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A급 레이드(3)
*“오늘은 운이 좋은데?”
“그러니까 말이여.”
레이드를 위해 게이트에 들어왔다.
게이트에 들어오자 주변 환경이 삭막한 사막으로 바뀌었다.
너무 넓은 공간.
A급 게이트답게 쉽게 클리어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게이트의 마력 량은 270.
방심하다가는 그대로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스워드 길드원 2명이 서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들의 눈은 채민희를 향했다.
“진짜 예쁘지 않아?”
“그러니까··· 저 하얀 피부 좀 봐. 흥분할 것 같은데.”
“낄낄, 나도 그래.”
들리지 않게 조용히 떠드는 모습.
그들의 말대로 연화 길드의 자매는 대한민국 헌터들 중에서도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기감이 뛰어난 채민희는 그들의 음흉한 눈빛을 눈치 채고는 얼굴을 싹 굳혔다.
당장이라도 레이피어를 들 것만 같은 모습.
마침 레이드 지휘관인 방현석이 곤란한 얼굴로 크게 말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그룹으로 나누어서 사막을 횡단해야 될 것 같네요.”
“잠깐만.”
그의 말에 스워드 길드원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방현석은 미간을 미세하게 좁히고는 그를 보았다.
“왜 그러시죠?”
“여기 A급 게이트 중에서도 난이도가 아주 높은 곳 아니요?”
“네. 맞습니다.”
“에라! 그룹으로 나눴다가 몬스터한테 습격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쇼? 힘을 합쳐도 모자란 마당에 그런 지휘를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쇼?”
스워드 길드원의 반박에 같은 길드원들이 그를 동조했다.
그러나 방현석의 눈은 차가웠다.
그만이 아니었다.
스워드 길드를 제외한 천검, 연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들을 흘겼다.
결국 방현석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말했다.
“그 말도 맞습니다만, 이대로 가다간 밤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볼 수 있죠.”
그의 말에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사막이 밤이 된다면, 지금보다 위험에 노출 될 확률이 몇 배나 더 높다.
혹시라도 몬스터가 야행성이라면, 이들이 지친 틈을 타서 노릴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헌터라도, 야행성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조심해야했다.
던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다시금 되뇌었다.
“에이··· 그럼 맘대로 하쇼. 대신 그룹으로 묶는다면, 연화랑 같이 넣어주면 좋겠는데?”
음흉한 눈으로 채민희를 흘기는 모습을 본 태현이 이마를 짚었다.
A급 레이드에서 저러고 싶을까?
저렇게 분위기를 흐리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올라왔다.
결국 태현이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개소리 좀 작작해라.”
갑작스러운 욕지거리에 스워드 길드원의 고개가 태현에게로 홱 돌아갔다.
태현은 곁눈질로 채민희를 한 번 보았다.
그녀 역시 차갑게 식은 눈으로 스워드 길드원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뭐···? 방금 네가 지껄였냐?”
그 길드원은 단단히 빡쳤는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태현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연화 길드의 최명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요.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저 말씀이십니까?”
최명준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스워드 길드랑 협력해서 레이드 뛰어보셨습니까?”
“아··· 스워드는 처음입니다. 물론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생각이 짧았네요.”
“들었지?”
최명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길드원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미 붉으락푸르락한 상태였다.
“너, 이 새끼가!”
더 이상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겠는지 그대로 주먹을 내지르는 녀석.
“공격은 네가 먼저 했다.”
태현은 그 말과 함께 날아드는 주먹을 손으로 막아냈다.
[칭호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증가됩니다.]
‘좋은데?’
태현이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그의 주먹을 받아내자, 다른 스워드 인원들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방금 그를 공격한 길드원은 A급 헌터.
레벨이 120이 넘어서면서 스워드 길드를 대표하는 강자 중 한 명이었다.
심지어 스킬도 주먹을 사용하는데 관련 된 스킬들만 있다.
그만큼 주먹에 능통하다는 뜻인데.
방금 공격은 뭐란 말인가?
“너··· 뭐하는 놈이냐?”
“뭐긴, 아까 소개했잖아. A급 헌터 한태현이라고. 뇌가 우동사리로 이루어져있냐?”
“이 미x새끼가!”
