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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103화 (103/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103화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루카가 패닉에 빠졌다. 당황한 검은 눈동자가 답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펠릭스라고 당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 역시 갑자기 나타난 눈 뭉치에 쉴 새 없이 눈을 깜빡였다.

“호, 혹시 루카 윈터스노우 공작 영식……?”

그럼에도 혹시 몰라 펠릭스가 눈 뭉치의 정체를 확인했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펠릭스의 손 위에서 파들파들 떨던 루카가 껑충 뛰어 도주를 시도했다.

방도가 떠오르지 않으니 도망치는 수밖엔 없었다. 그러고는 영원히 모르는 척하며 지내면 될 것이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을 거야. 아니, 애초에 더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조용히 지내야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지냈었는걸.

찰나의 순간 그리 결심하고 창문 쪽으로 튀어 오르는데, 그런 루카를 펠릭스가 다급히 불러세웠다.

“자, 잠깐만요!”

다행히 루카는 창문틀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펠릭스와의 인연도 이제 끝이었기에, 마지막으로 그의 말을 듣고 싶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그래도, 그래도 오늘 하루 즐거웠으니까.

괜히 미련이 남아서 뭐라고 하는지는 듣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 그러니까…….”

겨우 시간을 얻게 된 펠릭스는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간 루카가 도망갈 것이다.

몸이 아픈 것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 눈 뭉치로 변하는 저주였다니.

만져 보고 싶을 만큼 몹시도 귀여웠지만, 숨기고 싶은 비밀일 것임이 분명했다. 필시 상처도 많이 받았겠지.

‘어……?’

뒤늦게 펠릭스는 왜 루카의 병명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정확히는 알리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눈 뭉치로 변하는 공작가의 차남이라니, 그보다 더한 약점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북부의 여름이 사라졌구나…….’

대신관이 북부의 여름을 없앤 것도 이해되었다. 루카가 녹을까 봐 배려해 준 모양이었다.

펠릭스가 생각에 빠져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루카가 뚱땅뚱땅 몸을 움직여 창밖으로 벗어나려고 했다.

그에 펠릭스가 아이를 막고자 저도 모르게 외쳤다.

“나, 나도 비밀이 있어요!”

갑자기? 뜬금없는 고백에 루카가 눈을 댕그랗게 뜨며 돌아보았다.

생뚱맞긴 했지만, 시선을 돌리는 것에 성공한 펠릭스가 서둘러 제 비밀을 털어놓았다.

“저, 저는 사실, 사실 루벨라이트 공녀님의 동생이에요!”

“삐, 삐이……?!”

상상도 못 했던 정체 공개에 루카가 반응했다. 레이나의 동생이라면 공작가의 장남이라는 뜻이었다.

‘평민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왜 그런 척을 하면서 주스를 파는 거지?’

심지어 레이나도 펠릭스의 정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복잡해 보이는 가정사에 루카는 의문이 들었다.

아이의 관심을 사로잡은 펠릭스가 머쓱하게 웃으며 뺨을 긁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제 얘기를 들어 주실래요? 아! 만지거나 하진 않을게요.”

귀엽기는 했지만, 초면(?)이니 자제할 자신이 있었다.

두 주먹을 꼭 쥐며 말하는 펠릭스에 루카가 눈을 끔뻑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사정이 깊어 보였다. 때문에 알겠다는 듯 폴짝 침대 위로 뛰어내려서 자리를 잡자, 펠릭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아이가 냉큼 침대에 뛰어들었다. 루카의 옆에 자리한 펠릭스가 조곤조곤 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어……. 그러니까 뭐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저는 지금까지 누이가 아파서 요양 간 줄 알았다는 얘기부터 해야 할까요? 사실은 저택 지하에서 10년 동안이나 유폐되어 있었는데 말이에요.”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검은색 마법 때문이겠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그리 밝지 않은 루카였으나,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잘 듣고 있다는 듯 루카가 눈을 깜빡이니, 어색한 미소를 지은 펠릭스가 말을 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아픈 누이가 쾌차하여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누이께서 돌아오시면 함께 가문을 이끌어 가려고요.”

펠릭스는 루벨라이트 공작가의 장남이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집안이 변변치 못했다.

아버지께는 늘 못났다는 꾸중만 들으며, 어머니의 마음고생도 시켰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은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었고, 겁도 많았다. 매일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어쩌면 누이였을지도…….’

지하에 유폐된 레이나가 도움을 요청하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정말 아버지께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분이시구나…….’

펠릭스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대신관이 찾아왔을 때부터?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인연이 닿았을 때부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혼인도 하기 전에, 전 공작 부인이 돌아가시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자신을 임신했을 그때 말이다.

그런 생각까지 다다르자, 펠릭스는 공작가를 물려받아 혼자 이끌어 갈 자신이 없었다. 자신은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명망 높은 공작가는 완벽한 태생을 가진 누이가 이끄는 것이 맞았다.

