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20화 (20/160)

6화 살인귀(3)

*

2일 전.

진도윤은 임지성이 놓고 간 쪽지를 펼쳤다.

이 쪽지가 정말 의문의 사나이가 남긴 거라면, 어째서 임지성 각성자를 통해 자신에게 전달한 걸까?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지금 살인사건의 범인인 의문의 사나이는 제가 아닙니다.

저로 가장해서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놈은 저로 사칭한 살인귀입니다.

그 놈은 제가 3일 내로 반드시 잡아들일 겁니다.

사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잡아들이려고 했지만, 괜한 오해를 받는 건 사절이거든요.

그래서 부탁을 드립니다.

관리국에서 3일정도 치안을 강화해주세요.

살인귀는 3일 내로 다시 나타나서 사람을 살해할 것이니,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쪽지의 내용은 이게 다였다.

“허··· 이걸 믿어야 하나···.”

진도윤은 고민됐다.

의문의 사나이라고 밝힌 쪽지의 주인은 치안을 더욱 강화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을 사칭한 살인귀는 반드시 잡아들이겠다는 말과 함께.

그는 임지성이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의문의 사나이는 던전에서 임지성을 구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비각성자인 작업자까지 구했고, 불법이지만 게이트까지 소멸시키는 공을 세웠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진도윤이 급히 센터장실을 빠져나갔다.

“센터장님? 왜 그러십니까?”

하동주가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는지 급히 따라붙었다.

아무래도 보고할 것이 있었나보다.

“말해.”

눈치가 빠른 진도윤이다보니 그의 용건을 물었다.

하동주는 익숙한 태도로 천천히 보고하기 시작했다.

“연화 길드에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연화 측도 각성자들을 욕 먹이는 의문의 사나이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네요.”

“좋아. 그러면 관리국 헌터들과 연화에서 보내주는 헌터들을 빨리 파견시킬 수 있도록 하자.”

“파견이요?”

“서울 전 지역에 헌터들을 파견해서 치안을 강화할 테니 모두 모일 수 있도록 하자.”

“네··· 네!”

아무래도 임지성이 무슨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동주는 진도윤이 실마리를 잡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도윤은 그 말을 끝으로 급히 관리과로 향했다.

*

[남은 시간 : 29:00:17]

29시간을 남겼을 때, 드디어 입질이 왔다.

의문의 사나이가 술에 취한 20대 남성을 노리고 있다는 정보.

3성 자객이 의문의 사나이와 대치중인 것으로 보아, 그리 높은 등급을 가진 놈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태현은 곧장 외출 준비를 마치고, 급히 집을 빠져나갔다.

분명 구입했던 정보대로라면, 게이트가 오픈이 되어야 될 텐데.

‘···게이트가 어디서 오픈되는 것도 알려주면 좀 좋아?’

위치까지는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웠다.

그렇지만 풀어놓았던 자객에게서 보고가 왔다는 것은 게이트 역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쯤이면 헌터들도 서울 전 지역을 수호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4성 기사가 보고를 올리겠다며 신호를 보내왔다.

‘어. 말해.’

‘주군. 근처를 수색하는 와중에 새로운 게이트가 생성된 것을 보았습니다.’

‘뭐? 언제 생성됐는데?’

‘1분 전입니다.’

1분 전이라.

기사에게서 받은 장소와 자객이 의문의 사나이를 마주쳤다는 시간까지 더하면, 그 게이트가 확실하다.

태현은 늦기 전에 기사가 있는 장소로 급히 이동했다.

“이건가?”

“맞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게이트.

다른 게이트와 비교적 작은 크기.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에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거다.

‘주군, 갑자기 모습을 감췄습니다.’

‘그래.’

자객의 보고가 들려오자 게이트가 급격하게 작아지기 시작했다.

살인귀가 살인에 실패하자, 급히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는 망설일 것 없이 게이트에 진입했다.

‘저 놈이군.’

게이트 안의 정체는 작은 미술관이었다.

그리고 동영상에서 보았던 복면을 쓴 살인귀가 식은땀을 흘리며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각성하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능력에 대한 사용도 미숙한 듯 했다.

저걸로 확신했다.

저 스킬은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살인귀는 1번 왕복한 것만으로도 곧바로 쓰러질 듯, 위태로워보였다.

태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어딜 그렇게 가?”

“!”

그의 목소리에 살인귀가 급히 등을 돌렸다.

그 눈에는 놀라움과 당황이 섞여있었다.

“어떻게 들어왔지? 여긴 내 공간···.”

“그게 뭐가 중요하지? 넌 오늘 여기서 뒤질 건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는 태현의 모습에 살인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지?’

자신이 등장했다가 사라진 것은 아무리 길게 쳐줘도 3분이다.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능력을 간파하고, 침입했다는 건가?

“큭큭, 좋아. 넌 여기서 죽여주마.”

일그러졌던 얼굴이 미소로 번졌다.

1:1의 싸움.

차원을 이용해 만들어낸 공간의 스킬은 A급.

신체 능력치나 전투 능력은 C급이지만, 그에게는 A급이라는 스킬이 있었다.

이 공간에서 자신의 능력치는 50%가 추가로 향상되는 보정을 받는다.

즉, 여기는 그에게 있어 최적화된 장소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태현의 능력.

그는 3, 4성 병사들을 전부 소환했다.

10명이 넘는 인원.

갑자기 늘어난 인원에 살인귀가 적잖이 당황했다.

“뭐야···? 갑자기 무슨 사람들이.”

“뭐긴. 네 목을 친히 따 줄 사람들이지.”

“···젠장.”

능력치 50% 추가 향상이라는 보정을 받더라도, 이 정도 인원을 상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A급 스킬을 사용하면서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직접 각성해서 얻은 게 아니다보니 신체에 무리가 심하게 갔다.