그가 반대쪽 주먹으로 태현에게 내질렀다.
그러나 태현이 그의 주먹을 잡은 손에 힘을 가득 쥐었다.
안 그래도 130레벨보다 높은 능력치의 근력으로 모자라 모든 능력치가 30% 추가 상승한 상태다.
그가 힘을 주자, 길드원의 주먹이 그대로 박살났다.
“으아악!”
결국 내질렀던 주먹에 힘이 빠져버렸고, 태현은 우습다는 얼굴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게이트에서 몬스터를 잡아야지, 지금 뭐하자는 거냐?”
같은 A급 헌터가 싸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이들이 싸워야 할 상대는 바로 이 곳.
게이트의 몬스터다.
그렇지만, 스워드는 희롱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 태현을 죽일 각오로 공격했다.
태현은 자신을 공격하려고 했던 공격을 그대로 돌려줄 생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은 길드원의 턱을 어퍼컷으로 강타했고, 그대로 5m를 날아올랐다가 떨어졌다.
“길중아!”
스워드 길드원 한 명이 급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턱뼈는 완전히 골절, 얼마나 강한 충격이었는지 얼굴이 함몰되었다.
목뼈도 전부 박살나면서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주먹 한 번에 A급 헌터가 죽음에 다다르는 모습을 바라보던 천검과 연화는 두려운 눈으로 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성아. 치료 좀 해주라.”
태현은 그를 노려보다가 임지성에 부탁을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고유스킬.
그 정도라면, 다시 회생하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알았어.”
임지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로 다가가 축복의 노래를 시전했다.
*결국 길드끼리 찢어져서 수색을 진행하기로 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몬스터의 흔적이나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물론 그 전에 보스까지 찾아내서 클리어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A급 게이트의 공간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그룹으로 나뉘어 움직이는 것이 단체로 이동하는 것보다 위험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모여서 이동할 수만은 없는 일.
천검은 25명.
연화는 10명.
스워드 길드는 8명.
태현이 마스터로 있는 왕국 길드는 2명.
그렇기에 천검 15명의 그룹, 연화와 천검이 섞은 15명의 그룹.
마지막으로 왕국과 스워드, 나머지 천검 5명을 섞어 그룹을 만들었다.
총 3개의 그룹이 나뉘어 수색을 시작했다.
“흠··· 그냥 연화랑 섞일 걸 그랬나?”
임지성은 태현의 옆에 서서 중얼거렸다.
“뭔 소리야. 인원을 맞추는 데 적당하게 잘 짰구만.”
태현은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나 임지성은 그게 아니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그 연화 길드 부마스터라는 분.”
“아, 채민희씨?”
“그래. 왠지 그 분이 너랑 같이 그룹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는 눈치더라고.”
“···이상한 소리하지마라.”
“정말이라니까?”
하필이면 임지성에게 이런 소리를 듣다니.
유지아가 그렇게 티를 내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녀석한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왠지 화가 났다.
사실 그의 말대로 채민희가 자신을 힐끔 쳐다보는 일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감사인사를 표할 타이밍을 재는 것이지, 딱히 같은 그룹이 되어 움직이고 싶은 것은 아닌 걸로 보였다.
‘하긴, 이 녀석··· 모태솔로라고 그랬지.’
생긴 건, 멀쩡하다.
오히려 잘 생겼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럼에도 저 녀석은 모태솔로였다.
처음에는 어째서 저런 녀석이 모태솔로일까 싶었는데, 지내면 지낼수록 아주 잘 느끼는 중이다.
“됐어. 인원별로 따져보면 이렇게 가는 게 맞아.”
물을 흐리는 녀석과 같이 할 필요는 없지만, 이곳은 게이트다.
아무리 싫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버려둘 수는 없다.
그렇기에 스워드 길드원들이 나대지 못하도록, 철저히 교육을 진행할 생각으로 같은 그룹으로 끼게 되었다.
“저··· 어떻게 이동하실 생각입니까?”
공손하게 물어오는 스워드 길드원.
이름이 강 철이란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분위기를 흐리는데 가장 큰 공을 들였지만, 태현에게 반죽임을 당하고는 예의를 차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 철의 질문에 부지휘관인 안성민이 말했다.
