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70화 (70/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70화

레이나가 막 입에 넣으려던 쿠키를 떨어뜨렸다.

‘뭐야, 왜 이렇게 커졌어……?’

키만 커진 게 아니라 나이도 먹은 것 같았다. 이제는 로스틴과 동갑으로 보일 정도였다.

트리버가 바닥에 떨어진 쿠키를 주웠다. 호호 불어서 먼지를 털어 낸 그가 쿠키를 입에 넣었다.

“맛있네.”

트리버가 방긋 웃었다. 이를 멀뚱멀뚱 보던 레이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너 왜 이렇게 어른이 되었어……?”

하지만 그는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계속 이어 가고 싶지 않은 주제였던 모양인지, 그가 제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져서 답답해. 도와줘, 레이나. 응?”

완벽한 성인으로 성장해서인지, 말투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머리카락을 묶어 달라며 트리버가 조르기 시작했기에, 일단 그것부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 레이나가 자세를 낮추라며 손짓했다.

뒤를 돈 그가 다리를 굽혔다.

머리끈이 없어서 대충 벤치에 있던 축제 장식용 끈을 풀어 트리버의 긴 머리카락을 묶었다.

끈이 좀 길었던 탓에 허리 근처에서 나풀거렸다.

얼마 전까지는 아이였지만, 그래도 이제 다 큰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좀 그런가 싶어서 레이나가 물었다.

“잘라 줄까? 너무 길지?”

“아니, 마음에 들어. 레이나 눈이랑 같은 색이네.”

짙은 자줏빛이 마음에 들었는지, 끈을 매만지던 트리버가 미소 지었다.

“평생 간직할게. 고마워, 레이나.”

아니, 그렇게까지? 그냥 벤치에 묶여 있던 장식용 끈인데…….

참으로 특이한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케일란이 갑자기 흥분한 얼굴로 나타났다.

“야! 쟤 완전히 이상해!”

“나? 왜?”

트리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케일란은 아까 끝내지 못한 화를 이어서 냈다.

“갑자기 커졌잖아! 쟤가 네 마력 흡수해서 커졌다고! 내가 똑똑히 봤어!”

“내 마력?”

케일란이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 보니 진짜인가 싶어서 레이나가 곧장 트리버에게 힘을 사용했다.

“……?”

그러나 불행히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아한 얼굴을 한 레이나가 한 번 더 능력을 사용해 보았다.

“흐음?”

“아, 아니, 왜 이제 안 커지는데?!”

심지어 흡수도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더 능력을 사용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너 술 마셨지. 술 냄새 나는데?”

레이나가 킁킁대며 물었다. 주변이 전부 아이들이었기에 냄새가 확연히 났다.

“마, 마시긴 했는데…….”

하필이면 로스틴과 레이나가 다정하게 춤을 추는 장면을 보고 냅다 술을 마신 참이었다.

“그, 그렇지만 나 술 엄청 강해! 그 정도로 취해서 헛것을 보거나 하진 않아!”

정말로 케일란은 술이 강했다. 애초에 마을 사람들끼리 즐기려고 연 축제였기에 도수가 높은 술도 없었다.

그러니까 취하지 않았고, 자신이 본 것도 사실인데. 왜 아까와 상황이 전혀 달라진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씨……! 진짠데……!”

케일란의 얼굴에 억울함이 가득 찼다. 괜히 술은 마셔 가지고 신빙성까지 잃어서 더 억울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술 냄새를 풍기며 씩씩대기까지 하니, 더더욱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쟤가 왜 저럴까. 레이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있던 트리버도 따라서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들은 원래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을 잘 따라 하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케일란이 궁지에 몰렸다. 갑자기 만인에게 미움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았으나, 흥분하여 취기가 살짝 오른 탓에 혼자 오해한 케일란이 트리버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소리쳤다.

“야! 너 두고 봐! 내가 네놈의 정체를 반드시 밝히고야 말 테니까! 알겠어?!”

그 말을 끝으로 케일란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레이나가 한숨을 토로했다.

‘아니, 그러니까 얘는 미궁에서 데려온 애라고…….’

정체를 밝히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마물이었다. 심지어 마물의 잔해 속에서 태어나서 태생부터 수상한 놈이었다.

레이나가 힐끗 트리버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무해한 미소를 지었다.

‘단세포인 케일란이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으니.’

