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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139화 (139/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139화

그 뒤, 대신관은 곧장 공격을 개시했다. 이미 힘을 들켜 버린 뒤였기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정말 성녀를 죽이고 새 성녀를 기다리기라도 할 작정인지, 대신관의 거대한 마력이 집요하게 세라를 노렸다.

차라리 레이나를 공격했다면 모를까, 아직 레벨을 다 올리지 못한 세라가 거세게 퍼부어지는 대신관의 공격을 겨우 막았다

그사이 레이나와 로스틴, 트리버를 견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의문일 정도로 대신관은 강한 마력으로 공격을 이어 갔다. 그쯤 되자 레이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능력치 뭔데……? 이럴 거면 도대체 성녀를 왜 기다린 거야?!’

이렇게나 강한 캐릭터였다면 굳이 신의 말씀 어쩌고, 이세계의 소녀 어쩌고 하지 말고 스스로 나서서 마왕을 해치워도 충분했을 것 같았다.

아무리 트리버에게 힘을 빼앗긴 상태라고는 해도, 레이나는 레벨을 1,000까지 찍은 상태였다.

이 세상에선 당해 낼 자가 없어야 마땅한데, 자신은 물론이고 로스틴과 트리버까지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니.

심지어 마왕이 회개하고 착하게 산다고 하면 제일 좋아해도 모자랄 위치이거늘, 갑자기 흑화해서 자기가 최종 보스가 되어 버렸다.

어째서 제작자는 신전에 틀어박혀 성녀에게 퀘스트나 주던 NPC의 몸에 이딴 힘을 심어 놓은 것인가.

아니, 생각해 보면 대신관의 말투는 늘 어딘가 재수 없었다. 그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언제나 존댓말을 썼는데, 사실 까놓고 보면 하대하는 화법에 가까웠다.

그러면서 자기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퀘스트만 수백 가지 던져서 짜증이 났었는데.

속에 저딴 게 들어 있었다니, 괜히 기분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와중에 다행히 대신관의 공격 패턴이 읽혔다. 아무리 뜻밖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넷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버거웠던 모양이다.

공격하는 속도가 일정했고, 패턴이 거의 비슷했다. 게다가 이를 눈치챈 것은 레이나뿐만이 아니었다.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던 성녀는 어느새 정신을 다잡고 방어 태세를 갖추었고, 로스틴은 퍽 날카로운 눈으로 반격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딱 한 번이라도 공격이 성공하면 그 뒤엔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며 대신관에게 집중하는 사이, 갑자기 트리버가 우뚝 자리에 멈춰 섰다.

- 지금이다, 지금이야! 드디어 마왕으로 각성할 때가 왔다!

목소리가 기쁜 듯 외쳤다.

- 당장 공격해라! 성녀와 공녀를 죽이고, 남은 힘을 모두 흡수해서 세상을 네 것으로 만들어라!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세뇌였다. 마치 트리버의 의지를 빼앗고 몸을 지배하기라도 할 기세로 목소리가 강력한 의지를 담아 트리버에게 명령했다.

트리버의 눈동자가 조금씩 빛을 잃어 가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대신관이 트리버를 공격했다.

그에 목소리에 세뇌당해 정신을 놓고 있던 트리버가 대신관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다.

“트리버?!”

공격을 피하기는커녕 얼이 빠져 있다가 바닥에 쓰러지는 트리버에 당황한 레이나가 서둘러 그에게 달려갔다.

위력은 그리 크지 않아 보였는데, 방어막 하나 없이 무방비한 상태였던 탓에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은 채였다.

아까부터 약자만을 귀신같이 노리던 대신관은 이를 놓치지 않고 레이나와 트리버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에 레이나가 방어막을 두르려는 찰나, 돌연 트리버가 레이나의 목을 졸랐다.

“……?!”

“공녀!”

심지어 연달아 날아오는 대신관의 검은 마법에 성녀와 로스틴이 재빨리 두 사람을 보호했다.

‘도대체 이 새끼가 또 왜 이래!’

목을 부러뜨리겠다는 듯 거세게 힘을 주는 것과는 상반되게, 트리버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하필이면 또 맛이 간 듯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기에 레이나가 주먹에 온 힘을 실어 트리버의 복부를 냅다 갈겼다.

충격이 컸던 탓인지 트리버가 비틀대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정신 안 차려?!”

소리치는 목이 아팠다. 이 미친놈이 정말 죽일 생각으로 목을 졸랐던 모양이다.

정신 차리라는 마음 반, 아직 풀리지 않은 분통이 반, 그런 마음을 담아서 한 번 더 복부를 갈기자, 드디어 트리버의 눈빛이 흔들렸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트리버가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직도 목소리는 그에게 모두를 죽이고 세상을 지배하라는 명령을 반복하고 있었다.

“목소리?”

