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제한이 없는 유일한 헌터-36화 (36/160)

10화 수호자(2)

*

태현의 집에 홀로 남아있는 임지성은 TV를 시청하면서 푹 쉬는 중이었다.

던전 20회를 클리어 한 이후로도 가끔씩 비각성자였던 작업자들과 파티원이었던 각성자들에게 연락이 왔었는데, 태현이 더 이상 던전을 클리어하질 않으니 일감이 없다고 둘러댔다.

연락이 온 사람 중에는 유지아와 동화도 있었다.

유지아는 그렇다 치고, 동화는 조금 허전하다는 말과 함께 일감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에휴··· 그걸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임지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주머니에 진동이 느껴지면서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또 누구 전화야?”

TV좀 보려고 하면, 꼭 누군가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작업자 중 한 명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휴대폰의 발신인을 확인했다.

그러자 편안했던 그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안상윤 개xx.]

“이 새끼가 나한테 전화를 왜 해?”

임요한한테 똑똑히 말했다.

마음속에서 지울 테니 더 이상 찾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연락 한 통도 하지 않는다.

“그냥 받지 말까?”

마음속에 갈등이 일었다.

전화를 받자니 어떤 내용일지 불 보듯 뻔하고, 안 받자니 또 찜찜하다.

결국 임지성이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용건만 간단히 합시다.

-이거 참···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는데, 너무 박대하시는 거 아닙니까?

-안상윤 과장님과 제가 친했었나요?

-크흠···.

휴대폰 너머 안상윤이 헛기침을 했다.

임지성의 말에 도저히 반박할 거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용건만 간단히 합시다.

-···네. 다름이 아니고요. 사실 도련님께서 어디 계신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이번에 A급으로 각성하신 한태현 헌터를 저희 고구려에서 섭외하고 싶습니다.

용건이 겨우 이것?

임지성은 혹시나 싶어 대답을 준비했지만, 역시 저쪽에서도 확실하게 연을 끊은 듯싶다.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죠? 한태현 헌터에게 직접 전화하세요.

-···도련님. 그만하시고 이제 그만 돌아와 주십시오. 사장님께서도 도련님을 목 빠져라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그 사람이 저를 기다려요? 크흐흡, 죄송해요. 올 해 들어서 가장 웃긴 말이네요.

-그 사람이라니요···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이지 않습니까?

-아버지면 아들한테 이렇게 대우해도 됩니까? 그리고 연을 먼저 끊자고 제시한 건, 임요한 길드장님이십니다. 아시겠어요?

임지성의 목소리에는 칼이 서려있었다.

당장이라도 찢어버릴 것만 같은 살기.

안상윤도 그것을 느꼈는지 방법을 조금 달리했다.

-도련님··· 도련님께서 사라지시고, 저희들이 정말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도련님을 욕하는 놈들도 그만한 징계를 내렸고요. 사장님께서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

-사실 그동안 어떻게 연락을 드려야하나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전화라도 드리고 싶지만, 그럴만한 용건도 없었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한태현 헌터님의 섭외 건을 통해 연락을 드렸습니다.

-정말인가요?

임지성의 목소리가 한층 누그러진 듯 했다.

그의 화가 조금 풀렸다는 것을 확신한 안상윤이 목소리 톤을 한 단계 높였다.

-네! 정말입니다! 사실 도련님께서 다시 길드로 돌아오시면,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하려고 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과장님···.

-네. 도련님.

임지성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결국 이런 용건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했단 말인가?

적어도 이런 변명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가 감았던 눈을 떴다.

-제가 아직도 호구로 보이십니까?

-네···? 도련님? 갑자기 그게 무슨···.

-어린아이도 지금 하는 말이 입 발린 말이라는 걸 분별하겠네요. 얼마나 저를 무시하셨으면 이런 방법을 쓰실까요?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됐고요. 끊으세요.

뚝.

임지성은 안상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더불어 휴대폰의 전원도 꺼버렸다.

