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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142화 (142/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1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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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입장과 동시에 재판이 개시되었다.

사실 말이 재판이지, 미리 증언과 자료를 모아 형벌이 결정된 뒤였다. 해서, 관련된 자들의 명단을 읊고, 그들에게 걸맞는 처벌을 발표하는 것이 끝이었다.

“감히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눈을 피해 사병을 모으고 마왕에게 가담했던 죄를 물어 관련된 자들은 물론, 그 직계 가족의 작위와 재산을 몰수하고 참수형을 명한다.”

예상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결과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미리 도망을 가려던 자들도 있었는데, 황태자가 풀어 놓은 기사들에 의해 모두 붙잡힌 상태였다.

그들은 레이나나 공작 부인, 펠릭스처럼 좌석에 앉지 못하고, 손과 발에 수갑을 찬 채 구석에 묶여 있어야만 했다.

재판관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준비한 서류를 한 장 넘기며 남은 말을 읊었다.

“단, 레이나 루벨라이트 공작 영애는 마왕을 물리치는 데 큰 공헌을 한 점을 고려하여 처벌을 면하고, 작위와 재산을 상속받도록 명한다. 이상.”

응? 갑자기 공작 작위랑 재산까지 준다고?

어느 날 갑자기 최종 보스가 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공작이었습니다, 라니.

제목이 너무 길어졌다. 그냥 오명만 씻어도 충분히 만족했을 텐데, 생각지도 못한 보상까지 얻게 된 레이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다고 마냥 신나서 좋아하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공작 가문의 직계라고는 하지만, 죄 없는 공작 부인과 펠릭스가 참수형을 당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건 절대 아니 될 일이었다. 이제 막 알게 된 동생인데,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자마자 작별 인사를 할 순 없었다.

그때, 속히 처형을 집행하겠다며 공작 부인과 펠릭스를 끌고 가려 기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에 모자는 사색이 되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방청석에 참석했던 공작 부인의 변호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우왕좌왕했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레이나가 다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황제 폐하! 잠시만요!”

만인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발언권을 얻지도 않았는데 감히 황제 폐하께 말을 걸다니,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었다.

“무슨 일이지?”

다행히 황제는 레이나를 좋게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나는 성녀와 함께 마왕을 물리친 영웅이었다.

일전에는 황성에 나타난 마물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더불어 꽤 골칫거리였던 북부 미궁과 서부 던전도 없애 주었기에 앞으로도 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황제의 표정이 퍽 부드러웠기에, 레이나가 긴장한 마음을 잠시 뒤로한 채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루벨라이트 공작 부인과 장남인 펠릭스를 선처해 주세요.”

“흐음, 어째서지?”

황제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듣기로, 레이나는 공작가와 그다지 좋지 못한 관계였다.

현 공작 부인은 친모가 죽은 뒤 들인 계모이고, 펠릭스와는 친분도 없다 들었다.

그런데 선처해 달라니. 도대체 왜일까. 살려 둬 봤자 가문의 재산만 축낼 존재들이거늘.

“공작 부인과 펠릭스는 공작의 학대 피해자이니까요. 저와 마찬가지죠. 게다가 부인은 공작의 반역을 미리 알아채고 이혼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레이나는 공작 부인과 펠릭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다고 호소했다. 조금만 더 일찍 이혼 소송이 이루어졌다면, 공작과는 관련이 없는 사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공작 부인은 공작과 이혼하자마자 장남과 함께 제국을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아예 남남이 되었겠죠.”

그런데 불행히도 시기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가족으로 묶이게 되었다. 물론 이혼을 해도 펠릭스는 공작의 장남이기에 처벌을 피할 수 없었겠지만.

“제게 주신 작위와 재산을 다시 가져가셔도 괜찮아요. 그러니 공작 부인과 그녀의 아들만큼은 선처해 주세요.”

