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31화 (31/160)

9화 마그마 골렘(2)

*

태현이 사라지고 난 뒤, 묘지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가족들의 묘비에 서서 절을 올렸다.

채민희도 그 소수 중 하나였다.

길드 마스터인 채연화에게는 잠시 외출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 혼자서 어머니가 계신 곳에 방문했다.

최근 들어서 게이트에 변종의 출연이 잦아졌다는 이유로 모든 길드들이 비상이다.

그런 때에 마스터, 부마스터 둘 다 자리를 비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어렵게 방문한 이유는 어머니의 기일이였기 때문이다.

채민희는 절을 2번 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랑 아빠는 많이 바빠서 나 혼자 왔어. 미안해.”

그녀의 아버지도 관리국에서 종사하느라 많이 바쁘다.

연화 길드를 창립한 이후로는 얼굴도 거의 보질 못했다.

채민희는 그 이야기를 쏙 빼놓고, 길드에서 있었던 좋았던 일들을 차근차근 풀어냈다.

나쁜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살인귀를 잡아들였을 때, 만났던 의문의 사나이에 대해서는 조금 언급만 했을 뿐.

그것 때문에 연화가 비각성자인 시민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것도 쏙 빼놓았다.

“우리는 건강하게, 즐겁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채민희가 입을 꾹 닫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어머니가 떠난 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가족들 중에 유일하게 비각성자였던 어머니.

하필이면, 어머니께서 아파트에서 혼자 계셨을 때,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다니.

조그맣게 가려져있던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 때, 쏟아져 나왔던 몬스터는 하이오크.

그레이색의 피부. 키는 2m 50을 넘었으며, 날카로운 쇠도끼를 휘두르는 몬스터였다.

지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는지 철갑을 착용하고, 방패를 방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놈들을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쇠도끼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건 그녀의 어머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 게이트를 미리 발견했더라면··· 다들 살 수 있었을 텐데.”

게이트가 건물 사이에 가려져있어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급히 신고를 받고,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상태였다.

채연화와 채민희는 희생자의 얼굴을 보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그대로 허물어졌다.

너무 놀라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1년간은 거의 산송장처럼 지냈다.

“엄마, 보고 싶어.”

채민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맺혔다.

띠링~

때마침 헌터워치가 진동했다.

하필이면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연락이 오다니.

채민희는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고, 헌터 워치를 만지작거렸다.

연락이 온 곳은 연화 길드 본부였다.

-어. 말해.

-부사장님! 지금 위급한 상태입니다!

워치 너머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위에 소리가 요란하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채민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빨리 말해.

-대전의 B급 레이드를 출발했던 공격대에서 비상이 떴습니다.

-뭐···?

-아무래도 레이드 중에 위험에 처한 것 같습니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간다.

-네! 사장님께서도 인원들을 불러모아 대전으로 급히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채민희가 워치를 끄고는 입술을 세게 물었다.

오늘은 연화에서 원정팀을 꾸려 B급 중에서도 낮은 수준에 속하는 던전을 클리어하기로 했다.

B급 24명, C급 6명이 모여 총 30명이 레이드로 참가하는 거라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비상사태가 발생할 줄이야.

설마 변종이 나타난 건 아니겠지?

“엄마, 미안. 다음에 다시 올게!”

채민희는 그 말을 남기고, 곧장 묘지를 빠져나갔다.

현재 B급 레이드의 장소는 대전.

옥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그녀는 워치를 조작해서 채연화에게 메시지를 남기고는 곧장 대전으로 향했다.

*

그 시각.

태현은 서울로 돌아와 곧장 관리국으로 향했다.

진도윤은 그가 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 입구에 서성이고 있었다.

“헌터님!”

그는 태현을 발견하자마자 급히 다가왔다.

“일찍 나와 계시네요.”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실 줄 알고 있었거든요.”

“잘 됐네요. 기다려야 될 줄 알았는데.”

“하하, 헌터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요. 자. 그럼 이쪽으로.”

진도윤의 안내에 따라 관리국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그가 안내를 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둘이서 대화를 조금 나눌 필요도 있었기에 장소는 신고센터장실이었다.

태현이 자리에 앉자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 한 명이 커피 2잔과 다과를 탁자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는 익숙하게 커피를 홀짝이며 다과 하나를 입에 넣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진도윤이 서류 2장과 함께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재발급 관련 서류입니다.”

