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인내와 시련의 방(2)
*포탈을 타고 들어간 태현을 반긴 것은 하나의 큰 도서관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도서관.
‘음···.’
사실 큰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태현이 고개를 들고, 천장을 응시했다.
아파트 7~8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이.
웃긴 것은 그 천장 꼭대기에 하나의 작은 문이 둥둥 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거의 천장에 붙어있는 모습.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으로 보아 저기가 출구일 가능성이 높다.
“올라갈만한 게 딱히 없군.”
가장 큰 문제가 이것이다.
출구로 보이는 문은 떡하니 보이는데, 올라갈 수 있을만한 계단이 없었다.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태현은 이번에 6성으로 승급한 마법사를 불러들일 심산이다.
마법사의 마법이라면, 저 정도 높이를 오르는 것 정도야 식은 죽 먹기.
그는 평소처럼 6성 마법사를 불렀다.
그러나 마법사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메시지가 추가로 떴다.
[인내와 시련의 방에서는 스킬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뭣!?’
이게 무슨 소리인가?
태현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스킬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오로지 자력의 능력으로 올라가야만 한다는 소리.
‘뭐··· 능력치도 200이 넘어가니까 잘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거야.’
능력치 역시 A급을 넘어선지 오래다.
그렇기에 주변의 사물을 잘 이용하면, 금방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태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책장과 몇 만 권은 되어 보이는 책.
책장을 이용해서 올라가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걸음을 옮겼다.
책장을 천천히 쌓아올리는 것이다.
여하튼 강구하다보면, 얻어걸리는 게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메시지가 추가로 들려왔다.
[‘인내와 시련의 방’에 한정해서 킹의 능력치가 60% 감소됩니다.]
‘···그냥 못 깬다고 해라.’
능력치마저 너프를 먹이다니.
벌써부터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다.
이래서 인내와 시련의 방이라고 한 걸까?
“다행이 몬스터는 보이지 않네.”
원래 같았으면 좀비 병사나 몬스터가 나타날 텐데, 지금 이곳에는 태현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몬스터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흠··· 이래서 인내와 시련의 방이라고 하는 건가.”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오로지 방법을 찾아서 이 방을 빠져나가야 하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내와 시련의 방이라고 불리는 것이리라.
태현은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보기 편하게 가나다 순서로 되어있는 책들.
‘어? 이건···.’
혹시 빠져나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을까 싶어서 훑던 중,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태현은 손을 뻗어 익숙한 이름의 책을 한 권 뽑았다.
[구르카 회고록]
구르카.
태현은 그 이름을 곱씹으며, 책을 펼쳤다.
[1페이지]
-나는 위대한 태양의 자식이다.
가장 강한 부족으로 불리는 태양의 부족은 다른 부족들을 거느리며, 정점에서 군림했다.
태현이 열심히 읽어나갔다.
대충 요약하자면, 구르카는 태양의 부족의 족장이었던 인물이라고 한다.
사탑에서 발견된 책에서는 대부분의 내용이 훼손되었기에 알 수가 없었는데, 이 책에서는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태현은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음?’
그러던 중, 하나의 글귀에 고정되었다.
-하지만, 비극이 시작되고 말았다.
그것은 처음 보는 괴생명체들이 쏟아져 나오고부터다.
‘아무래도 구르카가 있는 세계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던 모양이군.’
내용으로 보아 같은 지구에서 살았던 인물은 아닌 모양이다.
균열이 일어났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과 힘을 얻게 된 과정.
게이트 이후로 세계의 안정을 찾는 데에 30년은 족히 걸렸다고 묘사되어있다.
지구는 약 10년 전에 게이트가 발생되었으니 확실히 구르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세계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지만, 균열로 인해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모습에 익숙해진 터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나 역시 힘을 얻었고, 그 이름은 킹이라고 했다.
병사들을 소환해서 싸우는 것은 아주 훌륭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은 능력이로군.’
어째서 자신이 6대 킹으로 불린 건지 알 수 있는 글귀였다.
킹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1~5대 킹이 존재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되니까.
태현은 글을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구르카가 살던 세계 역시 레벨, 각성 등급, 스킬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지구와 유사한 페러다임을 보였다.
그리고 구르카는 자신처럼 킹으로 병사들을 소환해서 계속 강해진 것이리라.
-하지만 성장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몬스터들이 강해지는 속도가 성장 속도를 뛰어넘었다.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도, 몬스터들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정말 무기력하게도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구와 매우 흡사한 상황이다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자신의 세계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왠지 지구의 미래가 될 것만 같은 예감도 들었다.
-이제 끝이다.
더 이상 이 세계에는 가망이 없다.
그러니 남은 힘을 전부 써서 내 성에 병사들과 후대 킹을 위한 선물을 마련했다.
후대 킹이 될 자는 나와 같은 길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힘을 나눠주는 것이니 보다 빠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나는 혼자서 성장을 이루겠다는 마음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을 명심하도록.
회고록은 여기까지였다.
태현은 책을 덮었다.
방을 빠져나가기 위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가 전대 킹의 말로를 보니 기분이 찝찝했다.
그 때, 메시지가 추가로 들려왔다.
[5대 킹 라가스의 일대기의 일부분을 조사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이 지급됩니다.(경험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책을 읽은 것으로 레벨이 5나 오른 상황.
태현은 조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구르카는 라가스로 불린 모양이다.
