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100레벨(4)
*
오늘 클리어 해야 할 던전의 위치는 수성구에 있는 범어공원이었다.
바로 여기에 B급 게이트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음···.”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도 이름을 올렸으니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채민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어느덧 레이피어가 들려있었다.
이름만 올려주면 될 일인데, 어째서 그녀가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다.
임지성은 살짝 곤란한 얼굴로 태현을 보았고, 그는 레온을 바라보았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여기는 왜 오셨습니까?”
“한태현 헌터님께서 강하신 건 알고 있지만, 단 두 분이서 B급 게이트를 클리어 하는 건 조금 위험하다고 판단해서요.”
이 사람이?
전에 A급에 가까운 파이어 골렘 상대하는 걸 못 봤나?
그런 모습까지 보여줬으면 어련히 2명이서 보낼 줄 알았는데.
그러나 채민희는 그것을 몰라서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변종의 개체가 증가하고 있잖아요. 이 게이트도 변종이 도사리고 있을 확률이 없다고는 말 못 하시겠죠?”
변종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렇다면, 이 B급 게이트가 마냥 B급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변종은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량과는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할 수도 없는 상태다.
“그렇죠? 그러면 다른 인원들은 안 왔습니까?”
그런 상황까지 고려했다면, 굳이 혼자 왔을 리가 없을 텐데?
채민희는 고개를 저었다.
“네. 일단은 저 혼자 왔어요.”
“일단은?”
“헌터님께서는 소수인원으로 공략하시길 원하시잖아요? 만약 헌터님이 위험하다고 판단됐을 때에는 제 손목에 있는 마력밴드를 끊어서 지원을 요청하면 됩니다.”
“설마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
채민희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정답을 찌른 모양이다.
아무래도 생명의 은인이랍시고, 자신의 선에서 최대한 배려해준 것 같은데.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들어가죠.”
“저···.”
“이번엔 뭐죠?”
또 무슨 할 말이 남았는지, 그녀가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그의 옆에 있는 레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 분은 왜 들어가시는지···?”
“···각성자 등록증이 없는 친구라서요. 실력은 A급 이상입니다.”
“그런 사람도 있었어요!?”
채민희가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네. 여기 있네요.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지만, 일단은 넘어갑시다. 좀 더 안전하게 클리어하려고 이러는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채민희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채민희를 포함한 4명이 B급 게이트로 들어갔다.
*
태현이 게이트에 진입하자마자 들어온 풍경은 허허벌판이었다.
차들이 지나갈 수 있는 도로.
정확히 2차선의 도로에 서 있었다.
“흐음···.”
이런 곳에서도 몬스터들이 등장한다는 게 놀라웠다.
어떤 몬스터가 등장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태현은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은 보통 최적의 환경에서 서식한다.
이런 허허벌판도 몬스터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환경이 된다.
“일단 좀 걸을까요?”
태현이 의견을 냈고, 채민희와 임지성이 동의했다.
레온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말에 무조건 동의.
그렇게 그들은 도로 위를 천천히 걸었다.
채민희 역시 태현과 마찬가지로 레이피어를 손에 쥐고, 주위를 경계했다.
레온 역시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거리를 조금 벌린 상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몬스터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변종은 아닌 거 같은데··· 어째서 몬스터들이 보이질 않는 거지?”
태현이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던 그 때.
쿠르르르!
땅의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현은 임지성의 팔을 잡아끌고는 그대로 도로를 벗어났다.
레온과 채민희도 그와 같이 도로에서 벗어났다.
방금 흔들린 지축은 정확히 도로였다.
그렇다는 것은, 몬스터들은 지금 도로 밑에 숨어있다는 말이 된다.
콰드득!
도로가 드릴에 의해 뚫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조심하십시오. 태현님!”
레온은 태현의 안위부터 살폈다.
아모스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명령을 내려 부르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에 태현님으로 호칭을 정정했다.
채민희는 도로 아래를 주시하면서 그대로 레온의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레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뭐합니까?”
“네?”
“좀 떨어지세요.”
“피하다보니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 가지고···.”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단 몬스터부터 상대하죠.”
둘의 대화가 이어지자, 어느새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철의 크레이드.]
마지 두더지를 연상하게 하는 몬스터.
강철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이마에는 뾰족한 뿔이 달려있었다.
뿔이 고속으로 돌면서 태현을 노려보는 모습.
아무래도 저걸 이용해서 도로를 파고 올라온 듯하다.
크레이드는 눈에 보이는 숫자만 하더라도 31마리.
태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곡괭이를 꺼내들었다.
“변종은 아닙니다. 그러니 상대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태현이 채민희와 레온에게 언질했다.
임지성은 그 틈에 크레이드에게 조금 떨어져 안전거리를 확보.
너무 멀리 떨어지기에는 크레이드가 추가로 나타날 수 있으니, 태현의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이번에 얻은 새로운 스킬을 시험해볼까?’
태현은 그 생각을 가지고, 바닥을 향해 대지분쇄를 사용했다.
군주가 Lv.3으로 올라오면서 생성된 스킬.
비록 추가된 것이라고는 이것 하나였지만, 어쨌거나 공격스킬이 윈드밀 하나였던 태현에게는 아주 고마운 스킬이 될 것 같았다.
그의 곡괭이가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그가 땅을 향해 세게 내리찍었다.
그러자,
쿠웅! 쩌저적.
그들이 서 있던 구덩이부터 시작해서 도로의 지축이 크게 흔들리더니 갈라지기 시작했다.
