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변종(2)
*
[이틀 연속 보이지 않는 의문의 사나이, 그는 어디로?]
[현재 E급 게이트가 대거 등장했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복면인.]
태현은 튜토리얼을 완료한 뒤, E급 게이트를 클리어 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튜토리얼만큼 많은 경험치를 얻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30레벨이 넘어가면서 튜토리얼조차 성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D급 이상의 던전을 취급해야 한다는 것.
그는 무의미한 기사들을 뒤적이다가 하나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클릭했다.
그곳에는 기사와 마찬가지로 의문의 사나이에 대해서 다루는 글이 매우 많았다.
[제목 : 의문의 사나이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
-복면인 : 그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기다리면 누가 가냐? ㅈ밥들아~
이게 아니고서야 잘만 나타나던 사람이 종적을 감추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함.
여러분들도 ㅇㅈ하는 부분?
ㄴ미친 ㅋㅋ 꼴값을 떨어요. 아주.ㄴ관심 못 받으면, 죽을병이라도 걸렸냐?
ㄴ아으, 말투 진짜 꼴 뵈기 싫다.
ㄴ그보다 복면 쓴 놈이 사람이 맞긴 하냐? 솔직히 나는 새로운 몬스터라고 봄.
ㄴ피해를 주지 않는 몬스터가 등장했다?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냐.
‘에라이···.’
태현은 휴대폰을 끄고는 집어던졌다.
참 영양가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케어가 필요해.
지금 복잡해진 마음을 케어하기 위해 정리 된 통장을 펼쳤다.
[현재 잔액 : 22,657,200원]
금화 11개와 E급 거대 마정석 3개를 판매하면서 잔액이 2,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2달동안 수거 팀으로 일하면서 모아둔 돈이 900만원이었던 것으로 보아 2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다.
확실히 레이드를 뛰는 각성자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번다더니.
그게 사실이었다.
아마 길드에 소속되어 활약하는 헌터들은 1,000만원은 돈도 아닐 것이다.
그는 지갑에 넣어둔 등록증을 꺼냈다.
‘D급···.’
관리국은 그에게 E급이 아닌, D급의 등록증을 발급해주었다.
마치 마지막 선물이라는 듯.
그로써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D급 각성자는 정부에서 매달 100만원이라는 금액을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각종 혜택을 받을 수도 있었다.
‘20대 중반에 100만원이 연금처럼 다박다박 나온다는 건, 엄청난 거지.’
비각성자에게는 꿈도 못 꿀 혜택.
그 역시 각성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 꿈과 같았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각성까지 했고, D등급이라는 등록증까지 있다.
관리국, 길드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소수정예로 이루어진 파티에 용병으로 참가할 수도 있고, 짐꾼으로도 돈을 벌 수 있으며, 일반 기업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상상도 못 할 가산점까지 부여받을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멈추더라도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성장은 계속 거듭할 수 있고, 아직 제대로 된 능력조차 발현되지 않았다.
‘현재에 안주했다간 조진다.’
그가 힘을 얻으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복수다.
몬스터들을 박멸하는 것.
그렇기에 그는 계속해서 성장해야만 한다.
다시 마음에 불이 붙었는지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군.’
하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병사의 목소리에 불은 금세 사라졌다.
태현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말해.’
‘옆에 붙어 조사하라고 하셨던 인물에 대해서 보고 드립니다.’
‘그래.’
그는 튜토리얼을 완료하자마자 임지성에게 2성 자객을 붙였다.
게이트를 클리어하겠답시고, D급 게이트 허가권을 받아오는 과정.
파티를 구하기 위해 사이트에 가입해서 인원을 모으는 과정.
‘오늘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중인데?’
‘서천입니다.’
‘충남?’
‘예.’
충남 서천이라.
그는 각성자로 등록하면서 추가로 가입된 네비게이션 정보를 열었다.
서천에는 D급 게이트가 무수하게 많았고, 오늘 클리어 할 파티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
D급 게이트 허가권은 말 그대로 D급 게이트를 자유롭게 1회 출입할 수 있는 표였다.
장소가 정확하게 지정된 것이 아니라서 그가 어디로 향할지는 두고 봐야 안다.
‘이 놈은 왜 서천으로 가는 거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서천까지 움직인다니?
그것도 D급 게이트 하나를 보고?
그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계속 붙어. 들키지 말고.’
‘주의하겠습니다.’
임지성은 C급이다.
그리고 파티원들도 대부분 C~D.
2성 자객이라도 들킬 가능성이 높은 미행이 된다는 것이다.
