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유령검(3)
*“사실 헌터비무대회는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인식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시작된 대회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진도윤에게 일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이 헌터비무대회에 출전해주길 바랐으니까.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국가의 건재함을 증명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건재함이요?”
“네. 어느 대회를 보더라도, 자신의 나라가 타국에게 패배하는 것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지요.”
“그건 그렇죠.”
태현도 인정한다.
옛날에 축구를 보면 한국이 다른 나라에 패배했을 때, 욕지거리를 내뱉은 적이 수없이 많았다.
열이 받았으니까.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열이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무대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된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국민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줄 수 없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요?”
“사실 다른 길드는 모르는 이야기지만, 올해 한국에는 S급 헌터가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1명도 출현하지 않았습니까?”
채병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꽤나 심각한데.’
S급 헌터가 나와 줘야 몬스터의 위협에서도 보다 안전해질 수 있는데.
태현이 속으로 혀를 찼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에는 S급 헌터가 2명이 새롭게 추가가 되었죠. 영국이나 중국, 인도들도 1명씩 추가되었습니다. A급 각성자는 말할 필요도 없죠. 작년보다 3%가 증가했다고 하더군요.”
“대한민국은요?”
“-12%입니다···.”
“···심각하네요.”
발전해도 모자랄 판에 퇴보하다니.
아마 이런 통계들은 비각성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태현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채병국의 말이 여기까지 이어지자,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번 비무대회에서는 S급 헌터들이 많이 출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곤란한 이야기다.
타국에서는 S급 헌터들도 출전을 하는데, 대한민국은 최대 A급 헌터만이 출전을 하는 셈이니까.
그렇다고 S급 헌터들을 내보내자니, 각 길드의 대표들이 전부다.
하지만 이들은 비무대회 출전경험이 있는데다가 길드의 마스터로 활동한지 몇 년이 지났다.
다시 출전하기에는 많은 눈들이 탐탁치 않아할 것이다.
“그래서 제가 나갔으면 하는 거군요?”
“맞습니다. 비록 타국보다 각성자의 출현이 줄어들었지만, 한태현 헌터님께서 출전해주신다면 결과가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재각성 헌터가 된 임지성으로 많은 시민들이 흥분했다.
특히 불분명 각성자였던 태현이 A급 각성자가 되어 길드의 마스터가 되었다는 것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물론 별로 좋지 않은 상태로.
G급이 되어야 할 태현이 A급이 되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렇지만, 비무대회는 하나의 행사다.
아무리 타국에게 밀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대회에 출전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있습니다. 충분히 많죠.”
채병국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말씀해보세요.”
“어떻게 보면, 한국은 위협을 받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건 처음 듣는군요.”
“네. 미국이나 중국, 일본은 은근히 한국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균열 이후로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죠. 헌터의 숫자 역시 타국에 비해 열악한 건 사실이니까요.”
“흠···.”
태현이 턱을 어루만졌다.
한국이 타국에 비해 헌터들의 숫자가 적은 것은 맞다.
물론 전체 나라에서 보면 하위권은 아니지만, 근처에 밀집되어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가장 열악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태현 헌터님께서 등장하셨죠. 불분명 각성자로 말이죠.”
현재 미국, 일본, 중국에 각각 1명씩 존재하는 갓(G)급의 각성자.
이들 모두 불분명 각성자의 길을 거쳤으니 태현 역시 갓(G)급의 소지는 충분했다.
그러나 미국 관리국에서 태현의 사례는 처음이라면서 갓(G)급이 될 수 없다는 소리를 남겼다.
6개월 간 허탕을 치는 것을 증거로 삼아서.
‘그렇다면···.’
“국장님께서 가만히 지켜보실 수밖에 없던 이유가 미국 때문이었습니까?”
“······.”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채병국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째서 그가 나서지 못하고, 태현이 내쫓겨날 수밖에 없었는지.
