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100레벨(1)
*
태현은 안식처로 돌아와 성으로 들어갔다.
Lv.2에서 Lv.3으로 올라가면서 성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
그는 만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침실로 향했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수하들이 가장 공을 들였다고 말하는 곳이 바로 태현이 머물 수 있는 침실이었다.
사실 그동안 이용할 일이 없어서 확인하지도 않았었는데, 오늘은 확인을 해봐야겠다.
“인테리어 담당이 누구였냐?”
“접니다.”
손을 번쩍 들고 말하는 이.
이번에 4성에서 5성으로 승급한 궁수였다.
당시 인테리어랍시고, 만화와 애니메이션 DVD를 대량으로 구매했던 녀석.
추가로 몰랐던 사실 있는데, 킹의 상점에는 마력을 원료로 해서 DVD를 재생할 수 있는 TV 비스무리한 기계도 팔았다.
덕분에 이들이 남는 시간에 그것들을 보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었던 것.
사실 일부러 에일린의 성을 클리어하고, 확인하려고 지금까지 가만히 두었다.
“설마 이상한 걸 도배해놓진 않았겠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녀석.
태현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자,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인테리어는 뭐라 따질 거리는 없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침대와 베개에 있었다.
“장신구들은 넘어가는데, 침대랑 베개는 누구 짓이냐?”
침대 시트에는 금발의 여인 5명이 수놓아져 있었다.
심지어 만화가 아닌, 현실의 여인들이었다.
베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현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수하들을 훑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4성에서 5성으로 승급한 자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인테리어는 제가 맡았습니다. 주군!”
그는 칭찬을 바랐는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승급을 거치면서 이들의 감정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세계에 적응을 하면서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태현은 그런 모습이 좋게 비춰졌다.
“왜 이렇게 꾸몄는지 설명해봐.”
“네. 지금부터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크흠!”
자객은 목을 가다듬고는 태현의 앞으로 가서 침대의 시트에 손을 올렸다.
“제가 어떤 연구결과를 봤었는데, 남성의 성욕이 가장 세다고 하는 나이가 20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라고 합니다. 주군께선 여자 친구가 없으시니 위로라도 되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해보았습니다.”
“너···.”
“물론 가상의 인물이니 넉넉하게 6명을 준비했습니다. 침대 시트에 5명, 베개에 1명.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자객은 성큼성큼 걸어서 침대 옆에 마련되어있는 책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검은 DVD가 수두룩했다.
태현을 할 말을 잃었다는 얼굴로 그것을 보았다.
자객은 그의 눈을 보고, 마음에 드셨다는 것으로 인지했는지 자랑스럽다는 듯,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주군, 이건 제가 밤마다 확인하면서 선별한 S급들만 모아놓은 것입니다. 물론 정식 허가된 DVD기 때문에 법에 걸리지 않는···.”
“너 진짜 돌았구나?”
“죄송합니다.”
태현의 말에 자객이 급히 무릎을 꿇었다.
설마 이런 S급으로도 만족을 하지 못하신다는 말인가?
수하들을 순서대로 불러서 의견을 모아 엄선한 특급 DVD들인데.
자신들의 안목으로 주군을 만족시켜드리지 못하다니.
정말 죄스러웠다.
“좋은 말할 때, 침대 시트랑 베개는 정상적인 걸로 바꿔 놔.”
“···알겠습니다.”
자객이 힘없이 대답했다.
은근히 칭찬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수하들도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크흠··· 그리고 DVD도 치워.”
“···네.”
“저거··· 옛날에 다 봤던 거다.”
“!”
자객이 책장까지 정리하려던 행동을 멈췄다.
태현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어쨌거나 날 생각해서 한 행동이니 넘어가겠지만, 쓸 데 없는 생각으로 일 벌리지 말자. 알겠어?”
“네!”
태현,
그도 남자였다.
*
수하들에게 작업을 맡기고, 태현은 스테이터스를 점검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각성자 스테이터스-
[이름 : 한태현]
[레벨 : 93/제한 없음.]
[칭호 : 6대 킹 아모스.]
[능력치]
-근력 : 147
-민첩 : 141
-체력 : 145
-지능 : 145
-행운 : 152
-품위 : 40
[패시브 스킬]
-군주 Lv.3, 곡괭이 마스터리 Lv.5
[액티브 스킬]
-극기 Lv.5, 윈드밀 Lv.4, 독극물 제조 Lv.3
이번 에일린의 성을 클리어하면서 군주 경험치가 200이나 주어졌다.
그 덕분에 Lv.3 까지 오르는데 성공했다.
태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군주 스킬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군주 Lv.3]
-왕의 쉼터로 즉시 귀환 가능. 쉼터는 왕이 지정한 위치로 한다.(24시간 3회 사용 가능.)
-전투 부대를 운용한다. 명령어를 지정해야 호출이 가능하다.(병사는 왕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아모스의 영토에 성이 건설됩니다.(레벨이 오를수록 성이 업그레이드됩니다.)
*스킬 레벨 이외에도 업그레이드 가능.
-군주 고유스킬 : 대지 분쇄 사용 가능.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효과 증가.
-(봉인) 스킬의 레벨이 부족합니다.
이번 Lv.3으로 올라가면서 새롭게 추가된 고유 스킬.
대지 분쇄라는 스킬이다.
군주 레벨이 3임에도 칭호효과는 아직까지도 잠금 상태였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성장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올라오지 못한 듯하다.
