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수호자(5)
*
“역시!”
태현이 탄성을 질렀다.
왕의 침실에는 안쪽에 검은 문이 하나 있었는데, 어떻게 보더라도 편지에 적혀있던 제단이었다.
그는 쓰러져있는 5성 좀비 병사들을 뒤로 하고, 침실로 걸어 들어갔다.
슈욱!
그 때, 날카로운 단도들이 파공음을 일으키며 태현에게 쇄도했다.
아무래도 침실에 침입하는 이를 막기 위해 설치한 덫인 모양이다.
“주군!”
그러나 5성 기사와 5성 자객이 태현에게 쇄도하던 단도들을 쳐냈고, 그는 별다른 저항 없이 검은 문으로 향할 수 있었다.
검은 문에 가까이 다가가니 음습한 공기가 그를 덮쳤다.
뼈 속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에 태현이 몸을 움찔 떨었다.
‘기분 나쁜 기운인데···.’
아무래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만 같았다.
태현이 검은 문 너머에 있는 제단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주변은 전부 어두컴컴했으며, 가운데에 제사를 지낼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곳에만 조그마한 횃불 4개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식별이 가능했지만, 주변은 아니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 태현이 입장여부에 대해 고민했다.
[‘보스 : 수호자 레온’의 제단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검은 문에 가까이 다가가서였을까?
갑자기 메시지가 하나 떴다.
설마 여기가 보스 방인 것인가?
생각보다 빨리 찾은 건 둘째 치더라도, 안배를 마련해 놓았다면서 어째서 보스가 도사리고 있는 거지?
보스를 잡아야지만, 안배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일까?
태현은 조금 고민했다.
지금 들어가느냐?
아니면,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느냐.
하지만, 결론은 금방 나왔다.
“들어간다.”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 자신의 능력치는 5성들을 상대해도 문제없는 상태다.
태현은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입장했다.
[수호자 레온.]
어느새 뒤따라온 5성 마법사가 마법을 펼쳐 주위를 환하게 비췄다.
그제야 눈에 전부 들어오는 광경.
“뭐가 이렇게 꺼림칙하냐?”
태현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정면에 자리한 벽에는 백발의 노인이 하늘을 바라보며 좌절한 얼굴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수많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이것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피가 벽에 뿌려진 흔적이 보였다.
그가 심각한 얼굴로 그림들을 바라보자, 앞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태현이 고개를 돌리자 그 앞에는 한 명의 기사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음? 저 놈이 보스로군. 그런데 저건 좀비가 아니네?’
앞서 상대했던 병사들이 전부 좀비와도 같았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보스는 아니었다.
자신이 부리는 수하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간의 모습.
태현의 눈이 살짝 빛났다.
‘설마··· 준비했다던 안배가 저건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왠지 저 기사를 쓰러트려야지만 준비해놓은 안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태현이 곡괭이를 꽉 쥐었다.
그가 적의를 표출하자, 기사도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하나 빼들었다.
순백의 검신에서 일렁이는 푸른 기운.
어떻게 보아도, 자신의 수하인 5성 기사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꽤 어려운 싸움이 되겠는 걸.’
태현은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높아진 능력덕분에 상대방의 강함의 척도를 대충이나마 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재어본 결과, 그 기사는 자신보다 약간 약하거나 아니면, 동급인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팟!
그가 기사의 기감을 읽고 있는 사이, 기사가 바짝 붙었다.
그리고는 검으로 태현의 목을 노리고, 사선으로 그었다.
챙!
하지만, 태현은 순순히 당해줄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다.
그가 곡괭이로 기사의 검을 막아내고는 급히 뒤로 후퇴했다.
초급 무구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왕의 무구다.
내구도는 불괴.
저런 공격으로는 곡괭이를 절대 뚫을 수 없다.
이번에는 태현의 차례였다.
받은대로 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그가 빠른 속도로 기사의 검을 맞받아치면서 바짝 붙었다.
기사는 당황하지 않고, 그의 곡괭이를 여유롭게 받아냈다.
그 때, 태현이 윈드밀을 시전했다.
오른쪽 발목을 축으로 삼아 빠르게 돌아가면서 곡괭이가 그의 회전에 따라 똑같이 돌았다.
“큭···.”
갑작스러운 회전에 기사가 당황한 듯, 몸을 급히 뺐다.
그렇지만, 풍압까지는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풍압에 의해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모습.
태현은 그 틈을 노리지 않고, 회전중인 상태에서 기사 쪽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이다···.”
기사는 그 말과 함께 자시 자세를 잡았다.
그가 오른손으로 쥔 검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스킬일 터.
태현은 그 모습에 윈드밀을 중지하고, 그의 곁에서 조금 떨어졌다.
과연 어떤 스킬을 사용할까?
조금 기대가 됐다.
그 때, 기사의 검을 그 자리에서 사선으로 그어버렸다.
콰아아!
그러자 날카로운 파동음과 함께 그의 윈드밀과 준하는 풍압이 그를 덮쳤다.
그렇지만 아예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태현은 그 풍압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같이 느껴졌다.
그가 곡괭이로 막을 수 있는 공격만 막아내고는 그대로 흘려보냈다.
쾅!
그리고 그 공격은 그대로 벽에 충돌했고, 벽이 조금 무너져 내렸다.
태현은 다시금 기사에게 접근해서 곡괭이를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기사는 검으로 간단히 막아내고는 다시금 반격을 시도했다.
마찬가지로 태현도 그 반격을 막아내고, 다시금 반격을 시도하면서 공격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실력이 비슷하다보니 주고받는 공격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현의 뒤에는 수하가 있지 않았던가?