머릿속에서 목소리라니. 설마 그 음산하고 기분 나쁜 그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레이나는 언제부턴가 제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사라졌던 기억이 났다.

자신이 재차 윽박지르고 협박해서 그저 닥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몇 달 동안이나 조용히 있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어쩌면 트리버에게 옮겨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데 그게 막 아무에게나 옮겨 가고 그럴 수 있는 건가?

실체도 없는 것이 숙주를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니.

물론, 목소리는 마력을 타고 트리버에게 넘어간 것이었지만, 그 누구도 이를 알 리 없었다.

그사이, 다시금 시작된 세뇌 공격에 트리버가 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으윽……!”

고작해야 모두를 죽이라는 단순한 말일 뿐인데, 뇌를 잡고 흔들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트리버는 목소리가 내리는 명령을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설령 레이나를 죽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싫다며 머리를 쥐어뜯는 게 고작이었다.

때문에 레이나는 대신관의 공격에서 트리버와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가장 강력한 전력이 빠진 탓에 공격할 타이밍을 재고 있던 로스틴과 세라 역시 다시 궁지에 몰렸다.

거의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이래서야 계속해서 대치만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며 입술을 씹은 레이나가 여전히 괴로워하는 트리버의 앞에서 대신관의 마법을 튕겨 내고 있을 때였다.

한참을 혼란에 빠져 있던 트리버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 난 공격하기 싫어……. 이러려고 힘을 키운 게 아니야……. 나는 그저 레이나에게 조금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어……!”

그는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는 몸과 마음 때문에 울고 있었다. 이렇게 되려고 레이나의 마력을 훔친 게 아니었는데.

그녀를 독점하고 싶었지만, 이런 걸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그냥 조금만 더 자신을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밖엔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배신한 것도 모자라, 몸의 주도권까지 빼앗겨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레이나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이미 너무 늦어 버렸지만, 상황을 되돌리고 싶었다. 차라리 목소리가 자신에게 넘어왔던 그날, 스스로를 해쳐서라도 함께 소멸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그럼 정신 똑바로 차려! 정말 목소리가 너한테 넘어간 건진 모르겠지만, 꺼지라고 욕이라도 하면서 내쫓아 버리라고!”

횡설수설하는 트리버에게 레이나가 윽박을 내질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상황을 이리도 엉망으로 만든 것은 그인데, 그럼에도 살려 보려고 열심히 공격을 막으면서.

그래서인지 트리버는 점차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레이나가 시키는 대로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며 의지를 다진 덕분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정신을 붙든 트리버는 잠시 레이나를 눈에 담더니, 이내 대신관을 향해 달려갔다.

- 자, 잠깐! 지금 뭘 하려는 게야?!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목소리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세뇌든 명령이든 뭐라도 해서 트리버의 발걸음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 멈춰! 멈추라고!

‘아니, 안 멈춰. 더는 휘둘리지 않을 거야. 레이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을 거야.’

목적을 확실히 하자, 목소리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한편, 갑작스럽게 튀어 나간 트리버에 당황한 것은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지키고 있던 레이나는 물론이고 로스틴과 성녀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대신관의 지척까지 다가간 트리버가 별안간 마력으로 그와 제 몸을 한데 묶어 구속하며 소리쳤다.

“지금이야! 레이나!”

“……!”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제대로 말하진 않았으나, 그곳에 있던 모두가 트리버가 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대신관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이건 신의 품에서 보았던, 마지막 신탁이었다. 동료 중 한 명을 희생하여 마왕을 물리치는 신탁 말이다.

“아니, 아니야. 희생은, 지금까지 신관들이 했던 그것이어야 하는데……!”

자신이 직접 그들을 방패로 삼긴 했지만, 사악한 검은 마법에 당했으니 희생은 희생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희생이라면, 신탁에서 일컫는 마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대신관은 자신을 옥죄는 트리버에게 갖은 마법을 쏘며 발악했다.

“아니야! 나는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하지만 대신관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음에도 트리버는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대신관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었다간 트리버가 무의미한 희생을 당하고 말 것이다.

‘……괜찮아. 트리버는 내가 힘을 나누어 주면 돼! 트리버는, 공격하지 말라고 하면 돼!’

아주 다행히도 레이나의 공격 마법은 상대를 골라서 공격했다. 그 역시 그것을 노리고 대신관에게 달려든 것이 확실했다.

공격을 끝내자마자 바로 트리버에게 마력을 나누어 주겠다고 생각한 레이나가 아주 조금의 마력만을 남기고 대신관에게 모두 쏟아부었다.

“안 돼!”

신전을 모두 삼킬 듯한 순수한 검은색 마력 덩어리에 대신관의 낯빛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이게 아닌데, 이런 결말은 없었는데. 어째서, 왜.

-라고 생각하는 순간, 쿠구구궁! 거대한 소리를 내며 마력 덩어리가 대신관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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