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살인귀(2)
*
게이트를 누가 독점했는지.
오늘 클리어 할 이들은 누구인지.
그런 간단한 정보들은 자객들이 충분히 입수가 가능했다.
입소문이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고, 그에 관련된 인물들을 찾아 추적하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등장한 살인귀처럼 흐릿한 정보는 입수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3성 자객들도 살인귀의 정보를 캐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이냐?’
‘죄송합니다. 복면인을 찾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경로를 따라가 봐도, 행방이 묘연하다.
이렇게까지 기척을 숨기고 다니는 것이 가능할 줄이야.
한심하게도 자객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밝혀낼 재간이 없었다.
‘후우··· 하데스를 이용해야겠네.’
아이템만이 아닌, 정보까지 사고 팔리는 사이트.
태현은 어쩔 수 없이 돈을 쓰기로 했다.
정보를 사기 위해서는 그만한 값을 지불해야 하는 법.
그런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기간인데, 살인귀에 대한 정보가 벌써 올라왔을까?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켰다.
평소처럼 사이트를 입력하고, 들어가는 방법.
“오늘도 주소가 바뀌었네.”
해외에서 운영되는 사이트.
물론 기술이 발전하다보니 한국어로 정확하게 번역이 되어있어 이용에 불편함은 없었다.
화면에는 평소와 같은 사이트 대신에 바뀐 주소가 표기되어있었다.
일전에 게이트에 대한 정보 하나를 구입하면서 익명 회원으로 등록했기 때문에 뜨는 것이다.
“바꾸지 않아도 될 텐데. 어차피 걸릴 것도 없으면서.”
암묵적으로 동의하에 운영되는 사이트.
물론 관리국이나 길드에 종사하는 이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게 흠이다.
그래서 소수의 S, A급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파티를 돌면서 드롭 된 아이템을 팔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데스의 익숙한 화면이 아닌, 다른 검은 화면이 주르륵 떴다.
태현이 당황한 눈으로 컴퓨터를 살폈다.
설마 해킹당한 건가?
그 때, 하나의 메시지가 떴다.
[킹의 레벨이 65를 초과했습니다.]
[시크릿 시스템 오픈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킹의 상점'이 오픈됩니다.]
-레벨이 65를 넘은 뒤로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상점이 오픈이 되었습니다.
-컴퓨터로 상점의 정보가 로딩 됩니다.
-원래 이용하던 사이트의 캐시가 킹의 상점으로 이전됩니다. 아이템, 정보 등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기타 소모품, 퀘스트의 재료 또한 판매합니다.
“킹의 상점?”
메시지를 읽자, 검은 화면에서 이전에 보았던 익숙한 화면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하데스라 적혀있어야 될 화면은 킹이라고 바뀌어있었다.
평소처럼 정보탭에 들어가 판매에 들어가니, 방금 올라온 따끈따끈한 판매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의문의 사나이에 대한 판매 글.
[의문의 사나이에 대한 정보 판매]
-일반 시민을 살해하는 의문의 사나이에 대한 정보.
놈이 나타날 때마다 공통점이 발견되었음.
그에 대한 정보를 판매합니다.
-가격 : 2,500,000원.
'250만원이면, 투자할 만 하지.’
태현은 망설임없이 구매 아이콘을 클릭했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기에는 왠지 찝찝하니까.
사이트에서 이전 된 캐시가 빠져나가서야 정보가 공개되었다.
[의문의 사나이에 대한 정보]
-의문의 사나이가 등장할 때마다 랜덤 지역으로 게이트가 발생되는 것을 확인했음.
본인은 특이체질로 게이트를 감각으로 느낄 수 있음.
물론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지는 못 함.
지금까지 의문의 사나이가 만들어낸 사건은 전부 서울에서 발생했고, 그 근처로 게이트가 추가로 생성되었음.
그런데 그 안에서는 몬스터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음.
의문의 사나이와 게이트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살인을 마치고 놈이 사라지면서 게이트에 사람의 기운이 느껴짐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는 것임.