이걸로 자신이 얼마나 호구 같은 삶을 살았는지 증명이 되었다.

“하아··· 기분 좋게 TV좀 보려고 했더니, 존나 잡치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주 2병을 꺼냈다.

스트레스 받을 때, 음주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너무 열이 받으니 어쩔 수 없다.

*

“에라이! 개 같은 놈!”

전화를 마친 안상윤이 휴대전화를 집어던졌다.

나이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놈이, 말하는 싸가지가 참 볼만 했다.

임지성이 임요한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버린 자식이나 다름없다.

그런 놈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줬더니, 돌아오는 말이 참 가관이다.

“아무래도 방법을 바꿔야겠어.”

그나마 가능성이 높았던 임지성은 버려두고, 아무래도 직접 한태현과 접촉을 시도해야 될 듯하다.

그 놈이 한태현에게 입김을 불어 넣었을 것이 뻔하지만, 거액의 돈을 무시하지는 못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임지성에게 의문의 사나이에 대해 묻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는 다시 녀석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어차피 스트레스만 쌓일 게 뻔하다.

“뭐, 의문의 사나이는 당분간 접어야겠어.”

의문의 사나이 역시 등급을 가늠할 수 없었고, 가지고 있는 능력이 탐났지만, 그의 행방이 묘연하니 섭외하고 싶어도 당장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태현은 대놓고 드러난 A급 헌터.

길드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섭외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전부 동원할 것이 분명하다.

“좋아. 직접 찾아가는 걸로 하자.”

임지성과 마주칠 확률이 높았지만, 뭐 어떤가?

자신 역시 B급 헌터다.

임지성같은 C급 헌터 정도야 한 손으로도 상대가 가능하다.

안상윤은 가볍게 목 스트레칭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한태현이 집에 없다고 하니, 그의 집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분명 집으로 돌아오는 그와 접촉이 가능할 것이다.

*

‘장난 아니군.’

태현이 성에 들어오자마자 내뱉은 말이다.

로비에는 기사, 마법사, 자객을 포함한 병사들이 대열을 맞춰 선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미동조차 없는 모습에 태현이 혀를 내둘렀다.

‘인간형 몬스터야. 내 수하들과는 조금 다르다.’

태현은 병사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이 인간이 아닌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놈들은 병사를 가장한 몬스터.

정확히 말하자면, 썩어버린 시체.

좀비였다.

‘쉽지 않겠는 걸?’

태현은 주머니에서 곡괭이를 꺼내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좀비 병사들의 안광에서 푸른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몇몇 병사들은 비어있는 눈동자에서 푸른빛이 서렸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척!

병사들의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태현은 그들이 발을 한걸음 더 내딛기도 전에, 그들의 무리로 달려들었다.

병사들은 당황했는지 고개를 옆으로 급히 돌렸고, 태현은 무리의 중심에 들어서자 그대로 윈드밀을 시전했다.

콰직! 뿌드득!

콰드득!

윈드밀의 풍압에 버티지 못한 병사들이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몇몇은 뼈가 박살나고,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거나 머리가 그대로 떨어져나갔다.

태현은 윈드밀을 시전한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그럴 때마다 그를 에워싸고 있던 병사들이 계속해서 나가떨어졌다.

‘역시 좋은 스킬이다.’

쿨타임만 없었더라면, 쉬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역시 쿨타임이 참 아쉬웠다.

스킬 레벨이 오를 때마다 쿨타임의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긴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건 매한가지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침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까지 들려왔다.

‘좋아. 이대로 계속 간다.’

병사들은 수련장을 만들고, 자신은 하층부를 천천히 공략한다.

성장도, 구조물도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아내는 전략.

태현의 곡괭이가 쉬지 않고, 병사들을 내려찍었다.

*

로비의 병사들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사라졌다.

전부 2성 내지 3성의 병사들.

