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35화 (35/160)

10화 수호자(1)

*

고구려 길드 길드장실.

대한민국 최강의 길드 중 하나.

사실상 수도권을 쥐고 있는 길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극소수만 존재한다는 S급 헌터인, 마스터 임요한과 그의 와이프 장혜옥이 자리에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녀 역시 A급 각성자.

“아직도 들어올 마음이 없다고 하나요?”

“누구?”

장혜옥의 물음에 임요한이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물론 그녀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성이를 말하는 거잖아요?”

“···그 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러니 신경 끄자고.”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잖아요.”

“S급 헌터 아들이 C급 헌터? 웃기는 군. 차라리 없는 게 나아.”

임요한이 코웃음 치며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없다는 듯, 장혜옥의 눈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도 당신 자식인 건 변함없어요. 괜히 이렇게 방치하다가 고구려의 위신을 떨어트리는 짓을 할지도 모르죠. 미련한 놈··· 쯧.”

“···당신 자식이기도 해.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한 사람이로군.”

장혜옥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가족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차가웠다.

그러다 불현 듯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참, 그러고 보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뭔데?”

“이번에 미정이가 헌터비무대회에 출전할 거예요.”

헌터비무대회.

각 국의 헌터들이 모여서 힘을 겨루는 대회.

계속해서 몬스터들의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서로 힘을 겨루어서 각 국이 건재하다는 것을 모든 시민들에게 각인을 시키는 것.

몬스터들의 위협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이 헌터밖에 없다는 것을 각인시키자는 취지로 3년 전부터 시행해온 대회다.

출전하기 위해서는 각 나라에서 영향력 있는 길드나 관리국의 추천을 받은 이들이 출전 자격을 획득한다.

아무래도 장혜옥이 임미정을 추천한 것 같은데.

임요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신이 추천했어?”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미정이 정도면, 그래도 상위권에 안착하는데 문제없어요.”

임미정의 레벨은 140을 막 넘어섰다.

고구려 길드에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라는 소리였다.

그런 그녀가 고구려의 이름을 달고, 명예로운 대회에 출전한다는 사실이 장혜옥을 기쁘게 했다.

어차피 신청을 넣은 이상 합격은 100%.

이미 그녀의 출전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임요한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으로 보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미정이 말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태호를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5달 전에 A급으로 판정을 받고, 고구려로 스카웃되어 들어온 인물.

희소성 있는 능력이 임요한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았다.

그렇기에 반년 뒤에 있을 대회에는 김태호를 내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면 태호도 넣으면 되죠. 뭐가 문제예요?”

“···고구려에서만 2명을 내보내는 건, 좀 아니라고 보는데.”

“어머? 고구려가 뭐 어때서요? 2명이 출전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고요.”

“후우··· 일단 고민해보지.”

임요한이 미간을 좁혔다.

사실 2명이 출전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구려와 순위를 다투는 ‘천검’과 ‘화백’은 많으면 3명까지도 출전을 시키기 때문.

임요한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임미정이 출전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어쨌거나 미정이가 출전할 테니 그리 알고 있어요.”

장혜옥은 그가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같이 살다보니 그의 태도만 봐도, 대충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 챌 수 있는 경지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비무대회는 S급도 간간히 나오는 대회요. 잘못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업무에 지장이···.”

“어이구··· 그냥 비무잖아요? 걱정도 팔자십니다. 사장님.”

“···일단 고민해보지.”

결국 임요한이 한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아직 출전 신청기간은 석 달이나 남았다.

그 안에 정정도 가능하니, 천천히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장혜옥이 순순히 넘어갈지는 미지수지만.

그 때, 길드장실의 문을 노크하는 이가 있었다.

똑. 똑.

“들어와.”

낮게 깔리는 임요한의 목소리에 길드장실의 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사장님··· 그 보고 드리려고 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인사 2팀, 안상윤이었다.

살인귀를 잡아들인 의문의 사나이를 섭외하기로 했던 그가 지금은 초췌한 몰골로 임요한 앞에 섰다.

