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인내와 시련의 방(3)
*우당탕!
쾅!
“젠장···.”
벌써 4시간이 추가로 흘렀다.
4층 높이까지 겨우 올라왔는데, 그 이후로 방향을 잡지 못하는 바람에 책장에 정면으로 박았다.
책장은 흔들거리더니 그대로 기울었고, 꽂혀있던 책들이 쏟아지면서 주변이 난잡해졌다.
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시간이 이리 오래 걸릴 줄이야.
더군다나 현재 진행도는 절반에 불과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태현이 옷에 묻어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한지 오래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보상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스템은 열정 페이로 움직이게 만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최소 동등, 아니 그 이상의 보상을 퍼준 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그리고 지금 난이도는 이제껏 클리어 했던 퀘스트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어려웠다.
그렇기에 클리어만 하면 보상은 확실할 것이다.
“다시 해보자.”
1~4층까지의 루트는 이미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3~4층에서 떨어지기를 수십 번.
슬슬 온 몸이 결리는 느낌이 든다.
“5~6층부터 떨어졌다가는 꽤 아프겠는데.”
안 그래도 난잡한 이 곳에 머리부터 박는다면, 현재 가진 능력치로는 타격이 없을 수가 없다.
60%가 너프된 것은 아주 치명적이었다.
때문에 그 이상부터는 조심스럽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지도라도 있으면 편할 텐데.”
인내와 시련의 방이다보니 설계도라거나 지도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수많은 책들 중에서 그나마 건진 것도,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가야 된다는 정보 하나였다.
“그래.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보자.”
태현은 이를 꽉 물고는 다시금 루트대로 계단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인내와 시련의 방 : 첫 번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후우··· 더럽게 힘드네.’
태현은 온 몸이 쑤시는 것을 겨우 참았다.
확실히 5~6층부터는 그대로 낙하하니 충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죽다 살아난 느낌이다.
6층을 넘어서부터 실수가 줄어들고, 행운이 작용하면서 무사히 천장에 있는 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휴··· 여기서 떨어지면, 진짜 큰일 날 뻔 했어.’
태현이 고개를 내밀어 밑을 보았다.
정말 높았다.
아파트 8층의 높이인 것을 떠나서 한 발자국만 옆으로 내딛어도 그대로 떨어질 정도.
[‘인내와 시련의 방 : 첫 번째’의 보상이 지급됩니다.]
[레벨이 10 상승합니다.]
[군주 스킬 경험치 200을 획득하셨습니다.]
[전체 스킬 레벨이 Lv.1 상승합니다.(군주 제외)]
[전투부대 대규모 확장권(+2)이 지급되었습니다.]
‘대박인데···?’
지금까지 고생했던 것들이 싹 씻겨내려가는 기분.
태현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올라갔다.
레벨이 10이 상승하면서 165가 되었다.
구르카 회고록에서 5, 그리고 이번에 레벨이 10이나 추가상승.
150에서 하루만에 165가 되니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군주 스킬 경험치 200.
아직 Lv.4로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가지 클리어한다면 분명 Lv.4가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투부대 대규모 확장권이다.
[전투부대 대규모 확장권]
-부대의 가용인원을 100명 증가시킵니다.
아주 좋은 아이템이다.
‘이러니까 끊을 수 없다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보상이 짰다?
그러면 그냥 아예 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스템은 달랐다.
확실한 보상!
그것만으로도 고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태현은 보상의 점검을 마치고는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당겼다.
이제 2번째 방으로 이동해서 나머지 보상까지 휩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그를 반긴 것은.
“성당인가···?”
성당.
그것도 아주 큰 대성당이었다.
태현이 문고리를 놓자, 문은 빠르게 사라졌다.
‘······.’
그는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이 켜지면서 내부의 광경이 그대로 들어왔다.
수많은 석상들이 각각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
손에는 방패, 검, 스태프 등등 들고 있는 무기들이 다양했다.
그런데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얼굴이 제각각이 아닌, 같은 얼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심지어 그에게는 참으로 익숙한 얼굴이었다.
‘구르카. 그럼 여기도 구르카와 관련된 곳이라는 건가?’
사탑에서 보았던 구르카의 분신.
그 얼굴과 똑같았다.
태현은 석상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정면을 보았다.
정면에는 거대한 문이 3개가 있었고, 좌편과 우편에 있는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문은 개방되어 있었는데, 그 너머로 황금색으로 빛나는 작은 문이 하나 보였다.
아무래도 저기가 빠져나가는 길일 가능성이 높다.
‘그냥 빠져나가게 둘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까지 이런 스산한 곳에서는 무언가 함정이 설치되어있었다.
쉽게 보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태현은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을 꼼꼼하게 탐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쾅!
그러던 중, 단단히 잠겨있었던 좌편과 우편의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수많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병사들을 전부 처치하세요.]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와··· 진짜 열 받게 만드네.”
뭘 해도 쉽게 끝나는 게 없었다.
태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곡괭이를 꺼내들었다.
현재 스킬은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
능력치마저 60% 너프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손쉽게 상대하고도 남을 병사들이 지금은 굳건한 바위같이 느껴졌다.
태현이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그대로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이 녀석은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디를 간 거야···.”
임지성이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중얼거렸다.
게이트가 끝나자마자 난데없이 사라진 태현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 하루가 지나고, 오후가 되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리라.