지금은 휴식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지. 한 번 더 사용할 수밖에.’

판단을 마친 살인귀가 급히 몸을 틀었다.

“어디를.”

3성 자객이 빠른 속도로 표창을 던져 그의 움직임을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표창은 애꿎은 벽을 때렸고, 살인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설마 여기서도 사라질 수 있을 줄은 몰랐네.”

태현은 그 말과 함께, 안으로 움직였다.

아마 그의 생각이 맞다면, 서로 다른 공간을 오갈 수 있는 스킬은 그만한 부작용이 따를 것이다.

이런 스킬은 초월적인 능력으로 분류되는 만큼, 그만큼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간다.”

“네.”

수하들도 그를 따라 안으로 이동했다.

‘뭐가 이리 으스스해?’

보자마자 드는 생각.

정체모를 그림들이 주위에 난잡하게 걸려있는데, 전부 새빨간 피로 물든 흉측한 그림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의 신체를 해부하거나, 피로만 덕지덕지 칠해져 있는 그림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 뒤에서 날카로운 파동음이 느껴졌다.

태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접었다.

쉬이이익!

쾅!

파동음을 만들어낸 물체가 태현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바닥에 처박혔다.

자세히 보니 화살이었다.

화살로 이정도의 파동음을 만들어 내다니.

태현은 급히 수하들을 소환했다.

“쫓아.”

자객 3명이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향했다.

“주군. 여기 복면을 쓴 자가 있습니다.”

“그래?”

어느새 3성 자객 3명이 복면인 하나를 제압해서는 그를 끌고 왔다.

왠지 힘없이 질질 끌려오는 것이 영 이상했다.

태현은 복면인에게 다가가 복면을 벗겼다.

“설마 인형인가?”

목각인형.

지금 눈앞에 보이는 복면인은 목각 인형이다.

살인귀가 정교하게 조각해놓은 목각 인형.

쉬이이익!

그 순간, 다시금 들려오는 파동음.

4성 마법사가 방어막을 펼치면서 화살을 막아냈다.

방어막이 약간 훼손될 정도의 강한 파괴력.

자객은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단검을 던졌다.

다른 2명의 자객은 어느새 그 주위를 에워쌌다.

‘아니, 저것도 목각 인형이다.’

적이 떡하니 서있는데, 대놓고 저 거리에서 화살을 쏠 리가 없지.

아무래도 아까 전에 날라 왔던 화살도, 지금의 화살도, 목각 인형을 통해 설치한 것 같다.

목각 인형의 입이 벌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입에서 쏘아진 것으로 보인다.

“계속 전진한다. 방어막은 계속 유지해줘.”

“알겠습니다. 주군.”

*

“방금 뭐였지?”

방금 게이트가 사라졌던 공원.

그 앞에서 하동주가 발을 동동 굴렀다.

10분 전, 연화 길드의 헌터 한 명과 근처를 수색하던 중, 게이트와 비싼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웬 남자가 하나 툭 튀어나오더니, 게이트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게이트는 남자가 들어가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이젠 헛것이 다 보이네··· 기가 허한가.”

그게 아니라면 이런 헛것이 보일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몸을 돌렸을 때.

의문의 사나이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는 것이 뇌리를 스쳤다.

“맞아··· 의문의 사나이.”

하동주는 급히 휴대폰을 켰다.

이전에 올라왔던 의문의 사나이에 대한 기사들.

그는 하나씩 열어서 훑었다.

의문의 사나이가 등장했고, 그가 게이트에 들어가자마자 게이트가 소멸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방금 헛것을 본 게 아니라 의문의 사나이를 본 거였어?”

하동주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탁! 잡았다.

“으악!”

하동주가 깜짝 놀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동주 사원님! 갑자기 어디로 사라지셨나 했는데, 왜 여기 계세요?”

다행이도 그 정체는 같이 수색을 진행하던 연화의 길드원이었다.

그녀는 난데없이 사라졌던 하동주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요.”

하동주는 자신이 보았던 일을 그대로 설명했다.

길드원은 의심스런 눈으로 그를 보았지만, 이마에 흐르고 있는 식은땀과 놀란 얼굴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 했다.

“거짓말은 아닌 거 같네요···. 알겠어요. 그러면 일단 위에 보고부터 하죠.”

“네··· 네. 빨리 보고해야겠네요.”

“제가 할게요.”

연화의 길드원은 휴대폰을 꺼내고는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금 있었던 일과 기사에 대해 보고를 하기 위해서.

*

안으로 진입하면서 목각 인형은 추가로 4기가 더 발견되었다.

‘꽤 넓네?’

살인귀가 만든 공간치고는 생각보다 넓었다.

‘놈은 이미 한계야.’

태현은 직감했다.

의문의 사나이를 사칭했던 살인귀는 부작용으로 인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통은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똑똑히 보았다.

살인귀가 굉장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그건 공간과 바깥을 오가는 게 신체에 무리가 상당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 이 곳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막다른 길이군.”

더 이상의 길은 없었다.

막다른 벽에는 거대한 그림판 하나가 전시되어있었다.

중년 남성의 목이 비틀어진 모습.

태현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전부 부숴. 분명 여기 있다.”

이런 거대한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림 뒤에 통로를 만들어두었을지도 모르는 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태현이 수하들에게 명령하자, 일제히 그림들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만약 없다면, 수하 몇 명을 남기고 나가서 수색을 진행하면 된다.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4성 기사가 거대한 그림을 부수자, 하나의 작은 문이 나타났다.

정답이었다.

태현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 안에는 살인귀가 놀란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숨어있었구나?”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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