자신처럼 절반은 하찮은 가문의 태생인, 반편이가 아니라.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누이께 가문을 드리고 저는 어디 멀리 가 버리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저는…… 여러모로 모자란 사람이니까요. 반면 누이는 정말이지 대단하신 분이고요.”

펠릭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평소에도 별로 자신이 없었는데, 말을 꺼내니 새삼 스스로가 더 못나 보여서 주눅이 들었다.

“삐이!”

그런 펠릭스의 이마를 힘껏 날아오른 루카가 퍽! 가격했다.

“삐이! 삐이! 삐이잇-!”

“화…… 내는 거예요……?”

“삐이잇! 삐이잇!”

눈을 세모꼴로 뜬 루카가 쉴 새 없이 무어라 소리를 쳤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펠릭스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설마 내가 자책해서 그러는 거예요?”

“삐잇!”

‘삐이’라고밖에 대답하지 않는 상황이거늘, 펠릭스는 어쩐지 루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책하지 마라, 그런 생각 하지 마라, 스스로를 모자라다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혼을 내는 느낌이었다. 루카가 잔소리를 계속했다.

“삐잇! 삐이삐잇! 삐삐잇! 삐-!”

자신 역시 사실은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상한 저주에 걸려서 형을 볼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저주에 걸려 버렸는데. 되돌릴 수 없는 것을 탓해 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 괜히 마음만 상하고, 기분만 나쁠 뿐이었다.

그래서 루카는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원해서 저주에 걸린 것도 아니고, 원흉은 마왕이었기에 마왕 놈만을 원망해야 옳았다.

“삐잇삐잇! 삐이잇! 삐! 삐! 삐-!”

그러니까 너도 쓸데없는 생각일랑 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 모처럼 공작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왜 그러고 앉았어!

온 힘을 다하여 거기까지 훈계한 루카가 기력을 전부 소모했는지 발라당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삐이’라는 말이 대부분이었지만, 펠릭스는 루카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위로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괜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단 한 번도 남에게 털어놓지 못한 고민과 괴로움을 오늘 만난 눈 뭉치에게 말하고 위로를 받다니.

훌쩍.

눈물을 삼킨 펠릭스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펠릭스를 곁눈질한 루카가 이내 작은 몸을 영차영차 움직여 아이의 얼굴 근처에 자리 잡고 눈을 감았다.

*

한편, 늦은 시간까지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로스틴은 뜻밖의 방문객에 미간을 찌푸렸다.

다름 아닌 레이나의 집사 코렐이었다. 그가 루카의 소식을 로스틴에게 알렸다.

“루카가 아직도 공녀의 저택에 있다고?”

그는 저도 모르게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10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몹시도 늦은 시간이었다.

자정 전후로 다시 눈 뭉치가 될 루카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예. 아까 보셨던 아이와 잘 놀고 있습니다. 둘이 사이가 좋아서 아주 흐뭇하기 그지없습니다.”

집사가 눈치 없이 웃으며 말했다.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아이와 함께 있다니.

로스틴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서둘러 외투를 챙겼다.

“바로 가지.”

“아, 예! 모시겠습니다.”

마부 출신답게 집사는 재빨리 로스틴을 심연의 저택으로 데려갔다.

저택 안에서 잘 놀고 있는데 왜 저리도 다급해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집사는 충실하게 말을 몰았다.

그리하여 레이나의 저택에 도착한 로스틴은 곧장 루카와 펠릭스가 쉬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시간은 벌써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로스틴은 노크하는 것도 잊고 서둘러 펠릭스의 방문을 열었다.

“……!”

그러자 뜻밖에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서로 꼭 붙어서 자는 두 아이였다. 물론 루카는 이미 눈 뭉치가 된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지?’

왜 루카가 벌써 눈 뭉치가 된 것일까. 아니, 눈 뭉치가 된 것은 둘째 치고, 왜 사이좋게 붙어서 자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이 들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는 루카의 표정이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시끄럽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 잠을 잘 만큼.

아무래도 함께 누운 아이와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짐작건대, 아마도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좋은 일이.

“하암, 왔어?”

로스틴의 방문 소식을 들은 레이나가 졸린 눈을 비비며 뒤늦게 나타났다.

그녀가 방 안에서 곤히 자는 펠릭스와 눈 뭉치를 보곤 루카는 어디에 갔냐며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응? 루카는? 삐이는 또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자다가 깨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싶어진 레이나가 다시 눈을 비볐다.

“루카 본 사람? 본 사람 없어?!”

그러다가 아이가 사라졌음에 놀라 서둘러 사람들에게 루카의 행방을 물었다.

자신이 신경 쓰지 않은 사이에 그 작은 아이가 사라졌으면 어쩌나 덜컥 걱정되었다.

화들짝 놀라 저택을 다 찾아다니기라도 할 듯 팔을 걷어붙인 레이나의 손을 로스틴이 부드럽게 잡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루카는 잘 있어.”

로스틴의 표정이 퍽 온화했다. 시선이 침대 위에 닿아 있었기에, 레이나가 저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펠릭스와 ……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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