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수호자(4)
*
진도윤과의 대화를 마치고, 금화를 전부 처분한 태현은 고민이 많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안상윤이 아닌, 다른 인물들도 보였는데, 그들은 각기 천검, 화백의 인사과장으로 일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태현은 귀찮은 얼굴로 그들을 물리고는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눈치가 빠른 임지성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자리를 비켜주었고, 태현은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진화라···.’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 시국에 변종이 대거 등장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튜토리얼과 살인귀를 제외한 퀘스트가 전부 변종과 관련이 있었다.
퀘스트가 이유 없이 성장만을 목적으로 변종 몬스터로 지정하지는 않았을 것.
분명 무언가 있다.
하지만, 그 무언가를 도저히 짐작할 수 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태현은 휴대폰을 켜서 기사, 커뮤니티를 뒤적였다.
[속보! 변종 몬스터의 출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뇌전’ 길드, 피해자 속출.]
[올해 들어와서 나타난 변종, 급격하게 늘어나는 숫자에 헌터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
[앞으로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 수치가 C등급이더라도, B급 이상의 헌터들을 포함해서 레이드를 뛰어야 할 것으로 사료됨.]
[현재 변종이 나타난 던전은 B등급 이하. A등급 이상은 다행히 변종 발생 무(無).]
ㄴ진짜 ㅅㅂ~ 등급에 맞춰서 레이드 인원들을 보내니까 이런 사단이 일어나지.
ㄴ안전하게 A급 헌터들로 구성해서 레이드 뛰자~ 뭔 A급 레이드만 취급한다고, 나서질 않누.
ㄴ돈에 미치지 좀 말자. 고등급 헌터들은 낮은 등급의 던전 클리어에 힘 좀 쓰자.
ㄴ진짜 댓글들 가관이네 ㅋㅋ 그럼 古등급 게이트를 그냥 두냐? 놔뒀다가 몬스터 튀어나와서 쑥대밭 만들라고?
ㄴㅁㅊ새끼ㅋㅋ 古가 아니라 高다.
ㄴ진짜 무뇌충들 많음. 걍 몬스터들이 쟤들만 골라서 죽였으면 좋겠네 ㅡㅡ.
ㄴA급 던전 뛰려면, 적어도 A급 헌터 20명 이상이 필요하다는데 ㅋㅋ 어떻게 B급 이하까지 다 관리하냐?
댓글은 여기서 그만 읽어야겠다.
태현은 휴대폰을 자리에 올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일단은 먼저 계획했던 것을 실행해야할 때.
금화를 팔러 갔다가 혹을 달고 나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억지로나마 하체를 움직여 화장실로 갔다.
잠시 볼 일을 보고, 안식처로 이동했다.
“이야··· 저 스킬은 언제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임지성은 태현이 사라진 자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 몇 번을 봐도 익숙하지가 않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기래 저래?”
미소 띤 얼굴로 나가서는 고민이 많은 얼굴로 돌아와서는 푹 퍼지는 모습.
그리고는 고민을 떨치려는 듯, 급히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까지.
역시 오늘도 태현은 알 수 없는 행동만 골라했다.
“뭐··· 원래 저런 놈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안상윤 저 새끼는 언제까지 저럴라나?”
임지성은 창문 밖으로 안상윤이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사실 안상윤은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그가 3일 전부터 태현의 집을 서성이는 모습을 지켜보았었다.
그래서 자신이 외출을 하면 어떻게 행동할까싶어 외출을 평소보다 자주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보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애초부터 그 사람은 나를 데려올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목표는 그저 태현일 뿐.
임지성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안상윤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
성장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4성 수하들 중에서 5성으로 업그레이드 된 녀석들은 총 8명.
10장중에서 8장이 성공한 것이다.
추가로 4성으로 업그레이드 된 녀석들은 10명.
10장 모두 성공하면서 아주 좋은 결과가 만들어졌다.
이 정도라면, 상층부 공략은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에일린의 편지에서 적혀있던 대로 안배를 준비했다면, 지금 성은 그를 위해 남겨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남겨 놓은 것일까?