일부러 기사가 방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5성 마법사를 제외한 수하들을 안식처로 잠시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미리 명령을 내려두었고,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이 서자, 태현이 빠르게 수하들을 소환했다.
“공격해라!”
5성으로 승급한 마법사의 얼음 마법.
허공에 날카로운 송곳 모양의 아이스 스피어가 수십 개 생성되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기사에게 쏘아졌다.
“헙···.”
기사는 처음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얼음 마법뿐만 아니라, 언제 자신을 포위하고 있었는지 자객들이 마법이 끝나는 즉시, 덮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는 태현과 5성 기사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이들.
기사가 검을 꽉 쥐었다.
그의 검이 다시금 새하얗게 변했고, 자신에게로 쏘아지는 마법을 향해 크게 베었다.
마법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을 포위한 자객에게로 튀어나가기 위함이다.
와장창!
아이스 스피어들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전부 무력화되는 모습.
5성 마법사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잘했어.”
하지만, 태현이 노렸던 것은 이 때.
그가 허점을 노출시켰을 때다.
태현은 어느새 쿨이 다시 돌기 시작한 윈드밀을 사용할 생각으로 기사의 앞에 바짝 붙었다.
기사가 당황한 눈으로 태현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동작이 너무 큰 나머지, 그의 공격을 받아낼 재간이 없다.
“네가 강한 건 인정하는데, 다구리는 못 당하지.”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다구리로 조지면 된다.
태현은 그 말을 남기고는 곧장 윈드밀을 사용했다.
자객에게로 튀어나가려던 기사는 그대로 윈드밀에 휘말리고 말았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우··· 겨우 끝났네.”
태현이 한숨을 내쉬며, 곡괭이를 거두어들였다.
설마 망가진 자세에서도 윈드밀을 방어하고, 자객한테 튀어나가려고 할 줄은···.
사실상 윈드밀을 사용한 시점에서 승부는 끝났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기사의 집념은 태현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원래 목적이 우측에 있던 자객이었는지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
그렇지만, 태현의 윈드밀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엄청난 회전을 자랑했던 만큼, 기사는 온 몸이 분리 된지 오래다.
태현은 그 기사를 내려다보다가 그가 떨어트린 검을 손으로 쥐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보상은···?”
기사를 처리하고 나타난 메시지는 고작 레벨 업 메시지 하나였다.
다른 보상은 일체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아공간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역시나 들어온 건 없었다.
태현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검을 바라보았다.
“안배를 준비했다면서···?”
그건 순 뻥이었나?
아니다.
설마 시스템이 구라를 칠 리가 있을까?
분명 어딘가에 비밀이 있을 것이다.
태현이 다시금 편지를 살펴보았다.
-상층부의 제단에 ‘이것’을 두었다.
‘제단!’
편지에는 제단에 이것을 두었다고 적혀있었다.
즉, 이 기사가 떨구는 보상은 없는 것이 정상이라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안배를 제외하고도, 다른 아이템들은 떨구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기사가 지키고 있던 제단으로 올라갔다.
횃불 4개가 타오르며 그를 맞이하는 듯 했다.
그러나 제단으로 올라가도, 제단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뭐지··· 뭔가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태현은 제단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어딘가에 비밀이 있을 터.
그게 아니라면, 이 공간 어딘가에 비밀의 메시지가 숨어있는 걸까?
그가 제단을 내려가려고 하자, 갑자기 그 위에 붉을 글자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자격을 갖춘 이가 나타났습니다. 수호자의 검을 제단 위에 올려놓으세요.]
태현은 붉은 글자들을 읽고는 망설임 없이 검을 올려놓았다.
쿠르르.
그러자 붉은 제단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으로 쩍 갈라지면서 아래에 숨겨져 있던 계단이 모습을 천천히 드러냈다.
“내려가자.”
보스를 잡은 이상, 더 이상의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에일린이 준비해놓은 안배만을 남겨놓은 것.
태현이 계단을 내려가자, 나머지 수하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니, 하나의 작은 독방이 나타났다.
상층부화 하층부의 사이로 만들어놓은 작은 방.
어두운 독방을 비추기 위해 5성 마법사가 라이트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태현이 그 행동을 저지했다.
따로 독방에서 무언가를 찾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태현은 방금 뜬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에일린의 안배가 마련되어있습니다. 전부 획득하시겠습니까?]
‘그래.’
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수호자 레온]소환권’을 획득하셨습니다.]
[‘에일린의 반지’를 획득하셨습니다.]
[군주 경험치 ‘200’을 획득하셨습니다.]
[품위 능력치 ‘30’이 상승합니다.]
‘보상이 엄청나네···.’
설마 이런 보상이 주어질 줄은 몰랐다.
방금 수호자였던 보스는 최소한 A급 이상.
녀석을 소환해서 자신의 밑에 부린다면, 큰 전력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추가로 군주 경험치까지 200이나 획득했고, 레벨이 올라도 10에 머물고 있던 품위 역시 30이 올랐다.
아무래도 품위를 올리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으로 올려야 하는 듯 했다.
그리고 메시지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업적 달성! 에일린의 성을 격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왕의 무구 상급 소환권’를 획득하셨습니다.]
[‘구르카의 사탑’ 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
겸사겸사 무구까지 획득.
그리고 다음 업적표에 나와 있는 구르카의 사탑의 열쇠까지 획득해버렸다.
태현은 볼 일을 마쳤다는 생각으로 몸을 돌렸다.
“나가자.”
이제 에일린의 성에는 볼 일이 없다.
태현은 그대로 성을 빠져나가 안식처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