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의문의 사나이(3)
*
대전 어느 한적한 거리.
헌터들이 E급 게이트를 수색한답시고, 구역을 맡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진호, 정은영도 마찬가지였다.
관리국에 각성자 등록을 마치고, 길드가 아닌 관리국 소속의 헌터가 되었다.
“진호 오빠, 복면이 여기로 올까?”
“나도 모르지.”
“슬슬 나타날 때가 된 것 같긴 한데.”
“그냥 아무데나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집에 가게.”
7시간동안 동네를 몇 바퀴를 돈 건지 모르겠다.
최근 패턴으로 보아 의문의 사나이가 슬슬 등장할 때가 되었는데.
이진호는 귀찮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존나 짜증나네··· B급 헌터가 되어가지고는 이런 짓이나 하고 있고 말이야.’
그는 B급 헌터로 전투계열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레벨도 77이 되면서 C급은 쳐다도 못 볼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관리국에서는 B급이든 C급이든 관계없이 동등한 대우를 했으며, 의뢰 역시 비슷한 수준의 것들을 주었다.
한때마나 관리국 직속 계약이라는 환상에 빠진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지금이라도 길드로 빠질까?’
한숨이 나왔다.
그 때, 뒤를 따라 걷던 정은영이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여기 근처에 E급 게이트가 나왔대!”
“응?”
“다른 지역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래. E급 게이트가 방금 나왔다니까 여기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 이거지.”
정은영은 이진호를 잡아끌고, E급 게이트가 생성되었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곳에는 E급 게이트가 덩그러니 자리했다.
이제 막 생성되었다는 것을 알리듯, 크기를 키워가는 녀석.
E급 게이트는 몬스터가 직접 빠져나올 걱정이 없으니 앞에서 대기만 하고 있으면 될 노릇이다.
이진호는 뚱한 얼굴로 게이트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왔어?”
웃으면서 반기는 남자.
그와 같은 해에 관리국 소속으로 들어온 김도현이었다.
“네가 발견한 거냐?”
이진호가 턱짓을 하며 물었다.
그는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따끈따끈한 게이트라고.”
“그러셔? 그럼 지금 들어가서 빠르게 소탕해버리는 건 어떠냐?”
“에~ 그랬다가 의문의 사나이가 안 오면 어쩌려고?”
“뭐 어때?”
의문의 사나이가 뭐가 그리 대수라고.
끽해야 E급 게이트에만 나타나는 놈한테 왜 그리 관심을 주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그 놈이 적이었으면 좋겠다.
귀찮게 만든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넌 뭐 하냐?”
이진호는 말없이 헌터 워치를 만지작거리는 정은영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고는 다시금 헌터 워치를 만지작거렸다.
“뭔데 그래?”
“나타났대요!”
이진호가 다가가자 헌터 워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문의 사나이 출현. 장소는 서울 마포대교! D급 게이트를 노리는 것으로 보임.
“D급 게이트? 어제까지만 해도 E급 게이트를 노리지 않았나?”
설마 어제까지는 E급을 오늘은 D급으로 서서히 단계를 올려나가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이러는 걸까?
김도현이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자신의 헌터 워치를 응시했다.
워치를 조작하니 정은영의 워치와 똑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왔지? 그럼 가자.”
이진호는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몸을 돌릴 때 쯤, 한 명의 남자가 E급 게이트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어어?”
그는 당황한 얼굴로 손가락질했다.
자세히 보니 이전과는 조금 다른 복면을 착용했다.
“야! 저기 복면인!”
“진짜잖아!”
김도현이 놀란 눈으로 급히 게이트로 뛰어갔다.
하지만, 그 사내가 들어가자마자 게이트는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그가 급히 가까이 다가가 손을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뭐야··· 유리막이 왜?”
게이트는 유리막으로 단단히 막혀있었다.
이진호와 정은영 역시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정확히 30초.
게이트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럼 마포대교는···.”
“아무래도 제대로 낚인 거 같은데?”
*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태현은 일부러 시선을 끌기 위해 자신이 쓰고 있던 복면을 자객에게 착용시켰다.
그리고는 서울 마포대표에 생성된 D급 게이트로 보냈다.
이 역시 미리 준비했던 상황.
‘D급 게이트가 알맞게 나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어.’
그 게이트는 길드 중에서도 수도권 지역을 수호하는 길드 중 하나인 [태왕]에서 처리하기로 한 곳이다.
이런 정보들이 어디서 나왔나?
바로 하데스.
아이템만이 아닌, 정보까지 사고 판매할 수 있는 어둠의 사이트.
이런 정보는 생각보다 싸게 팔렸기 때문에 구입할 수 있었다.
‘오늘은 나 혼자 상대한다.’
지금까지 레벨을 올린 결과, E급 게이트는 단신의 몸으로 충분히 격파가 가능할 수준까지 올라왔다.
잘하면 D급 던전도 단신의 힘으로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튜토리얼의 몬스터는 일반 던전보다 많은 양의 경험치를 주었기에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
-각성자 스테이터스-
[이름 : 한태현]
[레벨 : 32/제한 없음.]
[칭호 : 6대 킹 아모스.]
