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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56화 (56/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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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에서 육아 일기가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이에게서 미아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린 안나는 적극적으로 아이를 챙기기 시작했다.

“자아, 식사할 땐 뭐라고 하는 거였죠?”

“잘 먹겠습니다!”

“아이고, 예뻐라.”

몸의 성장과 함께 지능도 올랐는지, 아이는 안나가 가르친 것을 곧잘 습득했다.

말뿐만 아니라 식사 예절도 어느 정도 배웠다.

“어머나! 아이고, 포크로는 수프를 먹을 수 없어요-”

물론 아직 잘 익히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안나의 노력으로 아이는 점점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의 덥수룩한 머리카락도 잘라 주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탓에 너무 금방 자라서 매일 잘라 줘야 했지만, 안나는 그것마저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녀가 막 새로 만든 옷을 아이에게 입혀 준 뒤 방긋 웃었다.

“어쩜, 조금 크게 만들었더니 딱 맞네. 귀엽기도 하지. 꼭 미아 10살 때 같아.”

마침 오후 디저트를 내오던 미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어머니, 저 10살 때 이미 어머니보다 컸는걸요.”

“키만 그렇지, 엄마 눈에는 아기 같았는걸? 지금도 이렇게나 아기인데. 아휴, 귀여워라.”

안나가 미아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뺨을 붉힌 미아는 그렇냐고 민망해하며 테이블 세팅을 마쳤다.

디저트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러 나타난 집사가 안나의 말을 거들었다.

“그래그래, 부모 눈에는 자식이 몇 살이든 항상 아기 같은 법이지. 하하하!”

그러면서 손을 쭉 뻗어 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아의 키가 너무 커서 부모가 아이를 쓰다듬는 장면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퍽 흐뭇한 모습이었다.

레이나가 턱을 괴고 그런 집사 가족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냥 훈훈해서 보고 있었던 것뿐인데, 뒤늦게 레이나의 가정사를 떠올린 집사가 화들짝 놀라며 갑자기 말을 바꿨다.

“그, 그렇지만 지금은 일을 하는 중이니 부모니, 자식이니 하는 소리는 삼가는 게 좋겠지!”

“응? 아니, 괜찮은데. 자유롭게 대화해도 돼.”

자신이 언제 그런 걸 따졌다고. 부모 자식 소리가 싫었다면 애초에 채용 자체를 안 했겠지.

그러자 안나가 남편의 헛소리를 곱게 포장했다.

“오호호, 이이가 너무 일에 집중했나 봐요.”

“그런가 보네. 편하게 해.”

딱히 신경 쓸 일도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디저트를 먹는데, 대화하는 사이에 잠깐 사라졌던 아이가 와다다다 달려와 레이나에게 안겼다.

“이거!”

아이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마 전에 심은 고급 향신료였다.

그걸 아주 왕창 꺾어서 레이나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사르르 웃으며 물었다.

“오, 이거 나 주는 거야? 원래 내 건데? 굳이 심었던 걸 꺾어서?”

“응! 꽃 레이나 거! 레이나 줘!”

비꼰 것이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레이나는 향신료 꽃다발을 받으며 체념했다.

“그래, 내가 애를 상대로 뭘 하겠니.”

심지어 애도 아니었다. 마물이었다.

물론 지난 며칠간 함께 지내며 별다른 특이 사항을 보이진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키가 쑥쑥 자란다는 것만 빼면.

레이나가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보았다.

“……벌써 내 어깨 조금 밑까지 오네.”

같은 음식을 먹는데, 왜 이렇게 빨리 자랄까.

잘 때 가둬 놔서 몰래 뭘 먹었을 리도 없고.

의문이었지만, 사고는 치지 않으니 지켜보는 수밖엔 없었다.

자신만 따랐기에 내다 버릴 수도 없었다. 사람들과도 잘 지내서 버린다고 하면 다들 결사반대할 것 같기도 했다.

‘응? 잠깐만. 그러고 보니 걔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내다 버린다는 생각을 하자, 진짜 내다 버려야 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침입했다가 삐이에게 걸려 대머리가 된 아덴이었다.

놈을 가둔 지 꽤 되었는데, 그사이에 이런저런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 잊고 있었다.

그 이후로 삐이가 보이지 않아서 아직 화가 풀리진 않았지만, 슬슬 풀어 줘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데리고 있어 봤자 밥만 축낼 뿐인 쓸모없는 놈이었으니까.

그러니 내보내는 편이 현명했다.

레이나가 곧장 케일란에게 물었다.

“감방에 가둔 놈, 뭐 해? 잘 지내? 좀 반성했어?”

“응? 몰라. 단식 투쟁하길래 좀 달래 보다가 그래도 말을 안 들어서 요즘 잘 안 갔어.”

“……응?!”

그 오랜 시간 동안이나 밥을 안 먹었다고?! 너 매끼마다 식사 들고 갔잖아!

‘설마 네가 다 먹었니?!’

