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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123화 (123/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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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빠져나온 트리버는 곧장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때문에 괴로웠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 독점하지 못해서 화가 나나?

“시끄러워!”

- 킬킬킬, 네가 제일 뒷전인 것 같더군.

“시끄럽다고 했잖아!”

조롱이라도 하는 듯한 목소리에 트리버가 분노했다.

목소리는 늘 그랬다. 심연에 묻어 놓은 은밀한 감정을 건드려 유혹하고, 제 말에 따르도록 만들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도 그러했다. 레이나가 악을 쓰며 거절했기 때문인지, 강렬한 욕망을 가진 트리버를 발견한 목소리가 곧장 그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 너, 이 여자와 긴밀한 관계가 되고 싶나?

‘긴밀한 관계? 그게 뭐야?’

- 친해지고 싶냐는 말이다.

레이나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인기인이었기에 트리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목소리는 그에게 레이나와 친해질 방법을 알려 주었다.

첫 번째는 레이나가 걸어 놓은 고리를 통해 힘을 최대한 많이 흡수하는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조금씩 흡수하여 성장하고는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목소리는 레이나의 힘을 확실하게 빼앗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꽤 간단했다. 몸에 걸어 둔 고리에 의식을 집중하면, 그녀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흡수해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레이나가 힘을 개방하지 않은 상태에선 빼앗을 수도, 사용할 수도 없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녀는 평소 힘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게다가 저택에서부터 곡창 지대까지 널리 힘을 뿌려 두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흡수하고 부릴 수 있었다.

중간에 갑자기 나타난 마물들도 한몫했다.

몸이 다 성장한 뒤에 떠오른 기억이었는데, 트리버는 북부 미궁에서도 다른 마물들을 흡수하여 몸집을 불린 전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레이나의 공격을 받고 소멸했던 그는 그녀의 힘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결국 레이나는 자신을 죽인 원수이자, 새로이 태어나게 해 준 은인이었다.

더불어 그녀는 세상을 지배하고도 남을 만큼의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어머니이자 위대한 스승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트리버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레이나를 존경했고, 숭배했고, 흠모했다.

그래서 목소리의 말에 따라 마물을 흡수하고, 만들어 내고, 힘을 키운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레이나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하지만 어째서인지 트리버가 강해지든 말든 레이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갑자기 성장해도 ‘마물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에 트리버는 조바심이 났다. 목소리의 뜻대로 힘을 키우고 있음에도 레이나가 전혀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았기에.

“네 말을 듣고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아직 작았을 때, 성장을 채 마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친근감을 표했던 때가 더 레이나와 가까웠던 느낌이었다.

트리버가 더는 목소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처럼 단호한 얼굴을 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목소리가 답했다.

- 지금까지 열심히 힘을 쌓아 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널 보여 줄 때가 됐다.

“이제 더는 네 말 따위는 안 들을 거야.”

- 아니, 들어야 할걸? 이제야 비로소 그 여자를 가질 기회가 찾아왔으니까 말이다.

헛소리임이 분명했지만, 손에 아무것도 쥐지 못한 트리버는 달리 선택할 방도가 없었다.

트리버의 가슴속 심연에서 일렁이는 마음을 확인한 목소리가 음산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로스틴 윈터스노우. 그자를 공격해라.

“……로스틴을?”

그는 죄가 없는데, 어째서.

물론 그리 생각하는 한편, 로스틴이 내내 눈엣가시처럼 마음에 들지 않던 게 떠올랐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는 레이나였지만, 로스틴만큼은 조금 예외였기 때문이다.

마을 축제에서 춤을 췄을 때나, 성인식에서 춤을 췄을 때도 그러했다. 로스틴과 함께하는 레이나는 종종 낯선 표정을 짓곤 했다.

트리버는 그것이 몹시도 못마땅했다. 아니, 끔찍하게 싫고 질투가 났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로스틴의 목을 조르고 싶다고도 생각했는데, 막상 목소리가 공격하라고 하니 선뜻 그러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 아직도 모르겠나? 레이나가 그자를 편애하는 이유는 그자가 강해서이다.

그랬던가. 트리버가 혼란스러워했다.

레이나가 로스틴을 편애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힘이 없는 자들을 배척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 네가 그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서 그 여자를 빼앗아라! 네 힘을 보여 주거라!