후대 킹을 위해서였다면, 이 사람도 킹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나?
태현은 궁금증을 품은 채로 에일린의 성에 들어갔다.
하층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금 재생성 되면서 많은 숫자의 좀비 병사들이 즐비했다.
“빠르게 처리하자.”
수련장을 만드는 작업도 순조롭다.
그리고 오늘은 성을 공략하기로 했으니 3성 이상의 병사들을 대거 불러 모았다.
5성만 8명.
4성은 20명에 가까웠다.
그 외에 3성은 30명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수하들의 숫자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찼다.
“알겠습니다!”
“네!”
수하들은 크게 대답하고, 좀비 병사들에게 돌진했다.
그들의 검, 궁, 마법, 그리고 라이그틸로··· 동글이까지.
좀비 병사들은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쓸려나갔다.
태현은 그들이 쓸어버린 자리를 천천히 밟고 지나갔다.
에일린의 편지가 상층부의 허가권이라고 했다.
그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고,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막혀있는 계단 앞에 섰다.
[허가권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상층부로 올라가시겠습니까?]
“그래.”
태현의 대답이 끝나자,
쿵! 콰르르.
계단을 막고 있던 돌무더기들이 사라지고, 길이 열렸다.
그는 나머지 수하들에게 사냥을 중지하고, 상층부로 올라간다는 명령과 함께 상층부로 향했다.
길게 이어져있는 계단.
태현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아주 넓은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로비를 가득 메운 좀비 병사.
어떻게 보더라도, 4성 병사들이었다.
상층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좀비병사들은 태현을 보자마자 포효했다.
적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리듯,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태현에게 들이밀었다.
그러나 그가 곡괭이를 쥐고, 튀어나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주군을 돕는다!”
5성 기사로 승급한 기사가 고유스킬 화염검을 펼치면서 달려들었다.
태현의 뒤를 노리는 병사들을 거침없이 베어나가는 모습.
잘려나간 단면이 검게 타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머지 수하들도 기사의 뒤를 따라 좀비 병사들을 하나 둘 학살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전부 4성.
5성 병사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태현은 곡괭이로 좀비 병사들의 대가리를 찍어대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상층부답게 하층부보다 병사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다.
이 넓은 성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문제없지.”
수하들도 무난하게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확신했다.
성장시도권을 사용해서 들어온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고.
확실히 던져주는 보상은 그 단계에 맞춰서 주어지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스토리모드를 깨는 느낌이랄까?
태현은 이런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지는 모르겠지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타나는 변종을 상대하기는커녕, 두려움에 바르르 떨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고민은 일단 접자.”
고민해봤자 나오지 않는 답은 일단 접어두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태현은 이전보다 조금 편해진 얼굴로 곡괭이를 휘둘렀다.
*
[불분명 각성자 한태현, A급 각성자가 되다.]
A급 각성자로 등록되면서 그의 신원이 정보에 올라왔다.
모든 길드들은 그의 정체를 보고, 놀란 눈이 되었다.
그렇지만 A급이라는 등급으로 인해 그들의 김은 금세 빠졌다.
불분명 각성자가 누구인가?
지금까지 5명의 갓 급의 조건을 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 아니었던가?
원래는 불분명 각성자라면, 갓 급의 길을 걷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불렀다면, 지금은 그냥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한태현이 나타나면서 기준을 바꿔버렸고, 그리고 A급으로 확정되면서 그 기준은 확실시되었다.
그렇지만, A급은 섭외 대상 1순위다.
등급이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은 이유도, 그가 불분명 각성자였기 때문이다.
A급은 대한민국 내에서도 강자의 반열에 오를만한 등급이었다.
A급이니 당연히 레벨도 100부터 시작할 것이고, 그에 맞는 신체능력치를 갖췄겠지.
천검, 화백, 고구려가 섭외를 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섭외에는 생각이 없었던 연화 역시 놀란 눈이 된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채민희가 입을 척 벌린 채로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설마··· 불분명 각성자였던 사람일 줄이야.”
반면 그녀 앞에 앉아있는 채연화는 태연한 얼굴로 녹차를 홀짝였다.