‘압박을 받는 와중에도, 계속 발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거로군.’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장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그럼 이번 대회를 통해서 압박이 더 심해지겠군요.”
“···맞습니다. 잘못하면, 그나마 있던 고(高)등급 헌터들도 자신들의 국가로 데리고 가기 위해 수작을 부리겠지요.”
신예 발굴마저도 밀린다면, 압박은 보다 심해질 것이다.
채병국은 그것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비무 대회에 출전시켜 새로운 신예로써 결코 타국에 밀리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관리국에서 모든 것을 지원해준다고 붙잡은 이유가 있었군요.”
“···부탁드립니다.”
채병국이 간곡히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비무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이런 압박에도 견딜만한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태현도 그 부분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출전을 거부하면, 한국이 비무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고민이 되었다.
“이 부분은 조금 고민해보겠습니다.”
즉각적으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아무리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겠다고 약속하더라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직 그의 힘은 A급에 불과하다.
비록 반년 조금 안되게 남았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200레벨을 넘게 찍어서 S급이 넘어가는 힘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기에 일단은 보류.
“···알겠습니다.”
그래도 거절은 아니다.
채병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결정이 되면, 그때 말씀을 드리도록 하죠.”
태현은 그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부디 좋은 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채병국은 그 말과 함께 그를 정문 앞까지 배웅했다.
많은 직원들이 채병국이 태현을 배웅하는 모습에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까.
“미치겠네···.”
태현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던 직원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푹 수그릴 뿐이었다.
*연화 길드의 마스터 채연화는 곤혹스러운 태도를 감출 수 없었다.
“이거··· 이렇게까지 했어야 되니?”
그녀는 채민희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물었다.
그 안에는 고구려 길드에 대한 기사가 한가득 이었다.
“···그래도 화나잖아.”
이것은 채민희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다.
연화 길드에 붙어서 움직이는 헌터·길드 뉴스팀에 의뢰하여 기사를 작성한 것.
태현이 어떻게 알았는지 기사를 써줄 것을 부탁을 해왔고, 그녀는 들어주었다.
남았던 빚을 청산하는 것으로 대신한 것이다.
천검 역시 태현의 도움을 받았기도 하고, 선뜻 부탁을 들어주었다.
“휴··· 안 그래도 수도권에서 순위를 다투고 있는 길드인데, 어쩌려고 그랬어?”
채연화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들을 보면, 그 기자의 소속회사의 메일이 옆에 뜬다.
그것만으로도 기자가 어디 길드에 소속되어있는지 나오게 되는데, 랭킹을 다투는 고구려와는 사이가 더 멀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고구려가 자신들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더욱 적대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이득이 아니었다.
“괜찮아. 우리보다는 천검이 더 크게 벌렸으니까.”
“···도대체가.”
“천검 입장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고구려를 조금이라도 내릴 수 있으니까. 이득이지?”
연화도 치고 올라가는 중이지만, 잡을 빌미가 없었다.
물론 고구려의 성장세가 더 무서웠던 것도 있고.
*국장과의 만남이 끝나고, 하루가 지났다.
“바로 시작하자.”
태현이 씩- 미소 지었다.
길드를 설립하고, 가장 좋은 점은 더 이상 개의치 않고, A~B급의 게이트를 따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태현은 변종이 도사리고 있을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A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도박을 택했다.
“진짜 괜찮겠냐?”
“그래. 흘러나오는 마력량을 기준으로 해서 들어가면, 조금 덜 할거야.”
A급에 변종이 일어났는데, 이건 처음 있는 사례라고 봐야 한다.
그것은 게이트에 흘러나오는 마력량.
분명 B급 이하의 게이트에는 마력량이 일정해서 변종이 도사리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였는데, A급 게이트는 달랐다.
분명 250을 초과하는 270의 마력량이 흘러나왔고, 그 증거로 변이를 진행 중이던 리고르모들.
현재로써는 게이트의 마력량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 위치한 A급 게이트.
