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불분명 각성자(2)
*
‘뭐지···?’
어제 들어왔던 동굴 맞나 싶을 정도로 안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태현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조심스레 걸었다.
조금 걷다보니, 먼저 들어갔던 수거 팀 인원들이 보였다.
수거 팀 7명은 걸음을 멈춘 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 들어왔던 동굴이 여기 맞지?”
“무슨 놈의 한기가···.”
“아무래도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러자고··· 일이야 내일 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들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태현을 지나쳐 입구로 돌아갔다.
그 역시 한기를 느끼고는 곧장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입구에 도착했을 즈음,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왜 막혀있어?”
“어? 왜 유리막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작업자들은 입구에 손을 휘저었다.
그럴 때마다 보이지 않는 유리막이 그들의 손들을 때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태현은 불안한 눈으로 작업자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당시 관리국에서 특별취급을 받고 있을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몬스터가 있는 게이트에 들어가면, 클리어 할 때까지 빠져나올 수 없다.’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게이트.
그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빠져나올 수 없다는 말.
태현은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부정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아마도 어제 느꼈던 기운이 몬스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현아, 혹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겠어?”
임준희 반장은 불안했는지, 180도 달라진 태도로 태현에게 접근했다.
아무래도 이런 변수에는 자신들보다는 반푼이라도 각성자인 태현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그 역시 처음 겪는 일.
태현의 고개가 좌우로 저어졌다.
임준희의 얼굴이 구겨졌다.
“어째 도움이 되는 날이 없냐.”
“반장님···.”
작업자 한 명의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임준희가 왜 그러냐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작업자는 임준희를 보고 있지 않았고, 동굴의 내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려있었다.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얼굴.
임준희는 불안한 눈으로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헉!”
“모··· 몬스터!”
들개.
핏빛의 털을 가진 붉은 들개.
들개의 눈에는 붉은 안광이 번들거렸다.
작업자들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오금이 저렸다.
“위험한데.”
태현은 조심스레 벽을 기대고 섰다.
옆을 돌아보자, 하나같이 전의를 상실한 작업자들만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들개를 보았다.
들개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태세가 아닌,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탐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임준희 반장님.”
태현이 임준희를 낮게 불렀다.
하지만, 그는 들개에 정신이 팔려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가 다시 임준희를 불렀다.
“반장님.”
“···응?”
드디어 임준희가 반응을 보였다.
태현은 들개를 향해 턱짓했다.
“곡괭이는 어디 두셨습니까?”
수거 팀은 곡괭이랑 삽을 항시 준비한다.
다행이 곡괭이가 준비되어 있었는지 임준희가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수거 팀 반장이라는 직위로 사용하고 있는 아공간 주머니.
“그··· 설마 싸우려는 건?”
끄덕.
“알겠다···.”
임준희가 조심스레 곡괭이 8개를 꺼냈다.
추가로 삽도 8개 꺼냈다.
들개는 작업자들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는 곧장 달려들었다.
크르릉!
태현이 곡괭이를 집어 들고는 몸을 빠르게 돌렸다.
들개는 한태현의 손에 곡괭이가 쥐어져 있는 것에 그를 사냥 1순위로 정했다.
‘살다 살다 들개를 상대하는 날도 다 오네.’
최대한 의연하게 행동하려고 했다.
들개가 얼굴을 들이밀자, 그는 몸을 수그리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그로 인해 들개의 공격은 애꿎은 벽으로 향했다.
태현은 멀찍이 떨어져있는 작업자들을 급히 불렀다.
“이대로 가다간 다 죽습니다! 시선을 끌고 있을 테니 지금 공격하세요!”
그의 외침에 작업자들의 몸이 움찔 떨렸다.
확실히 태현이 없다면, 나머지 7명이서 들개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처럼 시선을 끌어 줄 정도로 배짱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답은 빠르게 나왔다.
임준희를 필두로 작업자들의 손에 곡괭이가 쥐어졌고, 들개는 몸을 돌려 작업자들에게 향했다.
