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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73화 (73/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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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마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개중에는 아직도 마물을 다 처치하지 못해서 골머리를 앓는 곳도 많았다.

자체 무장을 하지 못한 작은 영지들이 이에 속했다. 수도나 다른 큰 영지에서 지원이 오지 않는 이상, 소수의 기사들만 데리고 겨우겨우 버텨야 했다.

그러니 북부를 제외하곤 가장 큰 무력을 정비해 둔 수도가 서둘러 마물들을 정리하고 타 영지로 지원을 보내야 마땅하거늘.

불행히도 수도 역시 다른 영지들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다.

강한 기사들이 많은 것은 확실하나, 수도의 인구 밀도가 문제였다.

다른 곳도 아닌 제국의 수도였기에 엄청나게 많은 인구가 집중되어 있었고, 타 영지는 물론 타국에서도 방문하는 이들이 많았다.

때문에 일반 시민들을 피해서 마물을 처리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은 만큼 건물도 많았기에, 마물과 일대일로 전투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로 인해 생각처럼 진압이 쉽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황제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네놈은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이지? 왜 아직도 하찮은 마물들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가 수도의 치안을 맡은 황태자를 불러 그 책임을 물었다.

제국 천 년의 역사를 통틀어 수도가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웠던 적이 없었다며 황태자를 매섭게 다그쳤다.

한참이나 황제에게서 폭언을 듣던 황태자가 드디어 말을 멈춘 제 아비에게 대답했다.

“우습군요. 아직 폐하의 나라인데 저한테만 맡기지 마시고 스스로 좀 해 보시죠?”

“……뭐라고?!”

황제의 눈이 새빨갛게 타올랐다. 배은망덕한 자식의 반항에 그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그러게 애초에 기사들의 육성에 더 힘을 쓰시지 그러셨습니까? 저는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그때 책임지겠습니다.”

더는 대화하기 싫다는 듯 황태자가 알현실을 벗어났다. 그의 등 뒤로 황제의 고함이 들렸다.

하지만 황태자는 두려울 게 없었다. 황제의 자식이 그뿐인 터라 가만히 있어도 황위를 얻을 수 있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하고 싶은 말을 몽땅 퍼붓는 성격이었다.

그 때문에 한 달이나 탑에 갇힌 적도 있었지만, 아쉬울 게 없어 힘들지도 않았다.

물론 성격이 개차반인 것과는 별개로 나름 애국심은 있는 편이었다.

‘곧 내 것이 될 나라니까.’

붉은 눈을 흉흉하게 빛낸 황태자가 서둘러 신전에 연락을 넣으라고 지시했다.

“대신관을 불러와.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겠으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대신관은 아직도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벌써 며칠이나 되었다는 말에 그가 짜증을 내며 손수 신전으로 향했다.

“화, 황태자 전하……!”

갑자기 들이닥친 황태자에 신전에 남아 있던 소수의 신관들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그가 성큼성큼 대신관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앞을 지키고 있던 신관들이 황태자의 얼굴을 알아보곤 화들짝 놀라 고개를 조아렸다.

“뭐 해? 문 열어.”

“아, 그, 그렇지만…….”

신관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에 비뚜름하게 웃은 황태자가 신관의 목을 움켜쥔 채 방문을 거세게 걷어찼다.

쾅!

그와 동시에 박살이 난 문이 안쪽으로 쓰러졌다.

신관을 대신관의 침대 위로 내던진 황태자가 차갑게 명령했다.

“깨워.”

“컥, 컥! 큭!”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단련된 손에 목이 졸려져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이에 비키라며 그를 걷어찬 황태자가 곤히 잠든 대신관의 멱살을 틀어쥐고 다짜고짜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짝!

“일어나.”

헉, 소리가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상대는 안하무인 황태자였다. 모두 최선을 다해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켜만 보고 있기에는 황태자의 태도가 너무 심했다.

그는 기절한 대신관의 뺨을 거칠게, 몇 번이나 후려쳤다. 연약한 그의 뺨이 찢어져 핏방울이 맺힐 때까지.

“안 일어나?”

짝! 더 때렸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지만, 아무도 미동할 수가 없었다.

‘제발 대신관님, 눈을 떠 주십시오……! 아아! 대신관님……!’

모두의 염원이 닿았는지, 다행히 곧 대신관이 깨어났다. 완벽하게 깨어난 것은 아니고, 반쯤 눈을 감은 상태로 아주 잠깐 각성한 것에 가까웠지만.

“아, 황태자 전하……?”

기운이 없는지 말꼬리가 묘하게 늘어졌다. 지켜보던 신관 중 한 명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꽤 상태가 좋지 못한 모습이었으나, 개의치 않은 황태자가 대신관의 멱살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며 물었다.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마왕의 짓인가? 놈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거지? 당장 말해.”

바로 말하지 않았다간 목숨을 앗아 갈 기세였다. 대신관이 스르륵 눈동자를 굴렸다.