‘어쨌거나 탈출하는 것만이 성장하는 길은 아니라는 소리다 이거냐?’
수많은 책들.
방금 구르카 회고록처럼 어떤 특정한 책은 자신에게 성장을 선물로 줄지도 모른다.
어차피 천장에 붙어있는 문을 통과하는 것은 현재로썬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책이라도 찾아본다면, 탈출할 수 있을만한 정보도 있을 것이다.
태현이 손을 뻗어 책들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6시간이 흘렀다.
그 결과, 성장을 선물로 주는 책은 ‘구르카 회고록’이 전부였다.
나머지 책들은 마법, 검술에 관련 된 학문이거나 그 외에는 잡다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
바로 인내와 시련의 방을 탈출할 수 있는 비밀.
-인내와 시련의 방은 ‘보이지 않는 계단’이 존재한다.
계단은 전부 ‘일정한 거리’에 설치되어 있으며, 천장까지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보이지 않는 계단···.’
태현은 그것이 사실인지 주위를 손으로 휘저으며 계단을 찾았다.
그렇게 동쪽 끝에 도착해서야 하나의 계단이 만져졌다.
책의 내용대로 계단은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했다.
“여기를 올라가면 되나?”
일단 이 계단이 유일한 길이라고 하니, 태현은 곧장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태현의 키보다 2배 가까이 올라왔을 때, 발을 디딜 계단이 나오지 않았다.
설마 계단이 없을 줄은 몰랐을 태현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미x···.”
다행이 능력치의 40%가 살아있는 덕에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쉽게 풀릴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다시 꼬여버리자 짜증이 올라올 뿐이었다.
“일정한 거리가 이거였냐?”
아무래도 계단은 일정한 거리에서 띄어져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그것을 찾아 옮겨 타면서 위로 올라가야했다.
“진짜 빡센데.”
이래서 인내와 시련의 방이라고 하는 것인가?
시련과는 거리가 다소 멀지만, 인내심을 확실히 한계에 다다르게 만들어주는 방이다.
태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첫 번째 계단을 찾아 천천히 올라갔다.
“여기는 빈 공간.”
태현이 발을 앞에 두고 휘저었다.
계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발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이번에는 발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다.
역시나 허공.
조금 더 내밀었다.
그럼에도 허공.
결국 그가 제자리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의 거리까지 벌린 결과.
“이 시x! 진짜 뭐냐?”
자동으로 욕설이 나왔다.
아무래도 안전하게 갈아타는 것은 불가능한 모양이다.
결국 이 자리에서 점프해서 계단을 갈아타야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문제는 어디로 점프해야 되냐는 거지.”
태현이 아래를 한번 내려다보았다.
비교적 낮다.
이 정도면 눈 감고도 점프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앞으로.’
속으로 방향을 지정하고, 그가 넓게 점프했다.
대충 보아도, 짧게 뛰었다가는 망할 것 같다.
탁!
“성공이다!”
직선코스로 넓게 뛰었는데, 계단을 갈아타는데 성공했다.
태현의 오른발은 한칸 위에, 왼 발은 한칸 아래에 위치했다.
꽤 넓게 뛰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가 왼 발을 한 칸 밑에 내렸음에도 계단이 닿았다.
“흠··· 일단 거리 계산은 얼추 됐다.”
*태현이 포탈로 이동한지 9시간이 지났다.
그렇기에 수하들은 초조한지 몸을 제대로 두지 못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들.
자리에 앉아 다리를 쉬지 않고 떠는 이들.
짜증이 났는지 미간을 잔뜩 좁힌 채로 포탈만 응시하는 이들.
다들 제각각이었지만, 원인은 같았다.
“후우··· 아모스님이시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만···.”
사실 3~4시간이 지나고, 몰래 따라갈까 고민하던 레온은 수하들의 의견에 따라 포탈을 탔다.
그러나 포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성에서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젠장! 주인이 일하는데, 나는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라니!”
발락이 포효했다.
깊게 눌러 쓴 후드가 벗겨지고, 그의 민머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발락의 포효에 그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스켈레톤들도 포효했다.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테이머가 언제 다가와서는 같이 포효했다.
“너··· 오늘따라 마음이 통하는구나?”
“당연하지. 주군을 돕지 못해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이 자식···!”
“믿고 있었다고!”
서로 팔을 붙여 크로스형태로 만드는 모습.
그게 마음에 드는지 서로 눈을 빛내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발락은 눈동자가 없다.)
레온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들을 흘기고는 다시 포탈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때, 누군가 레온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지?”
레온은 다가온 인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이번에 6성으로 승급한 궁수였다.
“너무 걱정하는 건 좋지 않다고 봐.”
“음?”
“우리들의 주군이시다. 어디를 가서도 그 분은 쓰러지지 않는다.”
“···그렇군.”
궁수의 격려에 레온이 멍한 얼굴이 되었다.
확실히 자신들이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주군을 믿지 못하는 행동이 아닌가?
6성 궁수는 히죽 웃었다.
“역시 금방 알아들을 거라 믿고 있었다구!”
“···너, 그런 말투는 주군이 싫어하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오마에(너), 전혀 그렇지 않아. 주군은 오히려 이런 걸 즐기신다고.”
“후우··· 말을 말자.”
레온이 이마를 짚었다.
그렇지만 궁수 덕에 조금은 생각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들 훈련장 앞으로 집합!”
레온은 분산된 인원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으고는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분명 주군은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웃으며 돌아오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