그래서 정확한 위치를 찾기도 전에 게이트가 사라짐.
위치 제공은 할 수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림.
‘흐음.’
게이트라.
살인귀와 게이트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
그렇다면, 설마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인가?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위험을 감지하고는 곧바로 사라짐과 동시에 게이트가 닫힌다.
지금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스킬과 아주 유사했다.
“이 정보대로라면,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말이 되지.”
퀘스트는 분명 살인귀를 처단하라고 했지.
몬스터를 처단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분명 사람을 죽인 것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보대로 게이트.
즉,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 놈일 확률이 매우 높다.
‘후우,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30명도 되지 않는 인원으로 그 짧은 순간에 게이트를 어떻게 찾아낸다?’
살인귀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지는 것은 불과 5분 내외.
그 안에 찾아 살인귀의 공간이 사라지기 전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최대한 많은 인원들에게 이 정보를 흘리는 수밖에.
태현은 곧장 임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성아 바쁘냐?
-아니. 널널해. 말해.
-미안한데 물건 하나만 관리국 진도윤 부장한테 전해줄 수 있냐?
-물건? 뭔 물건?
-의문의 사나이에 대한 정보.
-뭐!? 그걸 찾았어? 어떻게?
-다 방법이 있지. 어쨌거나 수하 한 명 보낼 테니까 받는 대로 전달 좀 해주라.
-알았다.
관리국에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진도윤 하나.
적어도 태현에게는 그랬다.
그는 자객에게 쪽지를 쓰게 시키고는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나머지는 서울 근처를 샅샅이 뒤져보고, 근처에서 대기해. 분명 다시 나타날 거다.”
살인귀가 언제 다시 등장할지 모르는 이 때.
관리국 헌터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하들은 ‘알겠습니다.’를 외치고, 즉시 집을 빠져나갔다.
*
관리국 신고센터는 여러모로 바빴다.
의문의 사나이로 인해 빗발치는 항의 때문이었다.
동영상에는 각성자가 비각성자를 살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것만으로도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센터장 진도윤 역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가 전화로 헌터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
똑. 똑.
센터장실의 문을 노크하는 이가 있었다.
하동주는 급했는지 노크를 끝내고는 곧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깐만 기다려봐··· 무슨 일이야?”
“저··· 급히 보고드릴 게 있어서요.”
관리국에서 일한지 1년.
아직 그에게서 신입사원의 딱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진도윤은 그런 하동주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떤 보고를 해야하기에 저렇게 급히 들어올까?
“말해.”
“의문의 사나이에 대해 신고하겠다는 이가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뭐? 알았어. 빨리 들어오시라고 해!”
진도윤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헌터들에게 일단 대기하라고 지시하고, 들어오는 이를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센터장님.”
“임지성 헌터님이셨군요. 일단 앉으시죠.”
“배려 감사합니다.”
임지성은 자리에 앉았고, 진도윤도 자리에 앉았다.
그는 곧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는 모습.
진도윤은 이게 뭐냐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이게 뭐죠?”
“의문의 사나이에 대한 정보입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아니··· 그보다 이걸 어디서 구해 오셨습니까?”
그가 이런 정보를 어떻게 얻은 거지?
C급 각성자로 등록된 임지성이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온 물건은 아닐 것이다.
그는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저를 구해주었던 의문의 사나이가 건넨 겁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진도윤의 눈이 커졌다.
임지성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네. 지금 등장하는 의문의 사나이는 자신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목적은 철저히 몬스터의 박멸. 사람은 절대로 해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이걸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자신 역시 의문의 사나이를 잡겠지만, 관리국이나 길드에서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음···.”
“이걸 드리려고 온 거에요. 이제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러시죠.”
진도윤은 차마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의문의 사나이가 건넨 쪽지가 사실이라는 건데.
‘의문의 사나이···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
살인귀가 등장한지 일주일하고도 2일이 지났다.
살인사건이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것이 2일 전.
서울 한적한 거리에서
1명의 20대 남성이 술에 취한 듯,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니x, 씨x. 사는 게 왜 이렇게 x같냐.”