신탁을 완수하려면 아직 마왕의 위치를 노출할 수 없었다.

물론 이미 몇몇은 그녀의 위치를 알아내 만난 모양이지만, 눈앞의 황태자만은 결코 만나게 해선 안 되었다. 최소한 성녀가 다 성장할 때까지는.

“죄송합니다만,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께서 그것까지는 설명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왕이 마물을 소환한 것은 맞습니다……. 모든 원흉은 마왕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대신관이 다시 눈을 감았다. 기절한 듯 보였다.

“젠장.”

황태자가 욕설을 내뱉었다. 더는 캐낼 정보가 없자 그가 대신관을 침대에 내던졌다.

“깨어나면 바로 연락해라. 늦었다간 전부 가만두지 않겠어.”

사형 선고를 떠올리게 하는 작별 인사와 함께 황태자가 바람처럼 신전을 떠났다.

서둘러 달려온 의사가 다친 뺨을 치료하고 신관들과 함께 방을 나가자마자, 대신관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여기까지 올 여유가 있었던 걸 보면 수도의 마물들을 금방 마무리 지었나 보군.’

어쩌면 그 반대여서 저렇게 화가 난 걸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같잖았다.

얼마나 큰 대의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엄한 곳에 화풀이를 하다니.

대신관은 몹시도 불쾌해졌다. 황태자의 신분이라고는 해도 그의 눈에는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귀찮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겠어.’

마침 신력도 조금 회복한 상태였다. 슬슬 일어날까 하던 참이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아마도 성녀가 올 때까지 쉬고 있으라는 신의 계시인 모양이었다.

눈을 감은 대신관이 수도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마물을 부를 새로운 소환진을 그렸다.

그와 동시에 신력이 훅 줄어들며 소환진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신관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잠시 뒤, 수도에서 급한 연락이 도착했다. 많은 마물들이 추가로 소환되어 수도가 아비규환 상태이니 지원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더는 지원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이미 다른 지역들도 만신창이였다.

“어, 어쩔 수 없겠습니다.”

“그, 그렇지요…….”

절대 대신관에게 해를 끼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며 서로 납득한 신관들이 더는 지원을 보낼 수 없다는 답신만을 보내곤 수도와의 연락을 끝맺었다.

*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 북부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레이나가 순식간에 북부의 반을 정리했고, 나머지 반은 로스틴을 비롯한 기사들이 정리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거기에는 트리버의 도움도 컸다.

그는 마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인지,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마물들을 찾아내 흡수했다.

덕분에 배가 부른 트리버는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조용히 잠만 잤다.

그리하여 북부는 유일하게 마물의 위협을 걱정할 상태가 아니었지만, 이미 두 번이나 마물이 소환된 참이었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었기에 기사들이 조를 짜서 북부 전역을 순찰했다.

레이나 역시 곧 마력을 회복하였기에 순찰에 합류했다.

물론 공작 성과 아이스베리 마을 사람들 외에는 그녀가 무해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밤에 몰래 혼자 다녔다.

처음에는 마물이 있는지 확인만 하려고 했는데, 다니다 보니 피해를 입은 마을들의 복구 상태가 더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 맞네. 아이스베리 마을은 내가 마법으로 도와줘서 빨리 끝났던 거였지.’

같은 북부 사람인데, 도와주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때문에 레이나는 깊은 밤에 몰래 마을에 찾아가서 흘러내린 흙더미나 부서진 집의 잔해, 돌무더기, 마물의 사체 같은 것들을 조용히 없애 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북부 경계와 맞닿아 있는 서부가 떠올랐다.

사실 동부에서 태어나 북부에 똬리를 튼 그녀와는 상관이 없는 지역이었으나, 한 차례 도와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괜히 신경이 쓰였다.

‘뭐, 내게 별로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연이 닿았으니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차피 이제 힘도, 시간도 남아도는 상태였고.

결정을 내린 레이나는 곧장 서부로 향했다.

서부는 아직 마물을 다 퇴치하지 못해 거의 모든 인력이 마물 퇴치에 동원되어 있었다.

복구 작업은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방에 끔찍한 잔해와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곧 동이 트겠는데.’

아무래도 서둘러서 치우고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최대한 많은 범위 내의 쓰레기를 소멸시켜.’

이런 지시를 알아들을까 싶었는데, 불꽃은 찰떡같이 레이나의 지시를 수행했다.

쓰레기만 치웠는데 마을이 한결 괜찮아 보였다.

부서진 집이나 핏자국 같은 것은 남아 있었지만, 거기까지 도와줄 여력은 없었다.

‘뭐, 다른 지역 사람인데 이만큼 해 줬으면 된 거지.’

그녀는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소형 이동석을 사용했다.

레이나가 떠나고 잠시 뒤, 반쯤 무너진 돌벽 뒤에 쭈그려 숨어 있던 사람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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