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58화 (58/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58화

저렇게 무덤덤한 얼굴로 물어볼 줄은 몰랐기에 아덴이 당황했다.

그가 곧장 대답하지 못하자, 그녀가 흙이 묻은 손을 털며 다시금 물었다.

“설마 북부에 다녀오신 거예요? 제가 마왕이 거기에 있다고 해서요?”

“……그래, 마왕이 있는 곳에 다녀왔다. 먼저 확인을 하고 싶었다. 어떤 자인지 파악이 필요했다.”

아덴의 변명이 길어졌다.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한데, 어째서인지 자꾸 말이 튀어나왔다.

“아! 잘됐네요. 어디에 있는지, 어떤 자인지 아덴 님께서 잘 파악해 주셨으니 이제 더 강해져서 해치우러 가면 되는 거겠죠?”

“……그렇지.”

“그럼 이만 돌아갈까요? 며칠 동안이나 여기서 똑같은 몬스터들만 잡았더니 더는 레벨이 오르지 않아서요.”

그리 말한 성녀가 자신의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김세라 Lv. 100]

체력 100

마력 100

매력 100

행운 100

평판 100

명성 0

레벨 70까지는 그럭저럭 빨리 올랐는데,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거의 이틀 사이에 70을 올렸는데, 나머지 30을 올리는 데 그보다 배는 더 걸렸다.

이제 슬슬 이곳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여긴 다른 사람이 맡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잖아요?”

자신은 한시라도 빨리 더 강해져서 마왕을 해치워야 했다. 명성이 0인 것도 자꾸 신경이 쓰였고.

앞장서는 성녀의 뒤를 따른 아덴이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며칠 동안 마물과 싸우는 사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마왕이라는 여자도 그렇고, 성녀의 변화도 그렇고.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단단히 들었다.

*

레이나가 미궁을 정리했다는 소문이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소문의 진원지는 온실에 새로 채용되었던 삼인방이었다.

그녀들의 입을 통해서 아이스베리 마을을 거쳐 공작 성에까지 소문이 퍼졌다.

천 년이나 넘게 북부를 공포에 떨도록 만들었던 ‘그 미궁’을 공녀가 해치워 이제 안전하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미궁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모두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참지 못한 한 하인이 로스틴의 아침 시중을 들다가 눈을 꾹 감고 감히 질문을 던졌다.

“저, 고, 공작님. 미궁…… 말입니다……. 정리가 되었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혹여나 로스틴이 화라도 낼까 봐 셔츠를 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에 로스틴이 셔츠에 팔을 넣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맞아. 루벨라이트 공녀가 해치웠다.”

“헉! 정말입니까……?!”

진짜라고?! 하인이 숨을 들이켰다. 널리 알려야 마땅한 일이었기에 로스틴이 자세히 내용을 풀었다.

“정말이다. 나 역시 동행했지만 공녀가 거의 해치웠지. 덕분에 골칫거리였던 미궁을 정리했으니 감사해야 할 일이야.”

셔츠를 목 끝까지 채운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공녀가 먼저 미궁을 정리하겠다며 도와 달라고 한 거였는데, 오히려 도움은 내가 받았다고 볼 수 있지. 천 년을 넘게 봉인만 해 두었던 장소인데, 하루 만에 깨끗하게 정리해 버리다니. 진심으로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다.”

레이나에 대한 칭찬과 감사가 만연했다. 그는 숨기지 않고 레이나가 얼마나 대단한지 늘어놓았다.

‘공작님께서 이렇게나 타인을 칭찬하시다니……!’

하인은 입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시중을 마친 그가 서둘러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들은 것을 술술 털어놓았다.

“정말이라고?!”

“그래! 아침에 공작님께서 직접 그리 말씀하셨어! 심연의 저택에 계시는 공녀님께서 미궁의 마물들을 싹 해치우셨다고!”

“말도 안 돼!”

추가 소문은 삽시간에 여기저기로 퍼졌다. 사실 여기저기라고 할 것도 없었다. 공작 성과 아이스베리 마을이 전부였으니까.

어쨌든 거기서 거기인 작은 마을이었기에 소문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레이나의 부하(?)인 베로니카와 신디 등등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녀들이 사실을 묻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대답을 해 주었다.

“정말이야. 공녀님께서 정리하고 오셨어.”