[능력치]
-근력 : 61
-민첩 : 57
-체력 : 59
-지능 : 56
-행운 : 54
며칠 전 모든 능력치가 5인 것을 감안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능력치를 보고 입꼬리가 찢어질 정도로 올라간 태현이 곡괭이를 힘껏 쥐었다.
그러자 풀숲에서 몬스터 1마리가 불쑥 튀어나와 그를 덮쳤다.
“어디를!”
태현은 몬스터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쐐애액!
능력치가 높아지면서 그의 움직임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그의 곡괭이가 굉음과 함께 몬스터의 뱃가죽을 찢었다.
끼엑!
E급 던전의 몬스터는 그의 높은 근력 수치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내장이 터져버린 녀석은 그대로 쓰러졌다.
[미니 코모도를 처치하셨습니다.]
‘확실히 강해지고 있다.’
그가 혼자서 사냥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첫 사냥의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 때, 10마리가 넘는 미니 코모도가 그에게 접근했다.
동료가 당했다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조심성이 많은 몬스터로군. 그렇다면, 먼저 친다.’
힘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
코모도가 50마리가 달려들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10마리정도야 우습다.
끼엑!
끼엑!
태현이 곡괭이를 휘두를 때마다 미니 코모도의 신체부위가 하나씩 나가떨어졌다.
운이 없는 놈들은 즉사.
물론 좋다고 하더라도, 전투불능이 되었다.
그는 숨이 붙어있는 미니 코모도가 있다면, 다시 공격해서 확실하게 끊었다.
*
몬스터 사냥은 순조로웠다.
미니 코모도만 70마리를 넘게 사냥하니, 그 뒤로는 괴상한 모습의 독수리.
셰일들이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놈들의 힘으로는 태현을 막는 것은 불가능.
그는 셰일이 접근할 때마다 곡괭이를 휘두르며 학살했다.
다행인 것은 이들의 지능이 높지 않아서 무작정 공격을 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지능이 높아서 공중에서 빈틈을 노리고, 공격을 가하거나 도구를 사용했다면, 살짝 곤란했을 것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많은 몬스터를 사냥하니 레벨이 추가로 올랐다.
하지만, 레벨이 오를 때마다 다음 레벨까지 업 하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자, 그럼 보스를 잡아볼까?’
유일하게 찾아보지 않았던 지하상가.
그의 예상이 맞다면, 보스는 분명 여기 있을 것이다.
정답이라는 듯, 지하상가로 내려가니 하나의 문이 보였다.
망설임 없이 곡괭이로 닫혀있는 문고리를 내려치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태현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기다렸다는 듯, 한 마리의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크아아!
‘역시 여기 숨어있었구나?’
이전에 보았던 미니 코모도와 비슷한 모습.
하지만, 덩치가 3배는 컸고, 피부색도 달랐으며, 날카로운 비늘로 뒤덮인 놈.
아무래도 이놈도 내구성이 장난이 아닐 것 같다.
그가 곡괭이를 힘껏 쥐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코모도의 입에서 녹색의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이런.’
태현이 급히 몸을 틀어 액체에서 떨어졌다.
액체는 바닥타일에 닿자마자 녹아들어갔다.
‘산성독이로군. 곤란한 걸?’
이런 좁은 공간에서 산성독을 사용하다니.
아무래도 상대하는 방법을 달리 해야 될 것 같다.
그는 대놓고 접근하는 대신, 코모도가 어떻게 공격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크어어!
코모도는 태현이 들어올 듯 말 듯, 약을 올리는 행동에 산성독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렇게 2~3번을 반복하고, 그의 눈에 코모도의 약점이 들어왔다.
‘산성독을 내뱉은 다음에 움직임이 일순 멈춘다.’
아무래도 산성독을 사용하는 데 몸의 무리가 따르는 것 같다.
태현은 코모도가 다시 독을 쏠 때까지 치고 빠지는 것을 반복했다.
역시나 놈의 입에서 다시금 독이 쏟아졌다.
여유롭게 독을 피하고, 눈을 빛낸 그가 코모도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놈이 당황하고는 꼬리로 그의 움직임을 저지하려고 했다.
‘실수했다. 꼬리가 움직이는 건, 몰랐는데.’
태현은 이미 곡괭이를 사선으로 그으려고 제스처를 크게 취한 상황.
그냥 꼬리 정도의 공격은 한 번 맞아주기로 하고, 곡괭이를 사선으로 냅다 그어버렸다.
끼엑!
코모도의 피부는 곡괭이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움푹 패였다.
피부를 파고드는 공격에 코모도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반면, 태현은 아무런 대미지도 받지 않았다.
‘어째서지?’
그가 의아함에 멈칫하자, 메시지가 들려왔다.
[극기가 발동되었습니다.]
‘극기?’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액티브 스킬이었다.
아무래도 튜토리얼이다보니 자동적으로 발현된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고, 그의 시선이 다시금 코모도에게로 향했다.
크에엑.
코모도의 눈에는 어느덧 공포심이 자리 잡은 상태다.
방금 공격으로 힘의 격차를 절실히 느꼈다는 증거.