어떻게든 섭외하기 위해 발품을 열심히 팔아봤지만,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작해.”

임요한은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로 안상윤을 바라보았다.

S급이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그의 주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오라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안상윤은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의문의 사나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유는?”

임요한의 시큰둥하게 물었다.

평소의 안상윤이라면 어떻게든 잡아냈어야 정상인데.

그는 식은땀을 훔치며 떨리는 입술로 말을 이었다.

“그··· 행방이 너무 묘연했습니다. 의문의 사나이와 접촉했던 인물들과도 접촉을 시도했습니다만··· 다들 말을 맞췄는지··· 모른다고만 말하더군요.”

“다른 인물은 없었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접촉을 하기가 조금···.”

“누군데?”

“임지성 도련님이십니다.”

“···그 놈은 지금 어디 있지?”

임요한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물었다.

“그··· 알아보니까 옛 친구네 집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친구? 그 녀석에게 친구가 있었나? 그게 누군데?”

“한태현 헌터라고 합니다.”

“한태현? 설마 옛날 불분명 각성자라고 떠들썩했던 놈?”

“맞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불분명 각성자가 아니고, A급 각성자라고 합니다.”

“제대로 각성한 건가? 근데 G급이 아니고 A급이라고?”

불분명 각성자가 갓 급이 되기 위한 요건은 미국 관리국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다.

한태현이 G급이 될 리는 만무.

그러나 A급이 되었다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네. 관리국에 정보를 요청해서 한태현 헌터가 A급 각성자라는 사실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놈이 소속된 길드가 어디지?”

“아직 없다고 합니다. 관리국에서도 그를 영입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이게 웬 떡인가?

임요한의 좁아졌던 미간이 말끔히 펴졌다.

A급 헌터라면, 아주 탐스러운 사과였다.

길드든 관리국이든 서로 데려가지 못해서 안달이 날 수밖에 없는 먹음직스러운 과일.

그런 과일이 현재 주인이 없다는데, 어찌 탐이 나지 않을까?

“네. 그래서 천검, 화백, 엑스가 한태현 헌터를 영입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뭐?”

임요한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이런 귀중한 정보를 다른 길드보다 늦게 접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의문의 사나이 건 때문에 정보를 입수하는 게 조금 늦었습니다···.”

“됐어. 어쨌거나 지성이가 신세를 지고 있다 이거로군?”

“네. 맞습니다.”

“···좋아. 지성이에게 접촉하고, 겸사겸사 한태현 헌터까지 구슬리면 잘 풀리겠어.”

친구의 아버지가 권유하는데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다른 길드도 아닌 고구려다.

고구려가 어떤 길드인가?

현재 파죽지세로 성장을 거듭하는 길드가 아닌가?

길드 마스터 역시 천검, 화백과 마찬가지로 S급 헌터가 떡하니 앉아있다.

전혀 꿀릴 것 없다.

“그럼···?”

“이번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마. 반드시 섭외해.”

“···노력하겠습니다.”

*

구조물을 지어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태현이 건설 스킬이 있다고 하더라도,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수하들 역시 열심히 태현을 도왔다.

“빨리 빨리 일해서 끝내자.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2~3성 녀석들의 대답이 울려 퍼졌다.

반면, 4성 수하들은 적당히라는 것을 몰랐다.

일단 그가 움직이기 때문에 자신들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특히 이번에 아이템을 하사했던 기사, 자객, 궁수는 미친 듯이 일했다.

“너희들··· 좀 괜찮냐?”

“끄떡없습니다. 오히려 주군께서 직접 움직이시게 만들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맞습니다.”

“···좀 쉬어가면서 해라. 수련에 방해될 정도로 일하는 건 삼가라.”

“네!”

“하이!”

방금 대답은 궁수였다.

태현이 어이가 없는 얼굴로 물었다.

“너··· 그거 어디서 배웠어?”

“그 이번에 인테리어할 때, 재밌는 만화랑 애니메이션이 있다고 해서 같이 구입했습니다.”

