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A급 레이드(6)
*“아오! 뭔 놈의 몬스터들이 이렇게 많냐.”
주먹을 내지르는 강 철은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한태현 헌터와 임지성 헌터가 나머지 그룹에 지원을 간 것은 좋았지만, 여기 있는 방현석 그룹이 상대하고 있는 리고르모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집중하세요! 꼬리에 있는 독에 쏘이면 답 없다고요!”
안상민이 강 철에게 일침을 놓았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 쪽이나 잘하쇼!”
“걱정해줘도 말투가 왜 그 모양입니까!”
“내 말투가 뭐가 어때서 그러쇼?”
이전에 죽이 맞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은 서로 싸우는 모습.
결국 그들의 근처에 있던 방현석이 소리 질렀다.
“지금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몬스터를 잡으세요!”
“···알았으니까 소리는 지르지 마쇼.”
결국 강 철이 꼬리를 내리고, 리고르모에게 다시금 집중했다.
현재 힘을 합쳐서 30마리 가까이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20마리나 넘게 남아있었다.
절반 넘게 처치했음에도 짜증이 올라오는 것은 그만큼 기력이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보스를 상대해야하는데, 벌써부터 이런 상태면 곤란하다.
“상민아, 정말 저쪽 그룹은 괜찮은 거 맞지?”
방현석이 검으로 리고르모의 머리를 베어 넘기고는 안상민에게 물었다.
“어. 괜찮을 거야.”
안상민은 태현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회상했다.
확실히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S급 같지는 않았는데, 마치 근처까지 도달한 것 같았다.
특히 화기를 사용함과 동시에 검으로 리고르모를 깔끔하게 베어 넘기던 모습은 가히 예술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였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일단 여기 리고르모를 처리하고, 곧장 합류하자.”
“그래.”
“빨리 처리하고 넘어가죠.”
방현석은 안상민이 도착했을 때, 태현의 경지에 대해 대충 들었다.
S급은 아닌, A급.
그렇기에 그 두 명이 지원을 갔다는 말에 살짝 불안했다.
하지만, 저렇게 확답을 내리는 것으로 보아 안심해도 되겠지?
물론 빠르게 합류하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태현은 자신이 들어온 보스 방문을 응시했다.
역시나 임지성을 제외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모습.
사실 채민희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연화 길드의 부마스터.
같은 길드의 헌터들이 그녀가 들어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가라, 죽음의 병사들이여.”
발락이 스켈레톤을 소환해서는 그대로 보스에게 돌진시켰다.
불사의 존재.
아무리 상대가 될지 않을지언정, 스켈레톤들은 쉬지 않고, 공격에 가담할 것이다.
“주군.”
발락은 스켈레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태현으로 보았다.
“이번에 저 몬스터를 저에게 하사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너에게 달라?”
“네. 저 녀석을 스켈레톤으로 만들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확실히 발락의 말이 맞다.
스켈레톤으로 만든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발락이 부릴 수 있는 스켈레톤의 숫자는 정원이 다 찼다.
“너, 정원 다 찼잖아?”
“저는 제가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건 처음 알았다.
태현이 흥미로운 눈으로 발락을 바라보자 그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네. 확실히 느껴집니다. 이제 제가 가지고 있는 권속 능력이 강화됨과 동시에 모든 힘이 한 단계 상승할 때가 머지않았다는 것을요. 아마 저 몬스터를 잡는다면, 도달할 것 같습니다.”
고민이 됐다.
발락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몬스터를 잡을 시에 5성으로써 갖춰야 할 경험치와 숙련도를 Max단계까지 올라온다는 소리가 아닌가?
“주군! 저에게 주십시오!”
태현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라이그틸로를 부리던 테이머도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너는 왜?”
“동글이 말고도 제가 테이밍할 수 있는 몬스터의 숫자가 2마리가 늘어났습니다. 슬슬 몬스터를 테이밍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왜 지금까지 말 안 했냐?”
이 얘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테이머가 5성으로 승급한지는 꽤 지난 상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뭐? 네 놈이 저걸 가져가서 뭐하려고? 쓸 데 없는 짓이다!”
