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인내와 시련의 방(1)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신 겁니까!”
오동현이 소리 질렀다.
차 안이라 그런지 소리가 심하게 울렸고, 운전 중인 기사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에 반면 천태도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냐?”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왜 그렇게 생각 없이 행동을 하시는 겁니까?”
“뭐 인마? 너 말이 좀 그렇다?”
생각이 없냐는 말에 천태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오동현은 여기서 대충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아까 공격 때문에 한태현 헌터가 크게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천검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사전에 얘기도 없이 함부로 찾아가면 어떻게 합니까?”
오늘 태현과의 만남은 전부 천태도가 계획한 일이다.
주소정도야 헌터정보를 뒤적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오동현은 그를 보필하기 위해 온 것일 뿐.
그의 명령이 아니었더라면, 태현과 엮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괜찮아. 그리고 확신했어. 한태현 헌터는 S급 이상이다.”
“허···.”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방금 공격은 S급 스킬이 분명하다.
오동현은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뭐가 되었든 태현이 무사하지 않았다면,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것이다.
“대신에 원하는 걸 3가지 들어주기로 했잖아?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는 천태도의 모습에 기가 찼다.
저러니 생각이 없는 길드 마스터라고 욕이나 먹는 것이다.
“휴··· 저는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십쇼. 이제 손 떼렵니다. 욕을 먹든, 무시를 당하든 이제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뭐? 이게 마스터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진짜 사장님이랑 같이 일을 했다간 제 명에 못 살 것 같습니다.”
오동현은 과거를 회상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견뎌왔는지 신기한 에피소드가 많았다.
지금까지 버텨 온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넌 진짜 오늘 내가 가만 안 둔다.”
결국 천태도가 주먹에 마력을 모았다.
오동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정신 좀 차리라고 한마디 했다고, 주먹을 사용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으악! 지금 부하직원을 죽이시려는 겁니까?”
“죽이지는 않으마. 대신 존나게 아플 거다.”
“제발 좀 그러지 마십시오!”
오동현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어느새 길드 자금이 50억을 돌파했다.
A급 게이트를 3주 동안 15회 가까이 클리어 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14회.
오늘 게이트까지 클리어 한다면, 15회를 채울 것이다.
“와··· 진짜 인력 좀 늘려주면 안 돼?”
임대받은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두들기던 유지아가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 투덜거림을 받는 이는 다름 아닌 임지성이다.
“글쎄··· 안 될 거 같은데.”
“왜? 지금 사람 죽어나가는 거 안 보여?”
게이트에 정리된 물품들을 처리하고, 회계 관리와 게이트를 따내는 일.
그 외의 사무적인 업무.
전부 그녀의 몫이었다.
반면, 태현과 임지성은 그녀가 작성한 보고서를 검토하고, 게이트 클리어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유지아에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확실히 그녀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부분은 건의해볼게···.”
애초에 유지아가 간절히 원해서 들어온 길드라고는 하지만, 일도 적당히 해야지.
이건 너무 심하게 부려먹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녀는 혼잣말로 계속 투덜거렸다.
그 때, 태현이 외출을 마치고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
태현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투덜거림이 멎었다.
“···휴. 너.”
임지성은 한숨을 내쉬고는 태현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부마스터니까 이런 건, 자신이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2시간 뒤에 게이트 클리어 시작할 거야. 준비는 다 됐어?”
태현은 게이트 클리어에 집중하느라 유지아가 자신을 힐끔거리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결국 임지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준비는 다 됐어. 그보다··· 길드원을 더 뽑을 생각은 없어?”
“응? 길드원?”
태현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응··· 그게···.”
임지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 말을 꺼내야하나 고민하는 눈치다.
그 모습에 태현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뽑아. 내가 전에 말했잖아. 뽑을만한 인원 있으면 리스트 만들어서 가지고 오라고.”
“응···? 그랬냐?”
“기억력 금붕어냐? 물론 많은 사람을 뽑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2~3명은 뽑을 생각을 하고 있다.”
“아, 그랬구나. 왜 기억이 안 나지?”
“나도 몰라. 어쨌거나 준비 다 됐으면, 출발해도 문제없는 거지?”
태현은 아공간 주머니를 정리하면서 물었다.
임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다 됐다.
“응.”
“오케이. 그러면 나는 집 좀 들렀다 올 테니까 총무랑 상의해서 원하는 인원이 있으면 리스트 작성해.”
“···알겠어.”
임지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야.”
그가 사라지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미안하다.”
결국 임지성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는 곧바로 사과했다.
“야! 너 알고서 나 물 먹였지?”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가 그런 걸 잊어먹을 놈이야?”
“정말이야··· 바쁘다보니 잊어버렸어···.”
“야!”
유지아의 설움이 폭발했고, 임지성은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잘못이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늘 게이트로 레벨이 150레벨이 되었다.
태현은 미소 지은 얼굴로 스테이터스를 점검했다.
100레벨이 넘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0레벨이 되었다.
“길드를 만든 게 진짜 신의 한 수다. 그렇지?”