태현은 자객의 보고가 끝나자 임지성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연결음은 7번 정도 울려서야 사라졌다.
-어. 여보세요?
-너 어디냐?
-그건 왜?
-파티 나도 껴달라니까?
-싫다니까?
-시x. 너. 후회한다? 가지 마라.
-응. 알겠으니까 끊어라. 일 있다.
-뭔 일?
-몰라도 돼. 어쨌거나 이번 주 주말에 시간 되면 술이나 한 잔 하자. 콜?
-됐고. 난 분명 말했다? 너 후회한다고?
-알았다니까!
뚝.
전화가 끊어졌다.
태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미친놈, 가면 뒈진다고.’
*
임지성은 전화를 끊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파티원들은 자리에 누워 눈을 붙이는 중이다.
딱 한 명을 빼고.
“좀 자두지 그래?”
“됐어. 잠이 안 와.”
“게이트 위치는 찾았어?”
임지성과 파티원 7명은 현재 서천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수도권이나 경기권은 D급 이상의 게이트는 경쟁자가 매우 치열했다.
강원지역도 그 외 대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지역들은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의 행적이 잦은 곳에서 게이트가 주로 발생했는데,
그래서 파티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지방으로 내려간다.
오죽하면, 지방에 자리를 잡고, 파티를 고정적으로 돌리는 이들도 다수 존재했다.
“그나마 괜찮은 곳을 따내긴 했는데, 위치를 정확히 모르겠어. 가봐야 될 것 같아.”
그를 제외하고, 잠에 들지 않고 게이트의 정보를 열심히 찾고 있는 그녀.
유지아가 헌터 워치를 내밀었다.
워치는 금덕리 내에서도 하나의 산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게 끝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임지성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괜히 헬이라 불리는 게 아니구나.”
게이트 건수를 따내는 건, 지방이라고 하더라도 쉽지 않다.
겨우 따내는 것도 위치만 대강 알려줄 뿐.
정확한 위치는 발품을 팔아 해결해야만 했다.
첫 게이트 건이다 보니 실수가 잦았고, 머리가 여러모로 복잡했다.
“머리카락 쥐어뜯지 마. 탈모 온다.”
“···탈모 아니야.”
“아니야. 너 두피 만져보면 뜨겁지 않아?”
임지성은 놀란 눈으로 손가락으로 머리를 군데군데 눌렀다.
약간 따뜻한 것 같기도 하고?
유지아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
“구라야. 눈으로 봐서 어떻게 아냐?”
“···야.”
“그런데 두상을 보니까 M자 탈모가···.”
“그만 놀려라.”
“알았어. 그러니까 긴장 좀 풀어.”
그녀는 킥킥 웃고는 가방에서 안대를 하나 꺼냈다.
안대를 쓰고, 눈을 붙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임지성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시x··· 어떻게 알았지?’
사실 그는 M자 탈모 초기 상태다.
23살 때 생긴 것이며 탈모에 좋다는 샴푸만 골라 쓰고, 병원에 다니며 철저히 관리를 하는 중이다.
그녀는 장난이라고 놀렸지만, 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남자의 자존심인 머리가 사라진다?
생각할수록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 그러고 보니.”
“헉! 어?”
“뭘 그렇게 놀래?”
유지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는 식은땀을 훔치며 멋쩍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뭔데?”
“전화는 누구야? 파티 이야기 나오던데.”
아무래도 전화소리가 옆에까지 들렸나보다.
사실대로 말해줄까?
고민하던 임지성은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아는 친구 있는데, 파티 좀 껴달라고 해서.”
“그래? 그럼 끼지 그랬어.”
“됐어. 그 친구는 나중에 끼면 돼.”
지금 던전은 D급.
비록 자신이 C급이라고 하더라도, 아직은 초보자에 불과하다.
E급인 한태현을 케어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거절했다.
만약 미래에도 한태현이 파티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면, 그때 진지하게 고민해 봐도 늦지 않다.
유지아는 임지성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자 조용히 안대를 다시 썼다.
‘휴··· 후회한다고?’
임지성은 태현의 말을 곱씹었다.
그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나왔기에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
D급 게이트는 조그마한 산꼭대기에 있었다.
웃으며 열심히 발을 놀린 파티원들은 게이트가 발견되자 긴장한 얼굴로 앞에 섰다.
“이게 D급 게이트.”
“E급만 2번 들어가 봤던 게 전부인데.”
“그래도 파티장님을 포함해서 C급 각성자가 2명이니까 충분히 승산이 있어요.”
끄덕.
임지성과 유지아.
C급 각성자가 2명에 D급 각성자 6명.
