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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65화 (65/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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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이 내려왔습니다. 마왕이 다시 움직일 예정이라고 하시는군요.”

신탁이 내려왔다는 말에 아덴이 미간을 찌푸렸다.

반면 성녀는 활짝 웃으며 물었다.

“정말요?! 그럼 이제 제 명성을 높일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건가요?!”

“……성녀께선 지금 이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마왕이 마물을 보낸다는 신탁이?”

보다 못한 아덴이 그녀의 반응을 지적하자, 그제야 제 실수를 깨달은 성녀가 서둘러 변명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활약할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괜찮습니다. 성녀님 말대로 신탁이 내려왔다는 건, 마왕의 악행을 막을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니까요.”

대신관이 성녀의 경솔함을 아름답게 포장했다.

이에 그만이 제 마음을 알아준다는 듯 성녀가 반색했다.

“그, 그렇죠?!”

“예, 다만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성녀님에 대한 경계심으로 마왕이 대대적인 공격을 계획한 모양인지, 위치가 여러 곳으로 나왔습니다.”

성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퍽 안타까운 일이라며 대신관이 말을 이었다.

“운 좋게 가까운 곳에서 시간 차를 두고 나타난다면 막을 수 있겠지만, 먼 곳에서 동시에 공격이 시작된다면…… 다소의 희생이 뒤따르겠지요.”

“어떻게 그런……!”

그녀가 입을 틀어막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이라도 한 모양인지 눈이 떨리고 있었다.

한편 아덴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여자가 마물을 소환한다고? 그것도 대대적으로, 여러 곳에서?’

레이나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그녀는 그런 귀찮은 일을 굳이 할 성격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애초에 먹는 것만 밝히고, 남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때,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던 성녀가 좋은 생각이라도 난 모양인지 다급히 물었다.

“어디에 나타난다고 나와 있나요? 일단 먼저 가서 기다릴까 봐요!”

“그건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마물이 나타나면 이동석으로 이동하면 그만이니까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문제는 동시다발적으로 마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동일한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연달아 사건이 터지면 어느 한쪽은 구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지역이 전부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시작은 남부 중심지 근경인데, 그 뒤로 북부 전체와 서부라고 나와 있습니다. 시간은 나와 있지 않고요.”

아무리 대형 이동석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위치라지만-남부와 북부, 그리고 서부까지 마물이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면, 남부 외에는 포기해야 했다.

일단은 먼저 나타날 것이 분명한 남부의 마물들을 해치워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빨리 마물을 해치우고 가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상황이 어렵다는 대신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성녀의 희망 회로는 멈추지 않았다.

“그럴지도요.”

결국 체념한 대신관이 긍정적인 대답을 함으로써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마물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신탁대로 남부였다.

피해가 번지지 않도록 성녀와 대신관은 곧장 남부로 이동했다. 아덴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사, 살려 줘!”

도착한 도시는 이미 아비규환의 상태였다. 대신관의 말대로 단단히 준비한 마왕이 대량의 마물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용감하게 마물을 해치워야 할 기사들은 제 몸 하나 지키기도 버거워 보였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용병들은 서둘러 도시를 떠났다.

그 사이에서 일반 시민들이 무참히 공격당했다. 마물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었다.

“젠장.”

검에 마법을 두른 아덴이 곧장 마물들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쿠에에엑!”

“끼에엑!”

그의 검에 스친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스러졌다.

아덴이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마물들의 목을 노려라! 투구와 갑옷의 틈새인 목이 약점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구세주 덕분에 기사들의 사기가 올랐다.

공포 때문에 제 몸 하나 지키기 바빴던 그들이 마물들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노려 물리치기 시작했다.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처음 맞닥뜨린 충격으로 얼어 있던 성녀는 뒤늦게야 전투 대열에 합류했다.

‘괜찮아, 마물은 내게 공격할 수 없어……!’

