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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59화 (59/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59화

“아직 디저트도 드시지 않으셨는데, 조금 쉬었다가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식사 후에 식당에서 간소한 디저트를 먹긴 했지만, 그 뒤에도 레이나는 야외에서 또 한 차례 디저트를 챙겨 먹곤 했다.

디저트의 디저트를 먹지 못했기에, 그녀는 아직 식사를 다 끝내지 못한 것과 같았다.

“괜찮아. 근처니까 금방 갔다 와서 두 배로 먹지, 뭐.”

먹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오늘은 아침을 빵빵하게 먹었으니 다녀와서 두 배로 먹으면 될 것이다.

레이나의 대답에 베로니카가 작게 웃었다. 알겠다며 그녀가 곧장 마차를 끌고 왔다.

“번거로우실 텐데, 감사합니다.”

“아냐, 겸사겸사야. 마을에 한 번도 못 내려갔으니까 구경하고 싶어서.”

그리하여 레이나는 처음으로 아이스베리 마을로 내려가게 되었다.

일전에 능력을 시험해 보다가 마을까지 길을 뚫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새 눈이 쌓였는지 마차가 꽤 덜컹거렸다.

레이나는 길목 곳곳에 불꽃을 설치해 길을 정비했다.

이 길을 오가는 사람은 몇 명 없었지만, 그래도 바로 그 사람들이 중요했다.

베로니카와 체이스, 신디 등등의 사람들이 오가기 편해야 남은 체력을 더 온실 관리에 쏟지 않겠는가?!

‘……음, 좀 악덕 사장 같은 마인드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신탁의 마왕인데 이 정도 마음가짐이면 준수한 편이니까.

속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길목마다 불꽃을 설치하자, 마차를 모는 베로니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잠시 뒤,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레이나는 오는 내내 불꽃을 만들었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여기가 아이스베리 마을이야? 생각보다 더 작네. 꼭 장난감 마을 같아.”

온기를 유지하기 위함인지 집이 다들 작았다.

“저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너무 작고 아담한 마을이기는 하지요.”

“비하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귀엽다고.”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압니다. 공녀님.”

레이나는 천성이 악의가 없었다. 그저 솔직한 사람이었기에, 베로니카도 자신의 옛 감상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한편, 오전부터 마차를 타고 마을에 나타난 레이나와 베로니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설마……?”

“공녀님이라고?! 소문의 그……?!”

“정말 공작 부인을 닮으셨어…….”

혹시 몰라서 레이나에게는 들리지 않게 다들 작은 목소리로 수군수군 떠들었다.

매력이 1,000이나 되어서 그런지, 두려워하는 기색보단 호기심과 호감, 혹은 감탄이 더 많았다.

그간 잘 먹고 잘 쉬어서 뽀얗게 살이 오른 얼굴도 한몫했다. 마왕이 저렇게 아름답게 생겼을 리 없다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레이나는 베로니카를 따라 한나의 집으로 향했다.

그 뒤를 무수한 시선이 계속 따라붙었다.

“이곳입니다, 공녀님. 한나! 잠깐 나와 봐!”

베로니카의 목소리에 한나가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왔다.

아침에 나눈 대화가 있었기에 혹시 불꽃을 가져왔을까 싶어서였다.

“베로니-?!”

그래서 반색하며 그녀를 반기려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물인 레이나가 얼굴을 내보였다. 한나의 말문이 턱 막혔다.

“누, 누, 누, 누구……!”

누구냐고 굳이 묻지 않아도 얼굴만으로 짐작이 되었지만, 너무 놀란 마음에 반사적으로 말이 먼저 나왔다.

“레이나 루벨라이트 공녀님이셔. 직접 불꽃을 만들어 주시겠다며 오셨어.”

아니,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으신데……! 두려움과 황송함으로 한나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무슨 짓을!”

“아냐, 괜찮아. 마을 구경도 할 겸 온 거니까. 그런데 아프다던 아이는?”

“이, 이, 이, 이쪽입니다……!”

점프하듯 일어난 한나가 서둘러 레이나를 아이의 침실로 안내했다.

그냥 불꽃만 주셔도 되는데, 왜 굳이 오셨을까. 설마 다니엘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온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레이나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열이 펄펄 끓는 다니엘의 방에 도착한 그녀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짧은 감상을 내놓았다.

“추워. 난로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죄, 죄송합니다……!”

“응? 아니, 그쪽이 죄송할 건 없지. 기후 문제니까.”

아직 아침이라고는 해도 해가 뜬 오전인데 이렇게 춥다면, 밤에는 아마 상상도 하기 싫은 추위가 들이닥칠 것이다.

애가 아픈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런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도 건강한 사람이 이상했다.

“내 마음대로 불꽃 깔아도 되지?”