술김이든, 진짜든 무언가를 보긴 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평소와는 다르게 갑자기 성장한 감은 있었다.

‘흐음, 이마에 고리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하나?’

레이나가 고민에 빠지려는데, 마침 게임을 시작한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경품은 인형, 장식품, 과자, 사탕, 장신구, 현찰이 되겠습니다!”

“오호?”

몹시 흥미를 돋우는 품목이었다.

바로 어제 스스로가 내뱉은 항목이었다는 것은 떠올리지 못했지만.

케일란과 트리버에 관한 고민을 깔끔히 날려 버린 레이나가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도 할래!”

*

북부에서 곧장 신전으로 돌아온 대신관은 몸이 좋지 않아 다음 마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쉬고 싶다는 핑계를 대곤, 곧장 신전 최상층에 자리한 침묵의 방에 틀어박혔다.

그는 아직도 아까 자신이 보았던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마왕이 강해진 거지?’

믿을 수가 없는 마력을 발산하고 있는 레이나에,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신력을 사용했다.

신의 가호를 받은 그는 타인의 능력치를 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대량의 신력과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여 자주 사용할 순 없었지만, 지금이 딱 필요한 시점이었다.

대신관은 곧장 레이나에게 집중했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 위로 능력치 창이 떠올랐다.

[레이나 루벨라이트 Lv. 1,000]

체력 1,000

마력 2,000

매력 1,000

행운 1,000

평판 –1,000

명성 100

‘어째서?’

설마설마했지만, 사실을 마주하자 의문만이 남았다.

신탁에 의하면 마왕인 레이나 루벨라이트는 평생 Lv. 999로 살다가, 착실하게 힘을 키운 성녀에게 퇴치당할 운명이었다.

그러니 타고난 심보대로 세상을 어지럽히다가 퇴치를 당해야 마땅한데, 어째서인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심지어 마력을 집중적으로 키우다니.’

마력 2,000은 성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하필이면 북부의 미궁까지 사라진 참이니, 몇 년 동안 죽을힘을 다해야 동급이 될 수 있을까 말까였다.

온 세상을 쥐락펴락하고도 남을 힘을 손에 쥔 그녀에 대신관은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이 침묵의 방에 있는 것들을 소멸시켰다.

대신관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체 왜! 어째서 신탁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야! 왜?!”

그는 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신탁대로, 신께서 지시하신 대로 잘해 왔는데 어째서 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이나 마구잡이로 능력을 쏘아 댄 그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방금 전과는 달리 퍽 가여운 표정을 지은 대신관이 투명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신께 애원했다.

“제발, 새로운 신탁을 주세요. 제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하지만 늘 그랬듯 신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몇 달 전, 마왕이 깨어나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라는 신탁을 마지막으로 신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

대신관은 망연자실했다. 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여나 자신이 무언가 빠뜨리진 않았나 싶어 그가 서둘러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불투명하고 네모난 사각형의 박스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과거에 내려온 신탁들이었다.

[연약한 인간들이 마왕의 두려움에 대비할 수 있도록 (서부) 지역에 마물을 만들어 보내 주세요! (사전 고지 가능)]

[연약한 인간들이 마왕의 두려움에 대비할 수 있도록 (남부) 지역에 마물을 만들어 보내 주세요! (사전 고지 가능)]

[연약한 인간들이 마왕의 두려움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동부) 지역에 마물을 만들어 보내 주세요! (사전 고지 가능)]

[북부를 군림하는 윈터스노우 공작가가 신전에 충성을 맹세할 수 있도록 강력한 저주를 내려 주세요! (사전 고지 불가)]

[북부가 마왕을 더욱 배척할 수 있도록 대량의 마물들을 만들어서 보내 주세요! 인간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혀야만 합니다! (사전 고지 불가)]

.

.

.

[곧 신탁의 마왕이 세상 밖으로 나와 폭주할 예정입니다! 이세계에서 올 구원자와 함께 마왕의 악행을 막아 주세요! (사전 고지 불가)]

하지만 아무리 뒤져보아도 빠진 것은 없었다. 자신은 신께서 지시하신 대로 모든 것을 잘 수행해 나갔다.

그가 절망했다. 다시금 침묵의 방에 신력이 흩뿌려졌다.

그렇게 한참을 절망하던 대신관의 눈에 깜빡거리며 미약한 빛을 내는 박스 하나가 들어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