“진짜 헛소리 좀 그만해라. 아~ 뼈밖에 없어서 뇌가 없지? 어쩐지 뇌를 거치지 않고 영양가 없는 말만 내뱉더라.”
“이 놈이!”
발락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발작하려고 하자 태현이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만.”
“죄송합니다.”
그의 말에 언제 흥분했냐는 듯, 고분고분해지는 녀석.
태현은 조금 고민하고는 이내 답을 내렸다.
“저 녀석은 테이머한테 주마.”
“감사합니다!”
“주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사실 발락한테 주려고 했지만, 테이머가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가거든.”
마음에 드는 몬스터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발락이 새로 들어오면서 대부분의 몬스터를 그에게 양보했다는 것.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몬스터는 어떻게 해서든 테이밍을 하고 싶었기에 간청을 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발락은 그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주군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
단순히 이유가 궁금했고, 그 이유를 들었으니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뭘 멍하니 서 있어? 빨리 잡아.”
태현은 자신의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수하들에게 재차 명령을 내렸다.
갑작스레 몬스터를 하사하는 이야기가 오가니 함부로 처리할 수 없었지만, 그의 명령이 다시금 내려지면서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다.
레온이 먼저 질풍검을 사용해서 보스를 공격했다.
그 다음은 기사와 자객이 차례대로 협공했다.
마법사는 후미에 서서 마법으로 지원.
궁수 역시 후미에서 지원하는 형식으로 싸움을 걸었다.
쎄에에엑!
변이가 진행 중인 보스다보니 A급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5성 수하들의 공격에도 거뜬히 견디는 모습.
그렇지만, 변이가 진행되고 있다 보니 움직임이 굼떴다.
태현은 검에서 곡괭이로 형태를 변화시키고는 그대로 리고르모의 등을 내려찍었다.
쎄에에엑!
그렇지만, 단단한 등껍질은 그의 곡괭이질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쉽지 않네.’
태현은 혀를 차고는 몸을 뒤로 뺐다.
리고르모가 어느새 꼬리의 독을 태현이 있는 곳으로 쏘았기 때문이다.
그가 몸을 뒤로 빼자, 다시금 그 자리로 독을 쏘기 시작했다.
“동글이는 소환 해제하고, 스켈레톤들이 놈의 시선을 끄는데 주력해라. 나머지는 내가 달려들었을 때, 공격을 실시한다.”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수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태현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금 놈의 등을 노렸다.
꼬리가 똬리를 틀어 태현을 노리고는 있지만, 그의 능력치는 만만히 볼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놈보다 자신의 능력치가 앞서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쎄에에엑!
‘지금!’
리고르모는 답답했는지 급기야 꼬리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독을 쏘면서 상대방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한 것이다.
태현은 눈을 빛내더니 그 꼬리를 피해서 리고르모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곡괭이로 다시금 등을 내려찍었다.
기사와 자객들 역시 마찬가지.
마법사와 궁수의 원거리 공격까지 허용한 리고르모가 괴로운지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태현이 리고르모의 숨통을 조였다.
쾅!
계속해서 휘몰아치는 태현의 공격.
리고르모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며 발버둥 쳤다.
녀석의 몸에서 독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내렸다.
“일단 뒤로 빠져.”
태현은 상황을 바로 캐치하고, 수하들에게 뒤로 빠지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성아, 그거 마법 좀 사용해봐.”
“아··· 이거?”
임지성은 자신이 낄 자리가 없음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태현의 요청에 곧바로 염옥을 만들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화염계 최고 마법.
파이어 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열기.
그리고 훨씬 거대한 구형의 마법.
심하게 과장을 한다면, 마치 태양을 축소시켜놓은 모습 같았다.
“와··· 마력 빨리는 거 봐라. 나 이게 한계다.”
임지성은 하늘에 한 손을 뻗은 채로 혀를 찼다.
그리고는 그대로 리고르모를 향해 던졌다.
쾅!
쎄에에엑!
A급 화염계 마법에 리고르모가 괴로워했다.
그 틈에 궁수가 쉬지 않고 화살을 쏘았다.