“예? 예, 예!”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한나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이나가 천장과 바닥, 벽을 포함한 방 전체를 불꽃으로 휘감았다.

다짜고짜 집에 불이라도 지르는 건가 싶어 화들짝 놀란 한나가 저도 모르게 아이를 감싸며 보호했다.

그러나 곧 방 안이 한낮의 봄처럼 따뜻해지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온도는 24도쯤이면 되겠지. 너무 높으면 더우니까.”

난로가 이렇게나 많은데 전혀 따뜻하지 않은 걸 보면 외풍 때문인 듯싶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찬기를 막으려면 이 방법밖엔 없었다.

“전체적으로 너무 추워. 없던 감기도 생기겠어.”

투덜거린 레이나가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불꽃을 깔았다.

지내는데 너무 신경이 쓰이지는 않게 벽, 바닥, 천장에 아주 얇은 불꽃을 깔고, 구석구석에 온기를 보존할 원형 불꽃을 설치했다.

온도는 아이의 침실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하기 딱 좋은 24도로 유지했다.

더 따뜻하게 하고 싶을 땐 두꺼운 옷을 입거나, 난로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이제 끝인가.’

나름 세심하게 능력을 펼치곤 손을 털던 레이나가 갑자기 잊은 것이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렇지. 주방!”

다른 곳은 몰라도 주방은 잊으면 안 되었다. 주방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곧장 주방을 찾아간 그녀가 아궁이에 뜨거운 불꽃을 설치했다.

“이건 좀 뜨거운데, 생명체에게는 해를 끼치지 말라고 해 놨으니 걱정할 것 없어. 우리 집에서도 똑같은 걸 쓰고 있으니 안심하고 요리해도 돼.”

끄덕끄덕.

레이나의 뒤를 바삐 쫓아다니며 한나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어디 더 손볼 곳이 없나 확인하던 레이나가 마당으로 나갔다.

‘아무리 아픈 아이라고는 하지만, 계속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좋지 않겠지?’

그리 생각한 그녀가 마당에 성인 키 높이만큼의 불을 깔아 눈을 싹 날려 버렸다.

“헉!”

“허억?!”

갑자기 나타난 대량의 검은 불꽃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근처를 배회하던 마을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아까부터 외벽에 검은색 불꽃이 조금씩 비쳐 보여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기어이 불을 질러 버리다니……!

사람들이 경악하거나 말거나, 마당을 한 바퀴 빙 돌아본 레이나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춥다고 안에만 있지 말고, 나와서 일광욕도 좀 해. 햇빛을 받아야 몸도 튼튼해지는 거야. 좀 뛰어다니기도 하고. 그래도 마당이 넓어서 다행이네.”

끄, 끄덕끄덕. 한나가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중간 정말 감사하다는 말도 했는데, 높낮이가 없어서 더욱더 기계 같았다.

“더 필요한 건? 이제 끝인가?”

끝이면 돌아가야지. 가서 느긋하게 디저트를 먹고 이어서 점심을 먹으면 딱 맞을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는 레이나와, 놀라 나자빠지는 한나를 흐뭇하게 감상하던 베로니카가 흠, 흠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한마디 거들었다.

“공녀님, 몸이 튼튼해지는 약초도 조금 심을 수 있게 도와주시는 것이 어떨까요? 이쯤에요. 공녀님께서 괜찮으시다면 몇 뿌리 주고 싶습니다.”

아덴에게 대량으로 먹였던 약초를 뜻했다.

아주아주 비싸고 키우기 번거로운 귀한 약초지만, 다행히 베로니카의 지극정성으로 온실에서 나름 잘 자라고 있었다.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이니 괜찮겠지. 레이나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약초도 가져다가 심고, 채소도 가져다가 심어. 싱싱한 채소를 먹어야 몸이 튼튼해져.”

그녀는 베로니카가 가리킨 곳에 온도를 조절했다. 나무를 베어다가 두르기만 하면, 그럴듯한 작은 온실이 될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난 가 볼게. 다니엘 튼튼하게 잘 키우고.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베로니카한테 말해.”

드디어 끝이라는 듯 손을 턴 레이나가 한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때까지 기계처럼 삐걱거리던 한나의 옷깃을 누군가가 잡아당겼다.

화들짝 놀라 시선을 내리자, 방금 전까지 열이 펄펄 끓어 누워 있던 다니엘이었다.

“엄마……? 왜 이렇게 집이 따뜻해요……? 이상하네, 밖에도 따뜻하네…….”

여전히 몸에 열이 끓는 상태였지만, 갑자기 따뜻해져 밖으로 나와 본 모양이었다.

몇 달이나 밖에 나오지 못했던 다니엘의 그러한 모습에 한나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공녀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레이나가 픽 웃으며 답했다.

“보답은 됐어. 이미 가진 게 너무 많거든. 그냥 건강하고 따뜻하게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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