트리버는 힘의 논리를 따르는 마물이었기에 목소리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까지 그의 말을 들어서 일이 잘 풀렸던 적이 없어 마냥 신뢰할 수가 없었다.

- 일이 잘 풀렸던 적이 없다니. 내 말대로 네가 대신 마왕의 행세를 하여 레이나의 누명이 벗겨졌거늘.

그건 그랬다. 그래서인지 레이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상당히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 그러니 이제 그게 모두 네 덕분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이렇게나 강해졌다는 걸 보여 준다면 레이나도 너를 다시 볼 것이다. 처음 레이나를 만났던 네가 그랬듯, 그 여자 역시 네 힘에 경외감을 느끼겠지.

지금까지 레이나의 힘을 빼앗고, 마왕의 행세를 하고, 마물들을 천지에 소환했던 것이 모두 지금을 위해서라는 말이 덧붙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일이 헛수고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목소리는 그 모든 것이 오늘, 그리고 지금을 위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탑이라고 설명했다.

“탑…….”

그렇구나. 그랬구나. 납득하는 동시에 창문 밖에서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을 젖혀 밖을 확인하자, 식사를 마치고 앞마당을 산책하는 레이나와 로스틴이 눈에 들어왔다.

갓 딴 루꼴라를 손에 든 레이나가 한번 먹어 보라며 로스틴의 입에 그것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로스틴이 작물을 받아먹었다. 그 모습이 더없이 다정하고 친근하게 보였다.

정말 저들의 사이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만큼.

볼 때마다 가까워지는 듯한 두 사람에 트리버의 눈이 질투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당장이라도 어떻게 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레이나가 완전히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 같아 머릿속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그런 그의 속내를 낱낱이 확인한 목소리가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듯 트리버에게 명령했다.

- 이제 그 탑의 제일 꼭대기에 설 차례다. 거대한 힘의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려 네게 굴복하게 만들어라!

그와 동시에 트리버의 전신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았다. 폭발하듯 분출된 불꽃이 깔끔하게 꾸며 놓은 그의 방을 새카맣게 불태웠다.

닿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리겠다는 듯 크기를 키운 불꽃이 투명한 창문을 순식간에 깨뜨리곤 저택 밖으로 넘실거렸다.

“뭐야……?!”

갑작스러운 소란에 로스틴과 산책을 하던 레이나가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로스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레이나의 앞을 막아섬과 동시에, 창문에서 트리버가 뛰어내렸다.

전신에 검은 불꽃을 두른 트리버에 레이나가 당황하는 사이, 그에게서 익숙한 실루엣을 겹쳐 본 로스틴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내내 쫓고 있었기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트리버, 그가 바로 마물을 불러와 세상을 어지럽힌 장본인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분명 소멸한 마물의 잔해에서 태어난 존재이거늘.

시기가 맞지 않아 로스틴이 의문을 갖는 사이, 트리버가 온 힘을 다해 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도망갈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거대한 크기의 원형 불꽃을 내던지는 트리버에 레이나가 방어막을 치려고 하던 때였다.

“윽!”

트리버가 레이나의 힘을 순식간에 흡수했다. 그에 기운이 빠진 레이나가 비틀거리며 쓰러지자, 그런 그녀의 몸 위를 로스틴이 고민할 겨를도 없이 덮었다.

콰과과광-!

산맥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저택 전체에 어두운 먼지가 깔렸다.

저택에 남아 온실을 가꾸던 여인들이 놀라 차게 얼어붙었다.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설마,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먼지가 조금 걷히고 트리버가 모습을 드러냈다. 끔찍한 공격을 퍼부어 놓고 만족스러운 듯 약간의 미소를 걸친 채였다.

“이제, 이제 된 거야?”

힘을 보여 줬으니 레이나가 자신만을 보게 되는 걸까. 기대하는 눈빛에 광기가 서렸다.

먼지가 완연하게 걷히고, 만신창이가 되어 레이나를 덮고 있는 로스틴의 모습이 나타나자 희열에 차기까지 했다.

“레이나.”

이제 날 봐줘. 나, 열심히 노력해서 이렇게나 강해졌어.

트리버가 그렇게 말을 이으려던 때였다. 로스틴의 밑에서 빠져나온 레이나가 새하얗게 질려 그의 몸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로스틴-?!”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비극에 차 있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잃은 듯한 목소리였다.

대체 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트리버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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