고개를 돌려 임지성을 보았다.
그는 왠지 모르게 침울한 얼굴이 되어있었는데,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응··· 만들길 잘했어.”
힘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녀석.
그의 모습에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하자, 불현듯 메시지가 떴다.
‘어? 오랜만에 왔네.’
정말 오랜만의 메시지다.
마지막으로 울렸던 메시지가 유령검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다.
태현은 임지성을 뒤로 하고, 곧장 메시지를 확인했다.
<150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시크릿 에피소드로 넘어가기 전, 하나의 관문을 통과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킹에게 중요한 것은 강한 정신력입니다.
-이 시련은 킹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메시지를 열람하셨기에 [인내와 시련의 방] 열쇠가 지급 됩니다.
[‘인내와 시련의 방’ 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
메시지를 열람하자, 하나의 열쇠가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왔다.
‘뭐야? 인내와 시련의 방이라고?’
태현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황금색의 열쇠를 꺼내고는 만지작거렸다.
150레벨을 달성하자 지급된 아이템.
아무래도 이것이 군주 Lv.4의 자격을 갖추게 해 줄 모양이다.
‘전부 연결되는구나.’
일단 180레벨을 달성하는 것이 먼저였는데, 역시 중간 퀘스트가 존재했다.
태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뭐 좋은 일 있어?”
임지성이 태현을 보면서 물었다.
“···기운이나 차리고 물어라. 나까지 기운 빠지니까.”
그의 말을 들으니 왠지 자신까지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태현은 게이트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안식처로 향했다.
이제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아모스님, 오셨습니까?”
안식처에 도착하니, 레온이 그를 맞이했다.
“주군!”
수하들 역시 그를 발견하자마자 작업을 중지하고, 급히 달려 나왔다.
태현이 그들의 인사를 받고, 공사현장을 둘러보았다.
훈련장은 어느새 완공을 끝내고, 인테리어까지 완벽하게 구축했다고 들었다.
덕분에 수하들이 열심히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것.
그 증거로 수하들의 숙련도와 경험치의 양이 평소보다 증가했다.
“복지처도··· 거의 완성이겠군.”
건설 스킬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재 진행도가 눈으로 판단이 가능했다.
지금 복지처의 완성도는 90% 가까이.
수하들이 늘어나면서 작업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 덕분이다.
“좋군. 그러면 박성호씨?”
태현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박성호를 향해 손가락으로 까딱였다.
그러자 박성호가 쏜살같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네. 한태현 헌터님!”
이제 곧 나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까?
그의 얼굴은 몰라보게 밝아져있었다.
“고생하셨네요. 수하들이 잘 챙겨줬습니까?”
태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박성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가 이내 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지냈습니다.”
‘보나마나 엄청 괴롭혔나보군.’
자신을 죽이려고 했으니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저렇게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니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10%정도 남았군요.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죄 값이라 생각하니 당연한 고생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요? 그럼 더 하실래요?”
“······.”
“장난입니다. 그보다 이 일이 끝나면, 한 가지 제안을 드릴까 하는데요.”
태현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떤 제안을···?”
박성호는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이미 그에게 호되게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제안을 꺼낼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전에 언급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제가 만든 길드가 있습니다. 거기서 인사과장으로 일 좀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인사과장으로 말입니까···?”
현재 그는 헌터자격이 박탈당한 상태다.
즉, 일반인이라는 뜻이다.
길드에 일반인이 근무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상식.
“네. 인원이 필요한 상황이라서요. 물론 근무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해드릴 겁니다.”
태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렇지만, 박탈당한 원인이 태현에게 있다.
그가 관리국에 말만 해놓는다면, 낮은 등급이지만 그에게 헌터자격이 다시금 주어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박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대답입니다.”
태현은 피식 웃고는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박성호가 인사과장으로 일하는 것이 못마땅한지,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태현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
‘쓴 맛을 봤으니 그만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
그는 더 이상 자신을 해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만 더 대들었다가는 이것보다 더한 고문을 받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한 게 별로냐?”
태현이 수하들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수하들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태현은 주머니에 넣어둔 ‘인내와 시련의 방’ 열쇠를 꺼냈다.
“이제 다음 포탈에 들어갈 때가 됐다.”
“와아!”
“축하드립니다!”
구르카의 사탑 옆에 잠겨져 있는 포탈.
이것이 그것을 푸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래. 일단은 나 혼자 들어갈 생각이다. 남은 인원들은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부를 생각이니까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태현은 수하들의 대답을 듣고는 그대로 포탈로 향했다.
가장 왼쪽에는 에일린의 성, 구르카의 사탑.
그리고 사탑 옆에 있는 하나의 포탈.
[포탈을 해제할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해제하시겠습니까?]
‘역시··· 에일린의 과거로 들어가는 포탈이 아니었군.’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제해.”
[포탈이 해제되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포탈을 감싸고 있던 자물쇠 마크가 사라지고, 푸른빛이 일렁였다.
태현은 망설임없이 포탈을 밟았고,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