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100레벨(5)
*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은 순조로웠다.
변종은 다행이 출현하지 않았고, 덕분에 B급 던전을 클리어 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그리고 큰 수확이라면, 태현의 레벨이 어느새 96을 돌파했고, 임지성의 레벨은 74를 넘어섰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가 펼치는 마법의 위력이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C급의 한계는 명확했지만, 변화를 보인다는 점은 좋은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이야··· 설마 이렇게 광속으로 업을 할 줄은 몰랐네.”
임지성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파이어 볼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확실히 이전보다 열기가 더해졌다.
“좋은 거지. 이대로 가면 레벨 업은 금방 하겠는데?”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스테이터스를 점검했다.
이제 레벨을 4만 더 올리면 기다렸던 100이다.
레온은 아직 봉인된 힘을 풀지는 못했지만, 왠지 100만 넘어서면, 레온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도 B급 게이트더라?”
임지성이 일정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태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보였다.
연화 입장에서는 A급 게이트를 함부로 따내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변종으로 인해 동료들을 잃은 것이 최근 사건이기도 했고, A급 이상의 게이트에서는 변종이 출현한 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연화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렇기에 연화도 B급의 게이트만 현재 취급하고 있고, B급 게이트를 들어갈 때면 A급 각성자를 대거 투입해서 던전을 클리어했다.
물론 태현이 들어가는 게이트는 아직까지 변종이 출현하지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언제 변종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B급에서 변종이 발생하면, 좀 골치 아프긴 해.”
태현은 B급으로 일단은 만족하기로 했다.
괜히 A급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현재 그의 능력으로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하게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게이트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성장을 거듭하고 싶었다.
구르카의 사탑에 바로 들어가기에는 원래의 목적이었던 몬스터의 토벌을 계속 쉬게 되는 셈이니까.
“오늘은 수도권이야. 강동구더라.”
임지성은 헌터 워치로 자세한 위치를 전송받았다.
입장까지는 앞으로 2시간.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집을 빠져나갔다.
외출 준비야 진즉에 마쳤기도 하고, 입장하기 전 정비도 확실하게 해두었다.
그리고 오늘은.
“미리 축하한다. 만렙 찍은 거.”
드디어 임지성이 75를 찍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C급인 그에게는 Max 단계에 돌입했으니 축하할 이야기다.
“웃기네. 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더 서글퍼진다.”
“···너무 그러지 마라.”
“크흐흐, 장난이다. 단순히 부러워서 그래. 괜히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임지성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태현도 웃음을 흘리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약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더라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좋아. 그러면 빨리 클리어하고, 좀 쉬자.”
오늘 게이트가 끝나면, 임지성은 게이트에서 잠시 빠질 것이다.
75가 되기도 했고, 태현은 레벨을 4만 남겨두고 있으니 나머지는 그가 혼자서 클리어해서 100까지 빠르게 올릴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
임지성이 웃으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
‘오늘은 다른 녀석들도 불러야겠다.’
박성호의 훈육과 구조물 건설을 핑계로 그동안 부르지 않았던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온 몸이 근질근질할 것이다.
이제 근질근질한 몸을 풀게 만들어줄 때가 왔다.
레온의 성장을 눈앞에서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레온의 힘을 다시금 판단을 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들어가자.”
태현은 게이트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임지성도 그를 따라서 들어오고는 즉시 라이트 마법을 펼쳤다.
주위가 매우 어두웠기 때문이다.
‘다들 몸이 뻐근했지? 한 번 날뛰어봐라.’
그 말고 함께 태현이 4, 5성의 수하들을 대거 소환했다.
몇몇 소수의 인원은 박성호를 감시해야하기에 어쩔 수 없이 빠졌다.
“주군을 뵙습니다!”
그들은 오랜만의 출전에 감격에 젖은 얼굴로 예를 갖추었다.
“장시간 쉬었다고 그새 실력이 녹슨 건 아니겠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휴식을 너무 취해서 온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몬스터들을 철저히 박멸하겠습니다.”
“좋다. 그동안 부르지 못했던 게 미안하기도 하고··· 오늘은 너희들끼리 알아서 처리해 봐.”
“감사합니다!”
수하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저 멀리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은 피식 웃고는 몬스터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변종을 처리하세요.>
-변종이 도사리는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친구가 함께 대동중입니다.
-친구를 지키세요.
추가로 메시지도 뜨면서 퀘스트가 발생했다.
그보다 이번에도 친구를 지키라는 퀘스트.
어째서 이런 형식의 퀘스트가 등장하는 걸까?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변종부터 쓰러트리는 것이 급선무.
“전부 잡아들여!”
“네!”
태현의 명령에 수하들이 앞으로 전진했다.
추가로 그가 말을 덧붙였다.
“이번 몬스터들은 꽤 강하다. 눈치껏 잘 살아남아서 쓰러트리도록.”
“네!”
그동안 싸우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담아왔다.
이제 그것을 발산할 차례다.
5성 마법사가 임지성보다 위력이 강한 라이트 마법을 펼치면서 주위를 더욱 환하게 비췄다.
그러자 물고기 괴인같은 몬스터가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변이된 푸른 등껍질의 크락소.]
몬스터의 이름답게 크락소의 등에는 푸른빛을 머금은 등껍질을 착용한 상태다.
어느새 4성으로 성장한 테이머가 동글이를 소환했다.
