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21화 (21/160)

6화 살인귀(4)

*

“도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임지성이 중얼거리며 컴퓨터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을만한 곳이 한 군데 있었으니까.

그는 비밀리에 운영되는 사이트.

하데스에 접속했다.

재력이 있는 이들과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

“태현이가 찾을 수 있는 정보라면, 하데스에서도 이미 풀렸다는 건데.”

임지성은 정보를 구입할 수 있는 탭을 클릭해서 마우스 휠을 돌렸다.

그러나 의문의 사나이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간혹 몇 개가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건 태현을 지칭하는 의문의 사나이일 뿐.

사람을 살해하는 살인귀에 대한 정보는 아니었다.

“하데스에서도 없는 정보를 어떻게 찾은 거지.”

신기했다.

온갖 정보통들이 모여서는 정보들을 사고팔고 하는 곳은 하데스가 유일했다.

비싼 정보들은 몇 십억을 호가할 정도로, 아무리 싼 정보들도 1,000만원이 훌쩍 넘었다.

“하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녀석이 어떻게 사.”

정보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하데스 자체에 규정되어있는 최소한의 등급을 넘어야한다.

그 기준이 어떤지는 공개가 되지 않았다.

물품을 구입하고, 신원인증이 확실시 되어야만 구입이 가능하다.

“됐다. 고민해서 뭐하냐. 나중에 정보출처에 대해서 좀 물어봐야겠네.”

의문의 사나이를 잡기 위해 관리국과 연화에서 손을 쓰고 있다고 한다.

살인사건이 마지막으로 일어난 게 2일 전이었으니 곧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의문의 사나이를 잡느냐, 못 잡느냐인데.

태현이 3일간 시간을 달라고 했으니 이번에 등장했을 때, 잡아들이겠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

띠리링.

휴대폰이 벨소리와 함께 진동했다.

임지성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임지성의 얼굴이 다시금 딱딱하게 굳었다.

일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바로 임미정의 전화.

하지만, 지금 전화는 임미정의 전화가 아니었다.

[임요한]

그의 아버지.

고구려 길드의 마스터로 활약하는 S급 헌터.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된다고 하는 S급 헌터가 길드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정상에서 군림하고 있는 길드라고 할 수 있었다.

임지성은 전화를 받기 싫었지만, 손은 자동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각성자들이 도래한 이후, 계속 된 억압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미정이한테 들었다.

-······.

-허튼 짓 그만 하고 들어와.

임요한이 S급이 된 이후로, 임지성은 그에게 반항 한 번 해보질 못 했다.

그럼에도 지금은 반항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싫습니다.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싫다는 말이 나왔다.

-뭐?

임요한도 자신의 명령을 거부할 줄은 몰랐는지 순간 되물었다.

그러나 임지성의 대답은 같았다.

-싫어요··· 투정이 아니고, 더 이상 숨 막히는 곳에서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새끼가···.

-아버지도 저 싫으시잖아요? 제가 꼴도 보기 싫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왔는데, 왜 다시 들어오라고 하시는 거죠?

-···후.

휴대폰 너머 임요한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임지성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잔뜩 긴장한 눈으로 청각에 집중했다.

-···마지막 기회다.

-네?

-돌아와라. 그러지 않는다면, 너는 오늘부로 우리 가족이 아니다.

-······.

임요한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나왔다.

겨우 반항을 한 걸로 남남이라고 선언하다니.

왠지 서글퍼졌다.

임지성은 참담한 심정을 꾹 눌러 담기 위해 입술을 세게 물었다.

‘태현아, 내가 시x 이러고 산다.’

왠지 모르게 한태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이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임지성의 눈빛에 비장한 각오가 서렸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너···.

-아들이니까 최소한의 대우를 해주시는 건 알겠는데요. 다 들었습니다. 가족들한테 저를 지우고 싶다면서요. 집안의 수치라고요?

-······.

-관심이 없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 저 옆방에서 다 들었습니다.

-이 새끼가···.

