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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36화 (36/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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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로스틴이 아침 일찍 레이나의 저택을 찾았다.

그것도 새로 작성한 소유권 양도 서류와 금화를 실은 마차와 함께.

이제 막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렇게나 빨리 온 걸까.

나름 공작 영식이면서 밥도 안 먹고 다니나? 레이나는 의문이 들었다.

“좋은 아침. 그런데 너무 이르지 않아? 지난번에도 그렇고, 왜 이렇게 일찍 찾아오는 거야? 잠도 안 자?”

지난번이라면 이른 새벽에 뜬금없이 온실 앞에서 마주쳤던 것을 뜻했다.

“아, 정해진 일정을 피하다 보니 일찍 오게 되었군. 혹시 실례가 되었나?”

로스틴과 달리 레이나는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을 기대하고 또 기대한 터라 일단은 식사부터 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아니, 뭐 나쁜 소식으로 온 것도 아니니 실례는 아니야. 근데 아침은 먹었어?”

“흠? 아니, 아직이다. 돌아가서 먹을 예정이지.”

“그럼 모처럼이니 같이 먹자. 미아는 식사를 꽤 넉넉하게 준비하는 편이라 네 몫 정도의 여유는 있을 거야.”

갑작스러운 식사 제안이었다. 그것도 점심이나 저녁이 아닌 아침 식사.

굳이 자신이 여기서 식사를 해야 하나 생각한 로스틴이 미간을 찌푸렸다.

“미아가 누군지 알아? 대단한 사람이야. 분명 너도 미아의 요리를 먹고 깜짝 놀랄걸? 거의 신이 내린 손이라고 봐도 돼.”

그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레이나가 주절주절 미아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사실 미아가 음식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가 매번 식사를 두 그릇 이상 먹어 치우기 때문이었고, 배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남기는 일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레이나는 미아의 음식을 로스틴과 그의 부하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너희 성엔 미아 없지? 여긴 있다. 한번 먹어 보고 부러워하렴.

그런 마음을 숨기며 레이나가 싱긋 웃었다.

굳이 여기서 식사를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굳이 거절할 필요도 없었다.

마왕에 대한 혐의가 사라졌다고는 해도 일단은 자신의 영지 내에 살게 된 귀족이고 능력자이니, 식사라도 하며 조금 더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좋다, 그렇게 하지.”

“좋아, 미아! 식사 3인분 더 부탁해! 친구가 여기서 아침 식사를 하겠다고 하네.”

“……친구?”

갑자기? 너와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로스틴이 표정을 굳혔다.

뭐야, 사람 마음 상하게. 레이나가 입을 삐죽였다.

“왜, 친구 싫어? 같은 직급인데 친구 하면 좋잖아.”

“내게 친구 따윈 없다.”

그러나 이어진 로스틴의 말에 레이나가 절로 숙연해졌다.

친구 따윈 없다니. 무슨 그런 슬픈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하는 거람.

물론 로스틴은 공작이었기에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존재하지 않아 그리 말했을 뿐이었다.

보통은 상하관계였고, 그는 상 중의 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여운 듯 잠시 로스틴을 응시하던 레이나가 퍽 진지한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았다.

“너도? 나도야. 나도 친구 없어. 그러니까 친구 하자. 어차피 우린 같은 입장이잖아. 잘됐네.”

뭐가 잘됐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손이 잡힌 탓에 당황한 로스틴이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였다.

불의 마법을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잡힌 손이 점점 뜨거워졌다. 그 열이 괜히 얼굴로도 향하는 것 같았고.

“전생에서도 친구 하나 없었는데, 신의 농간으로 얻게 된 거지 같은 현생에서 친구가 생기다니. 썩 나쁘지 않은데?”

잡힌 손이 계속 신경 쓰여서 레이나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제 할 말을 마친 레이나가 로스틴의 손을 잡아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어? 각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식당에서 로스틴을 제일 먼저 알아본 이는 기사 체이스였다. 그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로스틴은 레이나의 손을 놓아 버렸다.

손잡고 있던 것을 신경 쓴 것은 로스틴뿐이었던 모양인지, 레이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뒤늦게 그는 애써 담담한 척 체이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더는 레이나를 의심하지 않게 되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던 보고를 일주일 단위로 바꿔 줬더니.