그 때, 태현이 들고 있던 곡괭이로 들개의 하반신을 내려찍었다.
끼앵!
‘통한다! 등급이 낮은 몬스터야.’
만약 곡괭이가 통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들개는 등급이 가장 낮은 몬스터였는지 곡괭이가 통했다.
작업자들은 괴수가 괴로워하는 틈을 타서 빠르게 다가가 곡괭이로 내려찍었다.
“으아아! 죽어! 죽어!”
수십 번을 내려찍어서야 괴수의 움직임이 멎었다.
“자··· 잡았다!”
“비각성자인 우리가 몬스터를 잡았어!”
작업자들은 그제야 안도했고, 기뻐했다.
금화가 나온 것으로 보아 눈앞의 들개는 몬스터가 확실했다.
기쁨도 잠시.
태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몬스터입니다. 아무래도 여기에 새로운 게이트가 생긴 것 같아요.”
“허···.”
“이런···.”
작업자들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실제로 게이트라면, 동굴 안쪽에 이런 몬스터가 득실거릴 것이다.
지금 몬스터 1마리가 당했으니 나머지 몬스터들이 습격해올 것이다.
‘이상해.’
태현은 눈앞의 몬스터를 보니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방금 몬스터와 싸운 곳은 동굴 안이다.
싸우는 소리가 그렇게 강렬했는데, 추가적인 몬스터의 습격이 없었다는 것.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
삐익-
갑자기 들려오는 기계음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임준희가 비상용 수신기를 들어보였다.
“신호를 보냈으니 곧 헌터들이 지원을 올 거야.”
“휴···.”
“그럼 조금만 기달리면 되겠네?”
“아직 안심하긴 일러··· 다른 몬스터가 습격해올 가능성이 높아.”
작업자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지적했다.
태현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작업자들이 당황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제발 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냐?”
임준희는 안 그래도 예민한 상황에서 태현이 초를 치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요? 저거 보고도요?”
그가 손가락으로 동굴의 내부를 가리켰다.
작업자들의 눈이 그곳으로 향했다.
“헙···.”
그들은 내부의 광경에 말을 잃었다.
칠흑 같았던 내부에 횃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불은 안쪽부터 그들이 서있는 곳까지 천천히 켜졌고, 작업자들은 내부를 훤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부의 끝에는 하나의 문이 있었다.
‘동굴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지?’
분명 어제는 없었던 문.
동굴의 내부는 훨씬 깊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지금 동굴은 기껏해야 100m 내외.
작업자들은 눈가를 비비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들개는 문을 지키는 역할을 하던 것이었나?’
태현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누군가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리니 임준희가 눈에 쌍심지를 킨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헌터들이 지원을 올 거라고 했잖아!”
태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업자들 모두가 임준희와 같은 생각인지, 그를 노려보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태현이 임준희의 수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거 처음 써보시죠?”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무슨 생각이냐고 묻잖아!”
“후우···.”
그의 예상대로 수거 팀의 비상용 수신기가 작동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누르기만 하면, 헌터들이 알아서 지원을 올 거라고 굳게 믿는 것이지.
태현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 말을 이었다.
“그거 삐- 소리가 난다는 건, 전파가 닿지 않는다는 겁니다.”
“응?”
“헌터들이 지원을 올 리가 없다는 거라고요.”
“그렇다면···.”
임준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역시 사용방법에 대해선 잘 모른다.
관리국에서는 위급상황 시 수신기를 사용하라고만 했을 뿐이다.
“씨x! 이상한 소리 지껄이지 마!”
작업자 중 한 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태현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거 놓으시죠.”
태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그가 작업자의 손목을 잡아 힘을 주었다.
아무리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역시 각성자다.
완력에서는 일반인보다 강했다.
“끄윽···.”
결국 작업자는 움켜쥐었던 멱살을 풀었고, 그 역시 손목을 놔주었다.