그럼에도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 낼 순 없었기에 그녀는 몸을 최대한 사리며 후방에서 공격했다.

“신성한 빛!”

하지만 이번 마물들은 지난번의 놈들보다 훨씬 강한 모양인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족히 열 번의 마법은 외쳐야 비로소 마물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 이렇게 해서 언제 다 끝내……?’

성녀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도무지 이 마물 떼를 전부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일찌감치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은 대신관과는 다르게 그녀는 전쟁터의 한복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시, 신성한 빛! 신성한 빛! 신성한 빛! 신성한 비-잇!”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입이 마르고 닳도록 주문을 외쳤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다른 기사들이 거의 다 잡아 가던 마물들에게 마지막 한 방이 꽂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와 동시에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여러 개 나타났다.

“어……?”

어째서……?

깜짝 놀라 상태 창을 확인하자, 레벨이 5나 올라 있었다. 105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녀는 다른 마물도 비슷하게 공격해 보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마지막 한두 대만 때렸음에도 불구하고 레벨이 올랐다.

‘설마 마지막 처리만 하면 잡았다고 인정이 되는 거야?’

쌩쌩한 마물에게 몇 번이나 마법을 쓸 필요 없이, 거의 다 죽어 가는 마물들만 골라서 때리면 쉽게 레벨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조금 야비한 것 같기도 하고…….’

열심히 싸우던 기사들의 보람을 빼앗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기사들의 보람을 빼앗는 한이 있더라도 레벨을 올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

어차피 그들은 마물을 해치우고 경험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마왕을 상대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럴 바엔 조금 야비하더라도 기사들이 공격하던 마물만 골라서 죽여 레벨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너무 노리면 티가 나니, 도와주는 척 다가가 함께 물리치는 느낌으로.

“신성한 빛! 신성한 빛!”

“어……?!”

“어?!”

다행히 기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성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저 새하얀 빛은……!”

“설마 신탁의 성녀님……?!”

오히려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어 황송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 우리를 구하러 와 주셨어!”

“성녀님! 성녀님이 나타나셨다!”

“뭐?! 성녀님이 나타나셨다고?!”

성녀의 등장에 기사들의 사기가 폭발했다.

“성녀님이 우리를 지켜 주고 계신다! 다들 물러서지 말아라!”

“죽어라! 이 쓰레기 같은 마물!”

이쯤 되니 타인의 마물을 훔치는 것이 더 용이해졌다. 기사들은 성녀가 마지막 한 방을 가져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탁에서 묘사된 성녀는 어둠의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이세계에서 와 준 신성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설마 레벨을 올리려고 남이 다 잡아 놓은 마물만을 노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사들의 착각 덕분에 성녀는 순조롭게 레벨을 올렸다.

레벨 120이 되자 ‘신성한 빛무리’라는 새로운 광역 마법도 생겨, 한 번에 많은 마물을 공격할 수 있었다.

“신성한 빛무리!”

마력도 많이 올라 주문 단 한 번에 마물들이 바스러졌다. 더는 남이 잡던 마물을 야비하게 훔치지 않아도 되었다.

어느새 레벨 150에 달한 그녀의 활약으로 마물들은 곧 정리되었다.

“우와아아아아!”

“성녀님이 마물들을 물리치셨다!”

함께 싸우던 기사들이 그녀를 추앙하며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곳곳에 숨어, 숨을 죽인 채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거리로 뛰쳐나와 성녀의 위대함을 찬양했다.

“성녀님 만세!”

“성녀님께서 우리를 구하셨다!”

“마왕을 해치울 성녀님께서 나타나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찬사를 듣게 된 성녀가 당혹스러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잠깐이었다. 눈앞에 익숙한 시스템 창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혼란에 빠진 남부를 구하여 명성이 100 올랐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명성이었다. 스스로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그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퍼졌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감탄과 존경의 눈빛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에 성녀가 맹세라도 하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네, 네!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반드시 마왕을 해치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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