“찾으러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사무실에서 같이 작업 중인 유지아가 말을 건넸다.
“됐어.”
임지성이 고개를 저었다.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이 조금은 되었지만, 태현이 누군가?
수많은 병사들을 부리고, 본인 또한 S급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는 그가 위험에 빠질 일은 지극히 적었다.
성장형 G급.
그런 괴물을 걱정하는 것은 쓸 데 없는 행동이다.
“그런 것 치고는 걱정이 많아 보이는데?”
유지아가 피식 웃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임지성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아무리 태현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걱정은 되는 모양이다.
“뭘··· 어쨌든, 이 인원들을 뽑는 걸로 하자는 거?”
임지성이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펄럭였다.
예비 길드원의 신상이 적혀있는 리스트였다.
“그래. 스팩이 다들 괜찮더라고. 사고 친 것도 없고, 관리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내렸고,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데.”
“그래?”
유지아가 뽑은 인원은 총 6명.
그것도 B~C급으로 이루어진 각성자들이다.
태현이 몇 명을 뽑겠다는 말이 없어서 일단은 6명으로 간추렸다.
임지성은 인적사항을 꼼꼼하게 살폈다.
“흠··· 확실히 평가는 좋네.”
사실 길드원을 뽑는 이유는 사무적인 일을 분담하기 위해서가 목적이다.
그러니 높은 등급의 각성자는 사실상 필요가 없었다.
태현이 부리는 병사들 대거가 A급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으니 여기서 A급 각성자를 추가해봤자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처리 능력이 얼마나 꼼꼼한가?
빠른 업무처리가 가능한가?
등등 그런 것들을 위주로 살펴야했다.
물론 제대로 된 평가는 일하는 것을 직접 봐야만 했고, 관리국에서 내린 평가는 단순히 각성자의 인성을 보는 게 다였다.
“그렇지? 일단은 일하는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인턴처럼?”
“바로 그거야.”
확실히 인턴이라면, 평가를 내리는데 적절할 것이다.
이 부분은 태현이 오면 곧바로 상의를 해봐야겠다.
띵~
마침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태현이 아니야?”
“아닐 걸? 걔는 그냥 막 들어오잖아.”
임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오랜만이구나?”
“···고구려 길드 사장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
그는 다름 아닌 고구려 길드의 임요한이었다.
임지성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임요한은 임지성의 몸을 옆으로 밀치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쇼파에 앉았다.
그 모습에 유지아가 기가 차서는 책상을 탁!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커피가 좋으세요? 아니면 녹차?”
물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고분고분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하지만, S급 헌터에게 덤비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는다.
“···뭐 하고 있지? 자리에 앉지 않고?”
그러나 임요한은 유지아의 말을 가볍게 씹고, 조용히 서 있는 임지성에게 물었다.
‘뭐야··· 나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거야?’
유지아는 화가 났지만, 자신이 나서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한 번 바라본 임지성은 순순히 임요한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제 말씀에 먼저 대답해주시죠.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나?”
“···그건 아닙니다만.”
“그런데 얼굴은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 마냥 구는 구나?”
임지성의 얼굴이 구겨졌다.
저렇게 철판을 까는 것도 능력이다.
내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저렇게 나온다는 말인가?
“···후우. 대충 어떤 용건인지 예상은 갑니다만, 확실하게 들어야겠습니다.”
임요한이 여기를 찾아왔을 이유는 2가지다.
첫 번째로 고구려와 자신의 일을 퍼뜨린 것.
그게 아니라면, 자신을 다시 고구려로 데려가려는 것.
물론 후자의 가능성은 지극히 적다.
“기사, 너희들의 소행이라고 들었다.”
임요한의 목적은 이것이다.
그의 말에 임지성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네. 기사는 저희 측에서 요청한 게 맞습니다.”
이미 다 알아보고 왔을 것이다.
얄팍한 거짓말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왜 그랬지? 이렇게 생각이 짧은 아이인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저 원래 이런데요. 모르셨나요? 천하의 임요한 헌터님께서 모르시는 것도 다 있으시네요?”
“임지성 헌터!”
임지성이 비아냥대자, 임요한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정길주가 나섰다.
고구려 길드 내에서도 길드원을 관리하는 책임자다.
등급은 A.
그 역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용히 노려보았다.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닙니다.”
“······.”
임지성의 일침에 정길주가 이를 꽉 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많이 컸구나?”
반면 임요한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임지성은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이야기의 원점으로 돌아갔다.
“본론으로 돌아가죠. 먼저 기사는 고구려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제 신세한탄을 좀 하려고 퍼뜨렸습니다.”
“······.”
“제가 당했던 일을 고스란히 전달했습니다. 뭘 더하거나 빼지도 않았죠. 단순히 제가 고생을 했으니 고구려에서 나와 신생 길드의 부마스터로 들어갔다. 그러니 독립한 것에 대해 지지해달라는 의도였죠.”
“흠, 생각해낸 변명이 고작 그거냐?”
“변명이 아닌데요?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말이 안 통하시니 원···.”
임지성은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저 얼굴.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임요한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아들을 향한 미소라기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좋은 말 할 때, 원래대로 돌려놔.”
“싫은데요. 아저씨.”
방금 목소리는 임지성이 아니었다.
임요한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그 앞에는 왕국 길드의 마스터.
태현이 서 있었다.