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칭호 1단계 해제(1)
*안식처에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새로운 병사들이 대거 투입되었는데, 하나같이 짐승형 몬스터였다.
더 재밌는 사실은 놈들의 외형이 해골이라는 점이었다.
스켈레톤.
“천천히 나르거라.”
그리고 그런 그들을 통솔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 역시도 해골이었다.
로브를 입고, 거추장스러운 장신구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녀석.
바로 발락이다.
딱딱!
딱딱!
그들은 각기 이빨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었다.
알겠다는 대답이었다.
그리고는 옆에서 자재를 나르는 거대한 녀석을 견제했는데.
붉은 등껍질을 가지고 있는 녀석.
라이크틸로였다.
테이머가 5성으로 승급하면서 덩달아 A급이 되어버린 녀석.
스켈레톤이 견제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것을 눈치 챈 발락이 미간을 좁혔다.
“저 살만 오른 놈은 좀 옆으로 치우지. 후우.”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5성으로 진급한 테이머가 이를 갈며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말 취소해라! 왜 동글이 기를 죽이고 그러냐!”
“쯧,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발락이 혀를 찼다.
그럴수록 테이머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자자. 서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들 그래?”
화염검을 가지고 있는 5성 기사는 금방이라도 싸울 것만 같은 분위기에 그들의 사이에 꼈다.
그러자 테이머가 말리지 말라는 듯,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놔 봐. 잠깐 놔 봐!”
“이 봐··· 좀 진정해.”
“저 해골 뼈다귀자식을 조지고야 말겠어.”
“뭐? 이 시x놈이! 해골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발락이 해골 뼈다귀라는 말에 발끈했다.
5성 자객 2명은 급히 발락을 붙잡았다.
당장이라도 테이머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테이머는 더욱 기세등등한 얼굴이 되어서는 발락을 쏘아봤다.
“잠깐만 놔 봐. 저 놈 뼈다귀 가져다가 동글이 장난감으로 쓸라니까.”
“으아아! 저 새끼는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당장 이 몸에게서 떨어져!”
갑작스레 시작된 싸움에 수하들이 그 모습을 구경했다.
어느새 핼쑥한 얼굴이 되어버린 박성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으··· 해골은 싫어.’
해골이 살아 움직이는 기괴한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가.
그는 해골 모습을 하고 있는 몬스터를 힐끔 보고는 급히 구석으로 피신했다.
당장이라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제 한태현에 대한 감정 따윈 사라진지 오래다.
‘제발 돌려보내줘···.’
매일 매일이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속으로 앓고 있는데, 안식처에 태현이 나타났다.
박성호는 당장이라도 사과하고 싶은 마음에 앞으로 나가려다가 그를 감시하고 있던 자객이 언제 옆에 붙었는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결국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자재를 나르기 시작했다.
*“뭐하고 있었냐?”
태현은 구르카의 사탑에 들어가기 전에 수하들을 점검하기 위해 안식처에 들렀다.
그런데 오늘따라 안식처가 참 가관이었다.
95%이상이 완성된 수련장? 아니다.
30%를 넘어서 40%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강당? 아니다.
수하들이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고 느껴지는 분위기.
그것이었다.
수하들은 당황한 얼굴로 급히 예를 갖추었지만, 이미 늦었다.
“뭐하고 있었냐고 물었다.”
“저··· 그것이···.”
어느새 자객의 품에서 떨어진 발락이 머리를 긁적였다.
뼈가 긁히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테이머가 급히 앞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군!”
“말해 봐.”
“사실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도중에 저기 뼈다귀가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게 또!”
“누가 끼어들라고 했지?”
태현이 말하자, 발락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테이머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동글이를 만들다 만 놈이라면서 치욕스런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 참지 못하고···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흐음··· 그게 사실이냐? 발락?”
“···작업을 하는데, 방해가 되어서 그랬습니다.”
“하아.”
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이런 이유로 싸움을 벌이다니.
아무래도 집단 내에서 통제하는 사람이 없으면, 사소한 일로도 다툼이 쉽게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자신의 수하들이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철저히 통제하는 건 아니지.’
태현은 적당한 선에서 통제를 걸기로 했다.
