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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47화 (47/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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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을 가둔 방 앞은 케일란이 지키고 있었다.

침입자를 침입자로 감시한다는 것이 웃겼지만, 새벽의 일로 인해서 케일란의 신뢰도가 상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굳게 닫힌 방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 중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말이지.’

케일란은 아덴을 본 기억이 있었다. 둘 다 귀족이었기에 당연했다. 신년 행사나 연례행사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케일란과 아덴은 둘 다 무인이었다. 실력이 없다면 모를까,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두 사람이었기에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 사람은 서로의 정상적인 모습을 마주한 상태가 아니었다.

처음 앞마당에서 대치했을 땐 아덴이 머리카락과 얼굴을 감추고 있었고, 케일란은 이미 머리카락과 눈썹을 잃은 상태였다.

조금 자랐다고는 하지만, 나름 멋을 내고 다녔던 전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레이나가 아덴의 모든 것을 앗아 갔기에 그 역시 다른 이미지의 사람이 될 수밖엔 없었다.

그럼에도 이목구비는 그대로여서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대체 누구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케일란의 앞에 레이나와 로스틴이 나타났다.

“문 열어.”

“어? 어.”

드디어 심판의 시간이 온 것인가. 과연 그녀는 아덴에게서 무엇을 더 빼앗아 갈까.

내심 기대하며 케일란이 문을 열자, 안에서 훅 열기가 흘러나왔다. 숨이 턱 막혔다. 거의 용광로 수준이었다.

“어우 씨, 죽은 거 아니야?”

입과 코를 틀어막은 케일란이 미간을 찌푸렸다. 로스틴 역시 표정을 굳히곤, 익숙지 않은 열기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온도 낮춰.”

불의 온도를 낮춘 레이나가 유유히 안으로 들어갔다.

아덴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히 케일란이 옷은 입혀 놓은 상태였다.

곧장 아덴의 멱살을 틀어쥔 레이나가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일어나. 뭘 잘했다고 아직도 자?”

자는 것이 아니건만. 불행히도 변명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한 대로는 깨어나지 않자, 레이나가 몇 차례 더 아덴의 뺨을 때렸다.

아무리 그녀가 마법에 특화된 사람이라고는 해도 일단은 레벨이 999였기에 곧 아덴의 뺨이 새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가차 없는 레이나의 행동에 로스틴은 분노할 기회를 잃었다.

그 가여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케일란이 불현듯 아덴의 정체를 깨달았다.

“어! 이 자식, 크로니클 가문의-!”

때마침 타이밍 좋게 아덴이 눈을 떴다.

“……?! 마, 마왕……!”

깨어나자마자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 레이나에 아덴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짝!

레이나의 손이 한 번 더 그의 뺨을 내리쳤다.

“정신 차려. 난 마왕이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라! 검은색 마법을 쓰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고작해야 뺨을 맞은 것만으로는 아덴의 기세를 꺾을 수가 없었다. 그가 열변을 토했다.

“그렇게나 나를 기만해 놓고 이제 와 부정하다니! 이 마왕!”

“무슨 소리야, 대체.”

레이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 설마 예전의 나도 저랬던 거야? 꼭 머저리 같네…….”

아덴의 모습에서 예전의 제 모습을 보게 된 케일란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로스틴이 자신이 상대하겠다며 아덴의 멱살을 가로챘다.

그러자 그의 얼굴을 알아본 아덴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로스틴 님……?”

“혹시 날 아는 건가?”

“그, 그럼요! 절 모르시겠습니까? 5년 전에 함께 싸웠던 기억이 생생한데.”

정확히는 같이 싸운 건 아니었다. 5년 전에도, 지금도 북부의 마물들을 해치운 건 로스틴 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공작 일가가 끔찍한 운명을 맞이했을 당시, 마왕이 소환한 마물은 너무 많았다.

때문에 많은 기사와 용병들이 자발적으로 북부에 모였고, 아덴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로스틴이 마물을 쓸어 해치우는 것을 지켜보았던 이들 중 하나.

“아덴 크로니클입니다! 크로니클 자작가의 차남이요!”

“아, 들어 본 것 같기는 하군.”

이름을 들으니 알 것 같기도 했다.

로스틴의 뒤에서 케일란이 ‘맞아! 그랬어!’ 하며 맞장구쳤다.

“어쩐지 검을 좀 쓰더니만. 세상에 몇 없는 마검사인데, 왜 내가 바로 못 알아봤지? 얼굴을 가려서 그랬나?”

불행히도 케일란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아덴은 그에게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로스틴도 아덴이 누구인지, 어느 가문의 자제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루카가 왜 기절을 했었는지였다.

“묻고 싶은 게 있다. 혹시 새벽에 작고 하얀 생명체를 공격했나? 눈 뭉치처럼 생겼는데.”

팰 땐 패더라도 전후 관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아덴은 눈동자를 굴리며 기억을 되짚었다.

“그럴 리가요. 마왕을 상대하러 온 제가 왜 쓸데없이 그런 생명체를 공격하며 위치를 노출하겠습니까? 게다가 오히려 공격은 제가 먼저 당했습니다. 마치 주먹만 한 돌멩이 같은 것으로요.”

“……뭐야, 그럼 설마 삐이가 먼저 저놈을 공격한 거였어?”

정리하니 그런 결론이 나왔다.

여느 때처럼 조용히 저택에 찾아와 불꽃에서 쉬고 있던 루카가 침입자를 발견하고 용기를 내어 먼저 공격했다는 결론 말이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착하고 용감할 수가 있지?”