-끊습니다. 어차피 지금 시대에 호적을 파는 건 불가능 할 테니, 그냥 마음으로 연을 끊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길드장님.

길드장님이라는 단어가 강조되었다.

뚝.

임지성이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진짜 끝났네.’

혹시라도 다시 울리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역시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손으로 눈가를 훑었다.

*

“으··· 이 새끼들이.”

살인귀가 기겁하고는 뒷걸음질 쳤다.

보아하니 이 방 말고는 출구가 없는 듯한데.

태현은 수하들에게 살인귀를 포박할 것을 명령했다.

4성 기사와 4성 마법사가 주축이 되어서 살인귀를 에워쌌다.

기사들은 각기 다른 무기들로 살인귀의 목을 노렸고, 마법사는 마법을, 자객은 단검을, 테이머는 라이그틸로를 소환해서 그를 노려보는 중이다.

“한 가지만 묻자.”

태현은 그 말과 함께 물병을 꺼내서는 주위에 뿌렸다.

피로 떡칠 된 책상과 의자.

책들이 보관되어 있는 책장도.

옆에 비치된 가구들, 칼, 톱, 낫 등 날카로운 무기들도.

하나도 남김없이 뿌렸다.

이렇게 뿌리는 데만 물병이 총 4병이 들어갔다.

그가 행동을 마치고는 다시 살인귀에서 시선을 돌렸다.

“대답해라.”

“뭔데?”

살인귀가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갑자기 순해진다고?

태현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의 속셈이 무엇인지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사람들을 죽인 이유가 뭐냐?”

정말 궁금했다.

이런 좋은 능력을 썩히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몬스터가 아닌.

그것도 비각성자인,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을 죽인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왜 죽였냐고? 죽고 싶어 하니까.”

“뭐?”

순간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살인귀의 눈빛이 변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다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죽지 못해서 산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죽였다?”

“소원을 들어준 것뿐인데? 원하는 대로 해준 게 뭐가 잘못됐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의문의 사나이로 위장한 이유는?”

“별 거 없어. 그냥 능력이 비슷해서 따라했을 뿐이지.”

“대화할 가치가 없네.”

태현은 대화를 포기했다.

혹시라도 무슨 사연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앞에 있는 놈은 그저 정신이 이상한 놈에 불과했다.

그 순간, 태현은 보았다.

살인귀의 입꼬리가 올라가있는 것을.

“하찮은 인간 놈이 이런 깊은 뜻을 이해할 리가 없지. 크흐흐.”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살인귀를 처리하라는 명령.

그걸 끝으로 몸을 돌렸다.

“내가 여기서 죽을 것 같아? 다시 바깥으로··· 우웩···.”

바깥으로 나가려던 살인귀가 피를 토했다.

“신호가 빨리 오네.”

태현은 스테이터스 중에서도 스킬을 열었다.

액티브 스킬에는 ‘독극물 제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무형의 상태에서 스킬레벨에 준하는 독극물을 제조할 수 있는 스킬.

따로 재료도 필요 없는 아주 실용성 있는 스킬이었다.

놈의 신체능력치는 자신보다 떨어지는데다가 신체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그가 만든 독극물은 기체화되면서 치명적인 독가스로 바뀌는 것이다.

수하들과 자신은 4성 마법사의 해독 버프를 받고 있는 상태라 무시했지만, 살인귀는 아니었다.

“우웨엑! 크흐흐! 시x! 겨우 이딴 걸로.”

살인귀는 A급 스킬을 사용하려고 노력했지만, 몸은 그대로였다.

원래 세상으로 이동되지 않았다.

일부러 그와 고분고분 대화를 나눈 것도, 체력을 조금이라도 더 회복하고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끄어억···.”

하지만,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지금 그의 몸은 세포들이 터져나가는 고통에 휩싸인 상태였다.

계속해서 핏물이 차올랐고, 살인귀는 토해내기 바빴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점차 시야가 흐릿해졌다.

코와 귀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팔과 다리의 혈관이 굵게 튀어나왔다.

4성 기사는 움직이지 못하는 살인귀의 목을 가차 없이 베었다.

