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랜덤 기사 소환권(3성 이상 확정)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자신에게만 보이는 메시지.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쥐고 있는 보석을 부쉈다.
[랜덤 기사 소환권을 사용해서 ‘3성 기사’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1사단에 배속시킬 수 있습니다. 배속하시겠습니까?]
"그래."
[‘3성 기사’가 1사단에 배속되었습니다.]
이게 그가 가진 능력이다.
1화 불분명 각성자(1)
*
2030년 5월.
오늘로써 지구의 대격변이 일어난 지 딱 9년 째 되는 날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지옥이 찾아온 것이 불과 9년 전.
일명 게이트라고 불리는 검은 균열이 생겼고, 그 안에서 몬스터라고 불리는 괴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몇몇 괴수들은 화기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 외의 괴수들은 화기조차 통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흉측한 몰골을 한 괴수들은 인간들의 터전을 짓밟기 시작했고, 인간들을 학살했다.
더 이상 저항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때, 그제야 그들은 지구에 종말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완벽한 패배.
그렇게 인간들이 절망에 찌들어 있을 때.
희망이 찾아왔다.
“이 힘은?”
그들은 신체의 변화를 금방 눈치 챘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을 참혹하게 짓밟은 저 괴물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
인간들은 그런 신체의 변화를 겪은 이들을 보고, 각성자라고 칭했다.
그들의 힘은 전부 제각각이었다.
자신의 몸만을 겨우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각성자도 있었고, 수백, 수천을 지킬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각성자도 존재했다.
그렇게 인간들은 괴수들을 조금씩 처리하면서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9년.
지금에 들어서야 세계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뭐 해! 빨리 빨리 담아!”
동굴처럼 생긴 내부에서는 6명의 사람이 작업복을 입은 채로, 땅에 떨어진 금속들을 가방에 주워 담고 있었다.
그런데 금속이 아닌, 푸른 보석을 담는 이는 단 한 명이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선 청년. 한태현.
혼자서 하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그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수거 팀 반장인 임준희는 태현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
심지어 잔소리도 쉬지 않고 쏟아내는 중이다.
‘좀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나?’
“빨리 하겠습니다.”
태현은 계속되는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안 그래도 고된 작업인데 이런 소리까지 들으니 죽을 맛이었다.
“마정석 담당이 금화랑 똑같은 속도로 작업하면 어쩌자는 거냐? 응?”
‘그럼 금화담당으로 넣어주시던가요.’
목젖까지 차올랐던 불만을 다시금 삼켰다.
태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작업속도를 최대치로 올렸다.
그럼에도 임준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에게 지적질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임준희에게 미운털이 박힌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2달 전.
태현은 일을 하기 위해 게이트 수거 팀으로 들어갔다.
얼핏 보면 위험한 일이지만, 게이트 내의 보스 급 몬스터까지 완벽하게 처리 된 게이트만 취급했기에 사실상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태현은 들어간 첫째 날부터 일이 꼬이게 된다.
게이트 수거 팀이 생긴 것은 헌터관리국에서 만든 일용직 시스템이라는 것.
괴수.
몬스터의 출현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새로 창출되었는데, 수거 팀이 그 중 하나였다.
물론 비각성자를 대상으로 모집하는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태현은 엄밀히 말하자면, 비각성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수거 팀으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불분명 각성자’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뒤져봐도 단 6명밖에 등장하지 않았던 불분명 각성자.
“후··· 이렇게 힘이 없어서야 원.”
임준희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작업자들의 행동을 중지시켰다.
“오늘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내일 마저 마무리하자고.”
태현이 주머니에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벌써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와··· 잔소리를 5시간이나 들은 거?’
그는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점심시간 이후부터 끊임없이 시작된 잔소리.
임준희는 그럼에도 할 말이 남았다는 눈치다.
‘진짜 죽여 버릴까?’
진짜 적당히 해야지.
태현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임준희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 내일도 나올 거냐?”
“네.”
“···늦지 않게 와라.”
솔직히 말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어차피 내일 출근해봤자 잔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돈.
다른 일용직과는 다르게 하루 일당이 40만원이다.
물론 게이트 수거 팀이 매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보니 한달 기준으로 보면, 평균 500~600만원정도 된다.
이만한 곳에 들어오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수거 팀은 총 20팀.
태현을 포함한 수거 팀은 불과 8명 정도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행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직종인 것.
그럼에도 그는 불분명 각성자라는 이유로 손쉽게 들어왔다.
“오늘 수고했어.”
“술이라도 한 잔 할 텐가? 오늘 마누라도 안 들어오는데.”
“됐어. 오늘 결혼기념일이라서 일찍 안 들어가면··· 큰일 난다.”
“그냥 한 번 정도는 넘어가지 그래?”
“작년에 죽을 뻔 했어. 미안하지만, 오늘은 빠질게.”
작업자들은 자신들의 무리들과 대화를 나누며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태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그는 익숙한지 주워 담았던 마정석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8명 중, 6명이 금화담당이다보니 그들의 작업이 빨리 끝나는 것은 당연한 일.
심지어 임준희는 그에게 잔소리만 늘어놓지, 실질적인 일은 태현이 다 한다.
오죽하면, 반장이라는 작자가 자신에게 마무리를 맡겨버리고, 그들과 함께 자리를 떠날까?
‘어휴, 인생 진짜.’
태현은 마정석이 담긴 가방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에 불을 붙여, 빨아들이니 알싸한 연기가 폐를 자극했다.
역시 스트레스 받을 때에는 담배만한 게 없다.
‘각성자가 맞긴 하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각성자가 된 것은 1년 전이었다.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하던 어느 날.
신체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울 정도.