사실 그의 얼굴을 보고 눈치 챘다.
처음에는 알아보질 못했지만, 관리국에서 두어 번 정도 스쳐지나가면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알아챌 수 있었다.
“후후, 설마 그 사람한테 빚을 질 줄은 몰랐네.”
“···언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는 아니고, 중간부터지.”
“왜 안 알려줬어?”
“물어보질 않았잖니.”
“······.”
할 말이 없다.
확실히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사람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물어봤어야 하는데.
정신이 없던 나머지, 놓치고 말았다.
“···결국 9명이나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냈구나.”
채연화가 찻잔을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응···.”
당시 유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린 채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아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한 번씩 안아주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이들의 모습에는 당시 자신이 어머니를 잃었을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채연화와 채민희는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들의 곁을 지켰다.
그렇게 어제까지 9명의 유가족들을 챙기다가 오늘 복귀한 것이다.
“···이제 쌓인 일들을 빨리 처리해야겠네.”
채연화는 쓰게 웃으며, 탁자 위에 올려져있는 서류들에 시선을 두었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전멸했겠지···.”
채민희가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한태현이 아니었다면, 당시 레이드 인원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도 무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 그러니까 빚을 올려둔 거야. 겸사겸사 우호관계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채연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빚만 갚는 걸로 해. 거기에 살을 가져다 붙이지는 말자.”
그녀가 무슨 뜻을 가지고 우호관계를 언급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채민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당연하지. 연화가 그 사람에게 뭘 바라는 건 없어. 단순히 적으로만 돌리지 말자는 뜻이야.”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이상한 거 알아?”
“왜?”
“전에 살인귀를 잡아들였던 의문의 사나이 때도, 같은 소리를 했었잖아?”
“응.”
“의문의 사나이랑 한태현 헌터랑 기감이 살짝 닮은 느낌이 들었어.”
그녀는 상대방의 기감을 감지하는데 뛰어났다.
그렇기에 의문의 사나이와 한태현의 기감이 조금 닮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의문의 사나이는 기껏해야 B급 정도였고, 한태현은 A급을 넘어선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에 동일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후후. 동일인물일라나?”
채연화의 말에 채민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절대 아니야. 언니가 직접 보면, 절대 동일인물일리가 없다고 생각할 걸?”
얼마 되지 않아서 등급이 오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단순히 기감만 조금 닮은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채연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상층부의 로비에 있던 좀비 병사들을 어느 정도 처리하니 길이 슬슬 보였다.
그렇지만, 다른 길이 아닌, 제단을 찾아야한다.
분명 이곳 어딘가에 제단이 있을 터.
태현의 눈이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이상하네. 제단이라고 보일만한 곳이 없는데.’
분명 편지에는 제단에 안배를 준비해두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단을 어딘가에 숨겨둔 것인가?
“다들, 어느 정도 사냥했으니까 내부를 싹 다 조사해! 제단이 보이면,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수하들은 그의 명령에 쏜살같이 흩어졌다.
태현은 곡괭이로 병사들의 대가리를 찍어버리고는 그대로 앞으로 전진했다.
로비의 끝에 있는 문.
그곳부터 확인해 볼 심산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가까운 곳을 수색했던 수하들이 보고를 올렸다.
“주군, 여기에는 없습니다.”
“제단이라고 보일만한 곳이 없습니다.”
“딱히 입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군.’
태현은 수하들의 보고를 들을수록, 끝에 있는 문에 제단이 숨겨져 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계속 전진하니, 문을 지키고 있던 좀비 병사 4명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5성이 지키고 있어?’
그들은 5성 병사였다.
태현은 그것으로 확신했다.
확실히 제단으로 들어갈 만한 곳이 이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확인해보자.’
태현이 문에 가까워지자 5성 병사들도 그에게로 접근했다.
그 때, 수색을 마쳤던 5성 병사 6명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숫자로 봐도, 실력으로 봐도, 태현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빠르게 처리한다.”
태현의 곡괭이가 선두에 있던 5성 병사에게로 향했고, 그의 뒤에 있던 수하들이 남은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