죄수의 식사까지 다 처먹다니, 케일란도 참 대단한 놈이었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짧지 않은 시간 갇혀 있던 놈이 지금까지 식사를 안 했다면,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식물이 죽은 것도 보기 싫은데, 사람이 죽은 걸 봐야 한다니,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포크를 내던진 레이나는 서둘러 아덴을 가둔 감옥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쓰러진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불가마 상태의 감옥인데, 음식까지 섭취하지 못했으니 죽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녀는 서둘러 그의 심장 언저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두근두근.

다행히 심장은 뛰고 있었다. 나름 몸을 단련한 기사라서 죽진 않은 모양이었다.

레이나는 불꽃 바람을 이용해 서둘러 그를 따뜻한 방으로 옮겼다.

“누가 이놈 좀 봐줘!”

“어머나, 세상에!”

간호는 안나와 베로니카의 몫이었다. 베로니카는 몸에 좋은 약초를 뜯어 그의 입에 흘려주었다.

남주 후보라서 그런지, 다행히 놈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약을 먹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을 차리기까지 했다.

“아니, 그러게 왜 밥을 안 먹어서 이 지경이 됐냐.”

일의 원흉인 케일란이 전적으로 아덴을 탓했다.

케일란은 아덴이 꽤 완고하게 음식을 거부했기에 당연히 먹을 생각일랑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먹으려고 했는데! 네가 다 처먹었잖아!’

라고 반박하고 싶은 아덴이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런 걸 따지고 드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힘들고 배고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미아, 미안한데 죽 같은 것 좀 만들어다 줘. 먹기 편하게.”

“아, 네! 금방 만들어 오겠습니다!”

“베로니카, 얼마 전에 들여온 약초 있지? 기력 회복에 좋다고 했던 거. 신의 아이였던가. 그것 좀 잔뜩 가져와. 얘 먹이게.”

이름은 조금 오글거렸지만, 먹는 즉시 체력이 회복되고 피부가 맑아지는 약초였다.

귀족들이 불로장생을 꿈꾸며 먹는 값비싼 약초를 잔뜩 먹이겠다는 말에 아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갖은 의심이 쌓여 먹지 않겠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뱉을 수 없었다.

지금껏 그랬다가 지금 이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비참하고 수치스러웠으나, 아덴은 아직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척 눈을 감았다.

때문에 레이나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그에게 영양 만점의 식사와 약초를 제공했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상당히 회복할 수 있었다.

“대체 언제 좋아지는 거야?”

레이나가 아덴을 가리키며 의문을 던졌다.

다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덴은 레이나의 앞에서 계속 아픈 척을 했다.

그녀의 본심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마왕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왜 목을 따겠다고 쳐들어온 적에게 호화로운 식사와 귀한 약초까지 제공한다는 말인가.

필시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다친 사람은 건들지 않는 것 같으니, 그것을 밝혀내기 전까진 아픈 척을 하며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로써 알게 된 레이나의 일과는 간단했다. 그녀는 식사 시간과 디저트 시간을 가장 좋아했고, 그 외의 시간에는 거의 누워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면 그녀가 항상 밖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나는 열심히 일하는 부하들을 지켜보며 따사로운 햇볕을 받았다.

가끔 부하들에게 곤란한 상황이 닥쳤을 땐 도와주기도 했다. 마왕답게 주로 바위를 파괴하거나, 나무를 부수는 일이었다.

‘……이딴 쓸데없는 일과가 전부라니.’

생각과는 조금 달랐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었다.

아덴은 레이나의 부하들도 유심히 관찰했다.

우락부락한 남자, 혹은 괴팍하게 생긴 마물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의 부하들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나누는 대화도 조금 특이했다.

“요즘 아이와 남편이 싱싱한 채소가 늘었다며 좋아하지 뭐예요.”

“저도요! 처음 심연의 저택에서 일한다고 했을 땐 못마땅해했는데, 요즘은 꽤 좋아하더라고요.”

“하하! 과일까지 열리면 아주 난리가 나겠네.”

“그러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곧 여러 종류의 과일이 열릴 거라고 했더니, 은근 기대 중이에요.”

“저희 남편도요.”

“호호호! 저희도예요.”

……왜 마왕의 부하들이 저딴 영양가 없는 대화를 화기애애하게 나누는 것인지.

아덴은 현 상황이 의아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개중에는 조금 관심이 가는 대화도 있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공녀님께서 미궁의 마물들을 전부 해치우셨다면서요?”

“어머! 공작님과 함께 미궁에 다녀오신 걸 듣긴 했는데, 싹 정리까지 하신 거였어요? 천 년 넘게 존재했던 미궁을?”

“그래, 그렇다고 하시더군. 공녀님께서 깨끗하게 정리하셔서 이제 더는 미궁이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북부의 미궁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곳일 텐데. 그걸 정리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조금 더 대화를 듣기 위해 온실에 가까이 다가간 아덴이 귀를 기울이는데, 불쑥 레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너 괜찮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윽!”

그와 동시에 아덴이 풀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가슴을 부여잡은 그가 어색한 신음을 흘리며 아픈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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