D급 게이트정도야 우습게 깰 수 있을만한 전력이다.
비록 이들이 초보자라고 하지만, 전력부터 압도적이니 클리어는 무난할 것이다.
“그럼 들어갑시다!”
임지성이 선두에 서서 이들을 지휘했다.
파티원들은 그의 말에 힘을 받고, 힘찬 발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그리고 게이트는 마찬가지로 지금 올라온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와야 할 터.
구르르르.
“뒤에 몬스터!”
유지아가 마력이 실린 표창을 급히 던졌다.
몬스터는 마치 콩벌레를 연상시키는 괴수였다.
몸집은 얼마나 큰지, 몸길이가 2m는 족히 되어보였다.
“도와줄게!”
임지성의 손에서 야구공만한 파이어 볼이 쏘아졌다.
마법 계열 헌터인 그가 마법을 사용하자, 탱커가 방패를 치켜들고 그대로 돌진했다.
“탱커한테 힐을 몰아주세요!”
“네!”
초보자임에도 불구하고, 얼추 합이 맞아 떨어지는 모습.
파티원들은 계속 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몬스터는 그대로 움직임이 멎었다.
입에서 녹색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좋아!”
파티원 중 탱커가 땀을 닦으며 브이 표시를 했다.
임지성은 엄지를 들어 그들을 칭찬했는데, 유지아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여기 D급 맞지? 왜 몬스터가···.”
처음 등장하는 몬스터는 대게 약하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첫 등장하는 몬스터는 1~2합에 끝나야 정상.
그런데 방금 상대한 몬스터는 거의 보스 급에 준하는 몬스터였다.
그러니 이상했다.
그제야 임지성도, 파티원들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어··· 몬스터···!”
그 때, 한 명의 파티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의 시선이 몬스터로 향했다.
“이게 무슨···.”
탱커 포지션으로 나섰던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방금 상대했던 몬스터 30마리가 일렬로 도열해있는 광경.
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이들의 전력으로는 기껏해야 3마리를 동시 상대할 수 있을 정도.
30마리는 무리였다.
“빨리 입구로 도망쳐요!”
임지성이 급히 외쳤다.
입구만 빠져나가면, 몬스터는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물거품이었다.
게이트 안에 들어온 이상 클리어 전까지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
그리고 몬스터들은 이미 입구 쪽으로 굴러가서는 아예 막아버렸다.
“젠장···.”
“이대로 죽는 거냐···.”
“안 돼··· 아직 죽고 싶지 않아···.”
공황에 빠진 파티원들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방심했다.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말았다.
임지성이 주먹을 세게 쥐었다.
‘태현이 말을 듣고 빠졌더라면···.’
그렇다면 파티원들은 무사했을 것이다.
판단 미스.
그에게 이유라도 물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니.
코웃음을 치고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들을 구해야만 한다.
“일단 상대합시다! 이대로 가다간 전부 죽어요!”
“네? 그건···.”
“무, 무리입니다···.”
파티원들이 손을 뻗기도 전에 임지성이 몸을 날렸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번다면, 누군가 구해줄지도 모르는 일.
희박하지만,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전격 마법을 준비해서 입구를 가로막은 몬스터에게 쏘아댔다.
C급임에도 2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가능한 마법이다.
하지만, 그 몬스터는 고통에 비명만 지를 뿐.
쓰러졌다가 금세 일어났다.
임지성이 다시 마법을 퍼부었다.
그럴 때마다 마력의 소요가 엄청났고, 어느덧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좀 죽어! 새끼들아!”
임지성이 소리를 빽 지르자, 몬스터들이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파티원들은 입구를 철벽같이 지키는 몬스터 덕에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대로 끝이냐···.’
절대절명 위기에 놓인 상황.
설마하니 8명의 파티가 D급 게이트에서 전멸할 위기에 놓일 줄은 몰랐다.
“으아악!”
“살려줘!”
무기를 들고 발버둥치는 그들을 보며 임지성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차마 볼 수 없었는지 그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유지아는 최선을 다해 그들의 곁을 지켰지만, 이제 한계다.
그녀의 몸에 생채기가 셀 수 없을 정도다.
“끄아악!”
그 와중에 그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던 탱커의 팔이 찢겨나갔다.
다른 파티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탱커만큼은 아니지만, 살이 찢어지거나 내장이 상하면서 피를 한 움큼 토하는 이들도 있었다.
쾅!
그 때, 입구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어?”
고개를 떨궜던 임지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확인했다.
그 앞에는 몬스터 3마리가 바닥에 처 박혀있었고, 복면을 쓴 남자 1명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