연의 저택으로 갈 생각이었다.

시신의 부검을 시작한 의사가 이건 사람의 신체가 아니라고 보고하기 전까지는.

“사람을 구성하는 물질을 교묘하게 조합해서 만든 가짜입니다. 눈속임용이지요.”

“눈속임용 시신이라…….”

그것참 다행이었다. 공녀를 대신하여 죄 없는 누군가를 죽이진 않았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희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그가 정찰을 갔다 온 사이, 루벨라이트 공작가의 집사가 깨어난 것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연락에 로스틴은 곧장 집사에게 향했다.

전후 사정과 인과 관계는 거의 파악했으니, 이제 정해진 대답만 들으면 끝이었다.

*

집사는 의사에게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장기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타나 레이나의 정체를 묻는 로스틴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대답했다.

“무, 무,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 모르겠습니다……! 고, 공녀님께서는 그저 펴, 평범한 부, 분이십니다……!”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며 재차 물었으나, 집사는 같은 대답만을 반복했다.

“공녀가 검은 마법을 사용하던데, 평범하다고?”

보았구나……! 집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절대 진실을 말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루벨라이트 공작가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을 포함한 가족 모두의 목 또한 멀쩡히 붙어 있지 않을 것이다.

아직 시신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의뢰를 마쳤다는 보고는 받았으니 무작정 우기는 수밖에 없었다.

“고, 고, 고, 공작님께서 자, 잘못 보신 것은 아니신지…….”

이미 죽어 버린 사람의 마법을 두 번 다신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네가 잘못 본 거라며 우기고, 우기고, 또 우겨서 의문을 갖게 한 뒤 확인할 수 없도록 만들면 그만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공작이니 충분히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집사의 얕은 속셈이 로스틴의 눈에 그대로 보였다.

정답이 코앞에 있는데, 자신을 기만하는 그의 행동에 로스틴의 심기가 심해까지 추락했다.

“……그래? 그랬던가. 분명 공녀께서 검은색 마법을 사용하였는데. 내가 잘못 보았었나.”

거짓말에 넘어간 것처럼 스스로를 의심하는 로스틴에 집사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목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 그렇습니다! 필시 그러할 것입니다……! 고, 공녀님은 어릴 때부터 심성이 고우시고, 바, 반듯하신 분이셨습니다……!”

“심성이 곱고 반듯했다라……. 글쎄,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어쩔 수 없군. 함께 가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이상한 대답을 내놓은 로스틴이 집사를 마차에 태우라고 기사들에게 지시했다.

방금 전까지 상태가 심각하여 오랜 시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마차에 태우라니.

아니, 그것보다 무엇을 확인하러 간다는 말인가.

공녀는 이미 죽어서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는데.

“어, 어, 어, 어딜 함께 가, 간다는 말씀, 이십니까……?!”

“무례하군. 그대가 그런 질문을 할 위치였나? 감히.”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북부의 어린 공작이 얼음보다 더 차갑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처럼.

집사는 뒤늦게 일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당최 알 수가 없어, 수습할 말 한마디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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