스킬답게 그가 공격하지 않을 대상은 피해가는 모습.
덕분에 채민희와 레온, 임지성이 있는 구간만 제외하고 대지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정확히 크레이드들에게 대지 분쇄가 적용된 것이다.
끼에엑!
강진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는지 몇몇의 크레이드들이 그대로 나자빠졌다.
추가로, 땅에 숨어있던 나머지 크레이드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태현은 그 틈에 놈들에게 달려들었고, 윈드밀을 사용해서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채민희는 태현의 새로운 스킬에 놀란 눈이 되었지만, 어느새 자신도 레이피어를 들고, 크레이드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레온 역시 질풍검으로 크레이드를 박살내는 모습.
“와···.”
임지성은 A급 헌터들의 공격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이런 강력한 모습은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 광범위한 스킬까지 가지고 있었어?”
심지어 자신들은 피해가는 공격.
그의 반경 100m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마냥, 지축이 흔들리고 대지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크레이드들이 뛰쳐나오는 모습.
정말 장관이었다.
그리고는 윈드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속으로 회전하면서 크레이드들을 찍어 누르는 모습.
“나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다면···.”
태현을 보니 부러웠다.
저런 강력한 힘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무시는 당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자신은 C급이었다.
태현만큼의 힘을 가지는 것이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쩝. 이전에는 부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보니까 존x 부럽네. 휴···.’
그가 들리지 않게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았어.’
일반몹의 크레이드들을 전부 잡아들이니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로써 현재 레벨은 94.
이대로 가면, 100까지 달성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보스만 남은 것 같습니다.”
남은 크레이드들을 질풍검으로 잡아낸 레온이 태현에게 다가왔다.
채민희도 사냥을 마치고, 피가 묻어있는 레이피어를 닦아냈다.
이제 보스만 남은 상황.
임지성은 어느새 태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다행이 부상은 보이지 않았다.
“야, 나 레벨 업 했다.”
“나도다.”
임지성은 미소 띤 얼굴로 이야기했다.
확실히 그를 데리고 온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75레벨을 올려주겠답시고, 같이 다니면 임지성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다.
태현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보스가 숨어있을 만한 지하 동굴의 입구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크레이드들을 상대하면서 살펴본 결과,
보스 방으로 추정될만한 공간이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보스는 생각보다 얍삽한 놈이었다.
구덩이를 몇 개를 만들었는지, 자유자재로 이동하면서 그들을 상대하려했다.
그렇지만, 태현에게는 대지 분쇄라는 스킬이 존재했다.
다른 몬스터라면 몰라도, 땅에 숨어서 기습을 하는 크레이드들에겐 취약한 공격 스킬이 아닐 수 없었다.
쾅!
끼엑!
태현이 대지 분쇄를 사용하자 보스 크레이드가 충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멍하니 있다간 큰일 난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어떻게든 구덩이에 숨어서 버텼다.
그렇지만, 태현이 쉬지 않고 스킬을 사용하면서 보스 크레이드는 도망칠 생각도 못한 채로, 그대로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결국 레온과 채민희의 공격이 더해지면서 크레이드는 빠르게 처단되었다.
아쉽게도 보스는 아이템을 떨구지 않았지만, 자신의 레벨과 임지성의 레벨이 오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제 100까지 남은 레벨은 불과 6.
“휴··· 생각보다 쉬웠네요?”
레이피어를 회수한 채민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B급 던전을 이렇게 빠른 시간 내로 처리할 줄이야.
자신이 돕지 않았더라도, 이들은 이처럼 빠른 시간 내로 던전을 클리어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빠른 시간 내로 클리어 한 것은, 태현과 레온의 광범위한 공격스킬 덕분에 가능했다.
특히 놀라웠던 건 레온의 실력이다.
“저기··· 저 사람은 등록증을 안 만드나요? 관심이 없으신 걸까요?”
저 정도라면 헌터로 등록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고, 그만한 대우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등록을 하지 않는다면, A급이더라도 게이트를 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균열이 생긴 초반에야 제대로 된 프로세스가 구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러나 태현은 능숙하게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등록에는 별 관심이 없는 친구라서요. 오늘이야 저를 도와주려고, 들어온 것뿐이고요.”
사실 그는 수하들에게 각성자 등록증을 쥐어줄 생각이 없었다.
안식처가 원래 그들이 지내야할 공간이기도 하고,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여기에는 발을 디디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겠어요. 그··· 제가 돕지 않아도 충분하긴 했겠네요.”
“충분하긴 하죠. 원래 채민희 헌터님이 안 오셨으면, 저희끼리 클리어 했을 거니까요.”
태현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채민희가 미소를 지었다.
“···괜한 걱정을 했네요. 그러면 내일부터는 제가 오지 않는 게 좋겠죠?”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습니다만.”
태현이 볼을 긁적였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채민희가 피식 웃었다.
“저는 그렇게 들립니다만? ···어쨌든, 게이트에 들어갈 인원은 제 이름으로 올려둘 테니 저 분이랑 같이 클리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그렇게 부탁드리죠.”
“네.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채민희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그대로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자원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 게이트는 연화가 태현에게 건네준 것이기에 자원 역시 그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먼저 빠져준 것이다.
태현은 그녀의 배려에 미소를 짓고는 곡괭이를 들어 마정석을 캐기 시작했다.
레온과 임지성 역시 그에게 곡괭이를 받아들어 열심히 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