야무지게 아침 식사까지 챙겨 먹고 있었을 줄이야.

“내가 같이 식사하자고 했어. 미아의 음식이 눈앞에 있는데, 그냥 돌아가면 섭섭하니까.”

“그건 그렇지요. 미아의 음식은 억만금이 아깝지 않은 맛이니까요.”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레이나와 체이스의 죽이 아주 잘 맞았다.

그런데 왜 그게 못마땅한 걸까. 감시하라고 보냈던 체이스가 레이나와 너무 잘 어울리고 있어서 그런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썩 불쾌해진 로스틴이 체이스의 말을 무시하고 식당에 자리했다.

한편,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온 레이나의 부하들은 갑자기 나타난 로스틴에 입구 근처에서 얼어붙었다.

“다들 뭐 해? 어서 앉아. 식사해야지.”

“예? 아…….”

매일 마주하는 레이나라면 모를까, 또 다른 귀족이 있는데 함께 식사하기가 꺼려졌다.

애초에 괜히 앉았다가 엄벌이라도 내린다면 큰일이었다.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진 앉을 수 없었다.

“혹시 나 때문인가? 갑자기 끼어든 것은 내 쪽이니 함께 식사하도록 하지.”

다행히 로스틴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는 뼛속까지 귀족이었지만, 귀찮게 사사로운 것까지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때문에 모두 평소처럼 모여서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늦잠을 자서 뒤늦게 합류하게 된 케일란까지.

“……어어?! 로스틴 님?!”

케일란은 곧장 로스틴을 알아보았다.

무력으로는 제국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로스틴이었기에,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로스틴뿐만 아니라, 케일란도 어느 정도 명망 있는 가문의 귀족이었다.

아무리 윈터스노우 공작가의 사람들이 비운의 사고를 겪어 그 어떤 모임에도 참가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로스틴은 루카,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매년 황성 행사에 참석했었다.

케일란과는 그때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케일란이 일방적으로 말을 걸었을 뿐이었지만, 꽤 시끄러웠기에 그의 얼굴과 가문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 모어 백작가의?”

그것만으로도 케일란은 뛸 듯이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로스틴을 꽤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진로를 가져 조금 과한 친근감 정도만 갖고 있었는데.

그날, 그 불행한 사건 이후 어린 나이에 공작이 된 로스틴은 혁혁한 공을 쌓으며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거기에 더해 차갑고 쌀쌀맞은 성격까지.

전부 케일란이 되고 싶은 사람 그 자체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감히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케일란은 로스틴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 명망 높은 모어 백작가의 셋째인 케일란입니다! 기억해 주시다니, 정말 기쁩니다!”

그렇게까지 세세히 정보를 말하진 않았는데. 관심도 없었고.

그러나 로스틴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런 사사로운 것보다 더 그를 신경 쓰이게 하는 점이 하나 있었다.

도대체 왜 케일란은 저 모양, 저 꼴이 되어 있는 것일까.

“흐음, 경께선 취향이 조금 독특하군. 모어 가문에 대머리 유전은 없는 걸로 아는데.”

자의일까, 타의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자의라면 이해할 수 없었고, 타의라면 안타까웠다.

당연하게도 이를 지적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케일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어제 레이나의 불꽃 머리카락 공격을 받은 이후로 그쳤거늘.

하필이면 로스틴에게 다시 지적을 받아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건…….”

그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시답잖은 대화를 빨리 끝내어 식사를 시작하고 싶었던 체이스가 대충 지나가듯 설명했다.

“보고드리지 못했습니다만, 백작 영식께서 어제 공녀님을 공격하셨습니다.”

이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미 마물들의 털을 날려 버린 레이나의 능력을 보았기에, 로스틴은 케일란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어쩐지,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눈썹까지 없더라니.’

남의 외형에 그다지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케일란의 외모를 꼼꼼히 훑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자랄 수 있는 건가?”

그리고 살짝 걱정까지 되었다.

그에 레이나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아직 자란 사람을 보지 못하긴 했는데. 남의 머리털 같은 건 별로 관심도 없고.”

심지어 먼저 공격한 건 케일란이었기에, 그의 사정 따위 자신이 알 바 아니었다.

모르겠다는 레이나의 말과 동시에 케일란이 흐느낌을 동반한 폭풍 눈물을 쏟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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