“맞아요. 얼마 전에 다녀오셨어요. 윈터스노우 공작님과 함께요!”

“저도 보았어요! 공작님께서 저녁도 드시고 가셨는걸요.”

진짜였다니. 증인이 이렇게나 많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흥, 그러게 내가 뭐랬어? 좋은 분이라고 했지? 미궁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렇게 고용해 주셨다고! 같은 마을 사람들이니 채소와 과일도 싸게 팔라고 하셨는데, 다들 싫다고 했었잖아!”

베로니카는 갑자기 서러워졌다. 레이나가 얼마나 큰 자비를 베풀었는데, 다들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쓱해하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베로니카가 와다다 말을 쏟아 냈다.

“곧 귀한 과일도 열릴 거야. 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과일인데, 망고라고 알아? 아주 달콤하고 값비싸서 귀족분들만 드시는 건데, 공녀님의 마법으로 열심히 재배하고 있지! 공녀님께서 수확하면 함께 먹자고 하셨어. 다들 안 산다고 했었지?”

망고라면 들어 본 사람이 꽤 많았다. 몹시도 더운 나라에서만 자라, 추운 북부의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열매로 통했다.

한데 그런 과일을 심었다니, 심지어 곧 수확할 예정이라니.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수확하면 광장 한가운데에서 펼쳐 놓고 먹어야겠어.’

매일 하나씩 광장에서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사람들을 약 올리겠다고 베로니카가 굳게 다짐했다.

*

그날 아주 늦은 저녁, 몇몇 사람들이 베로니카를 찾아왔다.

만약 자리가 있다면 자신들도 함께 일할 수 없겠냐고 묻기 위함이었다.

“흠, 흠. 그냥 시간이 남으니까. 일손이 필요하시다면 도와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서.”

무릎을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말하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로니카가 시큰둥한 얼굴로 대충 대답했다.

“알겠어. 뭐, 이제 딱히 더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공녀님께 말씀은 드려 볼게.”

“어흠, 흠. ……그럼 부탁해. 잘 자고. 흠, 흠.”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아침에도 베로니카를 찾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도 잘 아는 젊은 여성이었다.

분명 아이가 아파서 자리를 비울 수 없을 텐데, 무슨 일로 자신을 찾은 것인지 의아했다.

“베로니카, 저어……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탁을 좀 드릴 수 있을까요……?”

그녀의 시선이 검은 불꽃을 든 베로니카의 손에 향해 있었다.

어제 찾아왔던 자들과는 다르게 무척 공손하고 조심스러웠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세히 들을 마음이 충분히 있었다.

“한나, 무슨 일이야? 일자리가 필요해? 다니엘은 어쩌려고?”

다니엘은 그녀의 아이였다. 고작해야 12살인 아이는 늘 몸이 아파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다.

“일자리가 필요한 건 아니고, 다니엘 때문에요. 난로만으로는 어떻게 해도 다니엘을 따뜻하게 해 줄 수가 없어서, 가능하다면 그 불꽃을 조금 얻을 수 없을까요……. 대가는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한나는 처음부터 베로니카의 불꽃을 눈여겨보았었다.

언젠가부터는 저택에서 일하게 된 다른 여성들도 가지고 다녀 줄곧 부탁하고 싶었다.

사실 남편에게도 몇 번 말한 적이 있었으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번번이 화만 냈었다.

하지만 공녀가 미궁을 정리했다는 소식까지 들은 마당에 더는 두려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한나에게는 마왕보다 아이가 아픈 게 더 두려웠다. 그녀는 뭐라도 해서 저 검고 따뜻한 불꽃을 갖고 싶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이유라면 공녀님께 말씀드리지 못할 것도 없지.”

레이나의 성격상 안 된다고 할 리가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 불꽃이라도 줄 의향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이야기를 꺼내니, 레이나는 당연히 주겠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 안타까운 사정이 있다는데, 안 주면 정말 마왕이지. 좋아, 가자.”

“예? 직접 가시려고요? 번거로우실 텐데, 제게 주시면 대신 전하겠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감히 레이나의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하지만 사실 레이나는 남는 게 시간인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옆인데 마을에 한 번도 내려가 보지 않았었고.

때문에 겸사겸사 마을을 구경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목적이 더 컸다.

“아니, 괜찮아. 가자. 지금 당장.”

예……? 지금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