태현은 망설임 없이 곡괭이를 들어 코모도의 목을 내려쳤다.
[거대 코모도를 처치하셨습니다.]
[튜토리얼 뱃지를 획득하셨습니다.]
[‘랜덤 소환권’을 획득하셨습니다.]
‘좋았어!’
추가로 금화까지 떨구고, 마정석까지 떨군 녀석.
태현은 기분 좋은 미소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칭호 : ‘튜토리얼 마스터’ 획득.
-‘랜덤 소환권(3성 이상 확정)’이 지급되었습니다.
-‘왕의 초급 무구 랜덤 소환권’이 지급되었습니다.
*
“뭐? 눈앞에서 놓쳤다고? E급 게이트 하나 제대로 못 지켜서 어쩌자는 거야!”
휴대폰으로 윽박을 지르는 이.
그리고 반대편에 앉아 차를 마시던 진도윤은 그럼 그렇지··· 라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전화가 끊어지자 윽박을 지르던 이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실패했답니다···.”
“됐어. 어차피 못 잡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휴.”
수치스러웠다.
헌터들을 관리하는 관리과 책임 과장으로 일한지 3년.
이렇게 많은 헌터들을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더군다나 한때 사수였던 진도윤의 의뢰였기에.
헌터들의 관리가 미숙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었다.
그럼에도 진도윤의 표정에서는 불쾌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잖나. 시행착오는 있을 수밖에 없지.”
“부장님···.”
“됐어. 내가 관리과에서는 일해보질 않았지만, 헌터들의 관리가 빡빡하다는 것쯤은 알아.”
“다음은 실수하지 않고, 잡아들이겠습니다.”
“그래. 그보다 요즘 인재들 발굴이 뜸한 것 같은데?”
진도윤이 허를 찔렀다.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박성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현재 관리국 소속으로 들어오는 고(高)등급 헌터는 미미했다.
기업들의 스폰을 받는 대형 길드에서 스카웃이랍시고, 전부 데려갔기 때문이다.
이유는 돈.
높은 등급의 게이트를 취급하는 것이 길드의 주류다보니, 자연스레 명예까지 올라간다.
결국 고(高)등급으로 각성한 각성자들은 그것만 보고 길드에 들어간 것이리라.
“그렇군.”
진도윤은 조금 씁쓸한 얼굴로 차를 홀짝였다.
높은 등급의 게이트를 취급하는 길드에 들어가는 것도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관리국에 들어와 비각성자인 시민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사람보다 돈과 명예를 따라가는 게 당연한 사회라는 게, 좀 씁쓸하네요.”
박성호 역시 안타까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낮은 등급의 게이트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것이 현 상황.
관리국에 신고 센터를 설립한 것도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길드는 관리국에게 낮은 등급을 맡겨버리고, A~B등급 게이트를 취급한다.
A~B는 게이트는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신고할 것도 없이, 길드에서 자리싸움이랍시고 게이트를 선점하기 위해 매일같이 경쟁한다.
“그보다, 인재가 없다면 한태현 각성자를 섭외하는 건 어떤가?”
“···부장님. 슬슬 그 각성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시는 게 어떤지.”
박성호는 곤란한 얼굴로 멋쩍게 웃었다.
그는 확실히 전 세계에서 6번째로 등장한 불분명 각성자다.
2번째로 불분명 각성자로 태양의 힘을 다루는 알드레드 프레드.
4번째 불분명 각성자로 어둠의 힘을 다루는 나리유키 코타로.
괴물같은 능력을 가진 불분명 각성자.
하지만, 한태현은 이상하게도 모든 능력들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수치가 나왔다.
6개월간 진행한 결과,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계속 지켜보자고, 뒤늦게 각성할지도 모른다고 등등 많은 말이 나왔지만, 관리국이나 길드나 사실상 포기했다.
“이봐. 지금 관리국에 있는 인재들을 누가 스카웃했는지 기억하나?”
“···부장님이시죠.”
인사과의 전설.
유능한 인재들은 대거 진도윤의 손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한태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6개월이라는 시간이 허투루 흘러가자, 단번에 미운털이 박혔지만 말이다.
사람이란 게 99를 잘해도 1을 못하면, 온갖 힐난과 힐책을 받더라.
특히 진도윤은 더 심했다.
그만큼 그를 질투하는 이가 많았다는 증거였다.
“나는 아직 한태현 각성자를 포기하지 않았어.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히 필요한 존재가 될 거야.”
“그 사람 때문에 온갖 비난은 받을 대로 받으신 거 잊으셨습니까?”
“하하, 그건 괜찮아. 어쨌거나 한태현 각성자는 무조건 관리국으로 끌어들여야 돼. 알았어?”
“······.”
박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거 팀에 한태현을 꽂아 넣은 것도, 진도윤의 짓이다.
6개월간 정밀 검사 이후에도 계속 몰래 주시하는 것도 진도윤이 지시한 것이다.
그도 진도윤처럼 한태현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도박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찾으라고.
진도윤은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일을 봐야겠어. 내일은 의문의 사나이를 꼭 잡아주길 바라네.”
“걱정 마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