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100레벨(2)
*
설마 박성호가 여기서 공격을 해 올 줄은 몰랐다.
솔직히 그가 자초한 일에 자신을 원인으로 삼을 줄이야.
대충 저런 인간인 줄을 알았지만, 제대로 엮이니 기분이 참 더러웠다.
‘이걸 어쩐다?’
태현은 그의 단검을 가볍게 막아내자, 박성호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단검을 회수하고는 자신의 곁에서 조금 떨어졌다.
아직도 그는 자신이 E급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하긴, 관리국에서 쫓겨나고부터는 헌터의 정보를 알 수 없을 테지.
심지어 그는 헌터 자격조차 잃어버린 상태다.
얼마 전에 발표된 A급 승격소식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너··· 너 뭐야? 어떻게 E급이 내 공격을 막아!”
박성호가 부르짖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흥분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태현은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박성호씨가 너무 약해서 그런 건 아닐지?”
“이 새끼가!”
“그리고 헌터 자격도 잃어버리신 분이, 너무 힘을 남발하는 거 아니에요? 자격을 잃은 사람들이 왜 숨죽여 지내는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헌터 자격을 잃은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힘이 있지만, 박성호처럼 권력을 남발하다가 쫓겨나거나, 그게 아니라면, 일전에 보았던 살인귀처럼 비각성자를 살해하는 놈들.
그 외에도 많은 부류가 있었다.
물론 행위에 따라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을 당한다.
박성호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행동은 다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몬스터가 아닌, 같은 각성자에게 겨누는 것은 처형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성자들만을 가둬놓는 헌터 지하 감옥에서 옥살이를 해야 할 정도로 죄질이 나빴다.
“닥쳐! 차라리 네 놈을 죽이고, 옥살이를 하는 게 백 배, 천 배 낫다!”
“아~ 그러십니까? 그런데 왜 저한테 원한을 품으세요?”
“그걸 말이라고 하나? 진도윤 그 새끼에게 일러바친 게 누구더라?”
“그러게요? 그게 누구지?”
태현은 정말 모른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자신은 각서에 대해서 일러바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진도윤이 자신을 관리국에 넣으려고 하길래, 무기로 삼았을 뿐이지.
각서를 가지고, 박성호를 처벌해달라고 한 적은 일절 없다.
“죽여버린다!”
“큰일났네. 별로 피를 보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 가지고 있는 힘으로 박성호를 죽이는 건 쉽다.
하지만, 그는 원한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태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장소를 바꿔서 끝을 보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죽어라!”
태현의 말에도 박성호는 계속해서 단검을 휘둘렀다.
이성을 잃은 것이다.
계속되는 공격에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관람 중이었다.
‘이 사람들아··· 이거 진짜로 날 죽이려는 거라고.’
태현이 곡괭이로 단검을 여유롭게 받아치는 것 때문에, 단순히 쇼라고 착각한 듯싶다.
그런데 이건 쇼가 아니었다.
그가 박성호보다 월등히 강하지 않았다면, 그를 장난감 다루듯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흐음···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정신을 차릴까?’
박성호를 죽이지 않고 끝내는 방법.
그게 뭐가 있을까?
태현은 박성호의 공격을 받아냄과 동시에 생각에 잠겼다.
“이게 사람을 우습게 봐!”
“좀 조용히 해보세요. ···아! 그러면 되겠구나.”
순간 그의 뇌리로 스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박성호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단검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태현은 그대로 공격을 받아내고는 박성호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팔을 그의 목에 둘렀다.
“좀 얌전히 있어보세요.”
그대로 팔에 힘을 주자, 박성호가 괴롭다는 듯이 단검으로 그의 허벅지를 찌르려고 했다.
그렇지만, 태현이 반대쪽 팔로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기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의식을 잃은 박성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태현은 박성호를 조이고 있던 팔에 힘을 풀었다.
“지성아,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
“휴··· 또 뭔 짓을 해서 이 사람에게 원한을 샀어?”
“난 잘못 없다. 순전히 지가 잘못하고, 애꿎은 데 화풀이하는 거라고.”
“···어쨌거나 빨리 관리국에 넘기자. 증인으로 서줄 테니까.”
“관리국에 넘길 필요는 없어. 좋은 방법이 떠올랐거든. 미안한데, 2분만 여기서 기다려줄래?”
“야··· 너 설마?”
임지성이 설마하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 물음에 태현이 미소로 답을 대신했고, 그와 박성호의 몸이 그대로 사라졌다.
*
“끙···.”
박성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웬 이상한 큰 성의 입구 앞에 쓰러져있었다.
그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건물구조는 처음 본다.
심지어 그 외의 다른 건물들은 이제 완공단계에 접어들거나, 공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주위의 풍경 따위가 아니었다.
태현을 죽일 생각으로 달려들었는데, 목을 졸리면서 의식을 잃었던 것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드셨나요?”
그 때, 그의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태현!”
그는 소리를 지르며 등을 돌렸다.
하지만, 금세 그의 입이 다물어졌다.
어느새 그의 앞에는 70명이 넘는 수하들이 그에게 무기를 겨눈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같이 강한 기운을 내뿜는 이들.
몇몇은 자신보다 약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나머지는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이제 대화가 조금 되려나요?”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뭐긴, 당신의 그 생각을 뜯어고칠 생각이죠.”
“뭐···?”
태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박성호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 건 사실이지만, 그는 괜한 곳에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선택한 것이 바로 안식처.
현재 수련장을 제외하고도 짓는 건물들이 많았다.