하긴, 기껏해야 A급 정도로 올라온 능력으로, 만족할 단계라고 말할 수는 없지.
태현은 다음으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이번에 보상으로 획득한 소환석을 꺼냈다.
일반 소환석과 달리 영롱한 푸른빛을 띠는 보석.
[‘수호자 레온’소환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태현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 보석을 그대로 부숴버렸다.
그러자 보석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더니 누군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보스랍시고 상대했던 기사였다.
그에게서는 더 이상의 적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주인을 영접했다는 듯, 감격한 얼굴로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추었다.
“아모스님을 뵙습니다. 레온이라 합니다.”
[이름 : 레온]
[칭호 : 수호자]
[등급 : 5성(봉인)]
*봉인이 풀리면, 모든 힘을 해방시킵니다.
[고유 스킬 : 질풍검, 슬래쉬(봉인), 수호검(봉인), 스트라이크 어택(봉인), 파멸모드(봉인)]
‘오··· 고유스킬이 5개나 있어?’
태현은 놀란 눈으로 레온의 설명을 읽었다.
현재 그의 등급은 5성.
봉인중이라고 하니, 봉인이 해제되면 보다 높은 등급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설마 필요한 안배랍시고, 이런 귀중한 자원을 남겨주다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그를 보니 문득 궁금한 게 있었다.
어째서 에일린이 안배를 준비해서 자신에게 넘긴 것일까?
“좋다. 레온, 네 전 주인에 대해서 설명해 봐.”
“···죄송합니다. 기억에 없습니다.”
“뭐?”
“제 주인은 아모스님이십니다. 전 주인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허.
태현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지금 자신이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전 주인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인가?
“그럼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냐?”
이러면 곤란하다.
뭐라도 건져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게 이렇게 되다니.
반면, 레온은 곤란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당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기억은 전부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 기억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제단을 왜 지키고 있었지?”
그렇다면, 주인이 바뀌어서 기억을 잃은 건 아니라는 건가?
아무래도 에일린이 고의적으로 그의 기억을 지운 것 같다.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단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냐? 추가로 물어볼 게 있다. 너는 내가 죽였는데, 어떻게 소환이 가능했지?”
“아모스님께서 처리하신 것은 제 분신입니다. 저는 보석에 갇혀있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분신의 눈과 귀를 통해서 보고 들으며, 분신을 조종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녀석을 처리했음에도, 소환을 할 수 있었던 거로구나.
태현은 많은 것을 건질 수는 없었지만, 레온의 서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던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이해했다. 그보다, 네 능력이 봉인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건 어떻게 풀어?”
“아모스님께서 보다 강해지시면 될 일입니다.”
“뭐?”
“종이 주인보다 압도적으로 강할 수는 없는 일. 그렇기에 주인께서 강해지신다면, 저 역시 본래의 힘을 회복할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내가 약해서 네 능력도 나랑 비슷하게 맞춰졌다··· 이거지?”
“정답이십니다.”
“시x.”
왠지 기분이 나쁘다.
결국 레온의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자신이 레벨을 빠르게 올려야만 한다는 소리다.
즉, 태현이 약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지.
그래서 기분이 조금 나빴다.
아무래도 빨리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추가된 느낌이다.
*
태현은 임지성과 함께 집을 나섰다.
어느정도 일이 마무리되기도 했고, 건설 스킬을 활용한 수련장도 얼추 완성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레온은 다른 5성 수하들과 비무를 하면서 서로의 실력을 알아본답시고, 안식처에서 열심히 수련중이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이 지나면, A~B급의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돌아다닐 생각이다.
구르카의 사탑은 당장 가는 것보다는, 레벨 100을 찍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계속 증가하는 변종의 개체를 줄이기도 해야 하고 말이다.
“뭐부터 해야될라나?”
“영화 보는 건 어때?”
태현이 의견을 내자, 임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쓰읍··· 영화부터 시작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뭐부터 하게? 네가 정해봐.”
아무래도 이렇게 놀러다는 것은 오랜만이다 보니 선택지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임지성이 코스를 정하기로 했다.
그 때였다.
태현의 눈빛이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임지성도 그의 눈빛을 보더니, 긴장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 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 저 사람은?”
임지성은 그 정체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태현을 바라봤다.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을 주시했다.
그는 바로 박성호였다.
한때 관리과장으로 일하면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위치까지 올라간 그.
그러나 지금은 관리국에서 쫓겨난 실직자다.
“좀 위험할 거 같은데?”
태현은 그 말과 함께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그 모습에 임지성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살기 봐라.’
박성호의 눈에서는 살기가 가득했다.
마치, 사람을 죽이겠다는 눈빛이다.
태현은 어째서 그가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지 대충 짐작은 갔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잘못은 딱히 없었다.
“한태현···.”
박성호가 태현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차갑다 못해, 증오와 분노가 서려있는 목소리.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태현은 미소를 띤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박성호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네 놈 때문에! 모든 게 망했어!”
박성호가 어느새 단검을 꺼내들고, 태현에게 돌진했다.
“지성아, 아무래도 조금 뒤로 미뤄야겠는데···?”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처리해.”
“쩝.”
임지성은 목표가 태현이라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옆으로 빠졌다.
그러자 태현이 주머니에서 곡괭이를 꺼내고는 박성호의 단검을 가볍게 막아냈다.
“어떻게···!”
박성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태현을 보았다.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조용히 속삭였다.
“위험하잖아요? 사람들 돌아다니는 길거리에서 공격을 하시면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