모든 부분을 자신이 통제한다면, 이들은 단순히 그가 사용하는 장기 말에 불과하다.
물론 그런 의도로 소환된 녀석들이지만, 태현은 단순히 장기 말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지금부터 말한다. 말다툼까지는 허용하겠지만, 상대방을 다치게 만드는 싸움까지 한다면, 그 녀석은 안식처에서 쫓겨날 줄 알아라. 그 놈은 더 이상 내 밑에 있을 자격이 없다.”
“!”
태현의 명령에 수하들이 일제히 두려운 얼굴이 되고는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특히 테이머와 발락은 더 심했다.
방금까지 싸움을 일으킬 뻔하지 않았던가?
밑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쨌든··· 그렇게 알고, 이제 다음 계획에 대해 재공지하겠다.”
“네!”
수하들이 그의 말을 집중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얼굴들이 인상적이었다.
발락은 눈동자가 없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앞으로 4시간 뒤, 구르카의 사탑에 들어갈 거다. 하루 만에 클리어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철저히 조사해서 클리어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거야. 이미 몇 번이나 말했으니 기억하고 있겠지?”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좋다.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군?”
“네!”
태현이 작업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박성호가 열심히 자재를 나르고 있었고, 그 뒤로 수많은 수하들도 자재를 급히 나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지켜보고, 처분을 결정해야겠어.’
그가 여기 온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얼굴을 보니 꽤나 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게 사람을 왜 건드리려고 했는지.
태현은 고개를 젓고는 그대로 안식처를 빠져나가려다가 레온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레온.”
“말씀하십시오. 아모스님.”
“수하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관리 좀 부탁한다. 추가로, 저기 박성호씨는 훈육상태가 괜찮으면, 조금만 적당히 굴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사실 레온은 수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싸우고 있는데도 말릴 생각은커녕, 자신의 수련에 집중하거나 박성호를 감시하는 일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태현이 명령을 내린 이상, 수하들의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태현은 그 말을 끝으로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레온의 눈빛이 순간 바뀌었다.
그 눈빛은 테이머와 발락에게로 향했다.
“방금 들었지?”
“···그래.”
“···으, 알겠다. 잘 지내보자.”
테이머와 발락은 한숨을 내쉬고는 서로 손을 맞잡았다.
주인의 명령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치고받고 싶지만, 주인의 밑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죽음보다 더 했으니까.
*임지성은 관리국 입구 앞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놈이야.’
사실 태현에게 숨긴 것이 있다.
당시 재각성을 하게 되면서 눈앞에 메시지가 뜬 것이 있다.
[당신은 킹의 조력자입니다. 그에 따른 최소치의 힘을 개방합니다. 추가 조건을 달성할 시, 더욱 강한 힘을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킹이 태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수하들을 부리는 능력도 그렇고, 자신의 역할이 조력자인 것과 그의 옆에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결국 재각성을 하게 된 것은 태현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를 돕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조력자라는 메시지 이외에는 추가적인 메시지가 뜨지 않았고, 그가 고심한 결과 태현을 필두로 한 길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길드를 만들기 위한 최소 조건인 A급 이상의 각성등급.
태현은 마스터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었으니 만들기 충분하다.
그렇다면, 굳이 연화에서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부마스터로 활동하면서 A~B급의 게이트를 많이 따낼 수 있을 것이다.
“좋아. 바로 길드부터 등록하자.”
사실 재각성을 하자마자, 고구려를 찾아가서 빅 엿을 선사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S급의 임요한이 무서웠다.
그러니 태현을 도와 길드를 성장시켜서 언젠가는 고구려를 이겨보고 싶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지성이 관리국의 정문을 통해 들어가자, 진도윤이 마중을 나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임지성입니다.”
“한태현 헌터님께 이야기 전부 들었습니다. 자, 빨리 가시죠.”
진도윤은 태현에게 그의 재각성 소식을 전해 들었다.
C급의 헌터에서 A급으로.
레벨 시작지점이 100이라는 것이 그 증거.
조금이라도 많은 인재가 나타나주길 바라고 있던 진도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길드를 만들 생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리국으로 스카웃은 불가능한 점은 슬펐지만, 그래도 어떤가?