기껏해야 D~C급의 병사들이 A급을 넘어선 그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태현은 로비의 몬스터를 적당히 처리하고는 접견실에 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 본 적 없는 메시지가 떴다.

[에일린의 흔적 1을 발견하셨습니다.]

‘에일린의 흔적?’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몬스터의 사냥에 집중했다.

일단은 몬스터부터 처리하고, 확인한다.

그는 계속해서 접견실로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하나 둘 사냥했다.

[에일린의 흔적 2를 발견하셨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 뜬 메시지.

아무래도 이 아이템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계속되는 메시지에 슬슬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그러나 접견실로 밀려들어오는 좀비 병사들을 보니 차마 확인할 수가 없었다.

‘에라이··· 안 되겠다.’

결국 혼자서 잡으려던 생각을 접었다.

태현은 안식처에 있는 수하들을 곧바로 소환했다.

4성의 수하들 중에서도 검, 궁, 단검을 하사받은 기사, 궁수, 자객이 선두에 섰다.

나머지 수하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남은 인원들도 하나씩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좀비 병사들을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주군.”

“네.”

수하들은 태현의 명령에 대답하고, 좀비 병사들에게 돌진했다.

4성답게 2성 좀비병사정도는 우습게 처리하는 모습.

그제야 태현이 자리에 앉아 주머니에서 에일린의 흔적이라는 아이템을 찾아서 꺼냈다.

그것은 낡은 종이였는데, 전부 찢어져있어 식별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게 뭐야? 쓸모없는 건 아닐 테고.’

태현이 종이 조각을 들고 나풀거리자, 하나의 메시지가 새롭게 떴다.

[에일린의 흔적 1~20을 모으시면, ‘에일린의 편지’ 아이템으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거였군?’

역시 쓸모없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이름만 보더라도, 이 성을 클리어 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태현은 에일린의 흔적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현재까지 모은 흔적은 1, 2.

20까지 모으려면 아무래도 꽤나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몬스터를 끊임없이 사냥을 해야만 완성을 할 수 있다는 건데.

“로비랑 접견실은 너희들이 맡아라. 나는 식당으로 간다.”

태현은 그 말과 함께 곡괭이로 좀비 병사를 잡아내면서 길을 만들었다.

나뉘어서 사냥을 해야만 효율적이리라.

흔적만 아니었더라면, 실전의 감각을 견고히 다지겠답시고 혼자서 사냥에 몰두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많은 양의 좀비 병사를 빠르게 잡아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태현이 식당 쪽으로 몸을 날렸다.

*

“시x!”

한 남자가 공원의 정자에 앉아 병나발을 불며 소주를 들이 키고 있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그의 몸에는 술내가 진동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조성했다.

공원에 돌아다니던 사람들은 그가 소리를 지르며, 술을 퍼먹는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어린아이들을 대동한 보호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저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일어나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한태현··· 그 새끼때문에 조졌어. 조졌다고!”

그 남자는 헌터관리국에서 쫒겨 난 박성호였다.

한때는 관리과장으로 꽤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었는데, 지금은 그냥 백수 아저씨에 불과했다.

각성자 등록증까지 몰수당하면서 헌터의 자격까지 잃은 그는 지금 실직자 상태다.

퇴사 이후로 술독에 빠져 살다보니, 피폐한 삶을 살아가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죽여야 돼. 죽여버려야 돼.”

그 자리에 쓰러진 박성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살기가 묻어있었다.

각서를 까발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분명 자신이 없는 틈에 진도윤에게 찾아가서 그대로 일러바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E급도 되지 않는 한태현이 각서를 썼다는 걸, 진도윤이 알 리가 없지.

“그래··· 그냥 죽여버리는 거야. 흐흐.”

그래.

E급 각성자 한 명 죽였다고, 뭐 달라지겠는가?

차라리 실직자로 술독에 빠져 살 바에야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에게 복수를 하는 게, 그나마 앓던 속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박성호는 두 눈을 번뜩이고는 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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