“···너 이 새끼, 누가 만화를 사라고 했냐?”

“죄송합니다.”

“도대체 만화는 어떻게 알고?”

“그 유지아라는 친구분께서 예전에 추천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적당히 봐라.”

“알겠습니다.”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서는 3성 수하 한 명이 열심히 무언가를 짓는 중이었다.

그 수하는 다름 아닌 테이머.

아무래도 자신이 테이밍한 라이그틸로가 생활할 공간을 만들어주려는 듯하다.

“수련장부터 만들고 해라.”

“주군, 이게 제 수련장입니다.”

“수련장?”

“네. 동글이가 편하게 생활해야 좋은 컨디션으로 전장을 누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집을 만들어서 훈련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정말 어이가 없다.

태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는 테이머를 노려보았다.

“너, 진짜 맞고 싶냐? 저기 넓은 들판에서 하면 될 거 아니야? 덩치 큰 놈을 여기서 키우겠다는 게 말이 되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동글이는 덩치만 컸지, 아직 애기라서 제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너 개소리도 적당히 해라···.”

“보십시오! 동글아.”

테이머가 갑자기 라이그틸로를 부르더니 제 앞에 서게 했다.

그리고는 손을 불쑥 내밀었다.

“이쁜 짓.”

턱.

그 말에 라이그틸로가 턱을 테이머의 손에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칭찬을 바라는 듯한 얼굴로 태현을 다시 보았다.

“보십시오. 이 맑은 눈망울을. 이런 여린 아이를 어떻게 들판에 혼자 두게 하겠습니까?”

“너··· 그냥 들판에서 살아라.”

“죄송합니다.”

“그놈의 죄송합니다는 그만 해라.”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군께서 동글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그만!”

“네!”

이제 보니 이놈도 만화나 인터넷을 접한 듯싶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드립이란 말이지.

태현은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소환은 계속 이루어질 것이고 테이머의 숫자 역시 늘어날 것이다.

그 땐, 녀석들이 테이밍한 몬스터도 여기서 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뜻.

차라리 성 근처에 짓지 말고, 조금 떨어진 들판에서 따로 지낼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옳다고 봤다.

“어쨌든 여기는 안 된다. 대신 수련장이 완성 되는대로 들판에 동글이···가 지낼 수 있도록 집을 만들어줄 거니까 일단은 참아.”

“감사합니다. 주군.”

태현은 대충 견적을 보고, 수련을 하지 않는 수하들을 집합시켰다.

“자, 다들 열심히 일해서 편한 공간에서 마음껏 수련하자.”

“네!”

“그럼 10분 쉬고, 다시 시작할거야. 10분간 휴식.”

“10분 간 휴식.”

말을 참 잘 듣는 수하들이다.

물론 조금씩 변질되어가는 놈들 빼고.

*

태현은 단신으로 에일린의 성으로 향했다.

단번에 클리어하는 것이 힘들다면, 차근차근 공략해나가면서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설계도를 꺼냈다.

먼저는 하층부 로비에 있는 병사들부터 처리하는 것이 1순위.

그 다음으로는 식당, 접견실 등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을 처리해서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튼다.

끽!

마이가스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패턴으로 달려든다.

그러나 이제 태현에게는 일개 장난감에 불과한 수준의 몬스터가 되었다.

콰직.

곡괭이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주먹을 사용할 때마다 마이가스들의 대가리가 그대로 터져버렸으니까.

태현은 익숙한 발걸음을 놀리며 에일린의 성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떴었지?’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다며 입장조차 불가능했던 그 때를.

지금은 조건을 충족한지 오래다.

레벨 또한 20 이상이 올라가면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태현은 에일린의 성에 도착하자 그 앞에 섰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에일린 성의 열쇠’ 아이템을 사용해서 입장하시겠습니까?]

달라진 메시지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에일린의 성에 입장합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성문이 열렸고, 포탈이 하나 생성되었다.

태현은 그대로 포탈에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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