레이나가 감동했다. 마왕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도 찾아와서 공격이나 하는 사람보다, 마물인 삐이가 천만 배는 나았다.

물론 루카는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사실을 알게 된 로스틴의 분노는 갈 길을 잃게 되었다.

루카가 다친 것도 맞고,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도 맞는데.

선제공격을 한 것이 루카라면, 왜 때렸냐며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때문에 로스틴은 다른 방식으로 아덴을 추궁했다.

“감히 귀족을 시해하려 하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다. 경이 루벨라이트 공작가의 장녀를 해하려고 했으니 적법한 처벌을 받아야겠지.”

로스틴이 여전히 감동한 채인 레이나를 눈짓했다. 그녀를 해치려 했으니 처벌하겠다는 뜻이었다.

아덴은 어이가 없음은 물론이고 기가 다 막혔다.

“설마 공작님께서 지금 마왕의 편을 드시는 겁니까? 5년 전에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 설마 마왕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시겠지요! 공작님!”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공작님?”

로스틴에게 따져 물은 것인데, 레이나가 대답을 가로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공작, 공작 외치는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작이라니? 누가?”

하지만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못 들을 걸 들은 탓에, 생각이 단박에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거늘. 아덴이 멍청한 사람에게서 생뚱맞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인상을 썼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당연히 로스틴 님을 말하는 거다.”

로스틴이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당황하며 식은땀을 조금 흘렸다.

레이나의 눈이 방황했다.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진 그녀가 되물었다.

“……로스틴이 공작이라고? 공작 영식이 아니라, 로스틴 윈터스노우 공작이라고?”

“응? 뭔 소리야? 로스틴 님이 공작님이시지, 그럼 누가 공작님인데? 최연소 공작님이시잖아. 로스틴 윈터스노우 공작 각하.”

뒤에 있던 케일란이 확답을 주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이번에도 없었다.

생각을 정리라도 하듯 눈을 끔뻑이며 잠시 굳어 있던 레이나가 삐걱대는 목을 돌려 로스틴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진짜야? 내가 뭘 잘못 들은 거지? 그렇지? 너 공작 아니지? 빨리 대답해!’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그리 묻자, 로스틴이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아니라고 하지 않는 로스틴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레이나가 갑자기 마법을 사용하여 아덴을 방에 처박았다.

“윽!”

“헉?!”

갑작스럽게 벽까지 날아간 그가 고통의 신음을 터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쾅! 문을 발로 차 거칠게 열은 그녀가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지금까지 공작에게 막 대한 것이 부끄러웠고, 그가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아니,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착각한 제 잘못인가 싶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일단은 잘못된 사실을 정정하지 않은 로스틴이 제일 나빴다.

“분명 내가 같은 공작가의 자제니까 말 편하게 하자고 했던 것 같은데. 안 그렇게 생겨서 설마 날 속인 거야?”

저세상 진솔함까지 다 가진 것처럼 생겨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방으로 돌아가며 분노를 담아 중얼거리는데, 서둘러 뒤를 따른 로스틴이 변명했다.

“그건…… 공녀께서 너무 확신하며 편하게 지내자고 해서, 말할 기회를 놓쳐서 그랬던 거야.”

애초에 그 전에 이미 말을 놓았던 상태이기도 하였기에, 뒤늦게 신분을 밝히기가 애매했다.

순간 레이나의 걸음이 딱 멈추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 로스틴을 흘기며 물었다.

“그래서 내 잘못이라 이거야?”

“아니, 전적으로 정정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공녀께서 오해했다고 늦게라도 말을 해야 했어. 알면서도 넘어간 내 잘못이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로스틴이 그답지 않게 구구절절 변명을 이었다.

“공녀와 편하게 지내는 게 좋아서 정정할 수가 없었다. 딱딱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어. 날 편하게 대해 줬으면 했고, 나도 공녀를 편하게 대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사과하지.”

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잠깐만. 또 그렇게 저자세로 사과하면 화를 내는 사람의 입장이 뭐가 되냐고.

사과를 받으니 또 금방 화가 누그러졌다. 생각해 보니 크게 화를 낼 사안도 아니었다.

“……알겠어. 나도 미안. 초면에 너무 반말하긴 했어. 그럼 지금부터 존댓말 해야 해? 넌 공작이고, 난 공작 영애잖아.”

그럴 마음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얼굴로 레이나가 툴툴거렸다.

그러기 싫어, 라는 눈으로 올려다보며 무언의 의사를 표현했다.

아주 잠깐 그녀가 자신에게 존댓말 하는 상상을 해 본 로스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귀엽기는 한데, 거리감이 느껴져서 별로였다. 그런 게 싫어서 일부러 밝히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고.

“아니. 원래 하던 대로 하지. 그러고 싶어서 내내 말을 안 했던 거니까.”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어쨌든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넘어간 네 잘못도 있으니까, 날 한 번 도와주는 걸로 봐줄게.”

그게 대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으나, 로스틴은 냉큼 알겠다며 수긍했다.

“무엇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주지.”

“좋아, 약속한 거야? 당연히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지. 미리 고마워.”

레이나가 방긋 웃었다. 고맙다는 말까지 선수 쳐서 나중에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갑자기 왜 온 거야? 무슨 일 있어?”

“아.”

그제야 뒤늦게 로스틴이 금고 장인을 떠올렸다. 아까부터 지금까지 홀로 방치되어 있었을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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