동맥이 끊어지면서 피가 분수같이 쏟아지는 모습.

“아··· 킹이시여.”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인가?

살인귀는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절명했다.

"뭐?"

이 놈 입에서 킹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다.

태현은 궁금했지만, 이미 끝난 상황이기에 등을 돌렸다.

할 일은 끝났다.

*

살인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도, 책장도, 하나같이 일그러지더니 형태를 잃었다.

일그러졌던 공간은 어느새 원래 있던 장소로 바뀌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합성 시스템 오픈되었습니다.

-전투부대 확장권(+20)이 지급되었습니다.

-성장시도권(1, 2성 한정)(+10)이 지급되었습니다.

[업적 포인트 3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아직 조건이 달성되지 않아, 업적 시스템이 제한됩니다.]

[업적 포인트는 누적됩니다. 소멸되지 않습니다.]

‘보상도 챙겼고. 업적은 아직 모르겠군.’

퀘스트도 완료했는데, 영 기쁘지가 않았다.

결국 사람을 죽이고야 말았으니까.

성장을 위해서, 피해자가 추가로 발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기분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순간, 메시지가 추가로 들려왔다.

[‘에일린의 성문 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

‘응? 에일린의 성문 열쇠라니?’

태현은 추가 보상에 두 눈을 번뜩였다.

“···의문의 사나이!”

그 때, 앞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퀘스트에 신경쓰느라 주위를 살펴보지 못했다.

주위에는 어느덧 각성자들이 진을 쳐서 자신을 포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로 들어가는 것을 들킨 모양인데.

태현은 그냥 귀환할까 고민하다가 간단한 오해정도는 풀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가 싸우지 않겠다는 의도로 두 손을 들었다.

“저··· 저기 바닥에도 의문의 사나이가!”

태현의 앞에는 살인귀가 목이 잘린 채로 처참하게 널브러져있었다.

피로 떡칠 된 몸에 비위가 약한 이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로, 급히 그 곳을 빠져나갔다.

그러던 중, 한 명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연화 길드의 부마스터 채민희였다.

태현은 처음 보는 사람이 앞으로 나옴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범인을 잡았으니 관리국으로 인계해주십시오.”

“이 사람이요?”

촤촤착!

수많은 셔터소리.

끄덕.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민희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증거는요?”

“이 시신을 조사해보시면 답이 나올 겁니다.”

“···일단 당신도 같이 가주셔야겠는데요?”

“흠··· 그건 거절하겠습니다.”

“···그럼 적이라고 간주해도 된다는 건가요?”

“왜 적이라고 간주하죠? 복면인까지 잡아준 사람한테?”

태현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물증이 없으니까요.”

“있습니다. 살인귀 품안에 있는 단도가 있을 테니, 그걸 조사해보면 답 나오잖아요?”

“······.”

그의 말대로 살인귀가 잡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헌터 워치가 울렸다.

채민희의 것이었다.

그녀는 헌터 워치를 켜고는 헌터의 보고를 받았다.

이쪽으로 합류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알았다. 도착하는 대로 합류하도록.

보고가 끝나고, 채민희가 다시 태현을 보았다.

그는 뭐 문제될 거 있냐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의문의 사나이 역시 조사를 받아야할 대상임으로 곱게 보내줄 리는 없었다.

“협조하세요. 아니면.”

채민희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A급 각성자답게 압도적인 기운.

그녀의 격투기술은 가히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멀찍이 서서 그녀를 지켜보는 헌터들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기운에 압도됐다는 증거.

‘허··· A급 되려면, 멀었네.’

다른 헌터들과는 다르게 압도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힘은 자신보다 크게 웃돌고 있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때.

이미 오해는 풀렸을 거고, 관리국에서 조사가 들어간다면 그 살인귀가 범인인 것이 드러날 것이다.

능력을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잡아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살인귀가 능력의 활용에 능통했다면, 상대하기 꽤나 골치 아팠으리라.

“그럼 저는 이만.”

“움직이지 마세요!”

‘귀환.’

그 말과 함께 태현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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