4성으로 성장하면서 동글이도 B급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크락소는 A급에 가까운 상태.
그럼에도 동글이를 소환한 이유는 녀석의 등껍질 역시 아주 단단했기 때문이다.
어그로를 끌기에 충분한 덩치.
덕분에 크락소의 눈길이 동글이에게로 향했다.
“동글아! 너의 붉은 껍질이 저기 좆밥 푸랭이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알려줘!”
구오!
‘···이 새끼는 진짜 똘기 충만한 놈이야.’
당당하게 떠드는 녀석을 보니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5성 자객과 기사, 궁수가 동글이의 행동에 감탄하고는 그대로 몬스터에게로 돌진했다.
크락소는 조금 멍청하게 동글이에게 시선을 빼앗겼다가 그들에게 기습을 당했다.
생각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놈들이었다.
꾸웩!
5성 기사가 화염검을 사용하면서 크락소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5성 자객들 역시 빠른 속도로 크락소의 경동맥을 끊으면서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5성 궁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바람의 기운이 서린 화살을 크락소들에게 계속 쏘아댔다.
화살은 굉음과 함께 크락소들을 관통했다.
5성이다보니 크락소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나설 것도 없네.”
태현과 함께 멀찍이 떨어져서 싸움을 구경하던 임지성이 중얼거렸다.
그 때, 임지성이 밝은 얼굴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레벨 업 했냐?”
태현이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물었다.
임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75 됐다. 이제 성장도 끝이네.”
그의 목소리에는 시원섭섭함이 묻어나왔다.
가능하면, 레벨을 더 올리고 싶은데, 이제 올라갈 계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더 높은 계단에서 출발해서 바라보지도 못할 정도로 올라가는데, 자신은 중간에 멈춰 섰고, 더 이상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괜찮아. 75레벨이면, 어디 가서 무시당할 수준이 절대 아니다.”
태현이 위로했다.
확실히 C등급에 75라면, 오히려 대우를 받아가면서 생활할 수 있다.
그보다 못한 사람들도 널렸으니 말이다,
그 때였다.
“응? 뭐지? 몸이 조금 이상한데? 끄아악!”
임지성이 오른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야! 너 왜 그래!?”
태현도 당황해서는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임지성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는데, 일반 사람에게서 나타날 정도의 붉은 기운이 아니었다.
상상 이상으로 붉게 변했다.
임지성의 두 눈은 감긴 채로, 그대로 미동조차 없었다.
“이 미x··· 이 새끼 왜 이러는 거냐?”
그가 중얼거리자, 그 때 메시지가 들려왔다.
[최소 조건이었던 75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재각성을 실시합니다. 그는 킹의 절대적인 조력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태현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가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조력자라고?
그렇다면 새로운 힘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가?
심지어 재각성이라고 한다.
재각성의 사례는 극히 드물어서 국내에서는 사례가 아예 없었다.
그렇기에 타국에서 일어났던 사례를 주워듣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메시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임지성의 몸에서는 지금 재각성을 위해 신체가 변화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설마··· 친구를 지키라고 나온 퀘스트가 괜히 나왔던 게 아니었던 건가?’
태현이 주먹을 세게 쥐었다.
*
수하들은 태현이 당황하는 모습에 놀란 눈으로 사냥을 멈췄지만, 그가 다시금 명령하면서 사냥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1시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일반 몹인 크락스의 숫자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냥에 굶주린 수하들은 아직도 부족했다.
그렇기에 줄어드는 크락소의 숫자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꾸웩!
죽어가는 크락소를 바라보며 놈들이 조금만 더 발악해줬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반면, 태현은 임지성의 맞은편에 서서 그의 상태를 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이 서서히 지나면서 붉게 물들었던 그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임지성의 몸이 정상이 되었고, 그가 눈을 천천히 떴다.
“야, 너 괜찮냐?”
태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임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은 매우 밝았다.
“···대박사건이야.”
“왜? 재각성했냐?”
“어떻게 알았냐?”
“와··· 이 새끼야. 축하한다.”
태현 역시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 고맙다··· 지금 너무 얼떨떨해. 심지어 지금 레벨이 100이야.”
“뭐···?”
C급이 재각성을 통해 A급이 되었다?
태현은 설마 재각성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할 줄은 몰랐는지 입을 살짝 벌렸다.
단순히 재각성만으로 놀란 것은 아니다.
메시지에 적혀있던 조력자.
메시지는 임지성을 킹의 조력자라고 표현했다.
‘설마··· 이 녀석도 이런 식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건가?’
가설이지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꾸웩!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수하들이 마지막 크락소를 처리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느새 레벨도 97이 되었다.
수하들은 몬스터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자, 그대로 태현의 앞에 가서 예를 갖추었다.
그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한 것이다.
“좋다··· 어쨌거나 빨리 보스를 처리하자고.”
보스만 처리하면, 이번 퀘스트도 완료.
뭐랄까 한순간에 자신의 레벨을 뛰어넘은 임지성을 보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그래. 지금이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시원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말하는 임지성은 어느새 배낭에 들어있던 스태프까지 손에 쥔 상태다.
아무래도 재각성을 했으니 힘을 시험해보고 싶은 거겠지.
태현은 그의 그럼 모습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침울한 것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런 침울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은 힘이 있어야 돼.’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임지성과 함께 보스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