벌써 대기업에 서류 광탈만 8번이다.
어디 대기업을 넣어도, 서류조차 합격하지 못하는 건 변함없었다.
그렇게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원자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학력이었다.
“각성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생이 너무 비루했다.
학력 따위 필요 없는 각성자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비각성자는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이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그래서 그럴까?
오늘따라 각성자들이 부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띠리링~
와중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남자는 어지러운 와중에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너, 또 술 마셨냐?
-뭐야··· 형이냐?
-이 새끼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이번에 서류결과 어떻게 됐냐? 붙었어?
서류결과라는 말이 나오자 가슴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안 그래도 쌓였던 스트레스 때문에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데.
남자는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뚝 뚝 떨어트렸다.
-시x. 또 떨어졌다. 나는 뭘 해도 안 될 새끼인가 봐.
-···뭘 안 돼? 요즘엔 괜찮은 중소나 중견기업이 많다더라. 대기업만 좋은 직장인 거 아니잖아. 아니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을 노려보는 것도.
-했어··· 넣을 때마다 다 같이 넣었는데, 다 떨어졌어.
-어휴··· 그래서 술을 그렇게 처먹었냐? 병x새끼 진짜.
-그래~ 나 병x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냥 나가 뒈질까? 옥상에서 확 뛰어내려?
“죽여줄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
남자가 등을 돌렸다.
어지러워서 그런가?
손에 힘이 풀리면서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탁.
-야! 야!
휴대폰에는 다급한 목소리가 작게나마 들려왔다.
남자는 어느새 휴대폰에 신경을 끄고, 앞에 있는 이에게 집중했다.
“뭐야~ 얼굴은 왜 가렸어?”
복면을 써서 그런지 눈과 입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가려져있었다.
남자는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가득 차올랐다.
“······.”
“뭐야?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죽고 싶냐?”
끄덕.
왜일까?
복면을 쓴 남자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것 같았다.
남자는 배 째라는 식으로 그를 향해 가슴을 들이밀었다.
“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
말이 먹힌 것일까?
복면인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남자는 그 모습에 히죽 웃었다.
“쫄리지? 그냥 곱게 가라.”
“······.”
복면인이 다시금 웃었다.
괴이하게 일그러진 모습은 그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놈은 미소와 함께 품 안에 날카로운 단도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일반 단도와는 다르게 바람이 단도의 끝에 머물렀다.
비각성자인 남자에게도 느껴질 정도의 강한 풍압.
“뭐··· 뭐야.”
남자는 그제야 위험을 감지했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임에도 정신을 번뜩이게 만드는 광경.
그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뒷걸음질 쳤다.
“어디가.”
복면인의 입꼬리는 어느새 귀까지 걸린 상태다.
그가 남자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으아악!”
자신에게로 쇄도하는 날카로운 단도의 모습에 비명이 터졌다.
복면을 쓴 이의 손에는 어떠한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 마냥.
남자가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창!
“으윽···.”
고통은 없었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두 팔을 내렸다.
그리고 앞에는 어떤 복면을 쓴 이가 단검으로 단도를 막아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헤에~ 넌 누구?”
복면인은 검붉은 복면을 찬 이에게 흥미를 보였다.
검붉은 복면인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았다.
“너, 30초 줄 테니 내 눈앞에서 당장 사라져.”
“네··· 네!”
남자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풀린 다리를 일으켜 세우고, 떨어트린 휴대폰을 손에 쥐고는 곧장 달아났다.
술에 취했음에도 자기 물건을 챙기는 모습.
검붉은 복면인은 다시금 복면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누구냐?”
“자신의 이름부터 밝히는 게 예의 아닐까?”
“죽어라.”
검붉은 복면인이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단검은 복면인을 베어내지 못했다.
“사라졌다···?”
복면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검붉은 복면인, 3성 자객은 곧바로 태현에게 보고를 올렸다.
‘주군, 갑자기 모습을 감췄습니다.’
‘복귀해.’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