태현은 진도윤이 내민 서류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이전에 박성호와 만나서 작성했을 때에는 부당한 각서가 추가되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재발급을 받는데, 따로 능력치를 측정할 필요는 없나요?”

“아··· 원래는 모든 능력을 전부 재측정을 해야 되는 게 맞습니다만, 헌터님은 신체능력치만 간단히 검사하시면 됩니다.”

“그래요?”

“네. 관리과장이 지금 공석이라서요. 당분간 관리과장의 업무를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신체능력치만 A급 이상으로 판명되면, 나머지는 제 권한으로 스킵이 가능해서요.”

“흠··· 처리 깔끔하네요.”

태현이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도윤이 관리과장인 박성호가 썼던 각서와 음성파일을 관리국장에게 제출하면서 박성호는 그대로 퇴사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관리과장을 뽑기 전까지는 진도윤이 임시로 관리과장의 일까지 역임한 것.

그만큼 관리국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소리겠지.

“감사합니다.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A급 자격증은 내일 쯤 발급이 완료될 것 같습니다.”

“하루요?”

진도윤이 머리를 긁적였다.

“네. C급까지는 절차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데, B급 이상부터는 절차가 조금 까다로워서요.”

“아~ 알겠습니다.”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측정기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진도윤은 그 말을 하고는 센터장실을 문을 열고 나갔다.

그렇게 5분 정도가 흘렀을까?

다시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조그마한 수정구가 들려있었다.

태현이 각성자 측정을 하면서 지겹도록 봐왔던 수정구다.

‘설마 이걸 다시 측정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

이제 재측정의 기회는 영영 없을 줄만 알았는데.

과거를 떠올려보니 지금 현재의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럼 여기에 손을 올려주세요.”

“네.”

태현은 익숙한 모습으로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지금 그의 능력치는 100이 넘은 상황.

보통 A급 각성자가 95~100정도로 측정된다.

수정구는 그가 손을 올리자마자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태현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나쁘지 않은 감각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

태현의 입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삐이-

그렇게 1분.

수정구는 측정을 완료했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원래의 무색으로 돌아갔다.

진도윤은 기다렸다는 듯이 번개같이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측정 불가.]

A급 이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였다.

이런 휴대용 측정기는 값을 100까지밖에 읽을 수 없다.

그러니 진도윤은 자신의 등급을 정확하게 알 겨를이 없었다.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관리국 측정실로 가야하는데, 태현이 갈 리가 없지.

“문제없습니다! 바로 절차대로 진행할 수 있겠군요.”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재발급을 받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유일할 것이다.

역시 사람은 빽이 있어야 한다더니.

직접 겪어보니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알 것 같다.

“그럼 이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먼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도윤이 밝게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비록 태현이 관리국으로 소속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 A급 헌터로 등록되는 만큼, 그와는 척을 지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그와 우호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태현 역시 밝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힘이 있어야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이 G급이라는 명분이 없었다면, 저렇게까지 특별대우를 해줬을까?

그의 생각은 ‘아니다’였다.

띠링~

서류작업을 완료하자 메시지가 떴다.

태현은 용무를 마쳤음에 관리국을 곧장 빠져나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히든 : 마그마 골렘 처치.>

-연화 길드가 B급 레이드를 돌다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원인은 변종 몬스터의 출현.

-화염계 속성을 가진 몬스터입니다. 주변의 기온이 높으니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입장합시다.

-레이드 인원의 50%를 구출할 시에 퀘스트는 완료됩니다.

-레이드 장소는 대전 ‘으능정이 스카이로드 입구’입니다.

*보상

-업적 포인트 30.

-‘에일린의 성’ 설계도.

-‘랜덤’ 보상.

‘이런···.’

생각보다 퀘스트가 빡세다.

주변의 기온이 높아서 대책을 강구하라는 뜻은 자신만이 아닌, 레이드 인원들의 대책까지 강구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B급 던전에서 변이를 일으켰다면, A급에 가까운 무력을 지닌 몬스터일터.

‘상점을 이용하자.’

상점의 아이템을 구입하지 않는 이상, 클리어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퀘스트가 어려운 만큼, 군침이 도는 보상이 적혀있었기에 무조건 클리어를 해야만 한다.

성의 설계도가 있으면, 클리어 하는데도 한층 수월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랜덤 보상.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일단 기대가 된다.