그럼에도 그가 각성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건, 공중에 이상한 메시지가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건을 충족할 시 새로운 힘을 받아들입니다.]
-요건 : ???
물론 어떤 요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이 각성했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했다.
그렇기에 회사에 연차를 급히 내고, 헌터관리국으로 향했다.
‘불분명 각성자.’
헌터관리국은 태현의 등급을 그렇게 책정했다.
물론 불분명 각성자라는 사실은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그를 제외하고, 5명밖에 등장하지 않았던 불분명 각성자.
그리고 그들은 일반 각성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같이 갓급의 능력을 각성시켰다.
S급도 아닌, 갓급(G).
그래서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헌터관리국은 냉정했다.
신체검사, 전투력 측정, 능력치 측정 등 수많은 검사가 6개월의 시간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온 불분명 각성자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신체를 가지거나,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태현은 일반인과 비슷한 정도.
물론 초반에는 태현에게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한국에 불분명 각성자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결과가 이렇다.
결국 그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관리국은 최소한의 배려로 수거 팀이라는 일용직에 배속시켰다.
각성자의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사람 때문에 버틸 수가 없네.’
가정이 있는 가장이라면 돈 때문이라도 버틴다지만, 그는 홀몸이다.
그만두더라도 내 몸만 책임지면 된다.
그렇지만, 저번 달에 받았던 800만 원.
이미 돈 맛을 알아버렸으니 그만두기에는 뭔가 너무 아까웠다.
‘참자. 참아.’
태현은 돈을 생각하며, 담배를 바닥에 비볐다.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째 평소보다 더 칙칙한데.’
그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동굴 내부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냥 집이나 가자.’
어차피 아무것도 없을 텐데, 굳이 확인해서 뭐 할까? 싶었다.
태현은 빠른 걸음으로 동굴을 빠져나가 관리국으로 향했다.
그는 마정석을 담은 가방을 관리국에 제출했다.
관리국 직원은 게이트에 남아있는 마정석 수치와 가방의 마정석의 수치를 비교하고서야 승인했다.
‘검사 한번 빡빡하네.’
수치까지 정확하게 책정할 수 있고, 아공간 주머니까지 통용되고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수거 팀이 만들어진 이유는 헌터관리국의 작은 배려심이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벌이는 하늘과 땅 차이.
그렇기에 관리국은 비각성자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 벌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태현은 승인이 완료된 사원증을 받아들고, 집으로 향했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5인 가족이 모여서 생활했던 공간.
지금은 태현 혼자서 사용하고 있다.
당시 서울 한복판에 게이트가 발생했었는데, 하필이면 그의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 앞이었다.
대학교에서 산악동아리랍시고, 해외로 놀러갔던 그는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의 가족이다.
저녁 늦은 식사를 하다가 봉변을 당했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풍비박산이 된지 오래였다.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냥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일기라도 써야겠다.’
3년 전, 그 사건 이후로 생긴 습관.
그냥 뭐라도 해야만 될 것 같아서 시작한 게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한태현은 오늘 일기에 임준희를 한껏 욕하면서 마무리 지었다.
‘도대체 요건이란 게 뭘까?’
요건을 충족해야만 힘을 받아들인다.
오늘도 어김없이 눈앞에 떠다니는 글귀.
1년이 지났음에도 글귀의 해답은 찾지 못했다.
어떻게든 찾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움직였지만, 매번 허탕.
‘괴수들을 전부 잡아서 복수하려고 했는데.’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목적이다.
가족들의 복수.
그러나 요건에 대한 힌트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
그는 아침이 되자, 곧바로 출근했다.
도착했을 때에는 수거 팀 2~3명이 먼저 도착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태현이 동굴에 다가가자, 그들은 달갑지 않은 얼굴로 그를 피했다.
‘···짜증나네.’
대놓고 따돌림을 받는데 짜증이 안 나는 게 이상할 것이다.
이들 모두 임준희 반장 라인을 타고 있기 때문에 그를 고깝게 보는 건 당연한 일.
태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그들과 반대편으로 가서 담배를 태웠다.
‘이것들이랑 일하면, 꼭 담배를 피게 된다니까.’
가족들을 잃고, 태우기 시작한 담배.
지금은 그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해소용으로 쓰이고 있다.
담배를 2개비정도 태우니 임준희 반장이 도착했고, 나머지 인원들도 도착했다.
“한태현!”
임준희는 도착하자마자 먹잇감을 발견한 눈으로 태현을 쏘아봤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임준희에게 다가갔다.
“네.”
“오늘 마정석 다 캐야 한다. 알았지?”
“······.”
“쓰읍, 대답.”
“알겠습니다.”
‘미x새끼. 3분의 2 가량 남은 걸 혼자서 오늘 안에 다 하라고?’
어제도 쉬지 않고, 구른 결과 3분의 1을 수거했다.
오늘 3분의 2를 다 수거하라는 것은 야근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
금화는 이제 오전만 작업하면,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마정석 담당인 그보고 혼자서 다 수거하라는 건, 심각하게 너무했다.
“금화담당은 마무리 짓고, 보고한 뒤에 퇴근해. 관리국에 제출 똑바로 하고.”
“어휴~ 제출 잘못했다가 목 날아갑니다. 도둑질을 어떻게 합니까?”
“알았다~ 빨리 시작하자.”
그들은 태현을 뒤로 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였다면, 이런 대우는 안 받았을 건데.’
비각성자인 그들이 불분명 각성자인 자신에게 이런 대우를 하는 것도, 관리국에서 그를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도박을 하느니, 차라리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것.
태현은 비루한 인생에 한탄을 하고는 동굴로 향했다.
오늘따라 그의 어깨가 축 쳐져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