태현은 들어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들어가자.”
“에효··· 나도 모르겠다.”
유지아는 C급이기에 같이 자리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들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온다면, 어련히 총무역할을 수행할 터.
태현과 임지성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A급 게이트 클리어는 순조로웠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았어!”
메시지가 뜨자 태현이 미소 지었다.
5일동안 A급 게이트를 6개 클리어 했다.
추가로 구르카의 사탑을 클리어하면서 획득했던 성장시도권을 이용해서 5성 녀석들을 6성으로 승급시켰다.
레온을 필두로 한 5성 수하들.
나머지 5성 녀석들은 차후에 시도를 할 것이다.
그리고 발락 역시 6성으로 승급했다.
‘전용 시도권을 그냥 주다니, 어쨌거나 잘 된 일이지.’
사실 숙련도과 경험치가 Max가 된 것은 레온과 발락 순이었다.
그런데 발락은 일반 성장시도권으로는 승급이 되지 않았다.
전용 성장시도권이 있어야만 하는 상태.
그러나 Max가 되면서 성장시도권이 1장 주어졌다.
결국 그걸 이용해서 발락을 6성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A급 게이트의 클리어가 순조로웠다.
‘이제 140을 돌파했고.’
180까지 앞으로 40계단.
5일 동안 게이트를 돌면서 8레벨이 업한 것은 아주 순조롭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유령검이었다.
까앙!
몬스터가 공격할 때마다 그 공격을 자동으로 막아주는 유령검.
그리고 태현이 몬스터를 공격할 때마다 추가공격을 가하면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현재 그가 소환할 수 있는 유령검은 2개.
레벨이 오르면서 스킬 레벨이 2가 되었다.
유령검 역시 소환 개수가 2개가 되었고, 몬스터들은 태현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 내지를 못했다.
서걱!
태현이 마무리를 위해 A급 보스의 머리를 베었다.
추가적으로 유령검 2개가 A급 보스의 머리를 연달아 공격했고.
[‘마기의 데페르토’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성장시도권(5성 전용)(+5)을 획득하셨습니다.]
[‘데페르토의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나이스!”
오늘도 게이트는 빠른 속도로 클리어.
“이야··· 진짜 대박이다.”
어느새 레벨 130을 돌파한 임지성이 중얼거렸다.
그 역시 레벨을 올리기 위해 태현과 대동해서 게이트를 클리어 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공은 태현과 그의 수하들이었다.
A급이 되었음에도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음에 허탈했지만, 주워 먹으면서 레벨 업을 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만 나가자. 다음 게이트가 언제지?”
태현은 다음 게이트의 날짜를 물었다.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
빨리 180을 찍고, ‘에일린의 과거’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나 임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앞으로 사흘간은 없어.”
“···왜?”
태현이 김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안 그래도 A급 게이트의 숫자는 많지 않잖아. 길드들이 많다보니 A급 게이트를 선점하기가 쉽지 않아.”
“아쉽네.”
탄력을 받은 상태라 더 아쉬웠다.
사흘을 기다리고, 다시 사냥에 돌입하면 감을 찾는데 조금 걸리기 때문이다.
태현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마정석을 회수하고 그대로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위잉~
게이트를 빠져나가서야 휴대폰의 통신망이 터지면서 문자 메시지들이 울려댔다.
태현은 갑작스러운 진동에 휴대폰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한태현 헌터님.
문자 제목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고, 번호 역시 처음 보는 것이다.
태현은 문자를 터치해서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저는 천검 길드의 오동현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게이트 클리어 관련해서 천태도 사장님께서 헌터님을 뵙고 싶어하시는데요.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부디 만남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싫은데.’
이제는 또 천태도라는 사람이 만나자고 하는데.
만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태현은 문자로 죄송하지만, 거절하겠다는 답을 남겼다.
“뭔데?”
임지성은 집에 들어가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태현에게 물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