태현은 빠른 걸음으로 곧장 집으로 향했다.

*

채민희는 50분 가까이 걸려서야 대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레이드 장소인 스카이로드를 찾았다.

근처에는 사람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B급 게이트가 떡하니 등장하니 사람의 발길이 끊긴 탓이었다.

“들어가는 건 자유지만, 나올 때는 아니다···.”

옛날에는 장난으로 많이 쓰였던 문장이다.

그러나 지금은 게이트의 던전을 향해 지칭되는 문장이었다.

채민희가 심호흡을 두어 번 했다.

던전 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침착하자···.”

채민희는 준비했던 레이피어을 꺼내들고, 게이트에 진입했다.

들어가자마자 느낀 것은.

“뭐가 이렇게 뜨거워?”

각성해서 신체 능력치가 올라가지 않았으면, 뜨거운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으리라.

일단 레이드 인원들도 이 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채민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주위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땅에 박혀 있었다.

쿵! 쿵!

때마침 그녀의 등 뒤에서 울리는 소리.

직감적으로 몬스터가 접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쿵! 쿵!

몬스터의 발걸음은 쉬지 않고 들려왔다.

그녀는 등을 돌려서 몬스터의 정체를 확인하더니 얼굴을 굳혔다.

“골렘···?”

그것도 마그마 골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바위들 사이로 흐르는 마그마.

보는 것만 해도 뜨거움이 느껴졌다.

“큿···.”

채민희가 입술을 세게 물었다.

어느새 골렘 7마리라는 숫자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런 골렘은 처음 보는데··· B급이 아닌 건가.”

일반 골렘은 B급 던전에서 서식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저런 골렘은 본 적도 없다.

어떻게 보더라도 B급이 아니었다.

“위험해··· 하필이면.”

그녀의 주력 스킬은 급소 찌르기.

몬스터들에게 치명타를 입혀서 처리하는 것이 그녀만의 싸움 방식이다.

하지만, 골렘은 수월한 사냥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마땅히 급소라고 할 것도 없이, 가슴팍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핵을 처리해야지만, 비로소 죽기 때문이다.

그녀의 레이피어로는 골렘의 핵까지 당도하는 데에는 꽤나 빡세다.

더군다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골렘은 일반 골렘의 상위버전.

어떻게 보더라도, 단신으로 7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정면승부는 무리야.’

채민희가 급히 등을 돌려 반대편으로 뛰었다.

그러자 마그마 골렘들이 걸음을 놀리며 그녀를 뒤쫓기 시작했다.

덩치에 비해 빠른 움직임에 채민희가 적잖이 당황했다.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박혀있는 바위들을 이용해서 도망을 쳤다.

골렘 7마리는 반으로 갈라져서 바위의 좌우로 돌아 그녀를 쫓았다.

‘지금이다.’

그 때, 채민희가 몸을 돌렸다.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골렘은 총 3마리.

7마리였던 골렘의 숫자가 줄어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그녀의 레이피어가 선두에 있는 골렘의 가슴팍을 찔렀다.

쾅!

‘역시 골렘보다 한 단계 높아.’

적어도 내부의 핵 근처까지 접근해야 할 레이피어는 그 중간정도밖에 꿰뚫지 못했다.

골렘은 마그마가 흐르는 주먹으로 채민희를 향해 내질렀다.

‘응? 공격하는 패턴은 똑같네.’

골렘을 상대해 본 경험 있는 그녀로서는 마그마 골렘의 공격이 일반 골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 주먹을 레이피어를 이용해서 흘렸다.

A등급의 레이피어기에 마그마 골렘의 열기에도 버틸 수 있었다.

쾅!

그녀는 다시금 레이피어로 가슴팍을 집중적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측으로 돌아갔던 마그마 골렘이 합류하면서 열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공격들을 방어했지만,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이대로 가다간···.’

그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길드원들을 구하기 위해 들어왔는데, 역시 무모한 행동이었다.

시간이 지체되었다간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온 것이지만, 너무 무모했다.

채민희가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방어에 집중했다.

겨우 이 정도로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쾅!

그 때, 뒤에서 골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핵이 분리되면서 골렘이 무너지는 특유의 소리.

채민희가 방어에 집중하면서 소리가 난 곳으로 곁눈질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어떤 한 남자가 곡괭이를 들고, 골렘의 핵을 만지작거렸다.

“채굴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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