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100레벨(3)
*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온 태현과 임지성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태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신호음은 4번도 채 울리지 않아서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태현이 전화를 건 곳은 연화 길드의 채민희였다.
당시 B급 던전에서 변종이 발생하면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뻔 한 걸, 그가 구해주었었다.
연화 입장에서는 태현은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그런 그가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당시 빚으로 올려두었던 것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요구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제가 전화를 건 이유는 아시겠죠?
-네. 알고 있어요. 무엇을 원하시는 거죠?
-게이트요.
-네?
채민희는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반문했다.
-다시 말씀드리죠. A~B등급의 게이트를 원합니다.
-게이트요···? 다른 것도 아니고, 게이트인 이유가 있으세요?
어째서 게이트를 요구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말투다.
-아시다시피 저는 길드가 없습니다. 뭐··· 어디에 소속되고 싶지도 않고요.
-그건 알고 있어요. 많은 길드의 접촉을 전부 무시하신다고···.
-네. 그러니까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면, 파티밖에 방법이 없다는 거죠. 그런데 A~B급 게이트는 길드에서 독점을 하고 있는 터라···.
-아!
채민희가 이해가 됐다는 듯, 작게 탄성을 질렀다.
그녀는 각성했을 당시부터 길드에 소속되어 활동했으니 잘 모를 수도 있으니 이해한다.
파티의 설움을 잘 모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 연화의 이름으로 게이트를 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헌터님께서 처리하시는 거구요?
-맞습니다.
-게이트의 숫자는 얼마나 원하세요?
중요한 문제다.
태현은 게이트의 숫자를 얼마나 요구할까 고민했다.
딱히 이렇다 할 숫자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연화의 양심에 맡기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연화측에서 결정을 내려주시지요. 제가 판단하기에는 조금 그렇네요.
자신이 구해준 나머지의 목숨 값을 매길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연화의 양심에 맡겨서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숫자만 클리어 할 생각이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파티의 인원도 필요하시겠지요?
-네. 필요하죠.
-네. 그러면 몇 명정도? A급 10명, B급 10명 정도 같이 가면 될까요?
-아뇨.
-그러시면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신지?
-아뇨. 그냥 채민희 헌터님 이름만 올려주시면 됩니다. 저랑 친구 포함해서 2명이서 던전에 들어갈 거라.
-네!?
*
채민희는 전화를 끊고, 당황한 눈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드르륵 쿵!
바퀴가 달린 의자는 그대로 뒤로 밀려나가고는 벽에 부딪혔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10명도 아니고, 고작 2명이서···?”
그가 어째서 2명이서 클리어 하겠다고 움직이는지는 알고 있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거겠지.
“후우··· 그래. 골렘을 쓰러트린 모습을 보면, 나보다 강한 건 인정해. 그렇지만···.”
그가 말하는 A급 던전은 다르다.
B급이 변종을 일으켜 A급에 가까운 무력을 가진 던전과는 180도 다르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A급 던전에 들어가는 A급 헌터 인원만 20명이 넘는다.
그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종이 출현하면서 연화는 A급 게이트에서 손을 뗐다.
혹여나 A급에서 변종이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A급에서 변종이 발생한 기록은 없기 때문에 다른 길드에서 A급 각성자로만 추려서 클리어하거나 S급이 간간히 나서기도 하지만, 연화는 길드원들을 잃고 난 뒤라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B급밖에 확보하지 않았는데···.”
현재 연화는 B급의 게이트만 확보한 상태.
‘연화 측에서 결정을 내려주시지요.’
태현은 연화에게 게이트의 결정권을 넘겨주었다.
동료의 목숨 값은 그가 결정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일단은···.”
채민희는 책장에 꽂혀있던 게이트 일정을 적어놓은 노트를 펼쳤다.
그녀가 따로 준비해놓는 일정목록이다.
12/3 대구광역시 수성구 : B급(게이트 생성일 : 11월 29일.)
12/4 부산광역시 남구 : B급(게이트 생성일 : 11월 29일.)
12/5 대전광역시 유성구 : B급(게이트 생성일 : 11월 29일.)
12/5 충남 아산시 : B급(게이트 생성일 : 11월 29일.)
현재 게이트를 확보한 것은 4개.
보통 게이트를 선점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240시간.
480시간이 지나면, 몬스터가 게이트를 빠져나와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한다.
그렇기 때문에 240시간이 지나도, 그 길드에서 처리하지 못한다면, 다른 길드에게 넘어가게 된다.
“건의를 올려봐야겠네···.”
자신이 부사장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건에 대해서는 길드와 상의를 해야 한다.
물론 거절하는 인원은 없겠지만, 절차상 진행을 하긴 해야 하니까.
채민희가 채연화와 인사과장, 관리과장에게 차례대로 전화를 하고는 그대로 부사장실을 빠져나갔다.
*
태현이 통화를 마치고, 정확히 2시간이 지나서야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일단은 3개의 게이트를 먼저 내어주겠다는 것.
그는 어떤 게이트를 클리어 해야 하는지 천천히 받아 적었다.
자세한 위치는 워치로 받을 것이기에 통화로는 간략한 위치만 받았다.
12/3 대구광역시 수성구 : B급(게이트 생성일 : 11월 29일.)
12/4 부산광역시 남구 : B급(게이트 생성일 : 11월 29일.)
12/5 대전광역시 유성구 : B급(게이트 생성일 : 11월 29일.)