모두 수하들이 힐링이나 수련에 필요한 건물.
물론 태현이 사용할 목적으로 지을 건물도 있었다.
“안 그래도 실직자라면서요? 할 일도 없는데, 여기서 일이나 하세요.”
개같이 굴린다.
노예마냥.
이것이 죽음보다 훨씬 괴로울지도 모른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그의 노동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태현이 선택한 벌이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교육이 덜 됐네요. 레온, 알아서 잘 훈육시켜라.”
“저만 믿으십시오.”
수호자 레온이 대답했다.
그가 어떻게 훈육을 진행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힘이라면 박성호정도야 개같이 굴리는 데 충분하리라.
태현은 그 말을 끝으로 원래 세계로 되돌아갔다.
“미x! 어디로 사라졌어!”
박성호는 태현이 사라지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어느새 수하들이 그를 포위했고, 레온이 박성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너냐?”
“뭐···?”
“네가 감히 아모스님을 해하려고 해?”
“그게 무슨? 내··· 내가 언제?”
“다 보고 있었다.”
서걱.
레온이 검을 들더니 그의 왼 팔을 깔끔하게 베었다.
“끄아아악!”
팔이 뜯어지는 고통에 박성호가 자리에 엎어져 괴로워했다.
그러자 5성 마법사가 어느새 다가와서는 그의 팔을 다시 원래대로 붙였다.
고통이 사라지자, 박성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는데, 그의 눈에서는 어느새 공포가 자리 잡은 뒤였다.
“다시 묻지. 왜 아모스님을 해하려고 했지?”
“아··· 아모스가 누구···.”
박성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레온은 이번에는 그의 왼쪽 무릎을 깔끔하게 절단했다.
“끄아악···!”
박성호가 다시금 괴로워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5성 마법사가 원래대로 돌려주었다.
그렇지만, 박성호의 대답이 뜸할 때마다 레온의 검이 그의 신체부위를 절단했고, 5성 마법사가 회복을 시켜주었다.
그러기를 반복한 끝에.
“다음은 네 아랫도리다.”
레온이 다시 검을 쥐었다.
박성호는 무릎을 꿇고, 그가 원하는 대답을 이야기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뭣도 모르고, 아모스님을 해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아모스가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부러 죽이지도 않고, 계속 고통만을 주는 것은 지옥과도 같았다.
박성호는 지금 당장이라도 여기서 탈출하고 싶었다.
레온은 박성호의 대답을 듣고는 그대로 검을 회수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죗값을 달게 받아야겠지?”
“물론입니다. 죗값은 당연히 치러야지요.”
“좋다. 그러면, 오늘부터 일을 시작한다. 너를 감시할 친구들을 소개하지.”
레온이 시선을 돌리자, 5성 기사와 자객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박성호를 찢어죽이겠다는 살기가 깃든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고, 박성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젠장··· 내가 어째서!’
박성호의 소리 없는 절규가 울려 퍼졌다.
*
“잘 끝냈냐?”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니 임지성이 다가와 물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죽이지는 않았고, 아마 죽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을 할 정도로만 만들었다.”
“···무슨 짓을 했길래?”
임지성이 불안한 눈동자로 태현을 보았다.
죽는 게 나을 정도라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러나 태현은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이상한 짓 안 했다. 그냥 일 좀 시키는 거지.”
“일?”
“그래. 뭐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내가 말한 건 좀 생각해봤어?”
박성호 이야기는 그만.
이제는 본론을 이야기할 때다.
오늘까지 휴식을 취하고, 내일부터 바로 레이드를 돌기 위함이다.
그리고 임지성에게는 한 가지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건 바로.
“너··· 장난이 아니었냐?”
“응. 장난 아닌데.”
“···그러니까 나랑 너, 1명을 포함해서 A~B급 던전을 클리어하자고?”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다.
사실 임지성이 게이트에서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는 건 맞지만, 그의 레벨을 75까지 만들어주고 싶었다.
적어도 일반 C급들은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A~B급 던전은 길드에서 독점하고 있어. 파티들은 기껏해야 C급 이하밖에 못 돈다고.”
임지성은 자신이 고민했던 부분을 털어놓았다.
확실히 그의 말이 맞다.
고(高)등급 각성자들이 괜히 길드로 들어가는 게 아니다.
길드에 들어가면, 던전을 클리어 하는데 있어서 걱정할 게 없으니까.
그렇지만 파티는 다르다.
A~B급 게이트는 길드가 0순위로 가져가는 것이 원칙.
수많은 길드가 있는데, A~B급 게이트가 남을 수가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파티들은 C급 이하의 게이트만 취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 방법이 있지. 어쨌거나 네 의견은 어떤데?”
태현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A~B급 게이트는 일반 파티가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것이 설령 A급으로 이루어진 파티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만큼 길드가 입지를 다져놓은 것이 컸다.
하지만, 그에게는 게이트를 선점할 방법이 존재했다.
“음···.”
임지성은 고민했다.
안 그래도 모아놓은 돈으로 계속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슬슬 돈을 벌긴 해야 한다.
그리고 태현은 자신과 함께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수익을 정확하게 나누기로 했다.
등급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원수만큼 나오는 금액을 적절하게 배분하기로 한 것.
심지어 그 관리를 자신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아직 고민 중?”
태현이 은근히 물었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능력으로 몬스터들을 잡아들이고, 임지성은 금액의 부분에서 서포트만 해주면 될 일이니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임지성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좋아. 한다.”
“좋았어.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는 거다.”
태현과 임지성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