“여러분들 받으신 마력 밴드가 있으실 겁니다. 이걸로 위치를 서로 공유하고 있고, 수색을 마치고 오후 6시가 되기 전에 다시 합류할 예정입니다.”
“흐음··· 그래서 몬스터의 수색과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장소가 최우선이라는 거지? ···요.”
순간 강 철이 안성민에게 반말을 내뱉으려다 태현의 시선에 급히 존대로 바꿨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로군.’
태현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흘기고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오후 4시를 넘어섰다.
몬스터의 흔적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에 동굴이 있습니다.”
채민희가 임시 지휘관으로 움직이는 그룹이 수색을 진행하던 중, 동굴을 발견했다.
사막에 동굴이라니···.
게이트 안에는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 곳이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화산 한 가운데에 차가운 강물이 흐른다던가, 눈보라 치는 산에 뜨거운 온천이 줄 지어 있다던가.
어찌 되었든 간에 사람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환경들이 많았다.
“그럼 여기를 집결장소로 하는 게 좋겠죠?”
최명준의 말에 채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검의 지휘관인 방현석은 천검 15명의 그룹을 지휘하고 있고, 부지휘관인 안성민은 천검, 스워드, 왕국 길드를 지휘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나머지는 연화 길드 부마스터인 채민희가 자연스레 지휘하게 되었다.
“아니요. 먼저는 동굴을 수색하고, 집결지로 지정하겠습니다. 일단은 수색부터.”
벌써 오후 4시가 넘었다.
몬스터가 숨어 있을만한 곳이라고는 전부 찾았는데, 이렇게 수색에 진전이 없다니.
물론 게이트니까 몬스터가 없을 리는 없는데.
그렇다면, 동굴에 몬스터가 숨어있을 확률은 매우 높다.
그러니 함부로 집결장소를 동굴로 지정하기에는 너무 섣부른 판단이다.
채민희의 지휘에 따라 A급 헌터들이 최전방에 서서 동굴의 내부로 진입했다.
샤아아.
그 때였다.
가장 앞에 있던 헌터가 동굴을 밝자, 그들의 뒤로 수없이 많은 모래알들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걸음을 멈추고, 등을 돌렸다.
거기에는 전갈의 형태를 한 거대한 몬스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땅 속 깊이 숨어있던 듯하다.
저러니 찾을 수 없었지.
“다들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명준씨는 지금 마력밴드를 끊어서 인원들이 합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채민희의 명령에 최명준이 급히 마력 밴드를 끊었다.
그녀는 지시를 내린 뒤, 곧바로 레이피어를 꺼내 쥐었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는 20마리 가량.
[맹독의 리고르모.]
리고르모는 하나같이 A급 몬스터였다.
즉, 일반 몹이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소리다.
채민희가 빠르게 앞으로 다가가 리고르모에게 붙었다.
그러자 A급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해서 리고르모를 상대하기 시작했고, 창과 검을 다루는 헌터들이 채민희를 도와 리고르모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B급 헌터들은 A급 헌터를 보조하며, 그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상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B급임에도 A급 게이트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상대하기 어렵겠어···.’
리고르모가 모래 밑에서 등장한 터라, 경사가 매우 가팔랐다.
그렇기에 헌터들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리고르모를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리고르모는 제 집 마냥 날뛰는 중이다.
결국 상대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일단 빠지세요! 동굴로 피신하겠습니다.”
그녀의 명령에 헌터들이 몸을 뒤로 뺐다.
모두가 빠지고 나서야 채민희 역시 뒤로 빠졌고, 그들은 즉시 동굴로 피신하기 위해 들어갔다.
지금 당장은 리고르모를 상대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그대로 중지되었다.
쎄에엑!
동굴에서도 리고르모가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모래 밑이 아닌, 동굴에서도 서식할 줄이야.
“젠장··· 완전히 포위됐습니다.”
헌터가 좌절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 모습에 채민희가 입술을 세게 물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남은 인원들이 합류할 때까지 최대한 버텨봅시다!”
지휘관이 먼저 포기할 수 없는 노릇.
그녀는 레이피어를 다시금 세게 쥐고, 바깥의 리고르모가 동굴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