오늘이 12월 2일인 것으로 보아, 당장 내일부터 게이트를 돌 수 있다.
생각 외로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음에 임지성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짜 신기하네···.”
“뭐가?”
어느새 통화를 마친 태현이 물었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 생각해봐. 연화면 수도권 내에서도 알아주는 길드잖아? 태왕이랑 양대 산맥을 이루는 길드라던데.”
임지성은 눈치껏 고구려의 이름을 빼버렸다.
그딴 길드.
알아준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았다.
태현도 그 마음을 알고 있는지,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얼마 전에 연화를 도와준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 답례인 셈이지.”
“응? 답례?”
“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태현을 보니, 임지성이 조금 답답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왜 게이트라고 말했냐?”
“그게 무슨 소리야?”
태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가 이러는 건 다름이 아니다.
“너 게이트 도는 거, 돈 때문 아니냐?”
“아닌데?”
“그러면서··· 응?”
그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임지성이 멍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게이트를 돌려는 것이 돈 때문이 아니었나?
보통은 능력만 되면, 돈이 되는 게이트를 돌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태현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돈이 목적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돈을 요구하면 될 일.
그래서 그의 처신이 조금 답답했는데, 알고 보니 돈 때문이 아니란다.
그럼 뭐 때문에?
“레벨. 그리고 몬스터 박멸.”
“···정말?”
“그래. 너도 던전 20번 돌 때, 레벨 업 좀 많이 했을 거 아니냐?”
“그건 그렇지만···.”
확실히 20회를 돌고 난 이후로 레벨이 오르면서 61이 되었었다.
그렇기에 스킬능력이 향상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 사실이다.
설마 레벨 업을 노리고 게이트를 돌 생각을 하다니.
아무래도 수하들을 부리는 스킬이다 보니 이 부분을 더 강화시킬 생각이었나 보다.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 원인이 몬스터다.”
“뭐?”
처음 듣는 이야기다.
사실 태현은 이런 가정사를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임지성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였기도 하지만,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우울감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슬슬 꺼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지내면서 둘의 대화가 조금씩 많아졌기도 하고,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그의 가정사는 자신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자신의 가정사를 모르는 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에 한 번 스치듯이 찔렀을 때, 어영부영 넘어갔지?”
“어··· 그랬지?”
사실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기도 하고, 함부로 묻기 그래서 살짝 찔러본 적이 한 번 있다.
그 때, 태현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임지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냉장고에서 맥주 2캔을 가져왔다.
말린 오징어도 잊지 않고, 챙겼다.
“그동안 이야기 안 해서 미안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뭐가 미안해?”
“네 가정사는 알고 있는데도, 나는 이야기를 안 꺼냈잖아.”
“씁··· 됐다. 오글거리게 하지 말고, 한 잔 하자.”
임지성은 그가 가져온 맥주 한 캔을 따고는,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태현이 피식 웃었다.
“그래. 어쨌든, 내일부터 잘 해보자.”
“어. 난 너만 믿고 있다.”
“걱정 마라. 위험한 일이 닥치더라도, 너만큼은 어떻게든 무사히 내보낸다.”
“뭔 소리야··· 네가 위험하면, 나는 죽고도 남아.”
“하하하.”
둘의 웃음소리가 방을 가득 매웠다.
*
다음 날이 되고, 태현은 자신의 수하들을 점검하기 위해 안식처로 향했다.
임지성은 지금쯤 짐을 바리바리 싸고 있으리라.
“오셨습니까? 아모스님.”
태현이 안식처에 도착하자마자 레온이 그에게 다가와 예를 갖추었다.
“오셨습니까!”
나머지 수하들도 그를 발견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나왔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박성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훈육은 어떠냐?”
명령을 받았으니 어련히 잘했겠지만, 진행 상황이 궁금했다.
레온은 흡족한 얼굴로 있었던 일들을 보고했다.
“훈육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
“네. 걱정 마십시오. 혹여나 훈육이 덜 된 모습을 보이면, 그대로 아랫도리를 잘라낼 것입니다.”
“···잘 들을 수밖에 없겠네.”
아무렇지도 않게 아랫도리를 자른다고 하다니.
너희들은 참으로 악마구나.
태현은 헛웃음을 삼키고, 열심히 작업 중인 박성호의 모습을 담았다.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원한을 가져서 초래한 일이지만, 그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덕분에 노가다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계속 열심히 하면, 조금쯤은 보수를 줘도 괜찮겠지?’
그는 박성호에게서 시선을 떼고, 레온에게로 다시 시선을 두었다.
“레온, 오늘부터 B급 던전을 돌 생각이다.”
“B급 던전이라면···?”
“그래. 몬스터들을 박멸하러 가는 거다. 나머지 인원들은 그대로 작업 진행하고, 너만 따라와.”
“알겠습니다!”
레온이 크게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수하들이 당황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다.
“주군! 저희들도 써주십시오!”
“저희들도 큰 힘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무기를 하사받았던 5성 기사, 자객, 궁수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너희들도 필요하면 불러야지. 단지, 이번 게이트는 내가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점검을 하는 단계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이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불만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도록.”
그 말에 수하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명령.
그것은 절대적이었다.
결국 그들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조금만 참아라. 금방 날뛰게 해줄 테니까.’
레온은 이들과 다르게 대부분의 힘이 봉인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실력 점검과 동시에 레온의 힘이 개방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담고 싶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레온과 함께 안식처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