길드를 창설해서 조금이라도 게이트의 숫자를 줄여나가, 훗날에는 모든 몬스터를 박멸하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하지 않았던가?
진도윤은 그런 대답을 들은 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기뻤다.
태현이 자신과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임지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절차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A급으로 재각성을 했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공식절차는 밟아야 한다.
또, 공식절차를 밟으면서 이슈가 되어야 정상.
그렇지만, 진도윤의 빠른 일처리로 꽤 많은 부분이 스킵 되었다.
“여기 측정기에 손을 올려주시지요.”
“네.”
이번이 2번 째 측정이다.
임지성은 조금 어색한 듯, 손을 올렸다.
수정구가 빛나며, 푸른빛으로 일렁였다.
결과는 측정불가.
휴대용 측정기가 측정불가로 떴으니, 그의 등급은 A급.
S급이라면, 수정구가 버티지 못하고, 깨져야 한다.
“축하드립니다!”
진도윤은 그 결과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임지성은 재각성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C급이 A급이 되었다니?
드디어 대한민국에서 유례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임지성이 조금 상기 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길드를 만들 차례.
“바로 길드 등록부터 진행하시는 건가요?”
진도윤은 조금 아쉽다는 얼굴로 물었다.
진즉에 연락을 받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목적이 돈과 권력이 아닌, 몬스터의 토벌이기에 관리국에서는 이들을 밀어줄 것이다.
적어도 자신만큼은.
“바로 부탁드릴게요.”
임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길드등록절차를 밟았다.
이제 길드를 키워나가는 것은 이들의 손에 달려있으니까.
“혹시 생각해두신 이름은 있으신지?”
길드의 이름.
임지성은 태현이 지은 이름을 떠올렸다.
어째서 그가 그런 이름을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마음에는 쏙 들었다.
“[왕국]입니다.”
*태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상급 무구 소환권과 ‘크락소의 방패’, ‘에일린의 반지’를 꺼냈다.
지금까지 확인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슬슬 사용을 할 때가 다가왔다.
먼저는 상급 무구 소환권.
당장 쓸 일이 없기도 하고,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상태라 일단 스킵하기로 하고 쟁여두었던 것이다.
태현이 무구 소환권이 잠들어있는 보석을 부쉈다.
그러자 메시지가 하나 울리면서 연기와 함께 아이템이 하나 떨어져 나왔다.
[‘아모스의 상급 부츠’를 획득하셨습니다.]
‘흠? 부츠라···.’
태현은 곧장 부츠의 정보를 살폈다.
[아모스의 부츠 : 상급]
-킹 아모스의 능력에 맞는 부츠.
-튼튼한 것이 그 어떤 환경에도 그의 발은 멀쩡할 것입니다.
-방어력 : 115.
-능력치 보정 : 근력 +20, 민첩 +20, 품위 +5
태현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부츠를 사용했다.
부츠를 착용하자, 방어력과 능력치가 상승한 것이 느껴졌다.
현대식에 알맞은 외형덕분에 부츠는 일반 운동화와 똑같았다.
‘크락소의 방패는···.’
누구를 줘야할까?
태현이 고민했다.
레온에게 있어서는 방패는 그닥 필요해보이지 않았다.
스킬들을 보아하니 방패를 들고 싸우기에는 부적절할 것 같기도 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검과 크락소의 방패 조합은 조금 아니라고 봤다.
[크락소의 방패 : A-급]
-크락소의 푸른 등껍질로 만들어진 방패.
-단단하고, 공격을 방어하는데 용이하다.
-방어력 : 65
-‘크락소 전용 스킬 : 아머’ 사용 가능.
역시 한손검을 사용하는 녀석에게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태현은 한손검을 사용하는 5성 기사를 소환하고는 합성 시스템을 이용해서 곧장 방패를 착용시켰다.
“감사합니다! 주군!”
5성 기사는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예를 갖추었다.
태현은 수련에 정진하라는 말과 함께 그를 안식처로 돌려보냈다.
이제 남은 것은 ‘에일린의 반지’
사실 이것은 누구에게 줘야할지 정해져있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 녀석’이 사용한다면, 더욱 높은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태현아! 등록 마쳤다!”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임지성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다.
“왔냐? 잠깐 앉아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