그리고는 앉아있는 작업자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일단 움직이죠.”
태현은 그 말과 함께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작업자들은 그를 조용히 지켜볼 뿐, 움직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문 앞에 섰다.
그러자 그의 눈높이에 맞춰 붉은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안식.’
생전 처음 보는 문자였는데, 읽는데 불편하지 않다는 게 신기했다.
태현이 무의식적으로 조심스레 문자를 매만지자,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결여된 공간 : 킹의 안식처’에 입장할 자격을 갖춘 이가 등장했습니다.]
[문이 개방됩니다.]
‘뭐?’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태현이 당황한 눈으로 메시지의 글귀를 곱씹었다.
그 때였다.
“입구가 열렸어!”
“이게 무슨? 유리막이 사라졌잖아?”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것이 사라졌는지 작업자들이 환호했다.
그들은 태현보고 빨리 나오라 손짓했다.
“태현아! 빨리 나와.”
그는 자신들을 구해주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그를 무시했다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태현은 그들의 손짓에 빠르게 뒤쫓았다.
하지만, 절반도 채 가지 못하고 멈춰 서고 말았다.
“응? 뭐야··· 갈 수가 없다.”
입구를 향해 뛰어가던 태현이 알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혔다.
태현이 어찌할지 고민하는 찰나, 그의 앞에 누군가 다가왔다.
“내가 이 놈을 데리고 나갈 테니, 먼저 나가있어.”
그는 임준희였다.
태현은 그가 먼저 빠져나갈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임준희는 작업자들을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반장님? 지금 여기 투명한 벽이 가로막아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빨리 관리국에 신고를···.”
“정말이군··· 그보다 신고?”
“네. 아마 높은 등급의 각성자라면, 이 정도는 해결해줄 거예요.”
“그럼. 신고해야지.”
임준희의 말투에 순간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반장님···? 설마 이상한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죠?”
“아닌데? 그냥 3시간 뒤에 신고할 생각이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임준희가 그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들어 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능력 좀 생겼다고, 인생이 180도 달라지는 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
“뭐라고요?”
“나는 대기업에서 과장을 달아 순조로운 인생을 보냈다. 노력한 대가였지. 그런데, 이상한 게이트가 나타나면서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더군? 한순간에 실직자가 된 거지. 그런데 아무런 능력도 없던 놈들이 각성해서는 각성자랍시고 떵떵거리면서 살더군? 이런 인생은 너무 불공평하잖아?”
“······.”
겨우 그 정도로 사람을 사지로 내몬다고?
태현의 주먹이 세게 쥐어졌다.
“뭐, 열심히 노력해서 수거 팀으로 들어온 걸로 만족하기로 했어. 네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뭐라고요?”
어이가 없어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임준희가 무슨 의도로 자신의 과거사를 꺼냈는지 진즉에 눈치 챘다.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능력치라고 버려졌다며? 그런데 각성자랍시고 수거 팀에 낙하산으로 들어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야, 쓰레기같은 본성 죽이고 다니시느라 고생 많으셨겠네요?”
“쓰레기? 마음대로 생각해. 나는 각성자 네놈들이 쓰레기라고 생각하거든.”
임준희는 그 말과 끝으로 몸을 돌렸다.
태현이 주먹으로 유리막을 강하게 내려쳤다.
“썅!”
그를 제외한 작업자들이 동굴을 전부 빠져나갔다.
임준희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설마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이유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니었는데.’
순간의 선택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자신 나름대로 호의를 베푼 것인데, 돌아오는 것은 임준희의 배신이었다.
태현은 고민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기에 하루라는 시간동안 죽치고 앉아있는 게 생존확률이 훨씬 높다.
끼이익-
고민하는 사이, 등 뒤에 소름끼치는 마찰음이 들렸다.
태현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가 굳어버린 목을 억지로 돌렸다.
“저게 왜···?”
굳게 닫혀있던 문이 어느새 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