쿵!
계속되는 공격으로 인해 리고르모가 그대로 쓰러졌다.
태현이 가장 앞에서 놈을 유린하면서 수하들이 계속 데미지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싸움이다.
그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곡괭이로 리고르모의 숨통을 완전히 끊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리고르모의 핵’을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마스터리북 : ‘유령검’을 획득하셨습니다.]
‘좋았어! 아··· 아니지.’
결국 15분이라는 싸움 끝에 리고르모를 잡았다.
하지만, 테이머에게 하사하기 위해서는 죽이지는 말아야 한다.
라이그틸로(동글이)를 하사했을 때에도 죽이지 않았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리고르모는 확실히 죽었다.
태현이 테이머를 돌아보았다.
“주군! 이제 제가 테이밍을 실시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테이머의 얼굴은 밝았다.
태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테이머가 곧장 리고르모에게로 다가갔다.
라이그틸로를 테이밍했을 때처럼 오른손으로 천천히 어루만지자 빛나기 시작하는 모습.
‘설마··· 5성으로 승급하면서 스킬도 업그레이드 된 것인가?’
태현이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죽어있던 리고르모의 시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상처까지 말끔히 사라졌다.
테이밍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표식까지.
수하들 역시 신기하다는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에잉···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발락은 혀를 차며 스켈레톤들을 거둬들였다.
쎄에엑.
어느새 완벽하게 소생한 리고르모가 테이머의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지 아까의 포효소리와는 다르게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는 녀석.
태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자, 꼬리를 빙글빙글 돌릴 수 있겠니?”
테이머의 난데없는 명령에 리고르모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꼬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짝. 짝. 짝.
테이머가 그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손뼉을 쳤다.
얼굴에는 만족감이 서려있었다.
“이제부터 너는 빙글이다. 주군! 빙글이의 재롱 좀 보십시오!”
칭찬을 바라는 눈빛으로 말하는 테이머의 눈빛에 태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가 레온을 한 번 불렀다.
“레온.”
“말씀하십시오. 아모스님.”
“안식처로 돌아가면, 칭찬 좀 많이 해줘라··· 칭찬이 고픈 녀석이니까.”
“···알겠습니다.”
결국 칭찬의 몫은 레온에게로 넘기고, 수하들을 전부 안식처로 돌려보냈다.
“이야··· 할 말을 잃었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지성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대로라면, 굳이 레이드인원을 꾸리지 않고, 태현과 수하들만으로도 클리어가 가능할 것이다.
굳이 길드원들을 영입하는데 혈안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
“적당한 시간에 끝냈네. 이제 나가자.”
태현은 그 말과 함께 입구로 몸을 돌렸다.
임지성 역시 그를 따라 입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방금 합류했던 인원들까지 합친 레이드 인원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지휘관인 방현석이 급히 다가왔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스는 처치되었습니다. 일반 몹인 리고르모도 전부 잡으신 것 맞죠?”
“잡긴 했습니다만··· 진짜 보스를 잡으신 겁니까?”
A급 헌터들은 태현의 말에 입을 벌렸다.
정말 2명으로 보스를 처치했다는 말인가?
더 놀란 것은 안상민이다.
그가 강한 것은 알았지만, 보스를 직접 처리할 줄이야?
아무래도 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괜찮으세요!?”
태현과 방현석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채민희가 급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몸을 살폈다.
“네. 괜찮습니다.”
“휴··· 정말 다행이네요.”
아무래도 같이 가지 못한 것이 불안했나보다.
그녀의 근심어린 얼굴을 보니 태현의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동료애가 깊은 사람이야.’
그녀의 눈에서 연애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동료를 혼자 보낸 것이 미안한 마음에 나타나는 감정이라는 것이 된다.
태현은 채민희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초반에야 살인귀의 건으로 좋지 않은 인상이 심겨졌었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많이 씻겨 내려갔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그보다 오늘 레이드를 참여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태현이 임지성을 보았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말을 할 때가 된 것이다.
태현이 방현석과 채민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여러분들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부탁이라니요?”
방현석과 채민희가 되물었다.
태현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부탁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