사실이든 아니든 들어주기 힘든 부탁이었다. 레이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간, 여타 귀족의 직계들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살려 달라고 애원할 것이 분명했다.

“황제 폐하! 펠릭스는 정말 제 아버지와 가문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가출해서 북부에서 한참이나 지냈던 적도 있어요! 저와 함께요!”

황제가 고심하며 답을 내놓지 않자, 참다못한 루카가 손을 들고 일어나 외쳤다.

나이스, 루카! 레이나가 엄지를 치켜들었고, 펠릭스가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옆에 자리한 로스틴이 잘했다는 듯 루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카가 얼굴을 붉히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펠릭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저주에 걸렸던 당사자인 북부의 공작 영식까지 거들고 나섰기에, 어쩔 수 없이 황태자는 재판관들을 불러 모아 레이나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했다.

그렇게 얼마 뒤.

공작 부인이 정말 이혼 소송 중이고, 학대받은 증거 또한 모두 제출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 황제가 결정을 내렸다.

“좋다. 루벨라이트 공작 부인과 그녀의 장남인 펠릭스는 본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작위 박탈과 재산 몰수로 판결을 정정한다.”

사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공작의 직계이니 감안할 필요가 없었지만, 상대가 하필 이번 일을 마무리한 레이나였다. 북부의 공작도 함께인 듯 보였고.

지금까지의 행보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제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기에, 반발이 생기더라도 이 정도의 부탁은 들어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리라.

“재판은 이로써 마치겠다. 이상.”

그 말을 끝으로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죄인들을 포박하여 끌고 갔다. 이제 남은 것은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처형식뿐이었다.

“부, 부인! 펠릭스!”

루벨라이트 공작이 기사들에게 끌려가며 퍽 애처롭게 제 가족들을 불렀다.

물론 레이나의 이름은 부르지 못했다. 나름의 염치라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이름을 불렀다가 여기서 당장 목이 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리하여 죄인들이 모두 끌려가고 무고한 자들만이 남은 법정에서 공작 부인이 레이나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 은혜를 보답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요…….”

펠릭스라면 모를까, 자신마저 살게 될 줄은 몰랐던 공작 부인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 그녀를 펠릭스가 꼬옥 안았다. 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한가득 맺혀 있었다.

“펠릭스가 혼자 남겨지면 안 되니까요. 아이가 자라는 데 부모의 역할이 크잖아요.”

레이나는 이쯤에서 반말을 그만두었다. 이미 황제에겐 존댓말을 쓴 참이었고, 마왕 이미지도 탈피한 마당에 더는 양심에 가책까지 느끼며 반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고요.”

레이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으로 한 말인데, 공작 부인이 눈시울을 붉혔다.

“아뇨, 훌륭하시기만 한걸요. 비록 제가 가진 것은 없지만, 공녀께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언제든 절 찾아 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도울게요.”

이에 레이나가 반색했다. 마침 기다리던 말이었다. 아니, 그녀가 도와주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도 부탁할 일이 있었다.

“오, 정말요? 그럼 이르지만 당장 부탁해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갑자기 공작 작위는 물론이고 엄청난 크기의 영지와 재산까지 상속받았는데, 저는 그걸 관리할 줄 모르거든요. 그러니 부디 다시 공작저로 돌아가서 제 대신 관리를 해 주세요.”

“네……?”

소소한 부탁일 줄 알았는데, 영지와 재산을 관리해 달라고?

당황한 공작 부인이 차마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지 못하고 있자, 레이나가 펠릭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펠릭스 너, 후계자 교육인지 뭔지 받았지? 앞으로도 잘 받아서 성인이 되면 누나 도와줄래?”

그러니까 앞으로도 쭉 가족으로 함께 지내자는 말이었다.

제발 그렇게 하고 싶다고-아니, 종종 안부 인사라도 하고 지내고 싶다며 무릎을 꿇고 부탁해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선뜻 먼저 제안해 준 레이나에 펠릭스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열심히 공부해서 꼭 누이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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